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n 선생님께 드리는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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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
등록일 2005-10-13
조회 1030
jen 선생님, 글 잘 읽었습니다. 제자가 쓴 비방의 글을 읽고 충격이 크셨으리라 짐작됩니다. 선생님께서 해석하신 대로 아이의 분노는 선생님을 향한 것이 아니라 더 근원적인 대상을 향한 것입니다. 내 편이고 나를 사랑하는 줄 알았던 선생님이 분노의 근원인 부모와 한 통속이었구나 하는 아이 수준의 판단이 선생님에게 분노를 전이시키게 된 원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요즈음 아이들에게는 블로그가 일기장 역할을 하는가 봅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런저런 대응 방법들에 대한 생각이 많으신 듯한데, 결정을 내리기 전에 아래에 덧붙이는 글을 읽고 참고해 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jen 선생님의 경험과 유사한 사례를 소재로 에세이를 발표한 일이 있습니다.
참고 삼아 덧붙이자면, 아이가 분노를 표현하더라도(울고 떼쓰고 땡깡부리기 같은) 일관되게, 인내심을 가지고, 관대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 그것이 엄마가 아이를 보살피는 보편적이고 올바른 방식입니다. 그 과정을 통해 아이는 내면의 불안감을 이겨내고, 사랑에 대한 신뢰감을 갖고, 자기 존재의 소중함을 느끼게 됩니다. 정서적으로 성장하는 거지요. 선생님께서 부디 현명한 판단을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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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아이들의 일기장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일찍 결혼한 친구는 이미 대학생이 된 아들이 있고, 늦게 결혼하여 늦게 아이를 낳은 친구는 이제 초등학생이 되는 딸을 두고 있는데, 친구들은 두 부류였다. 아이들의 일기장 같은 것은 모르는 척 그냥 내버려둔다는 쪽과, 그래도 애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아야 하니까 몰래 체크한다는 쪽.
그들 중 올해 중학교 들어간 딸을 둔 친구가 있었다. 그 딸은 중학생이 되면서 사춘기로 접어드는지 전에 없이 방에 들어가면 방문을 잠글 뿐 아니라 외출할 때는 책상 서랍을 자물쇠로 잠가 놓곤 했다. 친구는 ‘교양 있는 엄마로서’ 딸의 책상 서랍 같은 것을 뒤져볼 마음은 처음부터 없었다고 했다. 사춘기 딸이 개인적이고 비밀스러운 사생활 영역을 갖기 시작했구나 생각하면서 그저 모르는 척해주는 게 상책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딸 아이의 실수인지, 의도적 행위인지 책상 서랍에 자물쇠가 잠겨져 있지 않은 날이 있었다.
교양 있는 엄마로서 그것조차 못 본 척해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열린 서랍 앞에서 호기심이 교양을 이기고 말았다. 딸의 책상 서랍을 열고, 그 안에 든 일기장을 발견하고, 그것을 한두 장씩 넘겨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몇 장 넘기지 못해 친구는 심장이 두근거리고 다리가 떨려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 상태로 딸의 일기장을 대충 훑어봤는데, 그 공책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엄마에 대한 욕이 가득 적혀 있었다고 했다.
친구는 모든 것을 원위치로 돌려 놓고, 아무 일 없는 듯 집안 일을 계속했지만 손이 떨려 무엇도 제대로 해낼 수 없었다고 했다. 딸 아이가 괘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안하고, 오면 호되게 야단쳐야지 싶다가도 그래선 안되지 하는 마음이 들고, 나름대로 딸에게 잘 대해주는 좋은 엄마라고 자부했는데 어디서 어긋난 걸까 되새겨보기도 하면서……. 오후 내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표면적으로는 말 잘 듣고 공부 잘 하는 모범생인 딸의 내면에 그토록 반항적이고 파괴적인 마음이 있었다는 사실이 제일 충격적이었다. 그렇게 마음이 뒤죽박죽인 채로 저녁이 되었을 때 친구는 상 차리기를 포기하고 외출했다고 했다.
“그 길로 먼저 애들 키워낸 선배를 찾아가 물어봤지. 그랬더니 그 선배가 웃으면서, 애들 키울 때 그런 일은 예사라면서, 그냥 모르는 척하는 게 최고라고 말하는 거야. 생각해봐, 우리도 사춘기 때는 별의별 생각을 다 했잖아.”
친구는 그 일을 절대 모르는 척하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고, 아무 일 없는 듯 딸을 대했지만, 실은 일주일 동안이나 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기간 동안 아주 많은 것을 되새겨보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잘못한 게 많더라. 걔 태어났을 때 내가 어리기도 하고 뭘 모르기도 했어. 아기 때 걔 고집 꺾는다고 걔랑 자존심 싸움 같은 걸 했던 것 같아. 그때 애가 고집부리고 엄마 이겨 먹으려 할 때 다 받아주고 포용해야 했는데, 너무 어려서 그걸 몰랐어.”
친구는 자신이 잘못한 사실 또 한 가지를 털어놓았다. 딸 아이 밑으로 아들이 태어났는데, 아무래도 딸보다 아들이 태어났을 때 자신이 더 만족하고 행복해 했던 게 틀림없다는 것이다. 동생 보는 아이한테 시샘하는 마음이 생겼을 텐데, 게다가 딸이라고 차별감까지 느끼게 했으니……. 친구는 딸의 마음 속에 어떤 서운함이나 분노가 자리잡고 있다면 아마도 거기서부터 잘못되었을 거라고 스스로를 진단했다. 더구나 딸 키우면서 겪은 시행착오을 바탕으로 아들은 한결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키워냈으니 아들은 여러 면에서 딸보다 편안한 유년기를 보냈을 거라는 거였다. 그런 남동생을 보면서 딸은 아마도 계속해서 어떤 차별감을 느끼게 되었을 거라고도 덧붙였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내 어렸을 적 일기장이 생각났다. 초등학교 5,6학년 때의 일이다. 그때는 부모가 이혼한 후 처음으로 내가 하숙집에 맡겨진 때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 삶의 터전이 와해된 상태에 처한 아이는 아마도 심리적 스트레스가 최고치에 닿아 있었을 것이다. 분노와 우울과 불안 같은 감정들이 마음 속에서 뒤섞여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혼돈 상태로 지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마음들을 하소연하거나 투정할 대상도 없이, 내면의 모든 것들을 억압한 상태로 학교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 시절의 나를 기억하는 초등학교 친구는 당시의 내가 말없이 온순하고 조용한 편이었다고 회상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 거의 폭발 직전의 화약고 같았을 내면을 그나마 조절하고 해소시켜주는 유일한 통로가 일기였던 것 같다. 물론 일기는 학교에서 내어준 숙제의 일부였고, 선생님은 일주일에 한 번씩 그 일기장을 검사했다. 나는 그 일기 속에 내면의 모든 것을 쏟아냈던 것 같다. 다른 친구들이 엄마에게 조잘거릴 그 날 일과를 일기에 썼고, 친구들과 있었던 일이나 읽은 책에 대해서도 일기에 기록했다. 무엇보다 내면의 분노와 불안과 우울까지도 거름 장치 없이 일기장에 토로했을 것이다.
아니, 쉽고 솔직하게 말하면 내 일기장에는 부모와 선생님에 대한 욕이 7, 80퍼센트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욕은 지금도 입에 올릴 수조차 없을 정도로 험악한 언어들이었고, 도저히 아이가 사용할 만한 내용의 욕이 아니었고, 대체 어디서 그 욕들을 배웠을까 의심되는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아무런 자의식이나 자각 없이 욕으로 점철된 일기를 쓰곤 했고 일기장은 세 권, 네 권으로 늘어나 내 일기장 묶음이 반에서 가장 투터웠던 걸로 기억된다.
지금도 그 일기장을 기억하는 이유는 내가 그토록 욕으로 일관된 일기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교대를 졸업하고 갓 부임한 담임 선생님께서 그 일기장에 꼬박꼬박 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상 받은 일기장을 복도 난간에 표본처럼 전시해 두기도 했다. 한 번은 연세 많으신 교감 선생님이 그 일기장을 들춰 보다가 “아니, 뭐 이런 학생이 다 있어?”라고 말씀하시며 놀라는 것을 바로 옆에서 복도 청소를 하다가 들은 일도 있다.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교감 선생님보다는 담임 선생님이 아이들의 심리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으셨던 것 같다.
엄마에 대한 욕으로 점철된 딸의 일기장을 보고 놀란 친구에게 나는 내 어렸을 적 일기장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그때는 일기장에 욕을 쓰는 그 행위만이 유일하게 내가 심리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었다는 것을 아주 나중에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바로 그 일기장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나마 조용하고 온순한 학생의 외양으로 무사히 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한 가지 명백한 사실은, 내가 적었던 그 모든 욕들이 실은 ‘기대한 만큼 돌아오지 않은 사랑에 대한 분노’여서, 거칠게 단순화시켜 말하면 그 욕들은 “제발 나를 좀 사랑하고 보살펴줘요”라는 외침이었다는 것이다.
나중에 그 시절의 일기장을 생각해 보다가, 내가 소설가가 되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주신 분이 계시다면 그때의 담임 선생님 아닐까 싶었던 적이 있다. 만약 그때 그 선생님께서 내가 쓴 일기에 대해, 일기 쓰는 방식에 대해 단 한 마디라도 야단을 치셨다면 소심하고 위축되어 있던 그때의 나는 그 후 단 한 줄도 일기를 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일기를 쓰지 못했다면 내면에서 소용돌이치는 감정들을 쏟아내는 길을 찾지 못해 반항된 행동이나 폭력으로 그 억압들을 분출했을지도 모른다. 험악한 욕으로 점철된 일기장을 묵묵히 지켜봐 주시는 선생님의 용인과 격려 속에서 나는 아마도 생각과 감정을 저어함 없이 표현하는 글쓰기 방식을 훈련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때 그 선생님이 가슴 저리도록 고맙게 느껴지던 순간이 있었다.
행복한 사람은 일기를 쓰지 않는다.
이 명제가 얼마나 진실에 부합되는지 알 수 없으나 ‘사실’에는 어느 정도 접근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기억할 만한 일기 문학들을 떠올려보면 저자가 행복하고 충만한 시기에 쓴 것보다는 억압되고 고통스럽고 소외된 상태에서 쓴 것들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안네 프랑크가 쓴 ‘안네의 일기’도 그렇고, 이순신이 쓴 ‘난중일기’도 그렇고, 윌리엄 소로가 쓴 ‘소로의 일기’도 그러하다.
몇 해 전 한 지방 도시에서 성매매 여성들이 그들의 비인간적인 주거지에서 화재를 당해 탈출도 못한 채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그 화재 사건을 계기로 그들의 열악한 생활 환경과 근무 조건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그때 사망한 성매매 여성이 꼬박꼬박 써내려간 일기장이 사진과 함께 신문에 보도된 것을 본 일이 있다. 그 일기장의 글씨체는 마치 사춘기 소녀들의 그것처럼 도형적 이미지가 두드러지는 형태였고 내용은 기도문의 간곡함을 담고 있었다.
그 일기장 사진을 오래 들여다 보았던 기억이 있다. 일기장을 보고 있는 동안 가슴이 두근거리는 정서적 반응이 내면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물론 도형적 글씨체나 간구하는 듯한 문장들 때문이 아니었다. 그 뒤편에 있는 것, 일기를 쓰면서 머뭇거리거나, 가슴을 움켜쥐거나, 맥없이 풀리기도 했을 어떤 여성의 손이 보이는 것 같았다. 모욕적이거나 파괴적이거나 절망적이었을 상황 앞에서 오직 일기 쓰기밖에 할 수 없는 한 여성의 얼굴도 그려질 듯 떠올랐다.
그 일기는 내 눈에, 그 여성이 유일하게 숨쉴 수 있는 심리적 산소 마스크처럼 보였다. 오래 전 한 초등학생을 심리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게 배려해 주신 그 선생님 역시 이런 마음으로 그 일기장을 보고 계셨겠구나 싶어지기도 했다. 그 선생님은 지금도 교감 선생님으로 교직에 계신다고 한다. 얼마 전 초등학교 동창이 전화해서 그 선생님을 찾아 뵈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선생님이 의외로 나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계시더라고 하면서, 한 번 찾아뵈면 반가워하실 거라고 덧붙였다.
나는 혼자 오래도록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은 아마도 나보다는 나의 일기장을, 일기장 속의 욕들을 더 명확히 기억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직 생활 기간 중에 그토록 살벌한 욕을, 공책 서너 권이 되도록 적어나간 학생을 그 후 몇 명이나 만나셨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언젠가 한 번 찾아뵈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지만 번다한 일상과 게으름 때문에 언제가 될지 막연하기만 하다.
쭝
2005/10/20 10:37
2005/10/20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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