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SS구독하기:SUBSCRIBE TO RSS FEED
즐겨찾기추가:ADD FAVORITE
글쓰기:POST
관리자:ADMINISTRATOR
 
 
 
 
며칠전에 집사람과 한국의 개고기 식문화에 대해 토론을 좀 했다. (집에서 간혹 이런 인화성 높은 주제에 대해 부부토론을 하곤 함) 문제의 발단은 이 기사 때문이었다.

[클릭] 책 펴낸 개고기 박사 "프랑스도 개고기 국가"

한국의 개고기 식문화에 대해 가장 심한 비판을 가하는 프랑스에 대해 '너희 조상도 그랬다'는 사실을 들이대는 것이 이런 첨예한 논쟁에서 무슨 쓸모가 있을까 한심하기도 했고 레토르트 파우치(3분요리) 같은 개고기 레시피를 개발했다는 것도 어이가 없던 차에, 이를 계기로 집사람과 개고기 식문화에 대해 토론을 하게 된 것. 나야 지독한 개고기 식용 반대론자이고 집사람은 (개고기를 먹진 않지만) 한국에서 개고기 먹는 것은 별 문제가 안된다는 입장이어서 아주 불꽃튀는 격론을 벌였다. 결과는 물론 나지 않았고...^^;

난 서양에서 우리나라를 '개고기 먹는 나라'라고 비하할 때 우리나라가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휘둘러대는 '문화상대주의'라는 논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문화상대주의'야 맞는 말이긴 하지만, 이 개고기 식문화 논쟁을 불식시킬 수 있는 정확한 무기는 아니라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좀더 자세히 말하자면, 개고기 식문화 논쟁은 단순한 '먹는 문화'가 아닌 다른 형태의 문제라는 느낌이 강했다. (이런 논리로 풀어가지 않는다면, 개고기 반대론은 더 원초적인 육식/채식논쟁의 덫에 걸려 한발짝도 나가지 못한다)

그게 뭔지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려웠지만 어렴풋이 '마초이즘'이 아닐까 싶었고, 집사람과의 토론에서도 (아니, 그 이전부터) '한국의 개고기 식문화는 남성들만이 공유하는 서브컬처이고, 결코 주류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물론, 한국 남성사회에서 '개고기' 회식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남자인 나만큼 피부에 와닿게 느껴본 적이 없을 집사람은 나의 입장을 크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개고기' 회식을 통해 자신들의 힘과 유대감을 확인하는 것은, 광화문/과천의 고시공무원 사회건, 시장통의 상인사회건 한국의 남성사회라면 동일한, 하나의 '의식'과도 같은 것이다)

마침, 딴지일보를 보다가 비슷한 관점을 가진 '길가메시'의 글(댓글)을 봤다. 나의 어렴풋한 짐작(가설?)을 좀더 정확하고 명확하게 구성하고 있는 것 같다. 딴지일보의 [개고기 떡밥을 물어주마]라는 기사에 달린, '길가메시'의 댓글을 여기에 옮겨본다. (띄어쓰기와 문단정리, 볼드체는 내가 작업함)

참고로, 다른 기사에 단 댓글(포스팅 아래에 첨부)에 따르면, 길가메시는 개고기 애호가까지는 아니지만 개고기를 1년에 2번 정도 먹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
1.
'개고기 먹을 자유를 허하라'가 아이아스글의 제목이다. 먹을 자유가 있는데 먹을 자유를 달라는것 자체가 문제의식을 가질만 하다. 법이 개고기를 합법도 불법도 아닌 사각지대가 방치한것은 주지의 사실이나, 개고기를 먹을 자유가 꽤나 광범위하게 존재함도 새삼스런 얘기이다.

뭔가가 빠져있다. 그것이 '안전하고 좋은 질의 개고기를 먹을 자유'를 허하라라면... 말이 된다. 그러나 글은 이부분에 대해서 별로 신경도 쓰지 않았다. 사실 질좋은 개고기를 먹는 좋은 방법은 이미 있다. DIY. 직접 취향에 맞게 살아있는 황구를 구입하면 된다. 개고기 좋아하는 사람 다섯명만 의기투합하면 충분하다. 물론 문제의 본질에서는 조금 벗어난다만.

'개고기 반대론자의 비난으로부터 자유롭게'...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니었던가. 개고기를 먹을것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개고기를 먹는 행위를 야만적이라고 규탄하는 목소리가 듣기 싫다는 것이다. 합법화는 개고기는 떳떳한 고기라는 것을 명확히 하자는 얘기에 불과하다.

개고기 반대의 논리는 아주 복합적이다. 개라는 동물의 특성, 사육방식, 도축방식, 개를 먹는 행위가 애견가에게 주는 심리적 효과, 보신탕을 한여름 정력식품으로 믿는 희한한 문화 등등. 그중에서 개의 고유 특성 부분은 원래 주관적인 것이라 합리적 측정이 불가능하다. 도축방식은 다른 가축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고 문제의 핵심도 아니다. 그러므로 그 부분을 위주로 합법적 개고기를 주장하기는 쉽다. 그러나 남은 문제는 결코 쉬운게 아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개는 고기를 얻기 위해 사육하기 위한 동물로서는 사치스런 놈이다.
인류학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어줍잖게 읽은 책에서 개고기를 다른 가축의 고기와 같이 일상적으로 먹는 문명은 없다고 읽었다. 우린 거의 모든 동물을 먹을 수 있지만, 맛있어 보인다고 모두 먹지는 않는다. 원숭이 고기를 먹어본적은 없지만 아마도 꽤나 맛있을 거라고 짐작해 본다. 사람고기가 그렇게 맛있다고 하는데 아마도 그렇다면 유인원의 고기는 그만큼은 맛있지 않을까. 최소한 그렇게 느낄 이유는 충분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고기만을 얻기 위해 사육하기에는 너무 비효율적이다. 그러므로 그런 고기는 특정 지역의 별미 정도로 남게 된다. 개고기는 이런 범주에 포함된다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조선땅에서 개고기가 살아남은 주요 원동력은, 잘 확립된 조리법과 스태미너에 좋다는 별 근거없는 믿음에 있다. 그것이 없었다면 우리도 역시나 개고기를 쳐다보지 않았을 것이다.

왜 개고기는 스태미너와 연결이 되었을까. 이게 문제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물론 한여름에 부족한 체력을 보충했을 것이다만은 그거야 무슨 고기를 먹어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삼계탕이 또다른 복날 메뉴이다.) 전통적 사회에서는 흔히 그 동물이 가진 특성이 그것을 먹으면서 넘어오게 된다고들 믿는다. 눈이 안좋으면 동물의 눈을, 간이 안좋으면 간을 먹으라는것과 같이. 개는 왜 스태미너인가. 그건 이 훈련되지 않는 똥개들이 길거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교미를 해대는 모습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여기엔 아마도 오해가 있을 것이다. 개가 유난히 거시기를 좋아하는 동물은 아니다. 돼지, 소는 하고 싶어도 격리수용되어져 있다. 고양이같은 동물은 공개된 장소에서 그짓을 하지 않을만큼 조심스런 놈들이다. 그러니 유독 개들이 길에서 그짓을 해대는꼴을 많이 봐왔던 것이다.

2.
개가 그짓을 하는 광경은 별볼거리없는 전통적 시골생활의 좋은 오락거리이다. 숫컷들은 자기 몸길이에 비해서 거시기가 엄청나게 커진다. 그리고 일을 끝내고도 바로 암컷에게서 이탈을 못하는데 동네 아이들은 여기다가 물을 뿌리고 돌을 던지며 약을 올리곤 했다. 커진 거시기가 다시 줄어드는데까지 시간이 꽤나 걸리기 때문이다. '발정난 개'... 많은 동물이 발정이 나지만 개의 발정은 그 결과를 목격할 수 있다. 괜히 만들어진 표현이 아니란 말이다. 이런 것들은 젊은 색시들에게는 차마 고개도 못들 부끄러운 얘기이고 동네 아자씨, 아줌마들에게는 재미있는 화제이다.

이쁘고 아직 숫처녀일듯한 청순한 처자가 개고기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 물론 억지로 아무렇지도 않은듯 말을 할지 모르지만. 흥미로운 얘기거리를 들은득 속으로 키득거릴것이다. 진지한 보신탕 예찬론자조차 속으론 그럴것이다. 개고기는 본질상 천박한 음식이다. 그래서 절대로 결혼때문에 모인 양가의 어르신들이 마주 앉아 먹을 음식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특성이 개고기에 대한 애착을 나았다. 개고기가 맛있는 이유중 하나는 그것이 다소나마 금기된 음식이기 때문이다. 만약 통조림에 담겨서 마트에서 팔린다면 되려 개고기는 안 팔릴지도 모른다. 개고기가 주는 신비한 효염은 그 단백질 구조에서 나오는게 아니다.

개고기는 마초의 음식이다.
그렇다고 개고기를 먹는 모든 사람(나를 포함해서)이 마초라는건 아니다. 다만 개고기의 찬반 강력한 찬성과 반대는 마초인지 여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게 현실이다. 그래서 아이아스의 글이 마초들에게 공명을 일으킨 것이다. 실습용 토끼를 두고 해야될 일을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건장한 남성과, 좋은 점수를 받을만큼 그 일의 과실을 잘도 따먹지만 이 우직한 청년의 뒷통수를 치는 말을 남기고 사라지는 얄미운 젊은 '처녀'. 씨바, 남자로 태어나서 슬프다...라는 말을 하고 싶은거겠지.
개고기가 법의 테두리밖에 내동이쳐진 주요원인은 보신탕을 즐기는 남자를 짐승으로 보는 처자들의 얄미운 시선이나, 강아지가 관절염을 앓도록 팔에 안아 키우면서 자신들은 동물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동물애호가들의 정치적 압박이 아니다. 세상 돌아가는거 다 아시는 분들이 왜 모른척 하시나. 그건 대한민국이 항상 환장하는 고품위 국가이미지에 도움이 안되기 때문이다. 개고기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된건 쌍팔년 올림픽 때문이었고, 그 이후로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식문화로 포장되어져 왔다. 동아시아 많은 국가에서 개를 먹음에도 하필이면 한국이 대표적 국가로 찍힌 상황에서 그 나라들 역시 이를 쉬쉬하면서 반오리엔탈리즘 공동전선이 구축이 안되는 것이다. 김홍신 의원의 개고기 합법화 법안은 여성 의원들의 손이 아니라 남성주류의원들 손에서 버려진 것이다.

개고기 논란을 회피할 수 있는 좋은 사업 아이템이 있다. 많은 나라에서 한때는 사람의 반려동물이었던 개가 야생의 들개가 된경우를 볼 수 있다. 호주의 딩고가 가장 유명할 것이다. 보기에는 그냥 개다. 그것도 황구가 주종류다. 호주의 농장들이 끔찍히도 싫어하는 골치거리이고 사실 특성상 사람이 기르는 개와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가고 있다고 보면 된다. 즉, '개'이지만 '개'가 아니다. 딩고를 잡아먹는 행위는 야생동물보호의 측면에는 위배될지 모르나 인간의 동반자를 먹는다는 비판은 피할 수 있을지 모른다.

3.
개고기를 전면 불법화하고 대신 이 딩고를 몇마리 수입해서 육종하면 어떨까. 사실은 딩고라고 속이고 일반 개와 교미시켜서 다루기 편하고 살 잘 붙는 잡종을 (도사견과 같이) 만들수도 있다. 다만 이제 개고기란 말은 쓰지 말고 '단고기'와 같이 개가 연상되지 않는 단어를 사용하면 어떨까. 대신 가격은 현재 개고기 값의 2, 3배쯤될거 같다. 개도 키우기 힘든데 이 놈들은 얼마나 키우기 힘들겠냐. 과연 개고기를 개고기라고 부르지 않아도 개고기가 인기를 유지할까. 나는 시골출신이고 아버지는 내게 그 땅을 물려줄 것이다. 정말 사업이 될것같으면 해보자고 덤벼들 친구들도 있다. 그러니 만약 님이 딩고고기를 좋아할것 같고 그렇게 질좋고 떳떳한 개고기를 즐기는 미식가라면, 개고기 전면 불법화를 찬성해주기 바란다. 그럼 시장은 수년내에 개고기를 대체할 고기를 공급해줄 것이다.

나는 문제의 본질이 무엇이냐고 묻고 싶다. 이것은 순전히 어떤 고기에 대한 이야기인가, 아니면 어떤 이상한 느낌을 주는 고기에 대한 문화적 태도에 대한 논란인가. 누군가는 전자라고 우길것이다. 나는 아니라고 본다.

[참고] 다른 개고기 기사에 실린 '길가메시'의 댓글 (더보기)


-------------------------

다시 말하지만, 이렇게 옮겨적고 나니 내가 어렴풋이 가졌던 '개고기 식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어디서 온 것인지 확실해진다. 학연, 지연, 그리고 쥐꼬리만한 권력을 매개로 힘을 휘두르고 서로의 연대를 확인하던 한국 (남성)사회의 마초이즘과 폭압성에 대한 거부감이 그 정체였던 거다.

(물론 이러한 거부감이 어릴 때부터 형성됐던 것은 아니다. 어릴 때는 단순히 '개고기'를 얻는 방법, 즉 도륙법의 잔인성이 충격으로 다가왔고 그 때문에 개고기를 혐오했던 것 같다. (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MBC 뉴스 등을 통해 '몰래카메라' 형식으로 개고기 식당의 잔인한 개고기 도륙법이 전파를 타곤 했다) 그러다가 커가면서 육식/채식문제나 문화상대주의 개념을 접하고 '개고기' 자체에 대한 맹목적 혐오감은 잦아들었지만, 머리가 굵어진만큼 개고기가 한국사회에서 차지하는 문화적 맥락(마초이즘)을 인식하게 됐고 '개고기 식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자리잡기 시작했던 거다)

지금 찾아보니 이미 5년 전에도 개고기 식문화를 한국사회의 마초이즘으로 읽어낸 관점이 있었다. 내가 보기엔 이 관점이 한국 내의 개고기 식문화 찬반론을 파악하는 데 가장 유용한 도구지만,  이 관점이 널리 퍼지지 못하고 여전히 개고기 식문화 찬반론이 '문화상대주의'와 '육식/채식 논쟁'에서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다.
2010/07/22 22:22 2010/07/22 22:22
http://morehj.com/blog/trackback/858
from.inthegroove's me2day  2011/08/14 16:20
개고기는 본질상 천박한 음식이다. 그래서 절대로 결혼때문에 모인 양가의 어르신들이 마주 앉아 먹을 음식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특성이 개고기에 대한 애착을 나았다. 개고기가 맛있는 이유
돌쇠  | 2010/09/06 20:47
개를 반려동물로써, 돼지 닭 소와는 다른 동물로 분류하느냐
아니냐는
개인의 선택이고 자유이지요.
기독교를 믿느냐, 불교를 믿느냐, 이슬람을 믿느냐 처럼요.
기독교 믿는 사람들이 불교 욕하거나 조상님께 제사를 우상숭배라고 해도
그건 개인의 자유입니다.


문제는
기독교인들이 불상을 파괴하거나 단군상의 목을 자르는 일...
그리고... 개고기 반대론자들이 개고기 찬성론자들을 욕하는 일이지요.
문제의 발단은 분명히
개고기 반대론자들이 일으키는 거지요. (찬성론자들은 반박하고...)



또 문제는
개고기 반대론자들이 논리를 꾸며내는 거지요.
처음에는 개가 인간의 친구라고 그랬다가
그 다음에는 자기들은 채식을 지향한다고 그랬다가
그 다음에는 식용견의 사육환경이 안좋다고 하면서
개고기 반대를 외치지요.
논리야 어쨌든 개고기만 반대하면 된다... 이런 생각이 문제인 겁니다.



하나하나 반박하자면
개가 인간의 친구인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에 불과한 것이고
잡식동물인 인간이 개고기를 먹는 것은 잘못이 아니고
식용견의 사육환경에 대해서라면...
식용견 뿐 아니라 식용돼지, 식용닭, 식용소 등
모든 식용동물의 사육환경이 좋지 않은데
식용동물의 사육환경을 개선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오직 식용동물 목록에서 개만 뺄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동물협회> 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것이 역겨울 따름입니다...
  | 2010/09/08 15:14
동물애호단체의 논리가 불합리하다는 데는 동의합니다만, '그것이 불합리하기 때문에 개고기를 먹겠다'라는 논리는 역시 성립하지 않습니다. 광우병 사태가 우리에게 '육식'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했던 것처럼 개고기 문제 역시 '육식'에 대한 성찰로 나아가는 게 맞겠죠.

하지만 제 생각은, 한국의 개고기 논쟁이란 단순한 식문화와는 다른, 별개의 문화적 맥락(이른바 마초문화)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관점에 따르면 한국의 개고기 문화는 다른 육식문화와 구별되는 독특한 층위를 갖게 되죠.
fd  | 2010/11/06 16:44
식용개란 따로없습니다 한국인은 개라면 다쳐먹는민족들임
개고기 합법화되면 더많은 개고기농장들이 생기고 마트와 정육점가면 개고기를 근으로 살수있겟죠 통조림 라면 소세지에개고기육이 들어가고요 ㅋ 아주해외톡픽감이네욬ㅋㅋ
그리고 개고기문화땜시 한국은 개가 반려동물이 아닌 가축으로되어있죠 법에..그래서 개고양이 사람과가장가까이에있어 학대를 가장많이받는 이동물들을위한 동물법은 쓰레기자체죠 아예없다봐야져 개고기가 불법이되야 개가 반려동물로 법에올라가고 동물법이강화되고 사람들의 인식이 바귈것입니다 동물에대하여요 서양인들처럼요 서양인들은 채식주의자가많아요 윤리적인요 우리나라는 개=먹는거 이라는생각에 개를 악세사리로보기에 반려동물이아닌 쉽게버리고 쉽게 학대합니다 제가 캐나다에사는데 여기에 동물보호소가면 정말 없어요 버려진 개들이요 5마리도 안되요 그것도 주인들이 아프거나 죽어서 직접데리고온동물들이죠 한국은 개고기가없어지지않으면 영원한 동물후진국이죠 그리고 재고기합법되어 이마트에가서 신선한 개고기 한근에 만원이라는 소리좀들어보고싶네요 호호 한국관광광고중 한식부분에서 한복입고 개고기탕에다 김치한점이 진정한 한국의 미아닐까요? 전통문화라면요? ㅋㅋ
  | 2010/11/08 15:42
개고기문화 때문에 개가 가축으로 되어있는 것은 아닐 겁니다. 그리고 서양에서 소나 돼지, 거위 등이 받는 취급을 생각하면 '동물선진국'이라는 개념이 있는지도 의문이구요. 결국, 근본적인 문제는 생명에 대한 태도겠죠.

하지만 저는, 그보다는 '개고기문화'가 한국사회에서 갖는 특별한 문화적 분위기 - '마초성을 강화한다'라는 분위기에 더 주목하고 싶었어요.
반대의 이유  | 2011/05/16 09:19
개고기는 야만적인 식습관이며 그런 드러운 문화는 없어져야지만 한국에 도움이됨니다
어째서 개고기가불법이되어야하는지 이유를 말하죠
1. 개고기문화와 반려문화는 함께 공존할수없습니다
- 개 고양이는 인간주위에 가까이있고 인간을 따름니다 그리하여 다른 동물에비해 학대당할여지가 높습니다 그리하여 일본및 서양처럼 반려동물문화가 있는곳엔 반려동물법이 있습니다 허나 우리나라는 없죠 왜냐? 반려동물법이 생기면 개고양이를 먹을수없기떄문입니다 그래서 한국엔 많은 동물학대가 이루어지고있고 그처벌도 미미하죠 사람들이 개 고양이를 먹는것으로 생각하기에 즉 물건처럼 생각하기에 (서양 일본은 식구처럼생각하죠) 쉽게 학대하고 쉽게 버리죠 마치 패션 악세사리를 생각하듯요
2.반려동물문화와 충돌
- 한국에 많은 사람들이 개 고양이를 키우고있는데 이미 자신의 반려동물들과 식구로 감정을 나누고있는 사람들에게 개고기는 토나오는 현실이죠 한국인들은 식용개가 따로있다면서 말하지만 다거짓말입니다
진도 삽살 풍산 백구 골디 허스키 코카등 중 대형개는 개고기감으로 말티 요키 치와와등 소형개는 개소주로 만들어지고있습니다 어던이는 믹스개만 식용개라는데 그럼 말티와 푸들믹스개는 개고기감입니까? 한국의 현실은 주인있는개는 애견 없는개는 개고기감입니다 한국에서 개잊어버리지 마세요 개고기농장으로가면 찻을수도 없습니다
3. 개고기합법이되면 한국의 이미지와 한국인의 식생활에 많은문제가
- 개고기합법 합법하자고 개고기 마니아분들이 주장하지만
상상해보세요 개고기가 합법되어 이마트 홈플러스등 적육점코너에서 개고기 한근에 만원
그것도 종류별로 말티즈고기 백구고기 허스키고기 등등
게다가 개고기합법이되면 많은 가공식품에 쇠고기대신 쓸수가있죠 라면스프에 햄에 만두에등 개고기가 함량되어있을것입니다 개고기함량이적으면 안써져있을수도있슴니다 즉 어떤 음식에나 개고기가들어가있을수있죠 개고기불고기 개고기육회등 많은 개고기메뉴가 대부분의 한식집에 팔리겠죠 칼국수등의 국물에도 개고기로 국물을...
집에가면 옆에는 말티즈애견을키우고 그날저녁은 개고기탕 ㅋㅋㅋ
아마 외국에서 특종으로 너도나도 올것입니다
그리고 한식광고에 한복입고 개고기탕에 김치 한점...이게 자랑스럽습니까?
중국같이 중화사상 강한나라에서도 쪽팔려서 한국인 조선인들만 먹는게 개고기라고하죠
조선족들만 먹는다구요
한국=개고기 이미지가 더욱진하게 박히겠죠
개키우면서 캐를 미친듯먹는다구요
4. 개고기로인한 반려동물법이 없는 한국
-더욱더 많은 개 고양이가 버려질것이고 (한국 중국베트남등 개고기문화권나라들은 서양 일본에비해 훨신더많은 개들이 버려지고 학대당합니다) 쉽게 학대당할것입니다 (개를 먹는걸로 인식하기에 즉 물건으로요)개고기합법이되면 아마 자신의 개에게도 개고기를 먹이겠죠 먹인소세지에 개고기 함량 10프로 ㅋㅋㅋㅋ
5. 개고기문화국가의 동물권리는 열악
-한국중국베트남등의 개고기국가들의 다른동물환경은 더욱열악하죠
가까이에있는 개고양이도 물건으로 생각하는데 돼지 소등은 더욱하죠(예가 돼지생매장)
어쩔수없는 이치입니다
6. 개고기현실
오늘도 뉴스를보니 백구가 다른개들을 잡아먹는다고 나오더군요
한국의 개고기사육장에가보면 개들은 작은 철장박스에 평생을 갇아놓고 귀는 못짓게 되고챙이로 고막을 뚫어놓져 게다가 다르개앞에서 개를잡고 아직살아있는상태에서 털을뱃김니다 고기는 개고기집으로 내장은 다른개들의 먹이로 주져 그러니 개들이 몬스터가되어 다르종족들을 먹이로보져 ㅋ 한국에선 서울이외에 지방에 이사가기를 무서워하는데 그건 개고기사육장들이 경기도등 지방에있거든요 우리집옆이 개고기사육장이라 생각해보세요 ㅋㅋ 개는 먹는것보다 뛰어다닐때 행복해하고 인간을 바보같이 좋아하죠
개고기사육장가보면 백구등 개들이 사람을보면 방갑게 꼬리를 흔들어줌니다 또한 한국재래시장에가면 살이 부드럽다고 아직새끼 강아지들은 즉석에서 목을따줌니다 또한 임신한개들이 보신에좋다고 임식막달인 어미개들을 잡아 삶아먹죠 새끼가 다섯이나 들었네? 하면서요 한국인들은 전통이라 이해할지모르나 외국인들은 혐오 그자체죠 아마 한국이 개고기 안먹는 국가엿다면 더욱 욕했을껄요?

이것보다 많지만 줄임니다
개고기를 포기못하겠다면
반려동물문화를 포기해야함니다
법으로 개고양이를 애완용으로 못기르게해야죠 개고기감으로만 사육되게요
그렇게되면 사람주위에 개고양이들이 없어 학대당할확률도 확실히 낮아지고
이런 개고기디베이트도 없을것입니다 90년대전만해도 반려동물문화가 없었기에 개고기언쟁도없었죠

중요한건 개고기문화와 반려동물문화가 동시에 존재할수없습니다
개고기로만 개를 사육한다면 외국인들이 지금처럼 한국인을 욕안함니다
한국은 개를 먹기위해 사육하는거라 보져 여전히 혐오스럽지만요
지금은 옆에 개를 이뻐끼고 한쪽으로는 개고기탕을 괴걸스럽게 먹는
자기개는 깨끗한 안전한게 하지만 다른개는 내장이 짤려나가 개고기감으로 오케이?
그래서 외국인이 한국을 혐오하는것입니다!!!!

개고기가 불법이되면?
1. 반려동물로 개 고양이가 들어감니다 반려동물법이 만들어짐
2. 함부로 개 고야이를 학대못함 법이 엄해지기때문에
3.아무나 개 고야이를 못기름(집크기등 고려 개크기에따라)
4. 개고기집 개고기시장 개고기사육장 영원히 추방!
5. 동마다 동물보호소가 만들어짐 정부의 지원으로 (길냥 길멍이들이 없어짐)
6. 각학교마다 반려동물및 다른동물등의 생명의 중요성이 교육됨
7. 보호소 동물들의 재입양프로그램을신설 광고해 높임
8. 아무나 개 고양이를 번식시킬수없게 라이센스제도가 도입
9.반려동물의 인식이 높아짐에따라 다른 동물들의 인식도 높아짐
10. 외국에서 한국이미지는 더욱좋아짐
Do koreans eat dogs?하고물으면
We used to be but no anymore하고 답할수있게됨
11.인간과 동물이 함께 잘살수있는 진짜 선진국이됨
돼지생매장같은건꿈에도 못꿀수있는나라
12. free run 계란 고기등이 나옴 즉 자유롭게키운 것들
박용진  | 2011/07/10 08:03
엄청난 뒷북 댓글이네요... ^^;
저는 개고기를 안 좋아합니다. 일단 냄새부터... 먹어본 적이 있다는 얘깁니다. :) 앞으로도 굳이 제가 찾아서 먹을 일은 없을 것 같네요.

마지막에 언급하신 한겨례 기사도 읽어봤습니다. 정말 지극히 한겨례다운 기사라 생각이 듭니다. 그럴 듯하긴 한데 헛점이 많죠. 굳이 일일이 나열할 필요도 없이 인류는 일단 잡식성 동물입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태초부터 고기를 먹어왔던 것은 거의 확실합니다.
산악 부족이나 사막 부족의 단백질 영양실조는 굳이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고 흔하게 관찰됩니다. 머리나 수염이 빨갛게 변색된다고...

치와와는 원래 멕시코에서 식용으로 키우던 견종이 애완견화된 것이라 합니다. 세상에 먹을 것이 어디 있다고... :) 딩고 역시 원래 호주에 들어갈 때는 경비견이나 가축 외에 식용도 목적이었다고 합니다. 백인들도 개고기를 먹었단 얘긴가 봅니다.
한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원래 마초주의에 물든 사회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담배를 비롯하여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남성 혹은 연장자에게 우선권이 돌아가는 문화 및 여성을 우습게 보는 편견이 정착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개고기의 마초적 이미지도 이때부터 등장한 것이 아닐지? :)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런 일들이 벌어지기 한참 전부터 개고기를 먹었던 것 같습니다. 이유는 육류의 부족이 주 원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외국 생활 몇년 해봤지만 사실 저는 개고기 먹느냐는 질문은 들어보지 못했고 북한 사람이냐?... 라는 질문은 많이 들어봤습니다. 한물 간 프랑스 여배우의 마지막 발악(?)이나 사람들을 웃기려면 무슨 말인들 못할 코미디언의 실없는 소리 한마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논쟁을 벌이기에는 너무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른 이들 눈치를 많이 보는 것 같네요.
중국 음식은 세계화되었는데 한국 음식은 그렇지 못하고 우습게 여겨진다는 생각은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개고기나 국력이 이유가 아니라 세계적 보편타당한 입맛 기준에서 실제로 맛이 딱히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ㅡ,.ㅡ;; 이름난 셰프들이 억지로 꾸민 한국음식이 아니라 토종 음식으로 승부할 땐 더합니다...
결국 아무리 동물애호가들이 이유를 포장해도 캐캐묵은 개고기 식문화 논쟁의 주 원인은 눈치보기입니다. 현중님이 말씀하시는 내용만큼 깊게 연구해 들어간 동물애호가들은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사실 두루미와 왜가리도 구분 못할 사람들인데다 멸종 위기종에겐 관심도 없는 것이 분명한데 동물인권(?)보호단체라고 하는 것도 염치없죠.


아침 일찍 실없는 뒷북 댓글 달아봤습니다. :)
Su-22 얼른 복구해서 보여주세요~ ^^
  | 2011/07/10 13:01
자신이 스스로 자신을 바라보지 못하고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자신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죠. 동양인들의 비주체성(?)이 이런 경우인데, 서양문화가 단절적으로 이식되면서 생긴 문제인 것 같습니다.

말씀대로 '개고기 문화'도 여전히 '눈치보기'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죠. 제가 여기 써놓은 '한국사회의 마초이즘'과 관련지어 생각하는 것이 그러한 관점의 결핍을 극복하는데 한가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나저나 Su-22는 정말...-_-;;
[로그인][오픈아이디란?]
헌재 "절차는 위법이나 미디어법은 합법"

헌법재판소 결정이 내려지던 2009년 10월 29일 오후 2시. (이곳 시간으로는 밤 10시)
Daum에 뜨는 속보를 보다가 결정문 순서에 따라 순차적으로 나오던 일련의 속보들이 모두 '무효', '무효'라길래 '그러면 그렇지...' 싶었다.

하지만 1시간쯤 뒤에 다시 인터넷을 켜보니 식스센스 버금가는 반전. 절차는 모두 위법이지만 무효확인청구는 기각한댄다. 살다살다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판결은 처음 보는지라 어제는 분을 삭히며 일찍 잠이 들었는데, 오늘 다시한번 헌법재판소 결정 전문을 찬찬히 읽어보면서 생각을 가다듬어 보았다.

헌법재판관 9명 중 절반 남짓인 4~5명도 아니고 다수라 할 수 있는 6~7인이 무효확인청구를 기각했을 정도라면 우리의 분노를 거스르는 무슨 대단한 논리가 있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선 헌법재판소 결정문 중 결론(극적 반전)에 해당하는 각 법률안 무효확인청구에 대한 판단 부분을 보자. (길어서 그냥 접어두지만, 재판관들의 판단의 근거가 되는 중요한 '논거'에는 따로 표시를 해두었으니 한 번 살펴보시길 권한다)

미디어법 무효확인청구에 대한 판단 (헌재 결정문 발췌)


위에서 보듯이 기각의견을 낸 재판관들의 논리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절차상 문제도 없다고 판단한 민형기, 목영준의 의견은 제외한다)

1. 헌법재판소는 국회의 입법결정과정의 무효를 '선언'할 권능이 없다. (이강국과 이공현. 김종대도 같은 취지이다)
2. 미디어법 가결 절차에서 다소간의 흠결이 있었던 점은 인정되나, 그것이 헌법에 명시된 국회의 의사원칙을 심각하게 위반한 것이라 볼 수 없다. (이동흡)

뭐랄까. 행정수도 이전 문제에서 '관습헌법'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헌법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려 하던 헌법재판소의 입장과는 비교될만큼 소극적인 자세들이다. 이러한 소극적 자세가 식스센스에 버금가는 '절차는 위법이지만 미디어법은 합법'이라는 드라마틱한 반전의 요체다. 여태동안 '니 말 다 옳아'라고 해놓고 막판에 가서 '그런데 사실은 우리가 나서기에는 좀 그렇다...' 라고 뒤통수 치는 격이라고 할까. (2번처럼 갑작스레 헌법으로 도망가버리겠다는 입장도 마찬가지다)

......

헌법은 예외적인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인용되어야 하는 최후수단이긴 하지만, 그러한 최후수단적 성격에만 매몰되어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은 어리석은 태도다. 헌법은 모든 법 위의 정점이기도 하지만 역으로 그 모든 법들에 세세히 젖어들어야 하는 '광활한' 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법령체계의 측면에서 헌법과 비교할 수 없이 사소한 행정처분 따위가 헌법재판의 대상이 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오래전부터 일각에서 헌법재판소가 '정치를 하려 한다'라는 의심을 갖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즉, 헌법재판소가 헌법의 적극적 해석을 통한 헌법정신의 수호보다는, 소극적 해석을 방어선으로 설정해놓고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정치적 판단을 하려 한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이번처럼 '각론은 위법인데 총론은 합법(어쩔 수 없다)'라는 해괴한 결정을 내리면 그러한 의심의 목소리는 커져만 간다.

(한편으로 헌법재판소가 별도의 견제를 받지 않는다는 점, 민주적 정당성에 비해 지나친 권한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의식도 한계로 지적될만 하다)

개인적으로는 '헌법재판소가 정치를 하려 한다'라는 위의 의심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나의 입장은 헌법재판소가 자신들에게 놓인 사안의 정치적 파괴력과 사회적 영향력을 따져 '몸을 사린다', 더 냉정하게는 '눈치를 본다'라는 생각이다. (법률과 양심에 따라 재판해야 하는 법관들이 사실은 '눈치를 본다'는 것이 그들에게 수치요, 치욕으로 받아들여지길 바란다) 이것은 이제까지의 헌법재판소 결정들을 곰곰히 살펴볼 때 일관된 법칙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의 고향인 사법부의 굴종의 역사와도 맞닿아있는 셈이다. 다음과 같은 가설을 제시해본다.

우선, 가장 대표적인 사례인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을 복기해보자. 탄핵심판을 기각한 그들이지만, 의외로 안 알려진 사실이 있다. 사실 헌법재판소는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 주장한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공무원 중립의무 위반에 대해서 상당한 이유가 있다(a)고 인용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 정도가 탄핵에 이를 정도로 심각하지 않다는 논리(b)를 펼쳤고 그로 인해 탄핵신청을 기각(c)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사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논리전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생각 a) → (논리 b) → (결정 c)로 이어지는 논리전개에서 어쩌면 헌법재판관들은 (결과적으로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부활의 기회를 주었지만) 본래 (a)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그것이 몰고올 사상초유의 권력공백사태에 '겁을 먹은 나머지' 정치적 판단인 (결정 c)를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서로 상반된 (생각 a)와 (결정 c)를 잇기 위한 논리로 (논리 b)를 들고 나왔던 것이 아닐까. 탄핵심판 이후 한나라당과 수구진영에서 제기된 '일부 헌법재판관이 탄핵심판 기각결정을 후회하고 있다'라는 이야기도 이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 이어진 행정수도 이전문제에 대해서 헌법재판소는 청구인측(수구세력)의 손을 들어준다. 당시 헌법재판소가 들고 나온 이른바 '관습헌법' 이론이 맞느냐 틀리느냐 하는 것은 사실 문제의 본질이 아닐 수도 있다. 그들의 유일한 결정근거는 오히려 '지난번에 정부측 손을 들어주었으니 이번에는 반대편 손을 들어줘야 한다'라는 정치적(...) 판단이었을 확률이 높다. 이미 (결정 c)의 답은 정해져있었고, (생각 a)는 아예 첫 단계부터 존재하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실제로 당시 결정문을 보면 (생각 a)와 (논리 b)를 구분하기 어렵다. 이 둘을 함께 아우르는 논리가 그 유명한 '관습헌법' 이론인 거고)

......

자신들에게 부여된 권능을 이해하고(또한 믿고!) 헌법정신의 수호를 위해 그 힘을 적극적으로 쓰지 않는 헌법재판소의 태도는 사실 권력의 눈치를 보던 사법부 굴종의 역사와도 맥이 닿아있다. '절차는 위법하나 결과는 합법'이라던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을 통해 나는 그러한 결정을 내린 안국동 판사들의 심약함이, 재벌회장들에게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경제발전에 노력한 공을 참작하여...' 라며 집행유예를 선고하던 서초동의 판사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더더욱 굳히게 되었다. (서초동 판사들은 이제 재벌회장에게 적극적으로 '무죄'를 선고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물론, 헌법재판소도 간혹 위헌결정을 내리곤 한다. 하지만 두 정치세력이 충돌하는 '정치적' 문제에서는 놀랍게도 '너희들끼리 해결해라'라는 심약한 태도를 일관되게 펼치고 있다. 결국 3부 권력에서 독립된 헌법기관으로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만들어가야 함에도, 이제 헌법재판소는 서초동의 사법부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옥상옥'의 기관으로 스스로의 위상을 깎아내려버렸다. (이상돈 교수가 얘기한 '자신을 향한 폭탄'이라는 표현을 나는 이렇게 이해한다)

결국 이런 어처구니 없는 결정을 바라보며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것은 '선거'의 문제다. 헌법재판관 9인은 대통령(3인), 대법원장(3인), 국회(3인)가 결정한다. 이 중, 대통령과 국회는 '선거'로 선출/구성되고, 대법원장 역시 대통령이 지명하기 때문에 사실상 헌법재판관의 선출 역시 '선거'에 의해 영향을 받는 셈이다. 물론 간접적인 영향이고, 확실히 지켜지는 임기제 때문에 4~5년마다 치뤄지는 선거의 영향력은 더욱 더 감소하게 되지만, 궁극적으로 헌법재판관 역시 정치권력의 자장(磁場) 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선거에 의해 제대로 된 정치권력을 뽑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2009/10/30 15:51 2009/10/30 15:51
http://morehj.com/blog/trackback/821
[로그인][오픈아이디란?]

사용자 삽입 이미지

PD수첩: 군의 핵심에서 일해온 엘리트 장교가 왜 이렇게 고난의 길을 자초하세요?

김영수 소령: 저희 사관생도 훈에 보면 그런 말이 있습니다. '귀관이 정의를 행함에 있어 닥쳐오는 고난을 감내할 수 있는가?' ...제가 3년 반 동안 이 사건을 가지고 투쟁하면서 느낀 것은 군 자체적으로 정화시스템이 중지됐다는 것입니다. 물론 역사라는 것은 순차적으로 자연스럽게 개혁이 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어떠한 계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계기에는 항상 희생이 따른다고 생각합니다.

......

아주 어릴 때였지만, 지금도 이지문, 이문옥이라는 이름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들의 양심선언이 무엇을 변화시켰는지에 대해서는 기억할 수 없지만, 그들의 운명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너무도 절절히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되기가 무서워 스스로 비겁해지고 자기검열을 하게 되고... 차츰 손에 검댕이를 묻히는 법을 알게 된 것도 그 뒤부터였던 것 같다.

최근의 김이태 박사 사건에서 보듯, 내부고발자를 대하는 한국조직의 태도는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 같다. 내부고발자를 대하는 사회의 차가운 시선은 서양에서도 크게 다를 일은 없는 것 같지만, 한국사회만큼 치졸한 방법을 사용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김이태 박사가 소속된 건기연은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사그라든 후 김박사에 대한 징계를 단행했다. 김박사는 최근 딴지일보가 수여하는 제1회 바보상의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내가 김영수 소령에게 놀란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자신에게 닥쳐올 가혹한 운명을 짐작하고 있음에도 담담한 표정을 잃지 않고 있는 것... 진정한 용기와 결의를 가진 자가 아니라면 도저히 내보일 수 없는 태도인 거다. 나처럼 하루하루를 비겁하게 살아가는 소시민들은 물론이려니와, 심지어 그에게 징계와 처벌의 칼을 갈고 있을 비리연루자와 군 상층부도 그의 당당함과 초연함 앞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물론 그대로 물러날 사람들은 아니지만)

내 손에 묻어있는 수많은 검댕이들을 부끄러워하며... 김영수 소령, 당신을 진정한 용기를 보여준 참군인으로 기억하려 한다. 무엇보다도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될 그의 가족들이 가장에 대한 원망 없이 그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으면 한다. (생각해보면, 한국의 남자들이 비겁자의 길을 가는 가장 큰 이유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 아닐까)

2009/10/15 18:08 2009/10/15 18:08
http://morehj.com/blog/trackback/809
[로그인][오픈아이디란?]

1. 형법은 가해자 처벌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형법을 배우면, 가장 첫 시간에 형법의 의의를 배우게 된다. (실은 형법 뿐만 아니라 모든 법학과목들이 의의 - 연혁 - 요건 - 효과 - 한계...의 순으로 서술된다)

그 중에서 초짜 법대생이던 내게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형법이 범인을 처벌하고 사회의 법익을 지키는 '보호적 기능' 뿐만 아니라, 범인의 인권을 보장하고 죄의 한계를 긋는 '보장적 기능'도 함께 추구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신문 등에서 범인이 저지른 참혹한 사건사고를 읽으면서 '이런 놈은 죽여야해'라는 둥 평범한 '일반인의 법관념'을 갖고 있던 나에게, 형법이 범인을 단죄하기 위한 역할 뿐만 아니라 범죄자를 보호하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가치관의 대전환을 요구하는 혁명적인 관점이었던 거다.

사실 형벌이라는 것은 국가공권력이 개인의 행위에 개입하는 가장 원초적이고 강력한(=폭력적인) 형태이다. (신이 내린 생명을 그 누가 빼앗고, 그 누가 구속할 수 있단 말인가?) 극단적으로 개인의 목숨까지 빼앗아버릴 수 있는(=사형) 이 폭력적인 형태의 국가공권력이 남발되거나 편파적으로 적용되지 않도록 합리적인 기준을 세우고, 역시 하나의 인간으로 태어난 '범인'에게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할 어느 정도의 '권리'를 보장해주기 위해 형법은 '범인의 권리장전'이 되는 것이다.

즉, 형법에 의하지 않고 범인을 사적으로 처벌하는 것은 용인되지 않으며, 그 공적 처벌의 범위 역시 형법에 정해진 테두리 안에서만 가능하다. 이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근대가 형법 위에 부여한 또하나의 의미인 것이다. (옛날 고조선 8조법이나, 함무라비 법전에는 이러한 범인의 인권 같은 사상은 들어있지 않다) 요컨대, 오늘날의 형법이란 사회정의 실현과 범인 인권보호라는 상반된 두 가치의 긴장관계 속에서 타협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인간의 합리성과 진보에 대한 낙관적 믿음을 기초로 점차 영역을 넓혀왔던 형법의 보장적 기능은 오늘날 많은 도전을 받고 있는 것 같다.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범죄의 경향이 갈수록 흉포해지고 잔인해지기 때문일 텐데, 이러한 현상이 심해질수록 사회구성원들 또한 필연적으로 강력한 형법을 지지하게 되기 마련이다.

2. 깊이 있는 성찰 없이 손쉽게 대중의 분노에 편승하는 일부 언론의 작태

지금 대한민국을 들끓게 만든 안산 아동성폭행 사건과 관련해 우려스러운 현상들을 많이 보게 된다. 그 중에서 가장 나를 놀래킨 것은, 신문 지면에 실린 어느 기자의 칼럼이었다.

[기자수첩] '○○이'엔 침묵하는 '인권단체'들

사실 비슷한 글을 mmzone에서 읽고 화가 난 적이 있긴 한데, 일반인이야 몰라서 그렇게 말한다 치더라도 먹물 좀 먹었다는 기자가 '인권'의 의미를 저렇게 곡해하고 '인권단체'를 조롱하는 글을 이른바 발행부수 1위의 신문 지면에 떡- 하니 실었다는 것을 보고 분노를 참을 길이 없었다.

우선, 저 기자는 사실 '인권'의 의미에는 큰 관심이 없다. '인권단체'를 운운하긴 했지만, 실상 기자가 눈엣가시로 여긴 단체는 박근혜의 국회발언에 우려를 표명했던 '참여연대'와 '인권실천시민연대'다. 당시에 해당 단체들이 약간 피상적으로 접근한 면은 있었을지언정 그것을 아예 '정파적인 반대'였다고 몰아붙이는 것은 오히려 기자가 정파적으로 인권단체(사실 참여연대는 시민단체지 인권단체도 아니다)를 바라보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저 기사를 쓴 기자 스스로가 '정치부' 차장이라는 점이 단순한 우연에 불과할까?)

참고로, 조중동이 '인권'을 얘기할 때는 뒤에 깔린 게 없는지 잘 봐야 한다. 국가인권위더러 '북한인권 신경써라'라는 엉뚱한 소리 하는 것은 이미 대통령까지 되읊을 정도니 치료불가상황이라고 해야겠지만, 이것 하나는 꼭 짚고 넘어가고 싶다. 예전에 청소년 성구매자 명단 발표했을 때, 조중동 한결같이 '이중처벌이다'라고 반대했었다. 이번 안산 아동성폭행 사건이나 연쇄살인범 강OO 사건에서 '흉악범에게 인권은 필요없다'라고 길길이 뛰는 사람들이 청소년 성구매자들의 인권은 참으로 자상히도 챙겨주더라. 살인이나 성폭행은 아무래도 아니겠지만, 그들 가치관에서 성매매 정도는 '허용범위 내'인 건지 묻고 싶다. (물론, 당시 논의에서 수긍할 면도 있긴 했지만, 아무래도 밤문화 좋아하는 사람이 그런 얘기하면 안 어울리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던 거다)

그렇다면, 조중동이 이런 문제에 유난히 더 호들갑을 떠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그들의 동물적인 상업성이 여기서도 빛을 발휘(?)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지, 대중이 듣고 싶어하는 말이 무엇인지를 간파하고 그 트렌드에 맞춰 기사를 뽑아내는 탁월한 능력은 여기서도 예외는 아닌 거다. (그렇게 그들이 대중의 취향에 맞는 기사를 써내면 대중은 그것을 역으로 이용하여 자신들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삼곤 한다)

[오마이뉴스] 언론, 분노에 불붙이거나 'MB어천가' 부르거나

노파심에 말하지만, 이 사건에 '인권단체'가 침묵하는 이유는 저 기자가 넘겨짚은 것과는 거리가 멀다. 즉, 그들이 2005년의 전자팔찌 입법화에 반대했기 때문에 지금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라는 기자의 얘기는 혼자만의 '소설'에 가깝단 얘기다.

인권이란, 북극성 같은 것이어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절대값이지, 피해자의 인권, 가해자의 인권... 이렇게 상대적으로, 또는 대립되는 식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시위대의 인권만 있고 경찰은 인권 없냐는 논리는 그래서 유치한 것이다) 더구나 안산 피해아동의 인권을 회복하기 위해 가해자에게 더 강한 처벌을 내리라는 논리는 성립하지도 않는다. 지구상 어디에도 피해자의 인권을 회복시키기 위해 가해자에게 더 강한 처벌을 내리라고 주장하는 인권단체는 없다. (만약 있다면 100% 사이비다) 인권은 항상 '보호되어야' 하는 가치지, '처벌을 통해 회복되는' 성질의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권단체가 이번 사건에 침묵하는 것은, 안타깝지만 이미 '발생'한 사건이므로 예방적으로 보호해야할 있는 '인권상의 논점'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로서는 가해자가 법이 정한 양형을,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받는 것이 앞으로 논의할 수 있는 최대의 인권이슈이다. 성폭행범의 양형을 높이자는 사후적 논의 또한 형사정책적인 문제로서, 직접적인 인권문제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3. 흉악범 처벌과 인권보장 사이에서 깊이 있는 문제의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형법의 보장적 기능, 범인의 인권보호문제도 오늘날 많은 도전을 받고 있다. 범죄의 흉포화 경향에 따라 강력한 형법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의 요구가 높아지는 것도 그렇지만, 최근 유력하게 논의되고 있는 '사이코패스'와 같은 신종범죄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하는 것도 인권문제에서 새로운 시각을 요구한다.

최근의 많은 연구에 따르면, 사이코패스는 인간으로서 갖게 되는 감정능력이 결여되어 있는 등 일반적인 인간과는 다른 '타고난 범죄자'라고 한다. 이처럼 사이코패스를 일반적인 인간과 구별되는 '생래적 범죄자'로 보려는 인식이 퍼진 것은 사이코패스 연구가 주로 인권후진국으로 악명 높은(=인간과 인권에 대한 믿음이 약한) 미국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여하튼 이 논리가 범죄가 횡행하는 오늘날 사회구성원들 사이에서 널리 유행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흉악범을 보고 '돌로 쳐죽여라!'라고 분노하는 사회구성원들의 본능적 복수심(사회정의 구현 등, 어떠한 말로 포장해도 결국 그 근본은 원초적인 복수심임을 부정하기 어렵다)과 싸워 잘못을 저지른 인간(범인)의 인권을 수호하는 것은 인권운동의 영원한 속성이라고 하겠지만, 사이코패스처럼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타고난 포식자에게도 '인권'을 인정해야 할 것인지는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더구나 그 포식자가 저지른 참혹한 범죄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마당에야 더더욱.

개인적으로, 범인 인권보장문제가 앞으로 깊이 탐구해야할 분야 중 하나가 바로 이런 분야가 아닐까 한다. 17~18세기 이후 폐기된 것으로 여겼던 '생래적 범죄인' 이론이 21세기에 다시 등장하다니, 어처구니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더 강한 형법'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비등해지면 흉악범에 대한 양형기준도 재검토를 요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기본적으로 형사정책적인 문제라고는 해도 인권활동/연구단체 역시 이에 대해 자신들의 입장을 정리해두어야 할 것이다. 예컨대, 사이코패스 성폭행범에 대한 화학적 거세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이루어졌다면, 인권진영은 어디까지를 허용하고 어디까지를 지켜낼 것인가?

** 흉악범에 대해서도 인권보장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개인적 신념에 비추어보더라도 상습/흉악성폭행범에 대한 양형기준 상향 또는 화학적 거세 도입 등은 검토해볼만한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4. 그리고 자잘한 얘기들

-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난 사안에 대하여 청와대 주인이 왈가왈부하는 모습, 보기 좋지 않다. 더구나 '영원히 격리' 운운하는 것은 국가공권력의 최고정점에 앉은 자가 말하기에는 너무나 경박한 얘기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 사건에 분노하되, 이성을 잃지 않는 진중권의 비평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입장이다.

[진중권] "MB '아동 성폭행범' 발언…포퓰리즘 전형"

- 개인에 대한 공권력 개입이 한 번 이루어지기 시작하면, 그것을 예전처럼 완전히 금지시키기는 너무나 어렵다. 한 번 기준이 설정되면 그 범위가 계속 넓어지는 쪽으로 가기 때문이다. 그 어떠한 경우에도 침범할 수 없는 '절대의 영역'을 설정하는 일. 그것이 인권보장의 핵심이 아닐까 한다. 흉악범에게도 인권을 보장하는 것은 그 사람이 예뻐서가 아니라, 흉악범의 인권이 (국가에 의해) 무너지면 우리의 인권도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날라리 무도인] 가해자의 인권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

- '인권'이라는 차원에서 주절주절 적다보니 피해자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해 참혹함을 느끼고 분노하는 것은 나 역시도 다를 바가 없다. (나, 얼마전에 딸 낳았지 않은가) 한편으로는 술 마시고 여자를 사는 것을 남자답다고 여기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 사건이 이처럼 큰 반향을 일으키는 것이 아이러니칼하다는 생각도 든다. 대한민국이 언제부터 그렇게 성폭력에 엄격한 나라가 되었을까.

[프레시안] '영웅호색' 입에 올리는 당신은 다른가?

멜 깁슨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라는 영화가 기독교인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그 영화가 가진 '신성'(divinity) 때문이 아니라 '사실적인 잔혹성' 때문이었다는 일부 평론가들의 지적이 있었다. 비슷하게, 이 사건이 불러온 반향의 실체는 사실 '성폭력'의 문제가 아니라 '끔찍함' 그 자체 때문은 아니었을까.

- 이 사건은 피해아동의 이름을 써서 '○○이 사건'으로 불리고 있다. 물론 방송에서 붙인 가명이긴 하지만, 성폭행 사건에 피해자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절대 피해야할 일로 안다. '발바리 사건' 같은 명명법이 성폭행 사건을 희화하하여 문제의 심각성을 희석시키는 것과 비슷하게, 이 사건의 명칭도 좀 더 피해자를 배려하는 쪽으로 수정될 필요가 있다.

[세계일보] "'○○이 사건'이 아니라 '조△△ 사건'입니다"

다행히 이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공감대가 형성되어 가는 것 같다.

[연합뉴스] '○○이 사건' 명칭 '조△△ 사건'으로
[아시아경제] 정치권, '조△△ 사건' 명칭 제안 '공감'
[SBS] "○○이→조△△"…전자발찌 '평생 부착' 추진
[한국일보] '○○이 사건'→'조△△ 사건' 으로 표기합니다
[국민일보] '○○이 사건' → '조△△ 사건'으로 바꿔 표기합니다
[서울경제] '○○이 사건' 표기 '조△△ 사건'으로

- 피해아동의 쾌유를 빌 수도 없을 정도로, 아동은 평생 지워지지 않을 신체적, 정신적 상처를 입었다. 아이의 영혼만큼이라도 아프지 않고, 깨끗하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09/10/07 07:03 2009/10/07 07:03
http://morehj.com/blog/trackback/808
비밀방문자  | 2009/10/10 04:51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2009/10/11 06:17
NateOn으로 보냈습니당.
박용진  | 2010/06/17 08:28
잘 읽었습니다. ^^; 사실 저도 예전에는 이런 일에 대해서 TV 보면서 '저런 인간은 죽어도 싸다...'라면서 길길이 날뛰며 그러다가 잊어버리는 아주 일반적인 사람이었는데요, 요즘들어 형법 책을 들여다보면서 다시금 느끼게 되더군요.


안그래도 이 문제에 대해서 법대를 다니는 제 친구와 술을 마시면서 주제넘게 법대생을 상대로 논쟁 아닌 논쟁을 한 적이 있었는데... ^^;;
대부분의 경우 싸이코패쓰나 아동 강간범 같은 중범죄자들은 가해자의 입장에서 이런 중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스스로 정신적인 피해나 상처를 전혀 받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그동안 억눌려 왔던 욕구를 표출하고 해소하는 정도겠죠.

그에 비하면 피해자는 피해자 본인은 물론 가족들과 주변 친지들까지 평생을 정신적인 고통 속에서 그것을 극복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점이 있습니다. 물론 그 부담은 고스란히 본인들의 몫이지, 국가가 해결해주거나 가해자 본인이 나서서 눈물로 늬우치며 보상해 주거나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형벌을 중하게 한들, 그게 뭐가 큰 도움이 되겠습니까? 복수심이 어느정도 해소될 뿐이죠.

그럼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에 대해서 '아동' 성범죄자라는 이유로 성인을 대상으로 한 가해자보다 더 중한 처벌을 가해야 한다는 피해자 가족들과 시민들의 주장이 옳은가? 가해자 중에서는 나중에 교화를 통해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성범죄자들이나 특히 아동 성범죄자의 경우 어떤 수를 쓰더라도 새로운 사람들로 거듭나는 경우가 드뭅니다. 나오자마자 바로 일을 저지르는 경우도 많고, 아동 성범죄자들의 경우 대부분 전과가 많습니다. 안산 사건도 마찬가지였구요. 술 마시면 대부분 여자가 옆에 있어야 하고 2차가 일반적인 한국 남자들의 왜곡된 성 의식도 문제가 있지만 성 범죄자들의 왜곡된 성 의식은 일반적인 남자들과는 또 다릅니다.

가해자의 인권도 중요하다?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런 논리를 펴시는 분들은 그 주장이 당연히 옳음에도, 대부분의 경우 가해자 즉 범죄자에 대한 강한 처벌 규정이 궁극적으로는 나중에 시민들에 대하여 국가 공권력이 과거 독재정권처럼 억압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음을 우려하는 것 같았는데요,
우리나라의 법 체계가 시대상을 반영하지 못하고 뒤쳐지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있고 비효율적인 것은 사실입니다만 우리나라가 과거의 독재정권으로 돌아가기는 시민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는 이상 어렵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진보 지식인들이나 법조인들이 지나치게 시민들과 사회를 믿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프로파일링이라는 것이 일부에서 유치하고 편협한 발상이라고 비꼬는 경우가 있고 이미 낡아가고 있다고도 합니다만, 이는 사건 해결을 위한 수사기법의 일부이지 실질적인 법 집행과는 관련이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또한 생래적인 범죄자로 보기보다는 그 유형의 범죄자들의 범죄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정한 행동 양식을 탐구하여 앞으로의 수사에 반영하는 기준을 세우려는 것이지 '이 놈은 이래이래서 선천적인 중범죄자다'라고 규정한 뒤 '앞으로 이런 유형의 사람은 모두 잠재적 범죄자로 관리하겠다'라는 뜻이 아닙니다. 실제 수사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언론의 그릇된 재미거리 이야기 내지는 기사일 뿐이라고 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현중님께서 오해하신 것 같습니다.

비단 성폭행 문제 뿐만이 아니라 어릴 적 부모로부터의 학대로 인하여 정서적으로 원만한 성장을 못하여 -신체적으로 본다면, 뇌 전두엽의 성장이 원활하지 않아 나이는 20대임에도 사회성을 관장하는 전두엽 기능이 5~7세 정도에 머물러 사실상 앞으로 어떻게 해도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습니다 - 고통받는 사람들도 몇 번 봐 왔기에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인 치료 및 재활 시스템의 체계적인 구축은 외치지 못할 망정 가해자 인권... 운운하면서 공권력의 악용 어쩌니 저쩌니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에도 그렇게 고개가 끄덕여지지만은 않더군요.
가해자의 인권이 중요하다? 진중권씨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글을 보면서 앞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한 여자아이가 제대로 된 사회인으로서 성장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중요한 기로에 놓여 있다는 사실은 - 부정적인 결과가 더 가능성이 높죠 - 가해자의 인권 앞에서 뒤로 밀려난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이런 걸 감안한다면 성범죄자, 특히 아동 대상 범죄자에 대해서 형벌을 고쳐 조금 더 중하게 하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이미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중대한 인권 침해를 저지른 것인데요.
현중님께서 아이의 영혼만큼이라도 아프지 않고, 맑고 깨끗하게 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마지막에 쓰셨고 저도 마찬가지 바람입니다만, 위에서 말씀드렸다시피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ㅜ.ㅜ


공교롭게도 친구와 이 얘기를 하는 동안 옆에 사법연수원 연수생들이 회식을 하고 있더군요. 제가 일하는 가게의 주 고객이라 얼굴을 알아본답니다. ^^;
답이 없는 문제네요...
이런 일을 간만의 특종 정도로 연일 매우 자세하고 크게 다룬 언론도 책임이 큽니다. 이름까지 거론해가며... 사실 이것도 인권침해에 해당되지 않나 싶습니다.

매우 심한 뒷북 답글이지만 그래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네요.
지식인들의 발언이 공권력 남용에 대해서 견제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는 것 정도로... 그냥 애교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 2010/06/17 10:35
와, 이런 잡문에 길게 글을 써주시다니, 영광입니다. ^^; 역시 형법을 공부하셔서 그런지 체계가 잡히고 논리가 갖춰져있네요. 저야 이제 형법이론들은 기억도 안납니다만...ㅡㅡ;;

용진씨의 전체적인 논지에 동의합니다. '가해자의 인권'이라는 측면에서 글을 쓰긴 했지만 저 역시 성범죄자에 대한 양형을 엄격하게 하자는 데 찬성합니다. (아마 이 논리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다만, 한 가지 점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무엇보다도, 국가권력의 폭주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언제나 타당하고 유효한 문제제기라는 점입니다. '누가 권력을 잡든 그간 이룩해온 민주주의와 상식은 후퇴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유권자들의 믿음은 이명박의 등장과 함께 송두리째 무너졌습니다. ㅡㅡ;; 그만큼 한국에서 상식과 민주주의의 뿌리가 허약하다는 의미고, 여전히 인치(人治)가 유효함을 증명합니다. 바로 몇년전까지만 해도 폐지를 하느냐 마느냐가 논의되던 국가보안법이 지금 펄펄 살아나는 것을 보면 국가권력의 통제가 얼마나 절실한지 여기게 됩니다. 유럽처럼 절대군주에 저항한 역사가 없고, 민주주의가 짧으며, '북한'이라는 변수가 있는 나라에서 국가권력은 언제든지 폭주할 수 있습니다. 지식인들이 국가권력을 의심하고, warning을 주는 것은 지식인의 의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나마 그것도 없으면 대중은 '끌려가게' 되니까요.

여담입니다만, 제가 지금 과천에 파견나와 공무원사회를 직접 접하고 있는데 정말 '영혼이 없다'는 말이 딱 들어맞습니다. 4대강 사업 같은
말도 안되는 사업을 하면서도 위에서 지시가 내려오면 한숨 푹푹 쉬면서 자기 소신 굽히고 그에 대한 세부대책 같은 걸 만들어냅니다. 불합리하다고 저항하는 일은 찾아볼 수 없죠. 다들 똑똑하단 소리 듣고 고시 패스해서 들어온 사람들인데도 그렇게 불합리한 지시를 받아들여가며 정권의 '공범'이 되어가는 모습에 자괴감과 불안감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사이코패스 이론의 경우도 한국에서 악용될 여지가 다분합니다. '범죄예방'을 위해 이 이론은 필연적으로 '사이코패스에 대한 사전검별과 위협제거'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 이론이 발전한 북미와 유럽에서도 이 이론을 실제 형사정책 안에 포섭하는 데 신중을 기하고 있는 마당에, 이 분야의 자체연구가 미흡하고 국가권력이 강대한 한국에서 이 이론이 언론을 통해 너무 앞서나간다는 느낌입니다. 일단 성범죄자에 대한 양형강화로 대응할 수 있을텐데,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 것 같더군요.

언론의 선정성은 용진님께서도 동감하시는 것 같습니다. 조두순은 모르겠으나 슬럼가의 전형적인 빈민범죄자인 김길태마저 '사이코패스'라고 기사를 써대는 언론의 '책임지지 않는 펜놀림'에는 화가 날 지경입니다.

아무쪼록 관심있는 긴 댓글 감사해요. ^^
[로그인][오픈아이디란?]
딴지일보에 갔다가 참 오래된 동영상을 하나 발견했다.

IMF 외환위기가 시작된 1997년 12월 대선에서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대통령후보이던 김대중의 지원연설자로 노무현(당시 부총재)이 나와 방송연설을 하던 동영상. 그때 나는 대학교 2학년이었는데, 마루에서 다림질을 하시던 어머니와 이 방송을 보면서 누굴 뽑으면 좋을지 얘기하던 기억이 난다.


당시 나는 놀랍게도 이회창을 뽑기로 하는 데에 어머니와 의견일치를 본 상태였다. 초짜 법대생으로서 법치주의에 대한 바람이 컸다고 스스로를 정당화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어떠한 일이 생길지 이유 없이 두려웠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일 것이다.

어쨌거나 그 후로 12년이라는 세월이 더 흐르면서, 나는 큰 테두리 안에서 지난 2대 10년 민주정부의 지지자가 되었다. 민자당과 그 후예들의 본질은 그 어떠한 경우에라도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 민주주의에 발딛지 않고 정권의 도덕성, 청렴함, 지도자의 식견과 철학이 없는 '경제만능주의'란 신기루와 허상에 불과하다는 믿음 또한 혹독했던 포스트 민주정부 2년간의 경험으로 더욱 강화되어 왔다.

하지만 그러한 강화된 믿음과는 별개로,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이제는 아무도 없다'는 현실은 내게 어쩔 수 없는 허전함과 애잔함을 가져다준다. 노이즈가 잔뜩 낀 저 동영상 주인공의 패기있는 모습도 이젠 저렇게 녹화테입으로만 남을 뿐이고, 죽는 날까지 역사의 발전방향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민족의 운명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멈추지 않았던 위대한 지도자의 혜안과 식견도 여기서 멈춰버리게 된 것이다.

(한편으로, 가야할 사람들이 먼저 가지 않고 화해와 화합을 운운한다든지, 살아생전 고인을 물어뜯고 고인의 업적을 무너뜨리기에 여념이 없었던 인사들이 고인과의 인연을 강조하며 악어의 눈물을 흘린다든지 하는 모습은 허탈한 마음을 더욱 쓸쓸하게 만든다. 며칠전까지만 해도 고인에게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던 과거가 언제였냐는 듯, 위인의 죽음 앞에 바싹 엎드리며 애도를 함께 한다는 저쪽 세력의 놀라운 처세술(눈치)에는 괜한 불쾌감까지 들 정도이다)

과연 우리는 떠나보낸 사람들만큼의 철학과 고민, 능력을 갖춘 지도자를 또 가질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굉장히 어려워 보인다.

옆나라 일본에서는 50년 동안 이어졌던 자민당 정권이 막을 내리고 민주당의 집권이 눈앞에 다가왔다고 한다. 2000년대 초에만 해도 일본은 여전히 정치 후진국이라고, 정권교체의 가능성은 물론 시민사회의 성숙도 한국만큼 도드라져보이지 않는다고 가벼이 보았는데 이제는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한나라당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언론 모든 분야에서 착착 진행시켜나가고 있는, 이른바 '50년 집권프로젝트'가 사실이라면 우리나라 정치는 조만간 일본 자민당의 탄생기 이전 수준으로 회귀해버릴 것이다. (누구는 앞으로 민주정부가 재출범하기 위해서는 이명박 3년 + 박근혜 5년 + 이재오 5년의 총 13년이 걸릴 것이라 예상했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빛이 될 지도자를, 소위 '진보진영'은 가졌는가. 전직 대통령 둘을 모두 잃은 상태에서, 이제는 다선 국회의원도 찾기 어려운 인력 풀(Pool)에서 누구를 원로로 받들고 고견을 구할 수 있을 것인지.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인 동시에, 떠나보낸 사람을 더더욱 그리워하게 되는 이유이다.
2009/08/22 13:22 2009/08/22 13:22
http://morehj.com/blog/trackback/797
비밀방문자  | 2009/08/23 22:26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2009/08/24 15:35
매번 좋은 말씀 주셔서 고맙습니다. ^^; 집사람에게는 항상 충!성!을 다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혼자만의 생각이겠죠? 헤헤... IPMS 사진도 잘 봤습니다.
[로그인][오픈아이디란?]

22년만에 서머타임제가 다시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희한한 것은 이걸 건의한 곳이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회'라는 점이다. (정식 건의한지는 꽤 된 듯) 국무회의까지 갔으니 정부에서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모양.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 ··· 3Dnewsis

이 소식을 듣고 '참 뜬금없네' 싶어 썩 마음에 안 들던 차에 mmzone에서 관련 포스팅이 올라왔길래 좀 흥분해서 관련글을 달았더니 냅다 비공개처리 -_-;;; Blocking 당하기는 처음이라 좀 당황스럽긴 한데 그게 사이트 정책이라면 뭐...

어쨌거나, 다시 서머타임제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노동시간만 늘어날 거다'라는 주장에 크게 공감이 가지는 않는다. 어차피 시계를 1시간 일찍 돌리는 거라서 하루가 24시간이라는 데에는 차이가 없다는 거지. 아무리 사악한 상사라 하더라도 서머타임 실시 전의 시각을 따져 근무시킬 머저리는 없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물론, 서머타임 해제 되는 당일에는 좀 문제가 있을지 몰라도. (정부의 서머타임제 도입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도 이 정도는 인정해놓고 논의를 출발시켜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토론이 될 것 같다)

내가 참 마음에 안 들었던 건 다른 게 아니다. 이걸 괜시리 '녹색성장' 대책이랍시고 갖다 붙이는 수사(修辭)과잉이 경솔해보였던 거다.

대통령이 8.15 기념식에서 뜬금없이 녹색성장이라는 걸 들고 나왔을 때만 해도 그 취지는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솔직히 8.15 기념식용 1회성 이슈가 아니었을까 싶긴 한데...) 과연 우리나라에서도 유럽처럼 태양열, 풍력발전이 화석에너지를 대체하고 대중교통의 접근성이 높아지며 에코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인가? 하고 기대를 했지만, 그 뒤로 이어지는 온갖 갖다붙이기에 조금 가졌던 관심마저 접은지 오래되었다.

하다못해 이제는 서머타임까지 '녹색성장'으로 분칠을 하고 22년만에 소환이 될 정도인데... '뭔가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야 한다!' 라는, 신생 위원회의 스트레스와 고충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이른바 '대통령 직속 위원회'의 작품 치고는 너무 humble한 거 아닌가? 차라리 '가정마다 10% 전기 줄이기' 같은 old-fashioned 캠페인이 더 설득력 있겠다.

......

'녹색성장'을 '에너지 정책'으로 거칠게 치환하는 것을 정부의 '무능'이라고 몰아붙일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다. 현재 '녹색성장'의 주무부처라 할 수 있는 '지식경제부'(이름이 뭐 이래...)를 되짚어보면 그 뿌리가 동력자원부까지 닿는데, 이쪽은 에너지의 안정적 수급쪽에 방점이 찍혀있을 뿐, 그 너머를 '상상'하는 기능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물론 고급 직업관료들에게 이런 역할을 기대하는 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2~3년마다 순환보직을 해야하는 한국의 시스템 안에서는 그러한 전문성을 갖기 어렵다)

결국 한국정부가 '녹색성장'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좀더 섬세하게 정책으로 디자인해내지 못하는 것은, 경험해보지 못한, 인식해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한계' 때문인 것 같다.

이 분야의 선구자라 할 수있는 독일의 경우, 환경부를 중심으로 2020년까지의 녹색성장 10대 비전을 발표하며 국가적 밑그림을 그려놓은 상태라는데 그 내용이 음미해볼만 하다.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 ··· %3D50562

......

어느 신문은 '포장을 줄이자'라는 캠페인을 펼치던데, 줄여야할 포장은 이마트에만 있는 게아니다. 한국의 정책들도 그 내용에 비해 포장과 화장이 과도하다. 대통령이 닌텐도 DS를 보고 '우리도 이런 거 개발할 수 없겠냐' 한 마디 한 걸 갖고 며칠 뒤 '한국형 닌텐도 만든다'와 같은 수사과잉의 홍보자료를 뿌려대는 건 스스로를 경박하게 만드는 일이다.

http://www.dt.co.kr/contents.html?arti ··· 31699004
http://blog.korea.kr/app/log/hellopolicy/40590554

이해한다. 위에서는 대책 내놓으라고 조이지, 전문성은 부족하지, 상사 눈에는 들어야지... 결국 제목이 '섹시'하게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런데말이다, 가끔은 그렇게 포장과 화장을 시킨다 하더라도, 그 결과물을 한번쯤 멀찍이 떨어져서 볼 필요는 있는 거 아닐까? 내가 만든 걸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 뭐라고 할까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거지.

정말 파다파다 끝까지 가서 '서머타임제'까지 불러내온 것은 과도한 업무스트레스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치자. 그래도 답으로 '서머타임제'를 써낼 요량이었다면 적어도 이게 '녹색성장'이라는 질문에 그럴듯 해보이는 답인지를 한번쯤 생각해봤어야 하는 거 아닐까? 도통 어울리지 않는, 아방가르드한 조합이라는 생각이 대뇌 전두엽을 살짝살짝 마사지 해주는 기분은 정말 나만 느끼는 걸까?

... 아니, 어쩌면 한국에서 '서머타임'은 혼자 올 수 없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22년전 '올림픽'과 함께 와야했던 것처럼, 2009년에도 '녹색성장'이라는 낯선 친구를 부르지 않고서는 올 수 없었던 그런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2009/07/29 19:29 2009/07/29 19:29
http://morehj.com/blog/trackback/791
뽀~*  | 2009/07/30 00:55
뭔가 일이 있었던 모양이군요.^^;;
역시나 근무시간이 좀 예민한 문제일 수 있는데...
온도차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확실히 팍팍해진 게 현실인 것 같아서 말이죠...

아무리 들여다봐도
'녹색'은 페이크(fake)고 '성장'이 미끼 같아 어이가 없더군요.ㅡㅡ;
  | 2009/07/30 11:28
글쓴게 비공개처리됐길래 그냥 지우고 나왔습니다. --;;; 요새 한국 생각하면 돌아가서 대체 어떻게 살지...하는 고민에 암울하기만 합니다. 흑흑.
[로그인][오픈아이디란?]
외환위기 이후 한국인들은 공무원 같은 안정된 직업을 가장 선호하게 되었다. 많은 한국인들이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경제력'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으며, 이에 대한 바탕으로 '안정적 직업'을 우선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경제력이 어느정도 해소된 계층에서마저 한국사회에 대한 애착을 찾기란 어려워 보인다는 점이다.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는 격으로 굉장히 운좋게 들어가긴 했지만 나도 이른바 공기업에 다니고 있고, 집사람 역시 공립학교 교사다. 직업적 안정성만으로 보자면 우리는 대한민국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그러한 조건을 갖춘 셈이다. 좀더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는 경제적 문제로 고민하거나 미래를 불안하게 여겨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써놓고나니 굉장히 재수없군...)

이러한 상황은 우리 부부의 직장동료들에게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맞벌이가 아니더라도 양 직장의 동료들은 그리 박하지 않은 월급에 상대적으로 안정된 직장생활을 누리고 있으며, 이는 그 자체로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데 적지 않은 장점이 되고 있다. 하지만 앞서 고백한대로, 우리 부부가 만난 모든 사람은 우리 아이의 미국출산에 대해 부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국에서 살기에 별 문제가 없음에도 한국에서 살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의문이 발생한다. "한국사회에서 사는 데 그다지 큰 문제 없는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 왜 이중국적에 비판적이지 않는가?"

이것 역시 답은 간단해보인다. 한국사회에서 사는 게 문제가 없다는 것과 한국사회에 애착을 느낀다는 것 사이에는 어떠한 인과관계도 없기 때문이다. 어느 한 국가의 왕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속한 그 국가나 사회 자체를 싫어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역시 사람이란 돈과 경제력만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라고 교훈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안정적 직업군마저 한국을 떠나고 싶어하는 이 모순에는 무언가 깊고 심대한 것이 있는 것 같다.

...... "만나는 분들마다 다 축하한다고 하니 무척 당황스럽네요" 라는 나의 고백에 누군가가 이런 한 마디를 던졌다. "그럼 축하할 일이지. 옵션을 하나 더 갖는 건데."

옵션.

국적마저 선택할 수 있게 된 시대. 태어나는 순간 정해진 것으로, 영영 바꿀 수 없는 것으로 믿어왔던 '국적'도 이제는 선택할 수 있다. 하기사, 생물학적 특질마저 골라서 태어날 수 있는 시대인데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국적이란 개념 따위야 아무 것도 아닐테다.

하지만 내가 궁금한 것은 이것이 '한국와 미국, 둘 중에 하나를 고른다'는 것이 아니라 '둘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는 기회를 준다'라는 거였다. 상황을 봐서 18년 후에 둘 중 하나를 고르겠다...라는 것. 단순히 '기회주의적이다'라고 배척할 게 아니라 왜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기회'에 더 높은 점수를 부여했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처음부터 미국인으로 태어나기 위해 계획적인 원정출산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LA에는 3천달러 정도의 현금을 일시납 하면 산모검진부터 출산, 산후조리까지 다 책임져주는 한국인 산부인과가 성업중이다. (의료보험이 없으면 출산비용이 15~20만달러까지 달하는 미국의 의료시스템을 고려할 때, 3천달러는 굉장히 저렴한 금액이다) 하지만 이렇게 아예 처음부터 아이를 미국인으로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은 나의 관심대상이 아니다. 그들의 가치관에 따른 '선택'을 나로서는 판단할 입장이 아닌 것 같다)

......

하나의 해법보다는 2개의 해법을 갖고 상황에 따라 골라쓸 수 있는 편이 낫다, 그런 마음인가? 그렇다면 한국이라는 해법을 버리지 못하는 그들의 안쓰러움은 어디서 오는 걸까. 한국도, 미국도, 그 어느 쪽도 완벽한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일까. 18년 뒤에 그나마 더 나아보이는 사회로의 정착을 결심할 때까지 두고보자는 생각.

그나마 여기까지가, 내가 추론할 수 있는 최대인 것 같다. 왜 한국을 떠나고 싶으세요? 왜 미국으로 쉬 결정하지 못하세요?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상상하는 것은 아무래도 나의 주관과 가치관에 의지하기 마련이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개개 결심들의 총합과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나의 딸을 위해서 아비의 입장을 밝혀둘 필요는 있는 것 같다. (결국 앞에서 쓴 장광설들은 지금부터 쓰게 될 지극히 개인적인 변명(?)의 서론이었던 셈인가...?)

1. 샌디에고 연수에 지원했을 때, 뱃 속의 아기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 비중은 굉장히 미미했다. 딸이 이중국적을 갖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은 해외연수로 누리게 될 많은 결과(가치중립적인 의미다) 중 하나로 인지되었을 뿐이다. 해외연수 지원의 가장 큰 이유는 '탈출구'였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2년 동안의 기획부 생활에 많이 지쳐있었고, 결혼 이후 신혼다운 신혼을 제대로 가져보지 못한 집사람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컸다.

2. 굳이 국적을 선택할 수 있다면, 가급적 독일이나 프랑스, 스위스, 네덜란드 같은 유럽의 중도국가였으면 싶었다. 많은 한국인들이 미국을 자신들의 이상향으로 선택하지만, 나는 미국을 완벽한 국가로도, 그것이 옳은 방향으로 '발전'해나가고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세계의 유일한 초강대국으로서 국제사회에서 미국이 보여준 많은 실망스러운 모습들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미국은 스스로의 내부시스템마저도 불완전해보이기 때문이다.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는 정치/사회/언론시스템, 빈약한 사회보장제도, 스스로의 생산능력을 잃은채 소비와 빚만으로 지탱되는 불건전한 경제구조 등등... 미국의 강점으로 여겨지던 국토의 광대함과 사회시스템의 안정성은 오히려 이러한 문제들이 10년, 20년 뒤에도 해소되지 않고 더욱 악화되리라는 믿음을 강화시켜준다. 지구를 지배하던 공룡이 그 큰 덩치 때문에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몰락해버린 것처럼.

3. 국제사회에서 올바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도덕성, 변화에 대한 적응력 등은 오히려 미국보다 한국이 더 나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적어도 지금의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까지는.

여전히 많은 문제가 남아있고 시행착오가 있긴 했지만, 큰 흐름으로 볼 때 한국의 시민계급은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인식하고 고치려는 노력을 해왔던 것 같다. 강남집값이니 조기유학이니 하는 것들처럼 그들이 개별사안에서 눈 앞의 이익과 욕망에 굴복했던 적이 많긴 하지만, 적어도 그것들은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을 남겼다. 그 부끄러움들이 모이고 쌓여 중요한 순간마다 역사의 물길을 바꿨다는 것은 우리로서는 큰 역사적 자산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의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불합리한 일들은 나에게 '과연 한국에 희망이란 있는가?'라는 심각한 질문을 갖게 한다. '50년 집권 프로젝트'라는 말처럼, 그들이 추진하는 작업들은 사회통합을 어렵게 하고, 깊은 상처를 남기며, 무엇보다도 그것의 시행 이후에는 다시는 원상회복이 불가능한 그러한 것들 뿐이어서 과연 이 정부 이후에도 한국이 제대로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을 든다. 과연 나는 18년 이후에도 내 딸에게 '그래도 한국은 건강한 국가로 성장해나갈 것이다'라고 얘기해줄 수 있을 것인가?

4. 이중국적자로서 세계의 선진문물을 흡수하고 조국의 발전에 이바지하라... 이런 상투적이고 군색한 바람은 갖지 않으련다. 그저 내 자식이 자신의 이중국적이 적극적이고 계획적인 원정출산에 의한 것이 아니며, 부모 역시 한국에 대한 환멸 또는 미국에 대한 맹목적인 동경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 정도만 알아주면 좋겠다.

부모는 죽을 때까지 한국인으로서 한국사회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겠지만(요즘 같아서야 하루에도 몇번씩 이민가고 싶은 마음이 들긴 하지만서도...) 내 자식은 건전한 상식을 가진 세계인으로서 자신의 기준과 판단에 따라 자신이 속할 사회에 충실한 일원으로 자라준다면 그것으로 족할 것이다. 어느 사회를 선택하든, 18세 이전까지 자신이 몸담았던 두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와 지식으로, 건강한 사회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가지고 그에 맞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2009/07/23 13:25 2009/07/23 13:25
http://morehj.com/blog/trackback/790
현만이  | 2009/07/24 07:57
사람들이 부럽다고 하는 것이 대개는 미국으로의 여행이나 유학 정도를 염두 두고 하는 말인듯 합니다. 부모가 한국 사람이고 한국에서 아이를 키웠는데, 자식이 미국사람이 되겠다고 선언하길 바라는 부모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문제는 많은 경우 한국이냐 미국이냐를 선택하기 위해 사람들이 아기에게 이중국적을 갖게하려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더 잘살기 위해 그런다는 데 있습니다. 예로 드신 '강남에 집사기'나 '조기유학 보내기'와 다르지 않게 원정출산에 대해 부끄러워해야하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말하자면 한국에서 살다가 미국의 우수 대학으로 유학도 쉽게 하고 돌아와서는 좋은 직장에 다니고, 두 사회의 이득을 다 취하겠다는 기회주의자가 되는 거죠.

정말로 한국사회에서 불안한 사람들은 원정출산 따위를 계획할 여력이 없습니다. 아예 가족 전체가 미국으로 떠날 지는 모르지만요. 원정출산이 지탄받고 문제가 되는 것는 한국사회에서 이미 중산층 이상에 속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이득을 누리기 위해 계획적으로 행한다는 데 있습니다.
쭝님은 원정출산을 계획하신 것이 아님에도 결과적으로 같기 때문에 찜찜한 마음이 드시는 게 아닐까요.
  | 2009/07/27 04:59
찜찜한 마음이 드는건 아니구...그냥 생각을 한번 정리해보고 싶었어.
비밀방문자  | 2009/07/30 18:49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2009/07/30 11:30
부모로서 좀 떳떳하고 일관된 입장을 보여주고 싶네요. 애 키우면서 성숙해진다는 게 이런 걸지도 모르겠어요.
[로그인][오픈아이디란?]
9월말에 태어날 나의 딸은 미국시민권을 갖게 될 것이다. 아직 자세하게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만 18세가 되는 해에 한국과 미국, 2개의 국적 중에서 하나의 국적을 택하게 된다고 한다. 그 전까지는 이른바 이중국적을 보유하게 되는 것이지.

떠나오기 전에 회사사람들에게 인사를 돌았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얘기를 나누다보면 아무래도 '아기' 얘기가 빠질 수 없는데, 미국에서 낳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마지못해 꺼내면 모두 '축하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로또를 맞은 양 대단하다는 표정, 부럽다는 표정...

나로서는 이게 참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이중국적이라는 것, 본인이나 자녀가 외국인(미국인과 같은말)이라는 것은 수많은 인사청문회에서 경험했듯 고위공직자의 주요 낙마사유 중 하나일 정도로 한국사회에서 '비애국'을 가르는 하나의 척도가 아니었나 생각해왔는데, 직접 당사자로서 주변인들을 만났을 때의 반응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딴판이었기 때문이다.

(당사자 면전에서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일 가능성도 있지만 최초의 반응이 모두 저랬다는 것은 그것이 단순한 make-up은 아니라는 방증이다. 최초의 반응은 꾸밀 수 없기 때문이지)

상상했던 것처럼 '그래도 공기업 다니는 사람이 자녀는 한국인으로 길러야지!'와 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고작해야 '때 맞춰 미국 가서 낳는 거 아냐?'와 같은 가벼운 정도의 타박(?)이 다였을 뿐.

임신한 후로, 샌디에고 연수가 결정된 이후 줄곧 애매했던 것은 이거였다. "한국의 언론과 여론이 이중국적에 비판적이라는 것은 단순한 '상상'에 불과한가?"

사실 나는 답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인사검증대상 고위공직자와 그 자녀에 대한 '이중국적' 문제가 자주 등장한 것이 내게는 때로 단순히 그들을 낙마시키기 위한 정치적 용도에 불과해보였다. (인사청문회는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도에 도입되었다) 관료, 정치인, 경제인, 언론인, 대학교수 등 이른바 한국사회의 주류라는 사람들 중에서 유학 등의 이유로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예전에 어느 신문에서 조기유학 열풍에 관하여 중산층 기러기 아빠 3~4명을 데려다 익명좌담을 한 기사를 읽었다. 어느 한 사람의 얘기가 인상깊었다. 자신은 90년대부터 공무원들이 자기 자녀들을 조기유학 보내는 것을 보고 자신도 자녀를 조기유학 보냈단다. 공무원들이 10년뒤, 자기 자녀들을 위한 정책을 펴리라는 예상이었고 (유감스럽게도) 그 예상은 지금 토플우수자에 대한 외국어특례입학 등의 정책으로 정확히 맞아들어가고 있단다.

이중국적과 조기유학은 조금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두 문제 모두 공무원 자녀들의 이해관계가 걸려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기득권을 확보 내지 확대해주는 노선을 걷지 않을까 하는게 이제까지 나의 어렴풋한 판단이었다.

또 하나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이른바 '미국물 좀 먹은' 사람들의 규모가 더 커졌다는 거다. 90년대 이후 여러 이유로 외국(=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사람들의 사회계층이 중산층으로까지 확대되어버렸다. 중산층 스스로에게는 낯간지러운 얘기겠지만, 일부 고위층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던 이중국적이 중산층에게도 당면문제화(?)되면서 단순히 이중국적을 '비애국적이다'라고 비판할 수 있는 여지가 사라졌다는 거다.

요컨대, 상류층 뿐만 아니라 중산층에게까지 이중국적이 그리 드물지 않은 현상이 된 마당에, 한국인은 더이상 이중국적에 '비판적일 수 없을 것이다'라는 것이 내가 가졌던 흐릿한 심상이었다.

하지만 나의 이러한 가정적 판단은 '한국인은 이중국적(미국국적)을 적극적으로 원하는가?'라는 별개의 질문에는 답해주지 못한다. 이중국적을 부정하기 힘든 상황론적 논리가 반드시 이중국적에 대한 적극적 희구로 전환된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여전히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유럽과 달리 인권의식이 부재하고 사회보장제도가 미흡한 미국사회의 잔인성에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놀랍게도 적어도 내가 만난 모든 사람들의 답은 '원한다'였다. 나의 생각은 아직도 '한국인들이 이중국적에 비판적이지 않은가?'라며 머뭇거리고 있는데, 현실은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이중국적을 갖고 싶다'로까지 발전해있었다.

물론, 나의 경험을 일반화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그나마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공기업 직원들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2009/07/22 15:05 2009/07/22 15:05
http://morehj.com/blog/trackback/789
[로그인][오픈아이디란?]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부산에 출장을 다녀왔다.

금요일에 간단한 술자리가 있었는데... 많이 먹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 몸에 안 받았던 것 같다. 밤까지만 해도 괜찮았지만, 자정이 넘어가면서부터 속이 좋지 않고 척추까지 아파 새벽 3시경 어렵사리 눈을 붙였다.

하지만 눈을 붙인지 몇시간 되지 않아 척추와 위장의 극심한 고통에 깨어나게 됐고 새벽 5시부터 전날 먹은 모든 것을 다 토해내고 쏟아내고...그랬다.

척추마저 극심한 통증으로 제대로 침대에 누울 수도 없었고 쓰린 속을 달래느라 마신 한 모금의 물도 몇분뒤 모두 게워내야 했다. 정말 이런 일이 없었는데... 호텔방에서 혼자 괴로워하며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잠깐 했던 것 같다.

그 시간, 내가 제일 사랑했던 한 명의 정치인이 쓸쓸히 유서를 남기고 뒷산을 걸어올라 몸을 던졌다.
그의 고통을 공유하기 위해 하루종일 극심한 육체적 통증에 시달렸던 것은 아니겠지만, 서울로 오는 길에서 나는 육체적 통증과는 또다른 마음의 공허함으로 괴로워해야 했다.

.... 2002년 겨울, 그때 나는 캐나다에 있었는데 주인집 눈치를 보면서 부모와 친구들에게 국제전화를 걸어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무척 열심히 홍보했었다.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대북송금 문제나 이라크 파병문제, 한미 FTA 추진 등등의 문제에서도 대통령의 고뇌와 견해를 가급적 방어하려는 쪽이었다. 하지만 항상 나를 둘러싼 다른 사람들의 당당한 논리(또는 입장)에 '노빠' 소리를 들으며 밀리기 일쑤였고, 괜히 그런 자리를 어색히 만들기 싫어 입을 다문 적도 많았다.

박연차 문제에 대해서도 나는 그를 열렬히 방어하지 못했다. 물론 공식브리핑도 아닌 '지엽적 사실'들을 언론에 흘리는 검찰의 저열한 행태나 그걸 받아 히히덕거리며 추측기사나 사설 따위를 써대던 하이에나 언론들의 작태에 분노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내가 사랑한 정치인에 대한 적극적 방어로 나간 것도 아니었다.

오늘 나는 나의 그러한 부작위들이 그를 얼마나 외롭게, 그리고 힘들게 했을지 슬프고...또 아프다.

3당 합당을 거부한 댓가로 감내해야 했던 연이은 국회의원 낙선, 우여곡절 끝의 대통령 당선 후에도 계속된 기득권세력의 물어뜯기식 공격들, 그리고 탄핵... 정말 그를 '죽이려는' 시도는 너무나 많았고, 그는 그걸 혼자서 다 짊어져왔다. 그가 검찰의 마지막 칼날에 힘들어할 때도 그 주위를 지킨 것은 문재인 하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직접적인 살인자들은 청와대와 권력의 주구들이지만, 깊이 생각해보면 먹고살기 힘들다고 투표를 하지 않고, 노무현도 잘못했던 점이 있다면서 거짓 중립을 지키는 듯 하던 수많은 비겁자들도 그의 죽음에 간접적으로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닐까.

난 어차피 '이상'이라는 것은 믿지 않으니까, 정치라는 건 결국 차악(次惡)을 선택해야 하기에 권력에 오르는 순간 지지자들을 배반해야만 한다는 걸 충분히 이해하니까, 그가 고민했던 모든 실존적인 문제들과 고민의 결과들을 끝끝내 방어해야할 책임이 있었을 거다. 하지만 닭이 울기전 3번이나 예수를 모른다고 했던 베드로와 같이 나의 침묵이 그를 아프게 했을 거라는 생각에 몹시 괴롭다.

그가 한평생 지향하고자 했던 양심, 상식,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사람'이라는 가치만큼은 결코 잊지 않으려 한다. 뒤늦게나마 그가 나를 용서해주었으면 좋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당신과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대한민국 제16대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를 진심으로 애도합니다.
2009/05/24 04:02 2009/05/24 04:02
http://morehj.com/blog/trackback/783
비밀방문자  | 2009/05/24 10:41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2009/05/24 23:45
지적해주신 점 감사합니다. 경황이 없어서...라는 변명을 해봅니다. 잘 지내죠? 요새 나이가 들었는지 많이 좀 보고 싶더군요.
뽀~*  | 2009/05/24 23:30
▶◀...

건곤일척...

이 말밖에 떠오르지 않더군요.


그가 던진 것은
절망 끝에 내몰린 한 사람의 생이 아니라
부끄럽고 낯 두꺼운 무의식의 세대에 대한 일갈이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향한 메시지이며 화두인 것 같습니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무게를 실감케 하는 고인의 서거에 삼가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 2009/05/24 23:47
처음에 '자살'...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그가 일생동안 깨뜨리려 했던 모든 노력들이 무위로 돌아간 듯 해서 슬펐습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추모의 물결을 보고 그의 죽음이 어쩌면 우리 사회를 더 밝혀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아참, 지난 주말에는 거듭 죄송하단 말씀 드려요.
[로그인][오픈아이디란?]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 ··· o%3D2594

연초에 시사주간지 하나 구독하자 싶어 시사IN을 정기구독 신청해서 보고 있다.
가끔 배달사고가 나서 이빨이 빠질 때가 있긴 한데... 반은 귀찮고, 반은 가뜩이나 힘든 기자들 난감하게 하지 말자 싶어 빠진 호는 인터넷에서 설렁설렁 읽곤 한다. (시사IN은 시사저널 해직기자들이 만든 잡지라 경영상황이 썩 좋지는 않은 것 같다)

위에 링크 건 기사도 배달사고 나서 잡지로 못 읽은 글인데 참 많이 공감이 되더라.

글쓴이는 예전에 한겨레신문 TV CF도 나오고 해서 한때 '당찬 신세대' 정도로 회자되던 김현진씨다.
학교와 불화를 겪어 고교를 자퇴하고 한국예종 영상원에 떠~억하니 붙은데다 외모마저 예쁘고 글도 잘 써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힘든 세상은 이 아가씨라고 피해가지 않는 법이어서, 이 아가씨, 스스로를 '88만원 세대'라고 인정하는 데 주저함 없이 '빡센' 사회생활을 지내다가 얼마전에 그나마 다니던 작은 회사마저도 그만 둔 모양이다.

내 공감을 깊이 불러일으킨 것은 그녀가 사표를 내고 다진 밑바닥의 각오(랄까?)였다.

'밥만 먹으면 된다'라는 것...

돌이켜보면, 오늘날 한국사회의 수많은 문제들은 사실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에서 왔다고 확신한다.

다들 돈에 미쳤다, 금전만능주의다...라고 하지만 그 '돈'이라는 교환가치가 드러내는 오늘날 우리사회의 멘탈리티는 어처구니 없게도 '굶어죽으면 어떡하지...'라는 거다.

검찰이 하루아침에 권력 앞에 꼬리를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5년전 젊은 대통령 앞에서 혈기왕성하게 대들던 검사에게 그때의 혈기는 어디 갔냐고 쏘아붙이면 그 검사는 얼굴을 붉히면서 '거, 저희 사정 다 아시잖습니까... 그런 거, 저희 사정 좀 이해해주십쇼'라고 대답할 것 같다. (만약 그 검사가 '2MB야말로 한국을 구원할 메시압니다'라고 한다면 그 녀석은 확신범이니까 할말이 없다)

드라마에서 많이 나오는 모습.
자신의 소신을 꺾지 않던 직장인을 상사가 자신의 방으로 조용히 부른다. 그리고 묻는다.

"이봐, 김과장. 애들 중학생 아냐? 한창 클 나인데... 제수씨도 생각해야 할 거 아냐?"

그리고 김과장은 하는 수 없이 상사의 지시에 따른다는 클리셰...
여기서 법치가 무너지고, 인간의 양심이 침해되며, 자유와 정의는 서랍속 깊은 곳에 처박히게 되는 거다.

한창 애들 돈 많이 들어갈 나이에 회사에서 짤리고 싶지 않은 김과장이나,
한해에 변호사 1천명씩 뽑아 개업변호사도 먹고살기 힘들다며 바깥사정을 두려워하는 젊은 검사.
모두 '밖에 나가 굶어죽으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에서 자신의 양심을 접는다.

조직의 위기를, 사람을 내보내 인건비를 줄이는 손쉬운 방법으로 극복해낸 사회답게,
그렇게 떨어져나간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한 집 건너 치킨집과 식당을 여는 '음식점 국가' 답게,
하지만 정작 돈은 이마트와 롯데백화점이 다 쓸어가버리는 바람에
코딱지만한 파이를 갖고 OECD 최고비율의 자영업자 집단끼리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지옥도가 펼쳐지는 이 사회에서, 조직 밖으로 나가 먹고 살 길을 걱정해야 한다는 것은 사회구성원 모두의 무의식 속에 깊이 박힌 트라우마일 수밖에 없을 거다.

하지만, 곰곰히 따져보면 '욕심'과 '욕망'을 버리면 의외로 돈이 많이 들지 않을 것 같다.

버스도 반액만 내는 10대에게 20~30만원짜리 운동화를 광고하고
돈 한푼 못버는 대학생들을 타겟으로 중형승용차를 광고하고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준다며 더 높고 더 큰 아파트를 사라고 부추기는,
우리를 오로지 '소비의 객체'로만 보는 기업들의 전략에 말려들지 말고 초연해보라.

양주를 먹으며 하룻밤 질펀하게 노는 것이 남자답다며 월급의 10분의 1이나 되는 돈을 쓰지 말며,
세상의 모든 혜택을 누리겠다며 수많은 카드를 돌려가며 쓰지 말아보라.
그런 후에도 우리의 씀씀이가 예전만큼 클 수 있을까...?

그리고 아이들에 대한 욕망... (이것에 대해 말하기는 조금 자신이 없지만...)
과연 어릴 때부터 비싼 옷과 비싼 장난감, 영어유치원을 아이들에게 베푸는 것이
아이들의 삶에서 얼마나 큰 도움이 될런지 나는 회의적이다. (이게 다 돈이다)

"옆집 애가 영어로 얘기하는 거 들어봐... 내 자식이 그런 거 못하는 거 보면 눈돌아간다"

...이렇게 답해주고 싶다. 당신은 당신 자식도 영어실력에 따라 예쁜지 못났는지 달라 보이느냐고.
결국 모든 것은 자신의 욕심과 욕망 때문이라는 거다.

......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란, 사실
빚을 내 소비하고 그로 인해 경제가 돌아가는 미국의 "욕망의 경제"와
그에 결합한 금융자본주의의 한계가 터진 것이라는 분석을 본 적이 있다.

자본주의가 기초로 삼고 있는 '인간의 이기심'이라는 것은
기실 세상을 편리하고 유용하게 바꾸려는 하나의 '합리적 動因'에 가까운 것인데
우리나라의 자본주의는 이 이기심을 '물질적 욕망'만으로 치환하여 남용해온 것 같다.

그러한 '물질적 욕망'의 덫에 빠져든 이상, 소비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그 소비에 맞추기 위해 소득은 더 많이 필요하게 된다.
'어느 선까지만이다'라는... 한계를 고민하지 않는 끝없는 순환 속에서 우리는 양심도 팔고, 영혼도 판다.
그리고 영리한 인간들은 그걸 역으로 이용하여 우리를 조종한다.

그런데, 정말
(나는 밥먹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밥만 먹으면 사람은 살긴 산다.

한번도 가난해본적이 없던, 잘먹고 잘살고 있는 부르주아의 배부른 오만이겠지만
(그런데 나는 정말 먹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밥 말고도 다른 맛난 음식도 먹으며 살고 싶다는 게 문제다)
번듯한 아파트에 안 살아도, 내 자식이 영어를 좀 못하더라도
영혼이 없이 껍데기만 산다는 건
나로서는 참 재미없고 쓸쓸하고 그럴 것 같다.

물론, 나도 사람인지라 여기저기 욕심을 부리며 양심을 더럽히고 타협하며
지금도 조금은 영혼 없이 재미없고 쓸쓸하게 살고 있긴 하다만.
2008/08/20 02:02 2008/08/20 02:02
http://morehj.com/blog/trackback/765
비밀방문자  | 2008/08/22 02:40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2008/08/22 12:57
삼성을 위시한 한국조직의 저열한 점이, 그렇게 사람의 가장 치졸한 부분까지 더럽혀서 자기 목적을 달성한다는 거 같아요. "이봐, 우리가 망하면 너희도 다 굶어죽어!!"라는, 한국사람들 무의식 깊은 곳에 박혀있는 굶어죽는다는 두려움. 이 두려움은 너무나 공평해서 자기주위에 삼성 다니는 사람이 있건 없건 상관 없이 똑같이 무서움에 떨게 만들죠. 주체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과 교양이 배양되지 않으면 이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것은 무척 어려워보입니다.
현만씨  | 2008/08/23 01:20
많은 사람들에게 먹고사는 문제가 여전히 '문제'가 되는 건 "굶어 죽을까봐"보다 "남들만큼 못살까봐"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굶어죽는 사람은 없되, 사람이 정말 굶어 죽기도 하던 시절보다 더욱 빈곤함을 느끼는 것이 요즘 시대의 '가난'입니다. 남들과의 비교 속에서 스스로 부족한 것이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것을 채우려고 애쓰며 평생을 사는 거죠. 그래서 돈,돈 하며 살면서 삶을 허비합니다.

한편 굶을 것을 걱정하는 사람도 여전히 있습니다. 이들은 정말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아 돈, 돈 하며 삽니다. 그렇게 평생 살아도 의식주 해결이 편안한 날은 오기 어렵습니다.


------------------------------------------------------------------------------------------
그런가하면 집에가면 밥솥에 밥이 많이 있어 도시락을 싸갖고 다니는 현둥씨도 있습니다.

  | 2008/11/10 21:29
저는 적게 먹고 많이 베푸는 삶을 살기 위해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는 것인데욤? -_-v
라이방  | 2008/11/09 06:52
시사인 기사 중에 이런 것이 있었군요. 덕분에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 2008/11/10 21:28
김현진씨 글은 섬세하고 예리한 시선이 느껴지는 글이지요. 우리도 '밥만 먹고 살면 된다'라는 강단이 있으면 좀더 당당하게 살 수 있을텐데요...^^;
[로그인][오픈아이디란?]
정말 대통령 하나 바뀌었다고 이렇게 나라가 맛가버리는 사태는 태어나서 처음 봤다.

어이 없는 거 몇가지만 들어보자.

1. 완장 하나 찼다고 기관장들 다 나가라고 호령하는 대책 없는 돌쇠스러움

2. '위험하니 못 먹겠다'라는 항의를 '값싸고 질 좋은 고기다'라고 엉뚱하게 반박하는 비논리성

3. 자발적인 시민들의 촛불시위에 대고 '촛불은 무슨 돈으로 샀는지 보고하라'던 무개념

4. 촛불시위를 막겠다고 광화문 한 복판에 컨테이너 용접 때려버린 무식함

5. '경찰은 청와대만 지키냐'라고 일갈한지 하루도 못돼 저지선을 태평로까지 확장시킨 덜떨어짐

6. 잔디 보호하겠다고 경찰버스 동원해서 광장 막고 지하철역 출구 봉쇄해버린 아둔함

7. 소통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면서 '우린 촛불시위라고 안 부릅니다. 깃발시위라고 부르지'라던 오만함

8. 한우도 아니고 미국쇠고기로 스테이크 만들어서 쇼 한번 해주시는 엉뚱함
   (너희는 어느 나라 국회의원이냐?)

9. KBS 사장 끌어내리겠다고 5,300명 전직원 주민번호 내라고 명령하는 감사원의 졸렬함

10. 고유가대책이라고 내놓은 게 고작 쌍팔년도식 홀짝제 시행이라는 무능함

11. 광고반대글 올리고 광고주에게 항의전화 했다고 출국금지 시키는 권력과잉
     (대통령과의 공개토론에서 맞짱 뜨던 기개는 이런데다 쓰나?)

12. 전임 대통령의 국기문란행위 운운하며 느닷없이 화제를 돌리려는 야비함

13. 자꾸 하지 말라는데 기어이 국토에 운하를 파고야 말겠다는 집요함

.... 쓰다보니 다시한번 열받는다.

나를 더 화나게 하는 것은 10년 동안 제자리를 찾았다고 생각한 공무원집단, 검찰과 경찰, 지방자치단체들이, 사실은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윗사람의 말 한 마디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이 그들의 '임무'일런지는 모르지만, 참 전문성도 없고 철학도 없고 개념도 없다는 생각, 많이 한다. (고시제, 연공서열제, 순환보직제, 폐쇄형 조직구조 등이 복합적으로 빚어내는 당연한 귀결 아닐까?)

어쨌거나 그렇기 때문에 그만큼 대통령이 중요한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정말 한 사람의 성향에 따라 나라가 이렇게 맛가버릴 정도라면 그건 한 국가의 운영이 '시스템'이 아닌, 人治에 의해 돌아간다는, 매우 안 좋은 시그널인 거다.

MB 때문에 나라가 시끄러운 건 좋은데, 그것이 국가시스템의 심각한 결함을 드러내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이런 고민에 비하면, MB의 '대한민국 Retro' 프로젝트가 그 자신의 임기를 넘어 10년, 20년 후까지 우리와 뒷세대들, 그리고 우리 국토에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길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오히려 소소한 것으로 여겨진다.
2008/07/09 23:13 2008/07/09 23:13
http://morehj.com/blog/trackback/762
[로그인][오픈아이디란?]

놀랍게도...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삼성 비자금 사건.

독재정권시절부터 생존을 위해 마련해온 전통이겠지만, 삼성이라는 회사도 21세기를 사는 이상, 자신들의 구습이 떳떳지 못한 것이며 언젠가는 털고 가야 한다는 것쯤, 당연히 알고 있을 거다. 하지만, 결국 털어내지 못하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이재용으로의 세습체제를 무사히 안착시키기 위해서인 것 같다. 삼성이 기를 쓰고 이뤄내야 하는 것, 삼성의 마지막 남은 아킬레스건이 바로 이거니까.

1. 이재용

이재용이라는 사람, 아마 요즘의 우리나라 청년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일 거다. 하지만, 나는 이 사람에 대해 좀 다른 쪽으로 관심이 가는데, 과연 '한국에서 제일 잘나간다는 기업의 재벌 3세로서 그의 사고방식은 어떤 걸까...?' 하는 궁금함이다.

도통 인터뷰도 안 하고 해서 이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는 자료는 거의 없다. 기껏해야 e-삼성(이재용이 만들었다가 아무도 모르게 정리해버린 수수께끼의 회사)이나 에버랜드 전환사채 문제 정도인데, 이런 걸로는 도대체 그 사람의 생각과 사고를 알 수가 없다.

과연 그는 깐깐한 일본기업인 같은 할아버지 이병철, 외로운 隱者 같은 경영자 아버지 이건희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즉 그는 가부장적인 (그리고 부끄럽게도 신격화까지 되어 있는) 선대회장들의 위상과 다른 계몽군주와도 같은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하는 궁금증 때문에 이 사람의 사고방식이 더더욱 궁금했던 것이다.

만에 하나, 그가 선대 왕회장들과는 다른, 경제적 민주주의의 가치를 이해하고 철학적으로 사고하는 영민한 사람이라면, 삼성은 이재용의 시대에 와서 이전 시대와는 다른 창조적이고 개혁적인, (좀 더 바람을 섞어보자면) 이제까지의 세습경영을 거부하고 주주자본주의로 돌아가는 것과 같은 놀라운 파격까지도 기꺼이 수용하여 마침내 '시스템에 의한 지배'로 굴러가는 기업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이재용에 대한 일말의 호기심은 이번 김용철 변호사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 여지없이 무너져버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겨레21에 실린 김용철 변호사의 인터뷰 중 일부. 정말 김용철 변호사의 말대로 "국법 질서에 대한 느낌이 없다" (민사사건과 형사사건에 대한 개념조차 없는 것 같다)

이것은 이재용이 "무식하다"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회와 경제정의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인가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없 것 같다. (괜히 기업인에게 거창한 '철학'까지는 요구하지도 않는다)

물론, 저 상황의 저 말을 갖고 이재용이 '옳고 그름에 대한 인식이 없다'라고 섣불리 말할 수는 없다. 억울해서 한 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그러하다면 이재용의 법의식은 '나에게 딱지를 떼려면 저 모든 불법주차 차량에 모두 딱지를 붙이고 난 뒤에 하라'라고 항변하는 보통사람들의 그릇된 법의식과 하나도 다를 게 없어진다. 명색이 한국 최고의 기업의 차기총수가 될 사람이 불법주차나 음주운전을 한 운전자들과 법의식이 같아서야 되겠는가 말이다.

난 언제나 1인 人身에 의존하는 시스템은 그 지도자가 아무리 영민한 계몽군주라 하더라도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믿는 입장이었다. 이재용으로의 경영권 세습, 이재용의 신격화 같은 것이 '삼성'이라는 한 조직의 어쩔 수 없는 집단적 행동이라고 아무리 좋게 이해해준다 하더라도, 한 해 130조의 매출을 올리는 거대기업이 추종하는 1인의 사고가 저러하다면 저건 좀 암담하다 싶다.

2. 거대한 침묵, 어쩌면 공범의식

놀랍다.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이 거대한 비자금 사건에 대한 거대한 침묵이.

어떤 블로거는 이 삼성 비자금의 규모보다도 이에 대해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거대한 침묵이 더 소름끼친다는 이야기를 했다.

언론은 최대 광고주 삼성의 눈치를 봐야 해서 그렇다고 하자. 하지만 회사, 시장, 거리, 택시, 심지어 지하철 취객의 입에서도 이에 대해 '씨발...' 이라고 내뱉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언론부터가 스스로 입을 봉하고 있기 때문에 의제 자체가 설정되지 못한 탓인가?

어쩌면 이 기괴한 침묵의 기저에는 우리 모두의 동의가 있다는 무서운 생각을 했다.

국정감사가 끝난 후 국회의원들을 위해 룸살롱을 잡아주는 피감기관 담당자, 건축인허가를 위해 공무원에게 돈을 건네는 건설업자, 물건납품을 위해 대기업 담당자에게 향응을 베푸는 하청기업 사장님... 그 어떤 사람도 이 더러운 커넥션에 대해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다. 먹고살기 위해서 억지로 한 생계범이건, 그게 '처세술'이라고 굳게 믿는 확신범이건 간에 자신 역시 그 커넥션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남에 의해 들춰내지는 게 싫은 것이다. 이것은 '나서기 싫어하는' 지극히 한국적인 문화 탓일 수도 있고, 좀 더 어둡게는 '나도 그랬기 때문에...'라는 공범의식 탓일 수도 있다.

3. 매 맞는 비자금, 봐주는 비자금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게 되면, 모든 비자금 사건이 전 국민의 공분을 자아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전두환, 노태우 비자금에 대해 분노했던 것은 그들이 권력을 잃고 온 국민의 적이 되었던 시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권력을 잃은 정치인에 대한 분노는 '정의'라기보다는 '엔터테인먼트'의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그것이 기업인의 비자금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택시기사부터 판사까지 모두가 기업인을 구속했을 때의 경제위기를 이야기하며 '경제를 고려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한다.

...누가 너더러 그런 걱정 하래!!!!!!

4. 온 국민이 걱정해주는 삼성

이처럼 언제부턴가 온 국민이 나서서 대기업을 감싸준다.

나 같으면 '돈도 많이 버는 xx'가 그런 못난 짓을 한 게 한심해서라도 더 욕을 하는 게 맞다고 보는데 나를 뺀 대부분의 대한민국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버는 분'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봐주자고 한다.

자기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이, 이건희를, 정몽구를, 이명박을 옹호하는 사태는 '계급적 이해'의 틀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다. 더더구나 한국에서는.

일전에 인기를 끌었던 조지 레이코프의 < 미국의 진보 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 -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과 같은 책에 의하면 유권자들은 자신의 계급적 이해보다는 자신의 가치체계와 프레임('사고의 틀' 정도로 번역하면 되는데, 이 말 역시 요즘 유행어가 돼서 한국사회에서 기똥차게 고생하고 계신다. 같이 고생하시는 말로는 'UCC'가 있다)에 따라 후보를 고른다고 한다.

이러한 이론에 따르면 빈민층이 이건희, 정몽구, 이명박을 지지하고 옹호하는 것은 그들 개인이 아니라 그들로 現身한 '그 어떤 가치'다. 짐작하는 바와 같이 '그 어떤 가치'란, 다름아닌 '돈(경제적 성공)'이다. (씨발...)

... IMF외환위기는 참으로 무서운 사건이었다. 그 사건이 민주화 이후 목표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우리의 모든 영혼을 '돈' 앞에 복속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5. 우리가 삼성의 비자금을 무서워해야 하는, 그리고 분노해야 하는 이유

군사정권 시대에 삼성을 비롯한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비자금을 만들었을 거다. 충분히 이해한다. 선거 한 번 치를 때마다 피같은 돈을 뜯어가는 정치인에게 분노하여 어떤 노회장은 일흔 살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정치에 뛰어드시기까지 했으니.

하지만, 시작이 어떠했건 간에 이제 대기업의 비자금은 그러한 '생존을 위한 수동적 수단'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관리도구의 의미로 이용되고 있다. 마지못해 뜯기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상대방을 조종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이번 비자금 리스트에 법조계만 있고 정치권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비자금은 두려워하는, 그래서 조종해야만 하는 대상에게 간다. (삼성이 일개 자영업자에게 로비할 턱이 없다) 즉, 이제 남은 관리대상은 오로지 법조계뿐이라는 거다.

노무현이 그랬다더라. 이제 권력은 정치가 아니라 시장으로 확실히 넘어간 듯하다고. 정확한 인식이라고 추켜세울 것도 없는, 너무도 당연한 이 시대의 풍경이다. (하지만, 이 말은 대한민국 건국 이래 가장 삼성의존적이었던 정부의 수장이 하기엔 낯뜨거운 것이 사실이다)  삼성이라는 떡집 앞에서 코 흘리면서 남는 떡 없나...하고 기웃거리는 날파리들이 너무나 많지 않은가. 언론, 취업준비생, 정가, 관가, 법조계, 문화계... 모두가 삼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 시키지도 않은 삼성 변호를 자발적으로 한다. '비자금과 로비는 대한민국의 공통된 문제다'라고...

하지만 삼성이 아니라 누가 됐건 비자금을 조성하여 뇌물을 주는 것은 처벌받을 일이다. 그것은 사회의 건전한 의사결정을 마비시키고 합리적인 시스템을 무시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모든 것을 경제력에 복속시켜버린다. 영혼까지도.

대한민국 사람들의 모든 가치가 정말 '돈이면 다 좋다'라는 것이라 하더라도, 경제력이 모든 것에 앞서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그 자체로서 소시민들의 지옥이다. 그런 사회 속에서 소시민들은 결코 대자본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사회를 그런 경제력의 지옥으로 만드는 데 일조하는 행위를 하는 삼성을 봐주자고 하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삼성에게 내놓겠다는 멍청한 짓이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이 같은 칼럼을 쓰는 사람은 역겹다.

매일경제 2007.11.1자 [데스크칼럼] 불편한 진실, 불량한 폭로

최대 광고주에게 잘 보이기 위해 억지로 쓰는 글이 아니라 아예 뼛속까지 '삼성'이라는 집단에 충성하고 싶어하는, 몸은 매경에 있지만 마음만큼은 오로지 삼성뿐이라는, 마치 정철의 <사미인곡>(思美人曲)을 연상시키는 애처로움까지 느껴지는 글이다. 인간이 이렇게까지 비루할 수 있구나, 배웠다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영혼을 팔 수 있구나 하는 생각. (테레사 수녀에 대한 비유에 이르러서는 분노까지 치민다)

......

분노하자.
그리고 관심을 갖자.
절대로 잊어버리지 말자.
내 발등을 찍는 심정으로 내 안의 공범의식을 몰아내자.

2007/11/02 23:51 2007/11/02 23:51
http://morehj.com/blog/trackback/752
뽀~*  | 2007/11/05 09:49
공범의식...
아무도 말하지 않는 건 여기에서도 마찬가지인 듯...^^;;

나의 이익이 저들과 연관돼 있다고 믿는 데서 나오는 무의식적인 반응이랄까?

그냥 이기적인 거죠...

그걸 국가 경제 운운하며 티 내고 싶어 하지 않을 뿐...ㅡㅡ;;

그래서 중간에 보라색 문구에 마음이 가는 것인지도...ㅋㅋ
  | 2007/11/06 00:51
그래도 이 글을 쓴 다음에 사람들의 관심이 많아진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삼성 두둔하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들이신지...
박현민  | 2007/11/14 00:33
지난 번 교리시간에 신부님이 정의구현사제단은 말을 한다고 하더라.
비자금 형성 방법을 설명하는 신부님 말씀을 사람들이 귀기울여 듣더라. 그날 느낀 바는 많은 사람들은 공범의식에서 알고도 모른 척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몰라서 침묵한다는 것이다. 비자금이니 뇌물이니 불법증여니 하는 사건들이 한 번씩 나오니까 또 그런 일이구나 하고 큰 관심 갖지도 않는다. 자주 보도되는 이러저러한 비리에 무감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신문도 안보는 사람들이 있는 한편, 항상 그렇듯 열심히 리플을 다는 네티즌 무리도 있다.
문제가 심각한 사람은 언론인들이다. 사건 전말을 알면서도 덮어주고 싶어하거나 침묵해버리는 언론인들의 태도는 그 자체가 많은 사람들이 같은 태도를 가지게 함으로써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영혼을 판 것도 아니다. 그냥 생각한 데로 쓴 것이다.
  | 2007/11/19 00:37
여기에도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작용하는 듯... 계속해서 비리가 터지니 둔감해지고 또 그 사이클 속에 순응하게 되고 뭐 그런 것들...
현만이  | 2007/11/14 13:33
생각한 "대로"가 맞습니다~^^
구스타프  | 2007/11/17 21:32
돈이면 만사장땡이라는 '천민 자본주의'가 판을 치고 있죠. 안타까운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좀 더 숙고하고 그 결과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시대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 2007/11/19 00:38
그런 점에서 자신의 취미에 열정을 갖고 성실하게 청년사업가/수출역군의 길을 걷고 계신 기영님은 정말 멋진 사나이!
[로그인][오픈아이디란?]
최근 AK 시리즈 전동건을 두 자루 사서
오늘 드디어 기쁜 마음에 포스팅을 하려고 글쓸 자료를 찾다가
황당한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글을 끄적이는 방식은 대개
머리 속에 남아있는 지식을 (주로) 인터넷으로 확인하고 올리는 것이다.
이번에 AK에 대한 글을 쓰면서 확인하려던 것은
"미군이 이라크에서 마침내 대량살상무기(WMD)를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AK-47이다"
라는 문장이었다.
문장 작법상, 반전과 재치가 빛나는 인상적인 문장이어서 머리에 깊이 남았다.

이 문장을 신문에서 본 것 같아 여기저기 검색을 해보니
지난 7월경 조선일보 [만물상] 코너에 실린 문갑식 논설위원의 글이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 ··· 608.html

"이라크에서 미국이 찾던 대량살상무기(WMD)가 드디어 나왔다. 젊은 미군 병사 3000명을 저 세상으로 보낸 WMD는 핵무기가 아니라 낡은 소련제 AK-47 소총이다." 작가 래리 커해너가 작년 11월 워싱턴포스트에 쓴 글이다. (...)
이 문장이 내 머리 속에 남았구나 싶어 여기 적힌대로
다시한번 워싱턴포스트의 해당 원문을 검색해봤다.
과연 이 멋있는 문장을 영어 원문으로는 뭐라고 했을까 많이 궁금했다.

http://www.washingtonpost.com/wp-dyn/c ··· 788.html

2006년 11월 26일자 일요판 워싱턴포스트에 저널리스트 Larry Kahaner가 기고한 글이다.
제목은 분명 "Weapon Of Mass Destruction"으로 되어있지만
이상하게도 문갑식 기자가 쓴 것과 같은 드라마틱한 문장은 본문 속에 전혀 없다.

놀랍게도 인용구 안에 적은 문갑식 기자의 저 두 문장은
워싱턴포스트 원문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대량살상무기가 드디어 나왔다' 라든가,
'젊은 미군병사 3000명을 저 세상으로 보냈다' 라든가,
'(이라크에서 찾은) WMD는 AK-47 소총이다' 라든가 하는 모든 구성요소가
사실은 문갑식 기자의 머리 속에서 재구성되어 나온 완전한 새 문장이란 거다.

(워싱턴포스트 원문은 AK-47에 대한 책을 펴낸 저널리스트의 글답게
굉장히 건조하고 기술(記述)적인,
문장론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다지 멋질 것도 없는 무난한 글이다)

문갑식 기자 본인이 문장을 멋지게 쓴 점은 인정해줘야 하겠지만
(그것도 원문이 영어라고 느끼게끔 만들어내다니!)
이 정도쯤 되면 따옴표를 써서는 안되지 않나?

차라리 따옴표를 제거하고 워싱턴포스트에 실린 그런 글이 실렸다는 걸 쓰지 않았다면
이 기자의 멋진 문장을 수긍할 수도 있을 법한데
워싱턴포스트의 글을 인용함으로써 자신의 현학을 뽐내려다가
스스로 자승자박하게 된 것 같아 어이가 없다.

아마도 조선일보 기자를 비롯한 우리나라 먹물들이 자주 하는,

1. 서양언론 맹신주의 (같은 내용이라도 서양언론에 나왔다고 하면 객관성을 더 담보한다고 믿는 것)

2. 자기현학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이만큼 서양언론, 서양지식, 서양문물을 많이(빨리) 알고 있소... 하고 내세우고 싶어하는 것)

3. 지식과 학문, 학술에 대한 신중하고 엄격한 태도의 결여 (인용문은 절대 재가공하여 옮겨 쓰지 못한다거나 표절은 절대 안된다는 등 가장 기본적인 사항들을 쉽사리 무시하는 것)

이런 잘못된 태도들이
문갑식 기자의 마음 속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자리잡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PS : 사실 이 문갑식 기자에 대해서는 꽤나 얘기가 많지만
가급적 그런 선입견을 배제하고자 일부러 그런 가십성 얘기들을 빼고 얘기를 풀어봤다.
2007/10/09 23:51 2007/10/09 23:51
http://morehj.com/blog/trackback/748
이중원  | 2007/10/10 16:40
바로 '좆선'식 글쓰기....로군요
  | 2007/10/11 00:27
예전 같으면 '역시 조선...'이라고 생각했겠는데, 지금은 이게 꼭 조선일보에 국한된 문제만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안 들춰봐서 그렇지 우리나라 모든 언론에 다 해당되는 거 같아요. 하지만 조선일보가 자신의 주장 관철을 위해 이런 일을 죄책감 없이 한다는 것에는 여전히 동의합니다.
[로그인][오픈아이디란?]
지지도란, 참으로 가벼운 것이로다.
20%니 10%니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새 바뀐 정책이 무엇이 있다고
얼마 되지도 않은 시간 동안 지지도가 50%를 훌쩍 넘었을까.

남북정상회담, 잘했지.
하지만 그거 하나만으로 국정수행지지도를 단숨에 50% 넘겨버리는 조사결과라면
애초에 여론조사의 틀이 허접하게 설계되어서 그렇다고 해야하는 건가
대중이란 원래 우매하기 때문에 그런 거다라고 해야하는 건가.
(이건 뭐 조삼모사에 나오는 원숭이도 아니고...)

무엇이 사실이건간에 이러한 허탈한 결과에서
'지지도'라는 수치의 허상을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허상의 수치가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대상에 대한 선입견을 만들어내고
그로 인해 대상에 대한 거침없는 '판결내림'을 가능케 한다는 사실을 또한 우려한다.


난... 꾸준히 노무현이라는 사람의 진정성을 믿고자 하는 편이었다.
그러한 나의 태도는
캐나다 밴쿠버 반지하 하숙방에서 국제전화를 돌려가며 노무현 광고를 해댔던
지지자의 부채의식 때문은 결코 아니었다.
내 포커스 안에 들어온 노무현이라는 사람은
그렇게 틀린 말을 하는 사람도 아니었고
입에 발린 말만 하는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적대적인 언론의 '필요한 부분만 똑- 따온' 제목만 보고 판단하지 않고 여러 경로를 통해
그가 왜 그 자리에서 그러한 발언을 했는지 앞뒤의 문맥을 이해하고
그가 그때 진정으로 말하려 했던 게 무엇인지 전체적인 흐름을 짚어내려 노력했다.

애정이 없으면 이런 지난한 작업, 하기 쉽지 않지만
나는 이러한 지난한 작업이
사실 '대상에 대한 애정'이라는 감정적인 추동력 이전에
비판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가장 기본적이고 공정한 접근방식이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예전 '즐거운 사라' 사건 때 어느 여교수가 TV토론에 나와
마광수 교수를 거의 미친놈 취급하며 매도했던 적이 있다.
사회자가 그 여교수에게 물었다.

"그런데 교수님은 '즐거운 사라' 읽어보셨습니까?"

여교수의 대답이 기막히다.

"아니, 제가 그 책을 왜 읽습니까??"

.... 대한민국에서 심심풀이로 노무현을 까대는 사람의 상당수는
이 여교수가 보여준 '비판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불성실한(게으른) 접근방법'에서
한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노무현이 완전히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서민이라면
더욱더 힘들어진 내집마련과 팍팍해진 살림살이, 지지부진한 개혁 등
많은 부분에서 실망과 좌절을 느끼고
그것에서 국정의 최고책임자에게 비판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왜
'말버릇이 없다', '체통이 없다'와 같은
자연인에 대한 비난으로 귀결되는 것일까.
(그나마 그러한 비난도 앞서 말한 '대상에 대한 불성실하고 게으른 접근' 때문에 생겨난,
사실은 실체가 없는 그러한 것에 불과하다)


나는 노무현의 도전이 고전을 겪고 있는 것은
우리 모두가 욕을 하면서도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추종하는
어떤 거대한 사회적 덫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움직이기 싫어하는 관료의 덫일 수도 있고
'내 자식만큼은...' 이라는 가족이기주의의 덫일 수도 있다.
'못 배운 놈이...'라는 학벌의 덫일 수도 있고
'대한민국에서는 고시 봐서 윗대가리가 되는게 최고야'라는 입신양명의 덫일 수도 있다.

좀더 솔직히 얘기하자면
나를 괴롭히는 문제가 무엇인지 연구하고자 하지 않고
적대적인 언론의 관점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사고를 하려 하지 않는,
(아쉽지만, 그래본 경험이 없어서일 수도 있다)
적대적인 언론이 해석해놓은 적대적인 관점을
그대로 자신의 것으로 흡수해버리는 '지적 태만주의의 덫'이 가장 크지 않을까 한다.
(이렇게 흡수한 지식은 체화된 지식이 아니라 대개 '언어'의 형태로 남게 된다.
논리가 빈약한 사람들이 같은 말을 또하고 또하는 것은
이처럼 그것이 '언어'의 형태로 남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무현은 자신의 도전이 한계에 부딪히는 이 상황을
충분히 긍정하고 있는 것 같다.

역사의 큰 흐름 속에서
자신의 도전이 결실을 맺지 못한다 하더라도
결국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자신과 같이 도전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야 하며
자신은 그 도전의 문을 연 최초의 사람으로 스러져가더라도
그게 자신이 받아들여야 할 역사적 소임이라는 것을
충분히 긍정하고 있는 것 같다.

내 손 안의 권력이 영원히 나의 것이 아니라 국민에 의해 잠시 맡겨진 것을 아는 것.
그리고 욕심내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
쉬운 것 같지만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노무현은 시대의 전환기에서
전환기의 시대가 요구하는 분권적이고 탈권위주의적인, 그리고 시민사회적인 리더십을
비교적 바람직하게 수행했다고 생각한다.
비록 그 '리더십'이라는 것이
빵을 가져다주지 못하고 우리를 다소 춥게 만들었을지언정
그것은 이 전환기의 시대에 우리가 반드시 겪어봤어야 하는
그러한 형태의 '리더십'에 대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지지자를 만나면 '나 때문에 힘들었지요'라고 말합니다. 내가 지지자들에게 제일 미안한 점이 바로 그 점입니다. 나 지지한 것 때문에 힘들게 한 것이지요."

"정치권력은 하나의 권력일 뿐이지요. 진정한 의미의 권력은 시민사회에서 나옵니다."

"대통령을 퇴임하는 나는 권력으로부터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권력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입니다. 시민사회 속으로."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그 선택을 후회해본 적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엇이 참으로 '바른 권력'인가를 이렇게 정확히 알고 있는
현명한 정치인을 지지해왔다는 사실에
다시금 나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난 이런 정치인을 가질 수 있어 행복했다.
2007/10/09 02:35 2007/10/09 02:35
http://morehj.com/blog/trackback/747
나니정  | 2007/10/16 10:08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행복합니다. 남은 몇달이 아쉽기만 하네요.
  | 2007/10/16 12:43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까지 가졌던 행복을 이어나가기 위해 또다른 희망을 찾으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되겠지요.
[로그인][오픈아이디란?]
지난 2004년 4월, 일본의 NGO단체 회원인 3명의 젊은이가 이라크 무장단체에 납치되었다가 풀려났다.

이 사건 이전에도, 이후에도 이라크에서 일본인이 납치되는 사건들이 자주 발생했지만 특별히 이 사건이 기억에 남는 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이 사건에서는 뜻밖에도 인질이 석방되었다. 아마 이라크에서 발생한 인질 납치사건에서 인질이 풀려난 사례는 이 사건 외에는 드물지 않았을까.

두번째 이유는 이 사건 바로 직후에 우리나라의 故 김선일씨 피랍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똑같이 인질국 군대의 철군을 요구했음에도 일본인 인질은 석방되고, 한국인 인질은 처형되는 정 반대의 상황이 일어났다. 모르긴 해도 아마 당시 외교통상부 내에서도 직전에 발생한 일본인 인질 석방의 선례를 많이 참고하지 않았을까 싶다.

세번째는 석방된 인질에 대한 일본 내부의 희한한 반응들 때문이었다.
 
일본인 인질들은 NGO단체의 회원들이었으며, 풀려난 이후에도 이라크와 이라크인들에 대한 애정을 표시하며 그곳에서의 봉사활동에 강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 때문에 당시 프랑스나 독일 등 외국에서는 인질사태 자체의 비극성을 떠나 일본의 국제활동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견해도 많았다. 그간 경제적 지위에 걸맞지 않게 세계적 이슈에 무관심했던 일본이라는 나라가 국제 NGO활동에 눈을 떠가고 있다는 고무적인 결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는 달리, 귀국한 인질들을 맞는 일본 내부의 반응은 희한하기 짝이 없었다. '왜 그렇게 위험한 곳에 들어가 위험을 자초했느냐'는 이른바 '자기책임'(自己責任, 지코세키닝)론의 대두였다. (이 말은 그해 일본 유행어 Top 10에도 선정됐다)

일국의 총리가 TV에 나와 '인질들의 잘못이 크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는 것은 국가가 국민의 안위를 일차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보수적인 국가관에서 보더라도 과연 정상적인 것은 아니다. 이른바 '자기책임'론에서는 일본사회 특유의 전체주의적인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개인의 주체성과 자존이 개인 내부의 문제로 침잠(沈潛)하는 모습은 혼란스러웠던 근대 19세기 독일의 모습을 연상시키지만, 그것을 집단 내부의 역량으로 체화시키지 못하고 거침없이 잘라버리는 비정함은 역시 일본답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길게 몇년전의 사건을 들춰보는 것은, 이번에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랍된 샘물교회 교인들에 대한 폭력적 시선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정규매체에서 비중있게 다뤄지는 내용은 아니지만, 인터넷에서는 이미 이 문제의 원인을 '한국 개신교의 지나친 포교활동'에서 찾는 의견이 많다. 정치(精緻)하지 못하고 파편적인 의견들이 많긴 하지만 그런 의견이 많다는 것 자체가 한국 개신교를 바라보는 일반적인 인식을 대변해준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문제는, 과연 현 상황에서 '한국 개신교의 지나친 포교활동'을 지적하는 것이 그들의 무사귀환에 어떠한 득이 될 것인가이다. 목 앞에 칼이 들어온 사람 앞에서 왜 칼 맞을 짓을 했느냐고 한탄하는 것이 사태 해결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더더욱 걱정되는 것은 이러한 '한국 개신교에 대한 반감'이 바로 '죽어도 싸다'라는 폭력적인 당위로 치환되어버리는 일이다. 논리전개가 거칠다든지 하는 차원을 떠나 20여명의 목숨을 손놓아버리는 지극히 폭력적인 행동이다. 한 추상적 대상(종교)에 대한 호.불호가 구체적인 대상(20여명의 인질)에 대한 생사여탈로 귀결되는 것은 잔인한 일 아닐까.
2007/07/21 19:21 2007/07/21 19:21
http://morehj.com/blog/trackback/742
홍커피  | 2007/07/21 20:51
네...맞습니다..
'너네가 자초한 일이니 죽어도 된다' 라는 논리가 더 잔인한것 같습니다.
트랙백이 안걸리네요 :)
http://redcoffee.net/60
  | 2007/07/22 02:00
제 블로그는 좀 심심해서 덜하지만 홍커피님의 블로그에서는 난리도 아닌 것 같습니다. ㅡㅡ;;;
권호정  | 2007/07/22 00:19
본질은 목사의 몰상식한 행동때문이오 위험구역이고 하니깐 가지말라은 수차의 정부의 경고를 무시하고신도를 보냇다는검니다 우리는 김선일씨 사건을 기억할껌니다 국민모두가 상처를입엇습니다 목사 지금 당장당신의 자식들을 이라크나 파키스탄등 위험지역으로 봉사활동 보내보시오 목사당신은 피납자 가족뿐만아니라 모든국민들에게 큰죄를 지엇소 사죄하시오 당신은 진정한 목회자가 아니라 복음 장사꾼갓소
  | 2007/07/22 02:02
한국 개신교의 문제건, 한국 목사의 문제건간에 그 문제를 탓하는 건 그 사람들이 무사귀환한 뒤에 해도 늦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그 목사가 '가라 가라~' 한 것도 아니잖아요? 참고로, 그 샘물교회 담임목사라는 분은 그렇게 꽉 막힌 사람 같지도 않더군요. (에어장(장효희) 목사 같은 사람이 횡행하는 세태에 미루어보면...^^) 예전에 한겨레신문에 나온 기사를 참고하세요. http://www.hani.co.kr/section-00910002 ··· 023.html
이중원  | 2007/07/22 23:58
평소에 잘해라 라는 말이 절절히 생각나네요.
제가 이번경우로 느낀 정말 무서운것은 개신교도들이 가지고 있는 타 종교에 대한 몰이해와 무지입니다..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더군요

이번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또다시 여기저기 관련기사나 동영상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는데,

결국 평소에 잘해라..라는 말밖엔...
  | 2007/07/23 00:58
'평소에 잘해라'라는 말...절대 공감입니다. ^^ 이번 일을 계기로 네이버에서 '아프가니스탄 여행'이라고 쳐봤더니 벌써 선교목적으로 아프가니스탄을 다녀온 개신교인들이 상당수더군요. 결국 터질 게 터진 것 같습니다.
아주생쇼하네  | 2007/07/23 09:18
아주생쇼하네 그럼정부가30번이나경고장보내고 비행기강제 취소시켰는데 뭔상관이냐면서 비행기타고갔으면서 정부탓하고 미국탓하고.... 자다남의다리긁어도유분수지참나 어이가없어서 공항에서 아프가니스탄에가지말라는 안내문앞에서 사진찍고 정부탓에나라망신시키고 아이구잘한다잘해 아주생쇼하네 그리고목사가정신이 있는거야?? 없는거야??
  | 2007/07/23 12:51
그럼 송환활동하지말고 아예 거기서 죽여버릴까요? 그래야 속이 시원하시겠죠? ^^
  | 2007/07/24 14:06
그 분들의 태도에 대해서.. 분이 치솟더군요..

정부에서 왜 가지 말라고 했겠습니까.. 왜 그토록 말렸겠습니까..

붙잡혔을때..후우..

지금 그냥 죽여버려라.. XX같은 놈들 이라는 악플들이 난무하는 것들 다 이해가능합니다.

우리가 가서 선교활동을 하겠다는데 당신들이 무슨 상관이냐.. 우리의 죽음만으로 모든일이 끝나니깐

정부는 신경쓰지마라.. 이런 주장..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정부가.. 개들이 그냥 붙잡혔을때.. 당신들은 스스로 유서까지 작성하고 갔으니 우리는 신경 끄겠다..

라는 입장을 밝혀도.. 국제적 비난과 나라안의 비난은 피할수 없습니다.

송환활동을 벌여서.. 그 들을.. 만에 하나 데리고 온 다 하더라도.. 말이죠..

그들을 데려오기 위해 아프간 정부에게 먹여야하는 수많은 돈과 외교적 피해.. 미국과 기타 국제적으

로 당하게 되는 외교적 피해..

미국의 압력에.. 현재 비 전투병으로만 파병되고 있는 군대를.. 전투병으로 보내야할지도 모를 일이죠

당신들의 오빠 동생 친구들이 가서 전장에서 쓸데없는 피를 흘릴수가 있단 말입니다.

선교할 곳이.. 굳이 그 곳 밖에 없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제가 볼때는.. 자신들의 신앙심을 과시하기 위해서 굳이 그 위험한 곳으로까지 간것 같다는 말입니다.

몇개월전만 하더라도.. 북한 핵문제로 난리가 나지 않았습니까..

지금 미국은.. 선제공격으로 인해서.. 말썽이 되는 북한을 그냥 이라크처럼 무력으로 점령해버릴려는

생각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미국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한 여러 세력들과.. 그 중심이 되는 우리나라의 입김을 무시할수 없기

떄문에.. 그 전략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을 뿐이죠..

예전 서울 불바다 발언때.. 클린턴은.. 선제공격계획을 다 짜놓고.. 명령을 내릴 날짜만 기다리고 있었

다고 하더군요.. 우리나라에 전쟁 같은 건 오지 않을거야..

이런 안이한 생각에 빠져있으신 건 아니십니까..

지금 당장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나서.. 우리나라의 외교적 문제가 약화되어버린다면..

최악의 사태.. 미국의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까지도 충분히 가능한 애기입니다...

우리는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이고 역사를 가져오는 사람들이라구요..

그런 사람들이.. 정부의 수차례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런 짓을 합니까..

아무런 법적 절차 없이 그냥 귀찮다는 이유로.. 아니 자신의 선교활동을 방해받을까 그런 이유로..

아프간 정부의 말을 무시하고 탈레반들이 출몰하는 그런 위험지역으로 간단 말입니까..

그 사람들로 인해서 당신들과 나 주변의 사람들이 쓸데없는 피를 보고 비참한 삶을 영위해 간다 해도

말입니까..

지금 사람들이 그 사람들에 대해서 비난을 하는 것...에 대해서.. 는 어쩔수 없습니다.


하지만 도를 지나친 악플 같은건 자제해야겠죠..

그리고 어떠한 불이익이 오더라도 살아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 2007/07/26 00:29
이러한 의견이 가장 일반적인 반응 같습니다...
  | 2007/07/24 14:10
이 번 일로 인해..

정말 고생하시는 선교사 분들과 구호단체 분들이 괜한 욕을 먹지 않았으면 합니다.

-_-;;
현만이  | 2007/07/26 00:26
종교적 신념이 때로는 얼마나 무서운가 혹은 위험한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아프가니스탄으로 간 사람들이나, 전세계가 보고있는데 사람을 죽이는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나 종교적 신념으로(이정도면 현실을 보는 눈을 멀게하는 믿음) 무장하지 않았다면 그럴 수 없었을 테니 말입니다.
어쨌거나 정부가 책임을 지고 남은 사람들을 구해내기를 바랄 뿐입니다. 정부는 잘못없는 사람들만을 위해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이유야 어찌되었건 정부가 모든국민의 안전을 지켜주어야 하죠. 한 사람이 피살되었다는 뉴스 끔찍합니다...
  | 2007/07/26 00:30
그쵸, 두 개의 종교적 신념이 충돌하는 광경 같습니다. 막판에 탈레반이 돈 요구하고 투옥자 석방 요구하는 모습에서는 조금 빛이 바랬지만...
[로그인][오픈아이디란?]
이천시에 무슨 특전사 부대를 이전하기로 했나보다.

그래서 이천시에서 시장, 의회의장 등이 모두 용산 국방부 앞으로 와서
이전 반대 데모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데모까지는 좋은데 데모 막판에 새끼돼지를 잡아서
네 다리를 묶고 말 그대로 '찢어 죽였다'.

나오는 사이트도 있고 안 나오는 사이트도 있는데
죽기 직전에 새끼돼지가 입을 벌리고 꽤액꽤액 우는 모습의 사진도 봤다.
대체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잔인할 수가 있는 거냐...?

이에 대한 반응 중에서
"채식주의자 아니면 저거 보고 토 달지 마" 하는 의견이 있는데
이건 육식, 채식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에 대한 예의의 문제다.


정말 이런 것까지 설명을 해야 하는지 참 한심한 노릇이지만...
(살인의 인과관계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살인자 어머니의 임신까지 들먹이는,
형법상 인과관계론의 '살인자의 어머니' 이론과 같은 논리들이 횡행하는
멍청하고 천박한 이 사회에 개인적으로 환멸을 느낄 때가 많다.

고등학교 때 국어교과서에서 배운 '슬견설'(蝨犬說)이 얘기하고자 하는 바는
덩치 큰 개와 미물인 이(蝨)가 같다...라는 표피적인 논리가 아닌 거다)

모든 생명이 자기가 살 영양을 섭취하기 위해 다른 생명을 죽인다는 건 맞다.
하지만 '죽인다'는 표현을 너무 넓게 해석해서
'채식주의자도 식물 죽이는 거니까 고기 먹는거 뭐라고 하지 마'라는 건
지나친 비약이다.
중요한 것은 '죽임' 그 자체가 아니라 '죽임의 잔인성'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회사에서 야근을 하다가 뉴스에 저게 뜬 걸 보고
난 정말 너무 놀랐다.
어떻게 이렇게 사회가 천박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렇게 사회가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을까,
대체 이 사회는 나의 의견을 개진하고 불만을 표출하는 방법을
배워본 적이 없는 것일까,
...뭐 이런 생각들이 들기 이전에 내 머리를 가득 채웠던 것은
'새끼돼지가 너무 불쌍하다'라는 아주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감정이었다.

여기에는 어떠한 이론도, 논리도 필요하지 않다.
그게 인간의 기본 감정인 거고, 모든 철학과 이론은 그것을 인정하고
그런 토대 위에서 전진해 나가야 한다.
(이런 원초적인 토대까지 회의(懷疑)하고 부정하는 파괴주의적인 자세는
나로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런데 저 군복을 입은 일군의 모리배들은
자신들 주장의 극대화를 위해 (그리고 실상 하등 관계도 없으면서)
그러한 잔인함을 감행했다.

분신자살이나 할복은 자신에게 상해를 가하기나 하지,
저 몹쓸, 인간 같지도 않은 인간들은
아무 힘도 없는 새끼돼지의 네 다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찢어죽였다.
그 네 가닥 줄 끝에 자기 몸이 저렇게 달려있어도
그들은 줄을 잡아당겼을까?

그 자리에 있던 인간들을 보니 참 가관이다.
해당지역 국회의원은 예전부터 내게 '철새'와 '노추(老醜)'의 이미지로 박혀있던 자였고,
말 못하는 새끼돼지를 능지처참한, 군복입은 나이든 인간들은
'군바리'의 생각없음, 무식함을 싫어하는 나의 고정관념을
더욱 더 굳게 해 주었다.

이 사회의 천박함과 폭력성이 무섭다.
정말 소름끼치도록 무섭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은... 출근하러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나를 마중나오는 우리집 필똥이.
굳이 '반려동물'이라고 고쳐 부를 배짱까지는 없지만
나는 저 잔인한 사람들보다 이 순수한 동물들의 권리를 더 챙겨주고 싶다.

PS : 이 소식은 포털사이트 다음의 블로거뉴스를 통해 처음 알려졌다.
그래서 그런지 네이버에서는 이런 소식이 헤드라인에 뜨지도 않는다.
기사를 굳이 찾아보지 않는 이상 네이버에서는 이 소식을 알 수도 없는 거다.
역시 포탈사이트만 보면 바보가 된다.
2007/05/23 20:54 2007/05/23 20:54
http://morehj.com/blog/trackback/738
배윤규  | 2007/05/25 20:21
글쓰신 님... 다른건 다 그렇다 쳐도'군발이'가 생각없고 무식하다는 표현은 참 거슬리네요. 어제 일 벌린 사람들이 미군복을 입었다 해서 '군발이'도 아닐 뿐더러 그렇게 님이 표현하는 '무식'한 군발이가 있기에 님이 두다리 쭉펴고 잠 잘수 있는 겁니다. 어디가서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글 잘 읽다가 마지막 글을 보니 글쓴 님도 '무식'해 보입니다.
  | 2007/05/25 23:59
그때 연단에서 군복 입고 돼지 잡아당긴 사람들은 군인들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군복을 입은 자신들은 '국방부'를 상징하고 사지가 잡힌 돼지는 자신들의 '이천지역'을 의미한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하긴 군복 입은 군인이 자기네 지역에 군부대 들어오는 걸 반대하는 건 말이 안되지요) 결국 저는 사실관계를 잘못 파악하고 글을 써댄 거겠죠. 그 점에 관해서는 제가 할 말이 없어요.

하지만 제가 싫어하는 '군바리'란, 도로 위에서 빨간 모자와 선글라스 끼고 양 손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흔드는 수준의, 딱 그런 수준의 '군바리'라는 걸 이해해주셨음 하는군요. 이 글 하나만 보면 저 문장이 참으로 거슬릴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제가 무턱대고 '군인은 다 싫다'라는 정도의 유치한 생각을 가지는 사람은 아니니까요.
[로그인][오픈아이디란?]
일단 그림 하나...

* 항공모함 조지 H W 부시호에 샴페인을 터뜨리는 도라 부시 코흐(조지 H W 부시의 딸). 전통적으로 함선의 명명식에는 여성이 스폰싱을 하도록 되어 있다. (Nothrop Grumman 웹사이트)

(...) 버지니아주 뉴포트 뉴스에서 열린 명명식에서 부시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 당신의 배가 있습니다"라고 아버지에게 배를 바쳤으나, 이어 "이 배는 가차없고, 불굴에, 무적"이라며 "사실 바버라 부시(부시 대통령의 어머니)라고 이름지었어야 한다"고 자신의 어머니의 강인한 성품을 들어 농담하기도 했다. (...) (연합뉴스 기사 중)
지난 10월 7일(현지시간), 미국의 41대 대통령이었던 조지 H. W. 부시의 이름을 딴 니미츠급 최후의 항모의 명명식이 있었다. (명명식(christening ceremony)이란, 어느 정도 건조된 배에 공식적으로 이름을 부여하는 행사로서, 설계 중인 배에 이름을 처음으로 부여하는 작명식(naming ceremony)와는 구분되는 것 같다)

아버지와 아들 부시 모두 이 신형 핵항모에 'George H W Bush'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어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 기사를 보면서 나의 흥미를 끌었던 것은 상자 안에 인용한 것과 같이 엉뚱하게도 그들의 유머감각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그들만의 방식'(their way to make people laugh)이라는 포인트였다.

분명히...
한국의 유머와 서양의 유머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또렷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특히, 섹스와 같은 원초적인 주제가 아닌,
사회적인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유머에서라면
그 차이는 더 현격히 벌어지는 것 같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정밀하게 분석할 여유까지는 없지만
그냥 최근 들어 어렴풋이 머리 속에 맴도는 생각들을 적어보자면
서양의 유머들은 오랜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맥락 속에서 공고해진
'고정관념'들을 살짝 비틀어 '귀엽게' 이용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맨 위 상자 연합뉴스의 조지 W 부시의 말도 그렇다.
"이 배는 가차없고, 불굴에, 무적"이라는 말 뒤에
슬쩍 "(그래서) 사실 바버라 부시라고 이름 지었어야 한다"라고
이날의 주인공, 아버지가 아닌 여장부로 통했던 어머니의 이름을 한번 올려주는 센스.

아, 그래, 나도 안다.
미국 대통령들, 옆에 연설문 작성자도 있고 유머/화술 코치들도 많다는 거.
하지만 그런 코치의 존재를 감안하더라도
저 정도 유머, 굉장히 세련되고 고급스러우며 나름 귀엽지 않은가?

이런 유머를 이해하고, 이런 유머가 좌중의 웃음을 유발하려면
관객들이 우선 기본적으로 그 유머의 포인트를 이해하기 위한 배경지식이 충분해야 한다.
서양 유머에 자주 등장하는 기독교적 세계관이나 성경의 에피소드들,
근현대사 위인들의 어록, 문화사적인 주요 사건들,
그런 것들이 관객들의 머리 속에 자리잡지 않으면
이런 걸 이용해서 좌중을 웃긴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유머는 이러한 '문화적 비틀기'의 패턴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1980년대에 많이 보이던 '전두환 시리즈' 같은 것은
(설령 지금 와서 돌이켜볼 때 그것이 썰렁하다 싶을지언정)
그러한 이야기가 유머로서 인구에 회자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문화적 비틀기의 핵심으로서의 유머'가 한국에도 있었음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유머는
주로 '언어적 비틀기'에 기반을 둔 1차원적인 것들로 보인다.
동음이의어를 사용한 유머, 말장난을 이용한 유머 같은 것들.

사회적 고정관념을 비트는 유머는 아직까지도 분명 존재하고 있으나
(공중파 방송들의 코미디 프로그램 중 '패션7080' 같은 것들)
그 유머들은 사실 '과장된 외양'과 '조야한 표현'을 통해 자신의 추동력을 확보하고 있는 듯 하다.
아쉽게도 위 부시의 말처럼
'단 한마디로 사람을 웃겨버리는' 촌철살인의 재기발랄함은 기대하기 힘들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야기될 수 없는
민중적인 유머들의 경우에는 그 상황이 더 심각(?)한 것 같다.
주로 배설물(...) 관련 소재나 의미없는 말장난 유머의 자기복제들.
그만큼 한국의 대중이 사회적 문제와 유리되어가고 있다는 방증일까...?
무엇보다도
'문화적 비틀기를 통한 유머'가 불가능할만큼
대중의 문화적 감수성과 배경지식이 옅어지고 있다는 적신호라고 해석해도 되는 걸까...?

(...) 세상엔 오렌지족이니 뭐니 하는건 있지도 않아 신문과 사회와 어른들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지 우리나라 코메디를 보고 저질이라고 한탄하는 그들에게
묻고 싶어 외국에서 꼬부랑 말을 하는 코메디를 보면 그렇게도 고상해 보이고
고급스러워 보이는지를 하지만 그들을 탓하고 싶진 않아 그들도 비난하는 것만이
유식한 것처럼 인정되는 사회가 만들어낸 피해자니까 (...) (015B, 第4府 중)
015B의 노래가 떠올라 짐짓 찔리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선호하는 유머의 '방식'을 짚으라면
나는 서양쪽 유머에 손을 들겠다.
2006/10/08 19:40 2006/10/08 19:40
http://morehj.com/blog/trackback/698
치리에  | 2006/10/08 19:49
때가 오면 우리나라의 유머도 저런걸 써먹을때가 나오지 않을까요?
그 때가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죠.
  | 2006/10/09 11:47
써먹기 위해서는 일반인들이 공유하는 배경지식 같은 것이 깊어져야하는데, 그런 방향으로 간다기 보다는 일반인들과 '지식'이 점차 유리되어 간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네요.
미디어몹  | 2006/10/09 18:30
morehj 회원님의 상기 포스트가 미디어몹 헤드라인에 등록되었습니다.
[로그인][오픈아이디란?]

예전 어느 경제신문의 재테크 칼럼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전략...) "땀 흘려 번 소득만이 진정한 가치가 있고 땀흘리지 않고 번 불로소득은 비난받아 마땅합니다"라고 서민들은 분노한다. 너무나도 당연한 주장 같기도 하다. 경제학에 대해서 문외한인 대다수 대중들이 그렇게 착각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예전엔 경제학자조차도 그렇게 생각하였다. 아담 스미스 이전의 중농주의파 경제학자들은 농사짓는 농부야말로 부를 만들어낼 수 있고 농산물을 사고파는 상인과 다른 직업 종사자는 아무런 부를 창출하지 않는다고 착각했다.

위의 주장에 대해서 현대 경제학자는 이렇게 반론을 할 것이다.

"니 맘대로 삽질(?)해놓고 흘린 땀에 비례해서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게 말이 되냐? 대가는 흘린 땀하곤 아무런 상관이 없어. 대가란 상대방(시장)을 만족시켰을 때 받아가는 거야. 그리고 시장은 엉뚱한 데 삽질한 사람을 용서하지 않아. 그렇게 함으로써 시장은 전체 자원과 노력이 낭비되지 않고 효율적으로 투자될 수 있도록 해주지... 투자수익이란 자원 투입을 올바르게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시장으로부터 받는 상(보수)이야... 실패한 투자자는 귀중한 돈을 삽질(낭비)했기에 시장으로부터 벌(손해)을 받게 되지... 그리고 자본주의 경제에선 자본소득이 근로소득보다 점차 커져가고 있는게 당연한 현상이라네" (...후략)

머니투데이, 브라운스톤(칼럼니스트) 칼럼 중에서
생각해본즉, 맞는 소리다.
혼자 방 안에서 신나게 온라인게임을 해서 레벨을 올린대도
방 밖으로 나오면 가장 가까운 가족이라도 그걸 '잘했다'라고 해주지 않는다.
결국 '시장'이라는 관점에서는 시장의 '선택'을 받는 쪽이 시장의 '판돈'을 가져가는 거다.

그런 점에서, 나는 솔직히
연예인들이 천문학적인 돈을 받는다며 욕을 하다가도
지하철이나 웹에서 스포츠신문이나 연예기사만을 찾아읽는 사람들이 좀 한심해보인다.
자신들이 그렇게 욕하는 연예인들의 높은 몸값이란 게,
실은 자신들이 별 생각 없이 손을 뻗어 찾아 읽는 그 '관심의 값'이라는 거.

'야, 지하철에서 머리 아파서 가볍게 스포츠신문 하나 읽는 거 갖고 너무하는 거 아냐?' 라고 억울해해도
그러한 '수용자의 심각성 여부'에 따라 연예인 몸값이 차등산정되고 그런 건 아닌 거 같다.
숫자인 돈은 본질적으로 몰가치적이니까.

마찬가지로, 한국영화나 한국가요의 수준낮음을 질타하는 사람들에게도 짐짓 이런 생각이 든다.
과연 저 사람들은 한국영화나 한국가요의 수준 상승을 위해 얼마나 돈을 투자해줬을까.
공연장에 한 번도 가본 적 없고, 좋은 음악 스스로 찾아들으려 노력한 적 없으면서
라디오에 나오는 노래가 귀에 좋으면 대충 웹 뒤져서 mp3 구한 뒤에 며칠 계속 듣다가
단물 쏙 빠지면 식상해한다.
이 경우, 이 사람이 그 음악에 지불한 비용은 거의 '0'에 가깝고
그나마 있는 미미한 비용 역시 음악가에게 가는 부분은 전무하다.
그래서 신해철의 말대로 한국의 대중은 게으르다.

정말 이런 사람들은 어디 가서
'제 취미는 음악감상입니다', '저는 이 노래를 좋아합니다' 이런 소리 하면 안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짜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좋아한다'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그 좋아함의 대상에 정당한 비용을 지불했음에 당당해야 한다.
들인 비용은 거의 없이 '좋아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솔직히 낯간지럽다.

.............

물론, 한국사회의 특수성도 있긴 한 것 같다.
남들이 다 하는 것을 몰라서는 안된다는 불안감, 뒤쳐져서는 안된다는 조바심, 그런 것들이
사실은 관심도 없으면서 관심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투입비용을 낮추려는 편법으로 이어지는 게 아닐까.

모형을 미치도록 좋아하는 나와, 새를 미치도록 좋아하는 YJ는
서로의 취미에 교집합이 전혀 없음에도 서로 수다를 잘 떤다.
그 수다의 속성이란, '어, 그거 나도 알아~'와 같은 얄팍한 다리 걸치기가 아니라
'그 취미는 너에게 어떤 즐거움을 주니? 들어보고 싶구나'와 같은,
독립된 개인 대 개인으로서의 공감이자 연대(solidarity)다.

이것이야말로 서구화된 계약사회에서 '시민'들이 가져야 할 올바른 덕목이 아닐까.

Be independent and Stand smart.
2006/06/30 22:59 2006/06/30 22:59
http://morehj.com/blog/trackback/676
woo  | 2006/07/01 22:34
쭝~ 네 아이팟에 담겨있는 수많은 mp3 파일들은 어떻게 하고?~ ㅋㅋ 쭝의 글은 오늘도 난해해...
  | 2006/07/02 03:52
...^^;;;
예인  | 2006/07/07 22:55
고전경제학자들의 관점을 '착각'이라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지 않을까요? 다만 어디를 바라보고 있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제 얕은 생각으로는 "대가란 시장을 만족시켰을 때 주어지는 보상이고....... 자본소득이 근로소득보다 커져가는 것이 대세"라는 현대 경제학자의 발언이야말로 현재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설명(좀 더 거칠게는 변호)하기 위한 가져다붙이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경제학자들이 좋아하는 함수 놀음을 벌이더라도, 근로소득과 자본소득 사이에는 엔간한 수학으로는 엄두도 낼 수 없을 엄청난 함수관계가 내재되어 있을 것 같거든요.

...... 그러나, 브라운스톤 씨(?)의 거시경제적(?) 칼럼에 대해서는 심히 부정적임에도 불구하고, 그 칼럼으로부터 도출된 쭝 님(이라고 호칭하면 되나요?)의 글은 참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나 스스로를 프로페셔널한 인생의 경영인으로 만들기 위한 좋은 지침인 것 같아요. 저 스스로의 게으름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되네요. ㅎㅎ

(사족) "대체 당신은 누구냐!"라고 물으신다면, 예전에 트랙백 남기신 글을 통해 가끔씩 흘러들어오던 객입니다. 재미있는 글 잘 읽었기에 처음으로 댓글 남기고 갑니다. :D
  | 2006/07/08 14:03
yeinz.pe.kr은 저도 종종 들어가보는 걸요. :D 개인 홈페이지에서 블로그로 바꾼 것도 '연대'와 '네트워크'에 대한 목마름이었는데, 이렇게 서로 '소통'하는 일이 저로서는 즐거울 따름입니다. 우리, 친해지자구요. ^^
[로그인][오픈아이디란?]
http://www.mediatoday.co.kr/bbs/list.h ··· %3D44083

실연에 대처하는 그들의 자세
작성자 : 이선민2006-05-10 18:19:29   조회: 304  


실연한 그 남자의 그 후, 방화·살인·성폭력...

지난 8일 30대 남자가 헤어진 여자친구 집에 찾아가 여자친구와 결혼에 반대했던 가족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여자친구와 그녀의 엄마를 죽였다(SBS 5월8일)는 보도가 실렸습니다. 그런가 하면 지난 2일에는 애인(언론은 '동거녀'로 표현)이 만나주지 않자 애인의 집과 상가 등에 연쇄적으로 불을 지른 혐의를 받고 있는 35살 남자가 경찰에 붙잡혔다(YTN 5월2일)는 보도도 실렸습니다.

끔찍하지만 뉴스로써 별로 새로울 것 없는, 신문 사회면에 1단 정도로 처리되는 전형적인 '치정' 사건을 보며 문득 이런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왜 남자친구의 변심으로 남자친구의 집에 불을 질렀다는, 애인이 결혼을 해주지 않는다고 그와 그의 가족에게 칼부림을 하는 20·30대 여성의 이야기는 없는 것일까요?

여성혐오자임을 당당하게 밝힌 연쇄살인범 유영철도 위의 남성들과 비슷한 이유로 사람을 죽였답니다. 언론에 따르면 "이혼과 청혼 실패 등의 개인적인 경험은 올 3월부터 최근까지 저질렀던 부녀자 연쇄살인의 직접적인 범행동기가 됐다"(노컷뉴스 2004. 7.18)고 합니다. 당시 보도를 종합하면 유씨는 실형 7년의 장기수감을 이유로 이혼을 당했고, 이혼 후 한 여성을 만났으나 전과자와 이혼남이라는 이유로 청혼했다가 거절당했다고 합니다.

지난 4월 말 서울 서북부 지역에서 여성 12명을 성폭행하고 1명을 성추행한 30대 남성 김모씨의 범행 이유도 앞의 사례처럼 당황하게 만듭니다. 김씨는 "2004년 6월부터 7개월간 동거했던 여자와 헤어진 뒤 성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조선일보 4월28일)는데, 이 보도를 같이 본 회사의 한 선배는 "그동안 12번 밖에 성욕이 생기지 않은 거야?"라면서 이 남성의 '말도 안 되는' 범행 동기에 실소를 보냈습니다.

이별은 배신이 아니다

불을 지르고, 살인을 하고, 성폭력을 한 이 남성들 뒤에는 실연이 있었습니다. 실연이 엄청난 고통과 슬픔을 가져온다는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제가 살면서 본 바로는 앞의 방법으로 실연의 상처를 달래는 여성들은 없었습니다. 기껏 해야 끊임없이 무언가를 먹거나 죽은 듯 잠만 자거나 울거나 술 마시거나 할 뿐이죠. "이 나쁜 놈아, 콱 너 같은 인간 만나라"라며 저주를 퍼부을 지언 정, 성폭력 방화 살인 같은 타인을 해치는 방법으로 '복수'를 하진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청춘의 덫'의 심은하처럼 복수의 화신으로 변신하는 여성들도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모든 남성이 다 그런 다는 것은 아닙니다)

네이버에서 실연극복법을 찾아보니 "상대를 마음껏 미워하세요, 단 열흘만요"(여성이 썼을 것 같다는 추측을 해봅니다)라고 제안하던데, 이 남성들은 그런 일반적인 방법을 거부했습니다.

헤어짐의 고통을 파괴적·반사회적으로 푸는 이 남성들을 어떻게 봐야할까요? 이에 대해 권혁범 교수(대전대 정외과)는 책 '여성주의, 남자를 살리다'에서 영화 '봄날은 간다'의 주인공 상우(유지태)가 과거 연인(이영애)의 '배신'현장을 목격하고 그녀의 새차를 열쇠로 그어버리는 유치한(?) 행동을 저지르는 것을 예로 들어 실연한 남성들의 반사회적 행동을 설명합니다.

"가부장제의 남자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일종의 사적 소유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그 '물건'이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을 키워서 새로운 관계를 찾아 떠나려 할 때 그렇게 못 참아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을 '배신'이라고 명명하는 버릇이 있다... 남성의 소유욕은 단순한 욕망 투사를 넘어 여성의 주체적 판단, 특히 관계에서 주체적 선택의 자유를 완전히 말살하려는 경지에까지 이른다. '일심동체'라는 잘못된 용어는 여성의 몸을 완전히 남성권력 안으로 편입하려는 것을 암시한다."

"사랑의 문화는 있으나 이별의 문화는 없다"

그리고 이들이 이렇게 유치하게 때론 반사회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위선적 일부일처제에 대한 문화적 강박과 영원한 낭만적 사랑을 강요하는 이데올로기 교육으로 우리는 상대방의 사랑이 식을 때, 마음이 떠날 때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 전혀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권 교수는 "사랑을 시작하는 문화는 널려있다. 그러나 이별의 문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덧붙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별의 문화를 접할 기회가 없었음에도 나름 실연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여성들은 특별한 존재일까요?

유치하고 반사회적이고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이 남성들과 일찌감치 헤어진 여성들에게 '정말 다행입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 남성들 때문에 피해를 받는 여성들을 생각하니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2006-05-10 18:19:29
211.xxx.xxx.160

.......

정말 사랑한다는 것, 그것이 '나의 욕심, 나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상대를 하나의 인격체로 대우한다는, 보다 성숙한 차원의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세상 모든 것이 그렇듯, 그리고 에리히 프롬이 말했듯
사랑 역시 '학습'과 '훈련'이 필요한 것 같다.
2006/06/18 20:04 2006/06/18 20:04
http://morehj.com/blog/trackback/673
소나무  | 2006/06/19 14:58
공부하자~ 공부!!!
구스타프  | 2006/06/23 16:26
Mig-23 업뎃 좀 올려주셈~ ㅠ_ㅜ
[로그인][오픈아이디란?]

솔직히 말하자.

몇주 전까지만 해도 나는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다면 이거 완전 땡잡은 거 아닌가?'
라는 두리뭉실한 생각으로 한미FTA를 바라봤다.

한국 최대의 수출시장 문을 완전히 활짝 열어젖히기 위해
어느 특정 산업분야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그 수출대상국과 전면적인 경제'동맹'(왜 작은따옴표를 쓰는지는 밑에 얘기한다)을 맺는 것이
정말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던 거다.

더구나 나는 이런 나의 생각이 나름대로 논리성을 갖췄다고 생각하여
한미FTA 반대론을 저 논리 하나로 다 무마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반대론을 찬찬히 들여다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

이상의 상황이 한미FTA 지지론자, 아니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의 생각일 거다.

(오히려
'아니, 반대시위를 하려면 우리나라에서나 하지,
왜 미국까지 가서 나라망신을 시켜?' 라면서
원정시위대 욕을 하지나 않으면 다행이겠다)


하지만 요 근래에
한미FTA 반대론을 천천히 들여다보게 되면서
나의 어설프고 두리뭉실한 지지논리들은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반대논리들로 빠르게 대체되었다.

그리고 솔직히 이제는,
'세상에...! 한미FTA가 체결되는 순간, 이 나라는 파탄의 수렁으로 빠져들어가겠구나'
하는 거대한 두려움마저 마음 속에 자리잡게 되었다.

..........

한미FTA 반대론의 논거는
웹 여기저기에서 너무도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여기서 다시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다만, 한미FTA의 문제점 몇가지만 짧게 언급해보자면, 아래와 같다.
(아래의 문제점들은 한미FTA의 모든 논점을 다 커버하지는 못하며, 서로 중복될 수도 있다.
다만, 내가 심각하게 느끼는 문제점들을 위주로 적어본다)

1. 성급성의 문제

more..

2. 서비스업 개방의 문제

more..

3. 공공경제 붕괴의 문제

more..

4. 경제종속의 문제

more..

5. 동북아시아 안보의 문제

more..


.............

한미FTA가 우리 경제와 우리 사회에 미칠 영향에 비해
우리 국민들의 머리 속에는 온통 월드컵만이 들어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그 깐깐한 강준만도
'월드컵 때는 흐드러지게 한번 놀아보자, 원래 사람은 호모 루덴스(유희적 인간) 아니던가!'
라며, 신나게 즐길 것을 권했지만 (한겨레21이었던가...?)
지각 있는 사람들이 월드컵을 경계하라고 말하는 것은
'자신들이 노는 데는 젬병이라, 남들 잘 노는 거 보는 게 배 아파서'라거나
'남들 잘 놀 때 혼자 근엄한 척 해서 튀어보이려고' 따위의 이유가 아니다.

즐기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즐기는 것에 빠져 '놓쳐서는 안될 것'을 놓치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오늘, FTA 협상단이 미국으로 출발했단다.
그런데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협상 개시'의 의미를 마음에 두고 있을까.
모두들 밤 11시에 있었던 가나와의 평가전에 더 마음을 쓰고 있는 게 아닐까.
(공교롭게도 협상을 6월부터 개시한다는 것은
월드컵으로 국민의 이목을 분산시키기 위한 고도의 술책??)

다행히
언론의 월드컵 광풍이나 대기업들의 월드컵 마케팅에 반대하는 흐름이
자발적으로 생겨나고는 있지만
이것이 '어우, 쟤들 뭐야~' 수준의 비판에 그치면 안되겠다.

'월드컵에 빠져 현충일과 순국선열들을 잊지 말자' 라는 외침에 덧붙여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한미FTA에 대해서도
한번씩 생각해볼 시간을 갖자고 말하고 싶다.
2006/06/05 00:59 2006/06/05 00:59
http://morehj.com/blog/trackback/671
[로그인][오픈아이디란?]
쭝:
by
전체 (625)
끄적끄적 (362)
딴따라 (96)
Models_1 (98)
Models_2 (42)
Guns (13)
«   2012/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1. inthegroove's me2day  2011
    ho의 생각
  2. Seriously Light Modeler  2011
    KP, 1:48 Su-25 UB/UBK 스프루샷, 가조립 사진
  3. Seriously Light Modeler  2010
    한국의 개고기 식문화 논쟁에 대한 나의 생각
  4. By Gagamell  2010
    푸른눈의 평양시민
  5. 상하이강낭콩밭  2008
    교육은 기나긴 소통이다
  1. 2011/11 (1)
  2. 2011/08 (3)
  3. 2011/07 (5)
  1. [웹] 텍스트큐브.
  2. [만화가] 굽시니스트.
  3. [만화가] 김진태.
  4. [만화가] 박성훈.
  5. [만화가] 이말년.
  6. [만화가] 최규석.
  7. [SIG] 관제탑.
  8. [SIG] 비행기 판금 도색부.
  9. [SIG] 현용 AFV 모델링 클럽.
  10. [모형인(일본)] Masamasa.
  11. [모형인] acme97.
  12. [모형인] Alice.
  13. [모형인] gmmk11.
  14. [모형인] Kampfgruppe144.
  15. [모형인] NEOakaJ.
  16. [모형인] OrangDuck.
  17. [모형인] PressKoo.
  18. [모형인] Sunz.
  19. [모형인] 가토.
  20. [모형인] 강성문.
  21. [모형인] 강승구.
  22. [모형인] 강영석.
  23. [모형인] 강인원.
  24. [모형인] 고휘욱.
  25. [모형인] 구기동.
  26. [모형인] 권정배.
  27. [모형인] 김경한.
  28. [모형인] 김남용.
  29. [모형인] 김도형.
  30. [모형인] 김동한.
  31. [모형인] 김만진.
  32. [모형인] 김상범.
  33. [모형인] 김성종.
  34. [모형인] 김성종 - Naver.
  35. [모형인] 김세랑.
  36. [모형인] 김유준.
  37. [모형인] 김은갑.
  38. [모형인] 김익선.
  39. [모형인] 김재호.
  40. [모형인] 김정규.
  41. [모형인] 김정철.
  42. [모형인] 김정훈.
  43. [모형인] 김준석.
  44. [모형인] 김진철.
  45. [모형인] 김철종.
  46. [모형인] 김현.
  47. [모형인] 김현철.
  48. [모형인] 김형민.
  49. [모형인] 김형준.
  50. [모형인] 노양수.
  51. [모형인] 라이플맨.
  52. [모형인] 랩터.
  53. [모형인] 로키.
  54. [모형인] 룡룡이.
  55. [모형인] 류광수.
  56. [모형인] 류승용.
  57. [모형인] 모니파.
  58. [모형인] 모종훈.
  59. [모형인] 무명병사.
  60. [모형인] 문정범.
  61. [모형인] 민재호.
  62. [모형인] 바른소리.
  63. [모형인] 박건령.
  64. [모형인] 박규동.
  65. [모형인] 박대호.
  66. [모형인] 박상병.
  67. [모형인] 박상욱.
  68. [모형인] 박성호.
  69. [모형인] 박수원.
  70. [모형인] 박연상.
  71. [모형인] 박용진.
  72. [모형인] 박종봉.
  73. [모형인] 박지훈.
  74. [모형인] 백승동.
  75. [모형인] 변지선.
  76. [모형인] 북서풍.
  77. [모형인] 새물결.
  78. [모형인] 서순교.
  79. [모형인] 서정범.
  80. [모형인] 서준천.
  81. [모형인] 손우석.
  82. [모형인] 수연아빠.
  83. [모형인] 스끼리네.
  84. [모형인] 신광철 - Egloos.
  85. [모형인] 신광철 - Naver.
  86. [모형인] 신동훈.
  87. [모형인] 신화동.
  88. [모형인] 아무로.
  89. [모형인] 안준홍.
  90. [모형인] 안치성.
  91. [모형인] 알폰스.
  92. [모형인] 양대천.
  93. [모형인] 양동일.
  94. [모형인] 양성필 - Egloos.
  95. [모형인] 양성필 - Naver.
  96. [모형인] 양태준.
  97. [모형인] 오준호.
  98. [모형인] 왕조사.
  99. [모형인] 우보형.
  100. [모형인] 유철호.
  101. [모형인] 유철호 - Naver.
  102. [모형인] 윤영중.
  103. [모형인] 이경재.
  104. [모형인] 이경준.
  105. [모형인] 이기태.
  106. [모형인] 이대관.
  107. [모형인] 이상민.
  108. [모형인] 이석주.
  109. [모형인] 이성재.
  110. [모형인] 이영신.
  111. [모형인] 이인재.
  112. [모형인] 이주환.
  113. [모형인] 이중원.
  114. [모형인] 임지훈.
  115. [모형인] 작은잎.
  116. [모형인] 장민성.
  117. [모형인] 장홍환.
  118. [모형인] 정기영.
  119. [모형인] 정동근 - Daum.
  120. [모형인] 정동근 - Naver.
  121. [모형인] 정동현.
  122. [모형인] 정상헌.
  123. [모형인] 정세권.
  124. [모형인] 정영철.
  125. [모형인] 정원석.
  126. [모형인] 정의환.
  127. [모형인] 조각모음.
  128. [모형인] 조상규.
  129. [모형인] 조현진 - Egloos.
  130. [모형인] 조현진 - Naver.
  131. [모형인] 지노.
  132. [모형인] 지종현.
  133. [모형인] 최경환.
  134. [모형인] 최남규.
  135. [모형인] 최영일.
  136. [모형인] 최일구.
  137. [모형인] 최재원.
  138. [모형인] 최혁진.
  139. [모형인] 콜린.
  140. [모형인] 트로이.
  141. [모형인] 팻보이.
  142. [모형인] 하성규.
  143. [모형인] 행복팩토리.
  144. [모형인] 허홍봉.
  145. [모형인] 현익환.
  146. [모형인] 황성일.
  147. [모형인] 황은익.
  148. [웹] AeroScale.
  149. [웹] AK커뮤니케이션즈.
  150. [웹] ARC.
  151. [웹] HyperScale.
  152. [웹] Internet Modeler.
  153. [웹] MMZone.
  154. [웹] Platinum Wings.
  155. [블로거] bakky.
  156. [블로거] lezhin.
  157. [블로거] May.
  158. [블로거] Samuel S.
  159. [블로거] 고재열.
  160. [블로거] 날라리 무도인.
  161. [블로거] 미디어몽구.
  162. [블로거] 박노자.
  163. [블로거] 박형준.
  164. [블로거] 세계의 말과 글.
  165. [블로거] 양재호.
  166. [블로거] 오연호.
  167. [블로거] 우석훈 - Textcube.
  168. [블로거] 우석훈 - Tistory.
  169. [블로거] 윤필중.
  170. [블로거] 윤현중 - Naver.
  171. [블로거] 이택광.
  172. [블로거] 전우진.
  173. [블로거] 차용택.
  174. [블로거] 한윤형.
  175. [블로거] Zoc.
  176. [블로거] 게렉터.
  177. [블로거] 사자왕 - Naver.
  178. [블로거] 사자왕 - Paran.
  179. [블로거] 페니웨이.
  180. [웹] 香港電影.
  181. [웹] 香港電影工作室.
  182. [웹] 익스트림무비.
  183. [Blog] Buy the Gun - Egloos.
  184. [Blog] Buy the Gun - Naver.
  185. [블로거] Classic Arms.
  186. [블로거] 銃彈舞.
  187. [블로거] 바보수학자.
  188. [블로거] 보리나무.
  189. [웹] 사라미스의 통제구역.
  190. [총] JollyRoger.
  191. [총] 태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