morehj.com evolves into a weblog
내 개인 홈페이지는 1998년 2월, 설날 연휴 때 처음 열렸다.
오우삼, 주윤발, 영웅본색 같은 주제로 열렸던 당시의 홈페이지(A Better Tomorrow, 영화 <영웅본색>의 영문제목)는 당시 대방동에 있던 나모인터랙티브 본사까지 가서 사들고 온 나모 웹에디터 2.0 정품으로 만들어졌고, 그해 4월에 공식개장을 하여 나름대로 그쪽 분야에서 인기도 얻었던 것 같다.
(2001년 8월에 딴지일보에서 연락을 받고 홈페이지 홍보성 글을 썼던 것이나, 2002년 7월 <윈드토커즈> 개봉 때 20세기 폭스에서 초청을 받아 영화 홍보차 방한한 오우삼을 홈페이지 방문자들과 함께 만나러 갔던 것이나, 지금 생각해보면 꽤 그럴듯한 추억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html 문서 하나 하나로 작성된 기존의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고, 결국 나의 홈페이지의 무게중심은 서서히 다른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ABT의 spin-off 개념으로 출발했던 취미모형쪽(뱅기청춘, 2001.12.1 시작)과 신변잡기 웹(Myself, 2002.7.6 시작)이 ABT보다도 더 중요시되었다. 홈페이지의 도메인이 johnwoo.pe.kr (오우삼의 영문이름)이었던 걸 생각해보면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쪽으로의 방향전환이었다.
ABT는 DHTML이나 플래시 같은 다양한 기능을 적용해보는 플랫폼으로서, 그리고 회원제 웹으로 진화를 염두에 둔 컨셉이었고, 뱅기청춘은 웹 상의 개인적인 모형완성품 포트폴리오 같은 방향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반면, 가장 개인화된 공간인 Myself는 게시판만으로 이루어진 단순한 구조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관리상의 이유로, 비교적 나중에 만들어진 뱅기청춘과 Myself는 모두 제로보드를 이용한 게시판만 있는 웹사이트가 되었고, 이 2개의 웹사이트에 운영자의 관심과 관리가 집중되기 시작했다. 요컨대 html로 시작해서 수많은 자료를 쌓아온 ABT는 메뉴를 하나 바꾸려 해도 전 html 문서를 다 고쳐야 하는, 불편함이 대두됐던 거다.ABT에 가해진 Finish blow는 ABT가 사용하고 있던 무료게시판 임대업체(노브레이크 테크놀로지)의 부도였다. 드림엑스, 하나포스 등으로 서버가 거듭 옮겨질 때부터 위태위태하더니 결국 회사 자체가 문을 닫고 말았고, 몇년간 내 홈페이지의 단골손님들이 올려둔 게시물은 하루아침에 0 byte로 화했다. --;; (물론 백업을 받아두긴 했지만...) 한때 하루 1천명까지도 위협하던 ABT의 카운터는 그 후로 1을 넘기지 못할 때가 많아졌다.
결국 나는 지난 2005년 4월, 웹호스팅 업체를 바꾸면서 개인 홈페이지의 도메인 자체도 기존의 johnwoo.pe.kr 에서 morehj.com 으로 바꿔버렸다. 근 6~7년을 이어온 johnwoo 라는 단어와의 인연을 접고 나 '개인'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more + HJ)
그리고 그로부터 1년 후인 2006년 4월. morehj.com 의 3가지 하위 웹사이트들은 하나의 블로그로 통합되었다.
제로보드로 그럭저럭 잘 운용되던 Myself와 뱅기청춘마저도 포기하고 '마침내' 웹사이트를 블로그화 하기로 한 것은, 즉시성과 연결성 때문이었다. (morehj.com 으로 도메인을 바꾼 후 1년 동안 고민한 결과다)
3가지 카테고리 어디에 쓰든지 가장 최근의 게시물이 웹사이트의 첫머리에 뜨는 즉시성, 트랙백을 통해 신경세포처럼 얽히게 되는 연결성, 그리고 관리의 용이성과 확장성을 보장하는 태터툴즈라는 블로그 저작도구의 존재까지, 블로그를 했을 때의 장점이 단점을 덮고도 남았다.
그래서 개인 웹사이트를 가진지 8년만에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