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따라/책 2008/11/09 23:50

* ISBN 9788957690741
소설을 제외하고, 고종석의 책은 나름대로 꽤 갖춰놓고 읽는 편이다. 내가 갖고 있는 고종석의 책 대부분은 잡문(비하의 뜻은 없다) 성격의 모음집들인데, 이러한 에세이류의 서적을 그다지 탐탁치 않게 여기는 나의 편협한 독서습관을 고려하면 특정인의 에세이들을 꾸준히 모으고 아끼는 나의 이러한 태도에는 무언가 특이한 점이 있다.
가만히 따져보면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나는 나와 마찬가지로 법학을 전공했지만 언어학에 관심을 가져온 고종석 개인에 대한 친밀감 내지는 '가까워지고자 함'이다. (물론, 고종석은 언어학 학위가 있고 복수의 유럽어를 구사한다는 점에서 학사학위 하나에다 영어만으로도 갤갤대는 나와 비교할 수는 없다) 그의 에세이들에서는 언어, 그리고 언어학적 지식들이 주된 테마가 된다. 어떠한 사물을 갖고도 언어적으로 접근하고 회귀하는 그의 글쓰기가 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것이 나의 사고방식과 많이 비슷하기 때문인 것 같다.
또 한가지, 내가 고종석을 좋아하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그의 유려한 문체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의 문체를 보고 여성적이다, 섬세하다, 신중하다... 라면서 '우리말의 결을 세밀하게 드러낸다'고 평가한다. 나로서는, 앞의 평가에는 동의하지만 뒤의 평가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그의 말들은 분명히 조심스럽고 신중하다. 하지만 그의 섬세한 우리말 문장들은 많은 부분, 외국어(특히 유럽어 계열의 언어들)를 많이 공부한 사람이 곧잘 쓰는 번역어투의 말들을 세련되게 가공한 것, 또는 서양적 사고방식을 한국어로 섬세하게 옮기면서 생겨나는 부산물(역시 비하의 뜻은 없다)에 가깝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고종석 글의 미학은 대부분 이러한 '번역어투 또는 서양적 사고방식의 한국어화 과정'에서 오는 것 같다.
그 과정에서 한국어 표현의 경계들이 확장되는 신선한 경험을, 사람들은 '우리말의 결을 세밀하게 드러낸다'라고, 한국어가 원체 가졌던 속성을 고종석이 '최초로' 발견해낸 듯이 이해한다. 하지만 고종석이 한국어 표현의 경계들을 넓혀갈 때 기대는 규준은 사실 그가 구사하는 유럽어 계열의 언어들, 즉 서양식 언어와 사고방식(언어와 사고방식은 똑같은 2개의 거울상이다)인 셈이다.
'뜨거운 감자'니 '빙산의 일각'이니(각각 영어의 'hot potato', 'tip of the iceberg'라는 표현이 그대로 외국어(한국어)에 이식된 사례다)... 이미 한국어의 많은 부분에 외국어 표현이 침투한 상황에서 나는 이러한 고종석의 전략(이랄까?)을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같은 방식을 쓰면서도 '직역'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어를 처참하게 분절내어버리는 재주없는 우리들 대부분과 달리 오히려 그는 우아하고 세련된 결과물을 내어놓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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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고종석의 에세이집에 대한 나의 이러한 애착이 이끈 최근의 만남이 바로 이 '도시의 기억'이라는 책이다. 마침 기행문을 읽고 싶기도 했고 고종석의 신작이 궁금하기도 하던 차였다.
우선, 제목에 대해 한 마디. '도시의 기억'이라는 세련된 제목이 썩 괜찮게 느껴졌지만, 아쉽게도 이 제목 역시 번역어인 듯 하다. 인터넷을 뒤져본 결과, 근대도시와 건축물의 모더니티를 연구한 책('Urban Memory : History and Amnesia in the Modern City')을 비롯하여 'Urban Memory'라는 표현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심지어 일본책도 있다) 의식적 차용이건 무의식적 발현이건 간에, 이 책의 제목도 사실 완전히 독창적인 것은 아니었던 셈이다.
이 책은 한국일보에 연재된 동명의 연재물을 묶은 것이다. 책 제목이 주는 모던하고 도회적인, 장소로서의 '도시' 그 자체(역사라든가 건축물이라든가 하는 것들)에 집중할 것 같은 느낌과는 다르게, 이 책이 주억거리는 '도시의 기억'이란, 고종석 스스로가 밝혔듯이 '매우 사사로운, 편파적인 기억'이다. 다시 말하면, 그 도시 위에서 주유했던 고종석 자신의 기억인 셈이다. 그리고 그 자신 역시 '도시' 자체에 밀도있게 집중하거나 그것을 해부하지 않고 자신이 머물렀던 도시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되돌이키거나 그 도시로 인해 연상되는 소재들을 병렬적으로 연결하는, 쉽고도 개인적인 방법을 쓴다.
기행문의 방식으로만 보자면 서점의 기행문 코너에 널린 유명인들의 기행문 책과 별반 다를 바 없을 것 같다. 돌아다닌 곳만 따지자면 이 책은 세계 곳곳을 누빈 그러한 책들보다도 오히려 수준이 낮다고 하겠다. (이 책에 실린 도시들은 일본, 미국, 유럽 세군데의 유명도시들 뿐이다) 하지만, 앞에서 길게 길게 썼던 것처럼 이 책의 아름다움은 그러한 '표면'에 있지 않다. 고종석의 팬이고 그가 이끄는 지독히 자기중심적인 도시기행에 묵묵히 동참할 자세가 되어있다면, 이 책은 '고종석의 기행문'이라는 그 자체로서 독특하고 아름답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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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어보니 그 책 읽기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여. 11월 마지막 주에 읽어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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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에 살포시 꽂아두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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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문체에 어느정도 감동을 받기는 하겠지만 정보가 빈약한 책은 한계가 있습니다. 번역어투는 이미 국내에선 일반화 되어있어 더이상 독특해 보이진 않습니다. 법에 대해 공부하다 보면 국어를 잘해야 한다는 걸 알게되는데요. 법대 출신이 언어학에 관심을 갖게되는건 자연스런 현상이죠. 분명 고종석의 글은 비교적 많은 걸 보여주긴 합니다만 그건 결국 양적인 차이일뿐 질적인 차이는 아니더라구요. 고화질이긴 한데 볼 수 있는 채널은 그리 많지 않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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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팅을 하면서 어떻게 마무리를 지을까...했는데 고종석에 대한 개인적 애착으로 좋게 마무리지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냉정한 평론가는 되지 못하는 셈이죠. ezez님 지적에 충분히 공감해요. 저 역시도 고종석의 글들에서 '다소 얄팍하다'라는 느낌을 곧잘 받곤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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