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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 10. 22 (수) ~ 2008. 10. 30 (목)
* ISBN 9788957690741

소설을 제외하고, 고종석의 책은 나름대로 꽤 갖춰놓고 읽는 편이다. 내가 갖고 있는 고종석의 책 대부분은 잡문(비하의 뜻은 없다) 성격의 모음집들인데, 이러한 에세이류의 서적을 그다지 탐탁치 않게 여기는 나의 편협한 독서습관을 고려하면 특정인의 에세이들을 꾸준히 모으고 아끼는 나의 이러한 태도에는 무언가 특이한 점이 있다.

가만히 따져보면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나는 나와 마찬가지로 법학을 전공했지만 언어학에 관심을 가져온 고종석 개인에 대한 친밀감 내지는 '가까워지고자 함'이다. (물론, 고종석은 언어학 학위가 있고 복수의 유럽어를 구사한다는 점에서 학사학위 하나에다 영어만으로도 갤갤대는 나와 비교할 수는 없다) 그의 에세이들에서는 언어, 그리고 언어학적 지식들이 주된 테마가 된다. 어떠한 사물을 갖고도 언어적으로 접근하고 회귀하는 그의 글쓰기가 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것이 나의 사고방식과 많이 비슷하기 때문인 것 같다.

또 한가지, 내가 고종석을 좋아하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그의 유려한 문체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의 문체를 보고 여성적이다, 섬세하다, 신중하다... 라면서 '우리말의 결을 세밀하게 드러낸다'고 평가한다. 나로서는, 앞의 평가에는 동의하지만 뒤의 평가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그의 말들은 분명히 조심스럽고 신중하다. 하지만 그의 섬세한 우리말 문장들은 많은 부분, 외국어(특히 유럽어 계열의 언어들)를 많이 공부한 사람이 곧잘 쓰는 번역어투의 말들을 세련되게 가공한 것, 또는 서양적 사고방식을 한국어로 섬세하게 옮기면서 생겨나는 부산물(역시 비하의 뜻은 없다)에 가깝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고종석 글의 미학은 대부분 이러한 '번역어투 또는 서양적 사고방식의 한국어화 과정'에서 오는 것 같다.

그 과정에서 한국어 표현의 경계들이 확장되는 신선한 경험을, 사람들은 '우리말의 결을 세밀하게 드러낸다'라고, 한국어가 원체 가졌던 속성을 고종석이 '최초로' 발견해낸 듯이 이해한다. 하지만 고종석이 한국어 표현의 경계들을 넓혀갈 때 기대는 규준은 사실 그가 구사하는 유럽어 계열의 언어들, 즉 서양식 언어와 사고방식(언어와 사고방식은 똑같은 2개의 거울상이다)인 셈이다.

'뜨거운 감자'니 '빙산의 일각'이니(각각 영어의 'hot potato', 'tip of the iceberg'라는 표현이 그대로 외국어(한국어)에 이식된 사례다)... 이미 한국어의 많은 부분에 외국어 표현이 침투한 상황에서 나는 이러한 고종석의 전략(이랄까?)을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같은 방식을 쓰면서도 '직역'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어를 처참하게 분절내어버리는 재주없는 우리들 대부분과 달리 오히려 그는 우아하고 세련된 결과물을 내어놓으니까.

..............

어쨌거나, 고종석의 에세이집에 대한 나의 이러한 애착이 이끈 최근의 만남이 바로 이 '도시의 기억'이라는 책이다. 마침 기행문을 읽고 싶기도 했고 고종석의 신작이 궁금하기도 하던 차였다.

우선, 제목에 대해 한 마디. '도시의 기억'이라는 세련된 제목이 썩 괜찮게 느껴졌지만, 아쉽게도 이 제목 역시 번역어인 듯 하다. 인터넷을 뒤져본 결과, 근대도시와 건축물의 모더니티를 연구한 책('Urban Memory : History and Amnesia in the Modern City')을 비롯하여 'Urban Memory'라는 표현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심지어 일본책도 있다) 의식적 차용이건 무의식적 발현이건 간에, 이 책의 제목도 사실 완전히 독창적인 것은 아니었던 셈이다.

이 책은 한국일보에 연재된 동명의 연재물을 묶은 것이다. 책 제목이 주는 모던하고 도회적인, 장소로서의 '도시' 그 자체(역사라든가 건축물이라든가 하는 것들)에 집중할 것 같은 느낌과는 다르게, 이 책이 주억거리는 '도시의 기억'이란,  고종석 스스로가 밝혔듯이 '매우 사사로운, 편파적인 기억'이다. 다시 말하면, 그 도시 위에서 주유했던 고종석 자신의 기억인 셈이다. 그리고 그 자신 역시 '도시' 자체에 밀도있게 집중하거나 그것을 해부하지 않고 자신이 머물렀던 도시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되돌이키거나 그 도시로 인해 연상되는 소재들을 병렬적으로 연결하는, 쉽고도 개인적인 방법을 쓴다.

기행문의 방식으로만 보자면 서점의 기행문 코너에 널린 유명인들의 기행문 책과 별반 다를 바 없을 것 같다. 돌아다닌 곳만 따지자면 이 책은 세계 곳곳을 누빈 그러한 책들보다도 오히려 수준이 낮다고 하겠다. (이 책에 실린 도시들은 일본, 미국, 유럽 세군데의 유명도시들 뿐이다) 하지만, 앞에서 길게 길게 썼던 것처럼 이 책의 아름다움은 그러한 '표면'에 있지 않다. 고종석의 팬이고 그가 이끄는 지독히 자기중심적인 도시기행에 묵묵히 동참할 자세가 되어있다면, 이 책은 '고종석의 기행문'이라는 그 자체로서 독특하고 아름답게 다가올 것이다.
2008/11/09 23:50 2008/11/09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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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만씨  | 2008/11/10 15:49
이 글을 읽어보니 그 책 읽기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여. 11월 마지막 주에 읽어보렵니다.
  | 2008/11/10 21:39
책꽂이에 살포시 꽂아두겠어요!!
ezez  | 2008/11/11 10:43
아름다운 문체에 어느정도 감동을 받기는 하겠지만 정보가 빈약한 책은 한계가 있습니다. 번역어투는 이미 국내에선 일반화 되어있어 더이상 독특해 보이진 않습니다. 법에 대해 공부하다 보면 국어를 잘해야 한다는 걸 알게되는데요. 법대 출신이 언어학에 관심을 갖게되는건 자연스런 현상이죠. 분명 고종석의 글은 비교적 많은 걸 보여주긴 합니다만 그건 결국 양적인 차이일뿐 질적인 차이는 아니더라구요. 고화질이긴 한데 볼 수 있는 채널은 그리 많지 않더라구요.
  | 2008/11/11 11:52
포스팅을 하면서 어떻게 마무리를 지을까...했는데 고종석에 대한 개인적 애착으로 좋게 마무리지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냉정한 평론가는 되지 못하는 셈이죠. ezez님 지적에 충분히 공감해요. 저 역시도 고종석의 글들에서 '다소 얄팍하다'라는 느낌을 곧잘 받곤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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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지만 회사에 갔다.
회사에 갔다가 교보문고 가서 책을 사고, 아가씨와 영화를 봤다.
책과 영화, 둘다 별 생각 없이 고른 아이템들이었지만
그 선택이 꽤나 멋진 것이어서 여기에 기록(web+log)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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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은 책 얘기부터 해보자.

교보에서 산 책은 성안당에서 나온 '만화로 쉽게 배우는 통계학''만화로 쉽게 배우는 회귀분석', 그리고 (여기에는 안나왔지만) '대학기초수학' 등 3권이다.

요새 회사에서 하고 있는 일 중에 숫자들을 처리하고 미래경향을 예측해야 하는 그런 것들이 좀 있어서, 대학생 때 과외 가르친 이후로 오랜만에 수학과 친해져보려고 하는 참이다.

고등학교 때는 참 수학을 좋아하고 곧잘 하기도 했는데, 세월 앞에는 장사 없는 것인지 이제는 고등학교 때 풀던 문제집을 들춰보면 '내가 과연 이 문제들을 풀었단 말이더냐...' 하며 고개를 설레설레 젓게 된다.

고등학교 때 다 배웠던 것들도 이러한데, 제대로 배운 적도 없이 당장 요새 업무에 써먹어야 하는 통계학과 회귀분석에 관련된 지식은 얼마나 더 어려운지 모르겠다. (이런 걸 따로 '경영과학'이라고 해서 학문의 한 분야로 취급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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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끙끙 앓던 중, 이 책들을 교보문고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는데, 이 책들이 의외로 나에게 딱! 맞았다는 말씀.

원래 '효과적인 학습'이라는 것은 대학교재처럼 A부터 Z까지 모든 영역을 다 샅샅이 훑는다고 해서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현 단계에서는 증명하거나 이해시키기에 다소 어려운 부분이라 판단되면 일단 과감히 '외워!' 하면서 넘어가는 과감함도 필요한 것이고,

마치 학문의 정밀함을 뽐내겠다는 듯 각각의 개념들을 너무나 추상적으로 일반화시키기보다는 직관적으로 쉽게 이해시키려는 다소간의 타협(재미)도 필요한 것일테다.

그런 면에서 이 '만화로 쉽게 배우는...' 시리즈는 성공적이라 할 수 있겠다.

이제까지의 많은 학습만화들이 만화의 틀을 빌린 '설명문'에 머무르는 것을 자주 본다. (이원복 교수의 만화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도 실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말풍선 안에 대학교재에서나 나올법한 개념과 정의를 줄줄 써내려가는, 그러한 만화들은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자신의 존재가치를 망각하는 상품인 거다.

이해시키기 쉽게 '만화'라는 형식을 도입했다면 그 편제와 전달방법 또한 '만화'의 기법을 활용해야 한다.

예컨대, 캐릭터들을 등장시켜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전달코자 하는 개념을 녹여낸다든지, 한 챕터 한 챕터를 만화의 한 에피소드로 만들어 완결성을 짓는다든지, 학습자(독자)가 지루함을 느낄 때쯤이면 캐릭터들의 쇼를 보여준다든지 하는 것들.

이 책은 이런 식이다.

엄청나게 장황한 함수인 '확률밀도함수'를 써놓고도 굳이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그 장황한 함수를 보고 턱이 빠진 주인공을 하나 그려놓고서는
그 주인공더러 선생님이 '...그냥 그렇다고만 알아둬'라면서 슬쩍- 넘어간다.

즉, 이 책은 짚어야 할 곳과 넘어가야 할 곳을 잘 알고 있으며,
학습자가 어려운 곳에는 주인공도 어려워하는 모습을 그려넣음으로써
학습자(독자)가 흥미를 잃게 하지 않는다.
만화 속 주인공이 단순한 전달자(messenger)가 아닌,
학습자의 페이스메이커(pace maker)가 되는 것이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성인용 학습만화를 만났다.
어른이라고 해서 학습만화마저도 딱딱한 건 질색이라구요!!!

PS_1 : 개인적으로 통계학과 회귀분석에 대한 지식이 필요해 2권을 함께 사긴 했지만
'만화로 쉽게 배우는 회귀분석'은 조금 어렵다.
'만화로 쉽게 배우는 통계학'을 먼저 읽고 '회귀분석'편을 읽는 게 좋겠다.

PS_2 : 아참, 아쉽지만 이 책은 일본서가 원작이다.
성안당과 공동출간이라고 되어있지만 원작이 공동출간이라는 뜻이 아니라,
한국어판이 공동출간이라는 것 같다.
2007/08/25 23:47 2007/08/25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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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준호  | 2007/08/28 10:39
허~ 재미있는 책이네요. 공대생이지만 최근 필수 과목으로 확률과 통계가 추가되서 들었는데 학기가 끝나자 다 까먹었습니다.ㅠㅠ 공대도 만화로 배우는 공업수학이란 책이 있더군요... 나름 볼만한 책이긴 했지만 공부 자체가 수월해지는건 아니더군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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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따라/책  2006/10/23 23:08

* 2006. 10. 16 (월) ~ 2006. 10. 22 (일)
* ISBN 8982812466

갑자기 소설을 읽고 싶을 때가 있다. 그것도 아주 읽기 고되고, 읽고 나면 가슴 한켠이 싸한, 그런 소설을. 아마도 국정감사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머리는 비어가고 가슴은 식어가는 걸 느꼈기 때문인 것 같다.

(여담이지만 어릴 때 교육이란 게 참 무섭다는 것을 이럴 때 느낀다. 평소에는 소설이나 문학을 무시하고 유물론자처럼 행동하다가도 내 자신이 힘들고 지칠 때면 어릴 때 했던 것처럼 어김없이 소설책을 찾고 성당에 가고 한다. 그러면서 내 스스로를 '원래는 나도 착하다'라고 스스로 위무(慰撫)하는 것일까...?)

그런 소설을 찾다가 어디선가 신경숙의 소설들이 그런 여운을 준다길래 그의 어떤 작품이 좋은지 뒤적거려봤다. 오랜만에 호흡이 긴 작품을 읽어보고도 싶었고, 완전한 픽션보다는 작가 개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통해 '사람'의 냄새를 맡아보고도 싶었기에 '외딴방'을 집어들었다.

..........

신경숙이라는 작가 뿐만 아니라, 이제는 대부분의 문학인들이 내게 '이미지'로만 와닿는다. 두말할 것도 없이 내가 그만큼 소설을 멀리 해서일 테다. 그런 내게 신경숙이라는 작가의 이미지는 이랬다.

"항상 뚱-한 표정"

왜 항상 뚱-한 표정일까, 그걸 알고 싶었다기보다는 그저 한 사람의 '삶'과 그 '표현해냄'을 읽어보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그 뚱-한 표정 아래에 가라앉아 있는 신경숙의 지난날과 상처, 예민함과 감수성의 기원을 발견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

이야기의 구성은 이중적이다. 과거(16세부터 20세까지, 1개의 장(章)이 1년의 흐름이다)의 '나'와 현재의 '나'의 이야기가 교직된다. 흥미로운 것은 과거의 '나'에 대해서는 현재형이, 현재의 '나'에 대해서는 과거형이 쓰인다는 것인데,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간에 이러한 어미구사를 통해 두 개의 '나'는 십 몇 년의 간극을 뛰어넘어 하나의 '나'로 동일화 된다.

과거의 '나'는... 시골에서 올라온, 구로공단 '공순이'이자 영등포여고의 산업체특별학급 학생이다. 그러한 과거의 '나' 위로, 서른 일곱개의 문이 달린 가리봉동의 외딴방과 노동조합, YH사건과 10.26, 서울의 봄과 5.18 등이 흘러가지만 감수성 예민한 이 '나'의 관심은 오히려 한 방에 같이 사는 사람들(큰오빠와 외사촌, 셋째오빠)과의 일상적인 삶에 있다.

야간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난장이를 쏘아올린 작은 공'을 노트에 베껴쓰던 일도, 사회의식에 눈을 뜨는 과정이었다기보다는, 신산한 삶 속에서도 항상 동경했던 문학에의 갈증을 달래주는 등대와도 같았던 것 같다.

(...) 몰라, 오빠. 나는 그런 것들보다 그때 연탄불은 잘 타고 있었는지, 가방을 챙겨들고 방을 나간 오빠가 어디 길바닥에서나 자지 않았는지, 그런 것들이 더 중요하게 느껴져. (...) 오빠, 그때 내가 정말 싫었던 건 대통령의 얼굴이 아니라 무우국을 끓이려고 사다놓은 무우가 꽝꽝 얼어버려가지고 칼이 들어가지 않는 것 그런 것들이었어. (...)
그 일상적인 삶 위에 큰오빠의 쓸쓸한 실연이 지나가고, 얼굴은 험상궂지만 항상 자기들에게는 불 땐 연탄을 빼주는 가겟집 아저씨의 꺾여진 꿈이 지나간다. 그리고 외딴방에서 친구가 되었던 희재언니의 까닭모를 죽음도.

이와는 비교되게, 현재의 '나'는 소설가다. 하지만, 자신의 과거를 좀체 돌아보고 싶어하지 않는, 상처 입은 소설가다. 어느날 우연히 걸려온 야간 고등학교 시절 동창 하계숙의 전화가 없었다면 그는 결코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려 하지 않았을 거다.

(...) 봄과 여름 동안 내게서 문장은 떠나고 그녀의 목소리만 내 가슴에 물방울처럼 떨어져내렸다.
"너는 우리들 얘기는 쓰지 않더구나."
"네게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걸 부끄러워하는 건 아니니?"
"넌, 우리들하고 다른 삶을 사는 것 같더라."
편안한 잠을 자고 깬 후면 어김없이 그녀의 목소리는 얼음물이 되어 천장으로부터 내 이마에 똑똑똑 떨어져내렸다. (...)
기어이 자신을 '외딴방'에서 끄집어내어 과거의 상처입은 자신과 대면시키고자 하는 '나'의 이야기가 현재에 펼쳐진다. 설령 그것이 부질없는 '글쓰기'에 불과하더라도, 글 자체는 아무 것도 변화시킬 수 없음을 그 자신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하더라도.
(...) 나는 끊임없이 어떤 순간들을 언어로 채집해서 한 장의 사진처럼 가둬놓으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문학으로선 도저히 가까이 가볼 수 없는 삶이 언어 바깥에서 흐르고 있음을 절망스럽게 느끼곤 한다. 글을 쓸수록 문학이 옳은 것과 희망을 향해 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만은 없는 고통을 느낀다. 희망이 내 속에서 우러나와 진심으로 나 또한 희망에 대해 얘기할 수 있으면 나로서도 행복하겠다. (...)
그리고 이렇게 자신을 대면하는 글쓰기란, 자신에게 아픔이기도 하다.
(...) 잠시 후 은사가 말했다.
"너 요새 글을 너무 많이 쓴다."
"......"
"나도 한때 그런 적이 있었지. 목숨 건 듯이 썼다."
"제가 그렇게 글을 많이 썼나요?"
(...)
"작가니까 많이 써야지, 하지만 넌 아니다. 니 글쓰기는 니 살파먹기야. 한꺼번에 너무 많이 파내면 네가 아픈다."
젖은 머리에서 계속 물방울이 툭툭, 떨어진다.
"긴 세월 할 일이야. 속도를 늦춰라."
"......"
"서운허냐?"
"......" (...)
하지만, 이런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글을 쓴다는 자체가 자신을 찾기 위한 의식(儀式)이고, 구도(求道)다.

(...) 모래펄에서 몸을 일으켜 내 발짝에 내 발짝을 대보며 모래펄을 걸어나왔다. 오늘, 이 해변에 찍힌 나의 발자국은 외딴방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내가 도망치듯 빠져나와 다시 돌아가지 못했던 장소로. 오늘, 나에게 가장 뚜렷한 현재인 오늘, 여기에 찍힌 내 발자국을 따라가면 스물에서 더이상 멈칫대지 않고 곧바로 열아홉으로 들어갈 수도 있으리라. 그리고 다시 열다섯에서 열여섯으로 되돌아나올 수도 있으리라. (...)
..........

이 소설을 통해, 가장 큰 위안을 얻은 사람은 바로 신경숙 그녀 자신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제 나도, 언제나 뚱-한 모습의 그의 사진 속에서 한 개인의 상처와 성장, 그리고 과거의 '나'를 그대로 끌어안았던 용기를 읽어낼 수 있게 된 것 같아 좋다.
2006/10/23 23:08 2006/10/23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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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 2006/10/24 19:41
분석 말고~ 느끼긴 했냐?
  | 2006/10/25 03:34
이건...'분석'이 아니라 '느낌'이라구요!!!!! ^^;;;
소나무  | 2006/10/25 10:18
당신은 느낌을 몰라...-_+
  | 2006/10/26 09:38
모르긴 뭘 몰라, 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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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이반 일리히 전집 3)
  (원제 : Energy and Equity)
* 이반 일리히 지음
* 박홍규 옮김
* 미토 펴냄
* ISBN 8990687209
* 8,000원

자전거를 인터넷으로 검색하다보니 한겨레21 지난호(2005.6.28)에 자전거특집이 실렸다는 걸 발견했다.

박홍규 교수가 쓴 글에서 그가 자신이 번역했다는 이 책을 가볍게 언급했길래 제목도 재미있고, 나름대로 자전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자전거를 타는 '이유'라든가 '철학' 따위를 익혀두어야할(?) 무의식적인 호기심도 발동했고 해서 책을 사게 되었다.

하지만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라는 말랑말랑한 제목과는 다르게 이 책은 대단히 정치적이다. (이 책의 원제는 Energy and Equity다. Justice와 더불어 서양시민사회 형성철학의 두 축 중 하나인 형평(Equity)을 제목으로 단 책이 말랑말랑할리 있겠는가?)

원래 이 책을 옮긴 박홍규 교수는 제목을 '사회주의는 자전거를 타고 온다'라고 지으려 했단다. 출판사의 제안으로 '사회주의'를 '행복'으로 바꿔서 출간했다는데 굳이 말랑말랑한 제목으로 바꿀 바에야 박교수가 의도했던 '사회주의...'라는 제목이 책의 정치성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역자후기를 포함하여 150쪽에 불과한 얇은 책이지만 그 내용은 녹녹치 않다. 생각이 많고 섬세한 사람일수록 언어가 복잡해지기 때문일까. 의외로 문장 읽기부터가 쉽지 않다. 각 장(章)이 다섯장 남짓의 짧은 분량인데도(총 10개장) 쉽게 읽히지 않는 것은 당혹스럽다.

어렵게 읽히는 문장을 우둑우둑 생쌀씹듯 거칠게 읽어내려가다보면 어렵사리 저자의 주장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우리는 다시한번 그 주장의 색다름(급진성, 좌파성이라는 말 대신 '색다름'이라는 말을 쓰고 싶다)에 당황하게 된다.

기술의 '발전'에 몰입하기보다 적정한 기술의 '한계'를 고민하자는 것이다.

.............

회계를 공부하면서 going-concern이라는 개념을 배웠다. 문리적 지식만으로 가득차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회사나 자본이 영속할 수 있는가, 무한히 팽창만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의문을 가졌던 기억이 난다.

물론 기업의 성장과 쇠퇴라는 개념으로 그 흥망성쇠를 설명하긴 하지만 회계를 비롯한 모든 주류 경제학에서는 항상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미래'를 상정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 국회와 정부에서 성장률이 3%네 4%네 따지는 것도 결국 이러한 '성장주의'의 그늘이 아닐까.

일리히의 본문은 이러한 무제한적인 성장과 기술에 적절한 '한계'를 인정하고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그에 따른 '제한'의 필요성을 논하고 있고, 뒤에 붙은 박홍규 교수의 역자해설은 고도의 성장과 기술발전이 야기하는 사회적 비용에 대한 비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역자해설은 그 자체로 또 한편의 소논문이라고 부를 수 있을만큼 완결성이 있다)

일리히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박홍규 교수의 역자해설에 나온 '사회적 비용'에 관해 먼저 이해하는 것이 유용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의 해설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고도성장과 기술발전은 필연적으로 수혜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불평등을 주고 그것이 야기하는 악영향(외부불경제) 가운데 발생자가 부담하지 않는 나머지 부분이 '사회적 비용'으로서, 사회가 부담해야하는 기회비용이라는 것이다.

역자가 든 예를 보자.

두 사람이 보행으로 길을 다닐 때는 서로에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는다. 한 사람이 자전거를 탄다면 다른 보행자에게 조금의 피해를 주지만 그 피해는 자전거도로를 설치한다든지 하여 사회적 비용을 조금밖에 발생시키지 않는다.

하지만 자동차의 경우는 그것의 소유가 만민의 천부적 자연권이 아닌 이상 경제적 지위에 따라 소유여부가 달라진다. (이 자체를 문제삼지는 않는다) 그러나 보행자를 위한 전용도로건설이 불가능에 가까운데 비해 자동차소유자가 부담하는 비용은 터무니 없이 낮아 결과적으로 자동차소유자가 보행자의 안전과 보행의 자유라는 인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의 미국이 이민자들을 통해, 그리고 세계가 중국과 인도를 통해 끊임없이 값싼 노동력을 공급받는 자본주의적 세계질서와도 맥이 닿아있는 얘기다. (중국과 인도의 23억 인구가 다 중산층이 된 뒤에는? 지금 우리의 세계는 그 후에 따라올 필연적인 세계경제의 쇠퇴를 미리 각오하고 있는가?)

자본주의는 태생적으로 '성장하는 내일'만을 기초로 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에너지원(그것이 자원이건 노동력이건)을 공급받아야 한다. 한 나라 내부에서 그 노동력을 공급받을 수 없을 때 자본은 그 나라를 떠나 자신의 '성장'을 보장해줄 수 있는 곳으로 옮겨간다. 자본에 국경이 없다는 말도 이러한 의미다.

박홍규 교수의 역자해설은 바로 여기까지 문제를 제기한다.

이제 다시 앞으로 책장을 넘겨 일리히의 본문으로 돌아가보자. '성장'과 '기술'에 대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일리히는 '적절한' 한계와 제한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제1장 맨 앞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에너지 위기라는 말은 그 기저에 인간은 선천적으로 노예를 필요로 한다는, 그래서 에너지 위기란 사실 '노예에게 먹일 사료의 부족을 걱정하는 것'이라는 말.

여기서 우리는 교회의 구원은 평신도들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것이라며 사제직 확대를 반대하여 사제직을 버린 전직 가톨릭신부인 그의 기본 입장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햇빛으로부터 광합성을 하여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어내고 그 범위 안에서 소비를 하는 동식물과 같은 생태근본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그의 주장 속에는 장애인, 극빈층을 위해 자동차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거나 공공교통의 확충이 교통수단의 최고속도를 높이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는 등 사회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과잉산업화를 비판하지만 저설비로 인한 야만상태를 거부하는 '당연한 정도의' 합리성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교통수단의 사유화가 필연적으로 그것의 소유계급을 만들어내고 그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그의 날카로운 비판 앞에서 오늘날의 우리는 어떠한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이 책은 1974년에 초고가 쓰여졌으니 30년전의 주장인 셈이다)

...........

책 제목과 달리 이 책은 '자전거'만을 위한 예찬서가 아니다.

물론 여러 서평에서 소개된 바와 같이 자전거가 인체의 에너지 소비와 이동거리의 극대화를 조화시킨 이상적인 운송수단임을 언급하고는 있지만 그것은 책의 후반부에 일부 등장하는 내용일 뿐이다.

운동에 재미를 붙이기 위해, 나름대로의 철학을 갖고 운동을 하려는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든 얇은 책이지만 내가 그 안에서 만난 철학은 내 몸이 아닌, 자본주의와 성장주의의 무제한적인 폭주에 거부하고자 하는 한 지성인의 거대하고도 날카로운 문명비판이었다.
2005/09/26 15:00 2005/09/2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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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으로 보는 한국사
* 저자: 김성남
* 출판사: 수막새
* ISBN 8991205038
* 가격: 19,000원

신용분석 시험을 마치고 허탈해서 책이나 사자 하고 교보문고에 들렀는데 정작 리스트 쭉- 뽑아갔던 책들이 서가에 없더라.

리스트를 그냥 가방에 구겨넣고 이것저것 둘러보고 있다가 자리를 뜨는데 눈앞에 이 책이 들어왔다. 이미 전쟁사 101장면도 읽었고 해서 사려는 생각은 별로 없이 그냥 책 구성이나 볼까...하고 집어들었는데 무작정 넘긴 페이지에 완전히 매료돼버렸다.

군사잡지 플래툰의 홍희범 편집장이 추천사를 썼다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마치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의 한 장면을 스크린캡처한 것처럼 각 전투의 상황도를 CG로 재현해냈다는 점이다.

(여기를 누르면 책에 수록된 CG의 일례를 맛볼 수 있다)

바로 이런 전쟁사 책을 기다렸다! 하면서 냉큼 집어들고 왔는데 (물론 돈 내고 가져옴)
집에 와서 찬찬히 읽어보니 이 책의 가치가 꼭 그런 비주얼한 편집에만 있는 것은 아니더라.

1차 사료에서 간략히 묘사된 전투들을 생생히 재현하기 위해, 그리고 부족한 데이타들(병사수라든가 기병 대 보병 비율 등) 보완하기 위해 지은이는 수많은 2차, 3차 사료에서 합리적인 데이타들을 끌고 와 한줄거리로 남은 역사적 전투들을 생생한 현장의 모습으로 복원해낸다.

영화 '트로이'에서 트로이 전쟁의 원인을 신화나 여자 문제로 그리지 않고 에게해 제해권, 무역권 장악의도로 그렸던 것처럼 이 책의 저자 역시 미비한 사료로 인해 빈 구멍이 많은, 그래서 그 빈 구멍이 간혹 영웅 한사람의 무용담이나 전설로 잘못 채워지기도 하는 한국사의 많은 역사적 전투들에 대해 신화와 전설, 영웅담 대신 전략과 전술, 개연성과 리얼리티의 옷을 입히는 작업을 시도한다.

집에 와 찬찬히 책을 읽으며 발견한 이 책의 진짜 가치는 (내가 '트로이'를 좋아하는 딱 그 이유처럼) 그러한 현실성과 사실성이었던 거다.

뿐만 아니라 책의 편제도 마음에 들더라.
우선, 책의 전체적인 차례는 다음과 같다.

- 추천사
- Prologue
 
** 국운을 결정한 전쟁
. 한무제의 중화제국 프로젝트 - 왕검성 전투
. 동아시아의 패권전쟁 - 관산성 대전
. 중원의 패자 수나라의 멸망 - 살수대첩
. 고ㆍ당 전쟁의 최대 결전 - 주필산 전투
. 백제의 필사적인 지연전 - 황산벌 전투
. 삼한통일전쟁 - 일리천 전투

** 보병과 기마병의 전쟁
. 방진에 무너진 고구려 기마병 - 양맥곡 전투
. 고구려 기마병에 무너진 군사강국 가야 - 남해안대전

** 정규군과 전사의 전쟁
. 대발해국 건국전쟁 - 천문령 전투
. 유목제국을 무찌른 고려의 정규군 - 흥화진대첩ㆍ귀주대첩
. 세계 최강 몽골군이 넘지 못한 고려의 성 - 귀주성 방어전
. 국제해적단을 전멸시킨 고려군 - 황산대첩

** 전투의 혁명을 일으킨 전쟁
. 세계 최초의 함포전 - 진포대첩
. 화약무기에 몰살당한 조선의 기마대 - 탄금대 전투
. 근대해전의 효시 - 한산도대첩

** 병참과 보급이 승리를 좌우한 전쟁
. 해상수송으로 대륙을 정벌한 백제 - 성양 전투
. 조선의 병참기지, 호남을 지키다 - 웅치ㆍ이치 전투

** 약자가 강자를 이긴 전쟁
. 최신 무기로 무장한 서양 군대를 물리친 조선군 - 정족산성 전투
. 일본 제국주의에 일격을 가한 독립군 - 봉오동ㆍ청산리 전투

- Epilogue
- 찾아보기

이처럼, '역사서'라 하면 으레 택하기 마련인 시간순 배열을 무시하고 각 전쟁의 의미별(테마별?)로 배열을 하여 자연스레 각 전쟁의 영향과 역사적 위치를 알 수 있게 편집한 것이다.

그 결과, 긴 호흡에 지치지 않고 마치 게임 '삼국지'의 단기미션처럼 전쟁 하나하나에 집중/몰입할 수 있는 기회를 독자들에게 제공한다는 것, 그것 역시 이러한 테마별 편제가 가져다주는 이점 중 하나겠다.

.........

결론적으로 이 책의 미덕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게임 또는 역사스페셜을 보는 듯한 참고성 높은 비주얼.
2. 사료부족을 극복하고 현실성과 개연성을 탐구한 텍스트.
3. 통사적 배열을 배제한채 각 전쟁의 의미별로 배열한 전체 편집.

솔직히 처음 집어들었을 때 이것도 내용보다는 기획이나 비주얼로 승부하려는 기획된 교양역사서겠거니 생각했다. 내가 나름대로 전쟁에 관심있으니까 그런거지, 실은 속는 셈 치고 산다...하는 불경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을 들여 꼼꼼히 읽을수록 작가, 일러스트레이터와 편집자 모두의 내공과 노력에 돋보이는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전쟁사에 이미 관심있는 사람들은 물론, 처음 관심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입문서로서 권하고 싶은, 그런 책이다. 교보문고 추천도서라든가, 표지가 예쁘다라는 가십이 오히려 이 책의 진정한 가치를 빛바래게 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까지 들만큼 난 이 책의 매력에 푹 빠졌던 것 같다.
2005/08/08 10:25 2005/08/08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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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은 왜 항상 협상에서 지는가 (게임이론을 주제로 한 협상이야기)
* 저자: 김기홍
* 출판사: 굿인포메이션
* 가격: 12,000원

이 책 역시 도장이 2004년 10월 26일 구입으로 찍혀있다. 아래에 서평한 '벼랑끝 협상'도 협상책인 걸 보면 내가 아마 그때 협상에 관해 무언가 심각한 압박이 있었던 거 같은데... (뭔지 알겠다...ㅋㅋ)

아마도 협상에 대한 가벼운 기본서(?)로 이 책을 읽고 협상이야기와 북한외교이야기가 반반씩 섞인 '벼랑끝 협상'으로 지식을 넓히고, 뭐 그런 전략으로 책을 구입했던 게 생각이 나는구만...

하지만 이 책에 대해서는 '벼랑끝 협상'과 달리 별로 할말이 없다.
책장에 꽂아두고 보고 싶을 때마다 몇번씩 꺼내어 참고할만한, 몇번 읽어도 읽을 때마다 새로운 맛을 음미할 수 있는 그런 책이 아니라 책의 많은 부분이 구어체로 되어 있고 각 부문이 분절되어 책 전체가 겉도는 느낌의 부담없는 교양서... 딱 거기까지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왜 항상 협상에서 지는가'에 대한 대답도 없고, (물론 이 제목은 출판사에서 잘 팔리라고 뽑았을테니 저자의 잘못은 아닐 거다) '게임이론을 주제로 한 협상이야기'라는 부제와도 다르게 전반부의 게임이론(죄수의 딜레마 얘기)과 후반부의 협상이야기가 따로노는 느낌이다.

필자도 게임이론의 극히 일부분임을 강조하긴 했지만 죄수의 딜레마 게임은... 대학교 교양시간에 이미 배운 거라 별반 새로울 게 없어 이 책을 통해 '게임이론'을 조금이나마 심도있게 맛볼 수 있으리라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리고 후반부의 협상이야기는 협상전략과 한국의 대외협상사례(프랑스와의 외규장각도서 반환문제, 그리고 IMF차관공여협상)는 조금 읽을만 했지만 그나마도 문체가 너무 조심스럽고 가끔은 센티멘탈한 부분까지 있어 읽는 사람이 오히려 부담을 느끼며 책 내용에 몰입하질 못했다.

[딴따라]란의 책 소개에는 좋은 책만을 서평해야겠다고 마음먹어왔던터라
이 책의 장점들,
1. 협상의 의의 (내부협상, 외부협상, 다자간 협상 등)
2. 협상전략 분석
3. 한국의 대외협상사례 연구 등에 대해서는
나중에라도 두고두고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이 책의 가치는 딱 그 부분까지인 듯 하다. (400쪽 정도의 분량 중 30~40% 가량 되는 것 같다) 차라리 나머지 부분을 덜어내고 책을 간결하게 만들었더라면 오히려 더 좋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다른 부분에서는 오히려 나를 부담스럽게, 그리고 지치게 만드는 측면이 있었다.

ISBN 8988958225
2005/07/19 23:31 2005/07/19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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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벼랑 끝 협상 (북한의 외교전쟁)
* 저자: 스코트 스나이더
* 역자: 이재봉, 안진환
* 출판사: 청년정신
* 가격: 12,000원

책을 산지는 꽤 오래 되었는데 (2004.10.26이 찍혀있으니 거의 8개월만에 읽었군) 역시 또 시류에 혹하여 미리 사두었다가 오래 책장에 묵힌 뒤에 '이제 좀 읽어봐야지...' 하고 꺼내든 책이 되겠다. ㅋㅋ

작년 10월쯤에 남북관계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 책을 샀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한데 아마도 점심시간에 교보문고 들렀다가 그토록 벼르고 벼르던 북한의 벼랑끝 외교전략에 대해 한번 제대로 이해해봐야겠다 하는 마음으로 책을 샀던 것 같다.

.............

어떤 사람이 미친 짓을 한다. 다른 사람들은 '어? 저 자식 미쳤다, 미쳤다...' 하면서 그 사람 주위를 피해가면서 불평을 하기도 하고 투덜대기도 한다.

그러나 몇몇 현명한 사람은 그 미친 사람의 미친 행동을 일반인들처럼 '우연한 사건'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패턴'으로 이해함으로써 그 미친 사람이 자기집 화분을 깨지 않도록 화분도 들여놓고 문단속도 잘 하고 하면서 나름대로 대책을 세운다.

북한을 보는 세계의 시선 역시 이와 같다.

위의 예에서...편의상 미친 사람을 북한이라고 하면, '저 자식 미쳤어' 하고 미친 사람을 손가락질하며 비난하기만 하는 사람은 미국 네오콘을 비롯한 강경론자들일테고 '미친 X의 미친 행동도 패턴이 있다'며 그 '미친 행동'을 사실로 인정하고 그에 대한 대응방안을 세우려는 사람은
이 책의 저자 스콧 스나이더와 같은 무리들일테다.

책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 흐름은 대학초년생의 리포트처럼 유기적이고 논리적으로 연결되고 있다.

즉, 1장에서는 북한이라는 사회와 북한외교의 틀을 이루는 북한 특유의 세계관과 문화의 형성과정을 밝히고, (빨치산 게릴라 전통, 일제식민지배와 독립, 사회주의, 유교사상, 주체사상 등)

2장에서는 북한의 협상팀, 북한의 대외언론보도, 예비회담, 본회의, 비공식접촉 등 북한과의 협상의 전 과정을 리뷰한다.

3장에서는 좀더 미시적이고 분석적으로 북한의 협상방식과 사용전술의 유형을 소개하며,

4장에서는 남북협상과 북미협상의 차이점을 비교한다.

마지막으로 5장은 사례연구에 해당되는데, KEDO를 통한 북미협상의 실례를 논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다.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모든 학술서적들이 그러하듯 현상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은 있되, 그에 대한 현실에서의 대처방안이 미흡하다는 것인데 (에필로그 부분에 간략하고 추상적으로 제시된다)

이 책의 집필목적이 거기까지는 의도하지 않았던 거라고, 비합리적이고 무모해보이기까지 하는 북한의 협상행태가 일단 어떠한 패턴을 갖는지, 그리고 실은 고도로 계획된 것이며 어느정도는 북한문화와 세계관을 반영한 당연한 결과물임을 밝히는 것, 거기까지가 이 책의 집필목적인 거라고 이해하면 북한의 벼랑끝 협상을 어떻게 대처해야할 것인지 설명이 미흡한 것을 너그럽게 넘어갈 수 있을 거 같다.

...........

이 책은 사실 미국평화연구원에서 지원하는 다양한 국가들의 협상패턴 연구의 결과물 중 하나라고 한다. 즉, 각 나라는 각 나라의 문화적 특성에 맞는 고유한 협상패턴을 보여준다...라는 인식에서 출발한 연구서라는 거다.

우리가 서점에 가서 '협상론'이라는 책을 펴들면 나오는 많은 이론들과 전략이 전세계적인 공통의 프로토콜(protocol)은 아니다. 사실 그것들은 전세계의 몇 안되는 민주국가들에서만 적용될 수 있는 합리적인 서구 민주주의 사회의 협상이론에 불과하며, 옛 소련이나 중국과 같은, 강대국이지만 서구 민주주의 문화권이 아닌 국가 역시 (서구이론을 반영한) 교과서적인 협상이론과 전략대로 공정하고 '말이 통하는' 협상을 하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이 왜 그렇게 경직되고 우리(서구 민주주의 문화권)의 눈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태를 협상테이블에서 보이는지 이해하기 위해 그들의 문화와 세계관을 직접 분석하고 그들의 그 이해못할 협상행태 그 자체를 그들 특유의 패턴으로 인정함으로써 대응책을 세울 수 있는 거다.

...........

그저 '북한은 왜그렇게 무모한 외교를 하는가'라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책을 펼쳤던 게 처음의 마음이었지만 책을 다 읽고 나자 이렇게 '내 방식'만을 고집하지 않고 타자 입장에서 타자를 이해하려는 연구도 허용되고 출간되는 것이 강대국(여기서는 이 책이 출간된 미국)의 진정한 경쟁력이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도 조금 들었다.

북한은 미쳤다며 북한을 여전히 한반도 미수복지역의 반란집단으로만 인식하고 통일협상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은 무조건 북한이 우리(=남한=서구민주주의문화)의 방식을 따르지 않는 엉뚱하고 대책없는 집단으로 미리 포기해버린다.

이 책에서도 지적했듯 남한은 분명 김영삼 정부 때까지 남북협상을 서로의 자존심을 세우고 한치의 양보도 인정치 않는 제로섬게임으로 이끌어왔다. 이러한 교착상태의 원인은 위에서 말했듯 '우리 방식이 세계표준이야, 우리 방식을 따르지 않는 너희들을 우리는 이해할 수 없어!'라며 북한의 방식을 처음부터 인정하지 않았던 우리 남한측에도 분명히 있다.

우리가 형님으로 모시는 미국에서도 이 책처럼 북한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연구가 시도되는 마당에 (물론 이 책은 부시행정부 초기에 출간되어서 현재 미국의 대북외교와는 차이가 있다) 같은 민족이자 통일의 영원한 파트너인 우리 남한이 북한의 내부사정을 이해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그러고 보면 이 책이 북한의 벼랑끝 외교에 대한 대응책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위에서 툴툴거리긴 했어도 나는, 그리고 우리 남한은 그러한 '대응전략의 매뉴얼적인 나열'이 없더라도 무엇이 북한과 잘 협상할 수 있는 방법인지 본능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300쪽이 채 안되는 두껍지 않은 책이었지만 다 읽고 난 뒤에는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던 책이었다.

ISBN 8987999254
2005/07/19 22:13 2005/07/19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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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깐깐하게 생긴 이 철학자의 사진을 보고 있자면, 영국의 유서깊은 귀족가문 태생으로서 어릴 때부터 또래아이들과 별다른 교류 없이 가정교육으로 공부를 했다는 그의 이력이 저 사진 속의 깐깐함을 만들어냈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쩐지 고집이 세고 칼 같고 그럴 것 같은 느낌.

물론 그에게서 이런 '깐깐함'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깐깐함이란 90 평생을 한결같이 걸어온 과학과 이성, 합리주의와 자유주의에 대한 굳은 믿음, 그러나 그것들을 부정하는 어떠한 흐름에도 단호했던 깐깐함이었다. (마치 라드부르흐의 '다원주의' 개념을 연상시키는...)

실제로 그는 보수적인 1940~1950년대 미국에서 공산주의자라는 온당치 못한 평가를 받아 뉴욕시립대 임용이 거부되었고, 그가 출연했던 BBC라디오방송 역시 인기가 없어 금세 폐지됐다고 하는데, ㅡ 이 책 후반부에 '신이 존재하는가'에 관하여 라디오방송에서 한 신부와 대담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어려운 대화를 읽고 있노라면 그 프로그램이 인기 없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ㅡ

인식, 검증할 수 없는 그 어떤 인습과 고정관념에도 반대하고 더 많은 지식과 더 많은 이성만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점진적으로 해결해줄 수 있을 거라고 주장한 그러한 그의 타협할 줄 모르는 이성/합리주의에 대한 깐깐함이 우리가 합리적인 사회라고 생각하는 서구사회에서도 불편하게 받아들여졌던 것을 보면 흥미롭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는, 교조주의적이고 맹목적인 태도가 사람을 깐깐하게 만든다고 보는데, 러셀의 경우는, 우리가 '부드러울 것이다'라고 믿는 '합리주의'를 지키기 위한 깐깐함이었으니 흥미롭게 느껴지는 거다.

어쨌거나, 책을 다 읽고 나면 기독교와 종교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을 하게 된다.

아직도 콘돔을 거부하고 이혼과 낙태를 인정하지 않으며 착상이 생명의 시작이라는 관점에서 배아를 인간과 동일시 하는 기독교를 보자면 (구교건 신교건 상관없이) '그래, 그렇게 보수적인 관점을 가진 집단도 존재해야 그게 사회지' 싶으면서도 러셀의 우려대로 그러한 보수적 집단이 중세 때처럼 다시한번 자신의 교리를 관철하기 위해 강제력을 쓰려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하는 거다.

굳이 성당 잘 다니고 별 문제 없이 지내온 우리집의 문화에서 반기독교주의를 주장하며 '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어느정도 경건한 분위기가 좋지) 가정이 아닌, 개개인의 이익이 충돌하고 그 충돌을 조율해야하는 '사회'라는 측면에서는 어떠한 검증도, 토론도 없이 종교적 맹신으로 이끌리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닐 거다.

자신이 속한 사회(서양)의 근본 문화(기독교)에 대해 과감하게 반대의 목소리를 냈던 러셀의 깐깐함에서 인간 이성의 진보에 대한 또다른 모습의 희망을 읽었다.

* 고등학생 때 봤던 성문종합영어 '해석연습' 파트에서는 러셀의 문장이 참 많이 등장한다.
노벨문학상을 탄 문필가답게 속되지 않고 정제된 영어문장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것이 러셀의 글을 읽는 문체상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훌륭한 삶이란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삶이다'라는 유명한 문장을 이 책에서 발견하고는 그 구절이 마냥 좋아서 연습장에 몇번씩 써봤던 옛 생각이 나서 기분이 좋았다. 언제 시간 되면 이 에세이집을 원어로 읽어보고 싶다.

** 신해철이 넥스트 웹사이트에 올린 프로필에 보면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대외용)으로 이 책을 올려놨다. (대외용은 이 책이고 내부적으로는 '채털리부인의 사랑' 뭐 그런 류란다...^^) 자주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하는 그의 합리주의적인 발언들이 어떤 바탕에서 형성된 것인지 짐작할 수 있겠다.

ISBN 8986167476
2005/06/13 00:45 2005/06/13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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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윤현중 [mailto:yhj0540@keic.or.kr]
Sent: Wednesday, March 02, 2005 2:50 PM
Subject: 동아출판사 책 구할수 있습니까?

안녕하세요? 나이 서른 먹은 직장인입니다.

어릴 때 보고 감동을 받았던
구 동아출판사의 책을
아직 구할 수 있을까 하고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이렇게 담당자분들께 문의를 드립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발행연도가 1986년으로 되어있군요.
전 10권으로 되었던 '세계의 동물'이라는 전집류입니다.

이탈리아와 일본(고단샤)의 합작으로 만든 국제동물도감인데
부자였던 사촌형 집에 있던 걸 보고
너무나 갖고 싶어
매일 이모집에서 살았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서점을 돌아다녀봐도
이 책만큼 철저한 기획으로 심혈을 기울여 만든 동물도감이 없더군요.

물론 헌책방을 뒤진다면
한두권 구할 수 있을 수 있겠으나
동아출판사의 후신인 두산동아에
혹시 전질이 남아있는 게 있을지 궁금하여 메일 드립니다.

제 자신도 보고
앞으로 태어날 제 2세한테도 물려주고
정말 그러고 싶은, 귀한 책이라
이렇게 문의드려봅니다.

답장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윤현중
yhj0540@keic.or.kr
016-393-9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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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는 사람 yhj0540@keic.or.kr
받은 일시  2005-03-02 오후 03:08
보낸 사람 limhj@doosan.com
제목 RE: 동아출판사 책 구할수 있습니까?

윤현중 님
안녕하세요?
두산동아 단행본팀의 임형진입니다.

문의하신 책은 그러니까 거의 20년이 되어가는 책이네요.
개인적으로 소중한 추억을 가지고 계신 책인데,
안타깝게도 자료를 찾아보니 저희 출판사에서 절판한 책입니다.
창고에 재고나 보관본이 있는지도 알아봤는데,
워낙에 오래된 책이어서 구할 수가 없는 형편입니다.
이런 메일을 보내 드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너무 죄송스럽습니다.
좋은 책으로 기억해 주시고,
또 잊지 않고 문의까지 해주셨는데,
편집자의 한 사람으로써 감사하고 반가운 메일이었습니다.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리며,
앞으로도 많은 애정과 질타 부탁드리겠습니다.

두산동아 임형진 드림
2005/03/02 16:47 2005/03/02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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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구입일자 도장을 보니 이것도 작년말에 '별들의 들판' 살 때 산 것 같군...

음반사에서 기획해서 내놓는 '베스트 앨범' 또는 '컴필레이션 앨범'을 사는 게 아티스트의 고뇌의 결정체인 정규음반을 욕보이는 행위라 생각하며 살고 있고, 이렇게 '한 권으로 보는...'이라는 제목이 붙은 책을 사는 것도 그 분야에 많은 책을 읽고 종합적인 시야를 기르기보다 책 한 권 딸랑 읽고 '아는 척' 하기 쉽다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면서도 내 책장에는 부끄럽게도 이런 '한 권으로 보는...' 류의 책이 좀 있다.

이 책을 펴낸 가람기획이라는 곳은 이런 나 같은 철딱서니 없는(^^?) 교양인들을 위해 줄곧 이런 책을 시리즈로 발간해오고 있는데, 이 회사의 이러한 정책을 알고 있는 것은 내가 고등학교 땐가 그 즈음 동네서점에서 샀던 세계사 100장면이란 책이 이 회사의 이 '한권으로 보는 역사' 시리즈의 최초권이었기 때문이다. (인터넷 뒤져보니 지금은 이 세계사 100장면 책이 저자가 바뀌면서 101장면으로 개정돼 나오고 있다는군)

어쨌거나...

이 전쟁사 101장면이란 책은 내가 최초로 접하게 된 전쟁사책인 이대영의 '알기쉬운 세계제2차대전사'에도 참고서적으로 올라와있는, 그러니까 나온지 꽤 된(1997년 발간) 책이다.

육군사관학과 전사학과 정토웅 교수가 쓴 책인데 군인 저자가 쓴 책답게 전쟁 안에서 부딪치는 '인간'들의 모습보다는 전쟁의 경과와 사실관계에 집중해 조금 건조하다 싶은 면도 있고 매 장마다 [ 사실관계의 적시 ] → [ 교훈 ]의 순으로 진행되어 조금 구성이 도식적이다 느껴지기도 하지만, 문체도 그리 뻣뻣하지 않고 편히 읽기 좋은 것 같다. (왜, 군대에서는 뭐든지 한자어로 바꿔서 아주 우리말을 버려놓지 않던가. 음식물'섭취'라느니 '역점시책 지속홍보' 따위로...)

특히, Age of Empires II 하면서 각 종족별 역사와 특성이 어떻고, 기본캠페인들이 역사상 어떤 지위를 차지하는 전투들인가 쉽게 알 수 있어 좋았다. 흐흐... (예를 들자면 AOE2에서 보병은 기병에 지고, 기병은 장창병과 낙타병에 진다는 식의 상성은 단순한 인공적 설정이 아닌, 역사적 근거를 가진 것이었다)

이 책을 한참 읽을 때 봤던 영화 알렉산더의 가우가멜라 전투가 단순한 시각적 스펙타클을 넘어 망치-모루전법의 놀라운 재현으로 다가온 것도 이 책으로 인해 전쟁을 보는 시야가 넓어졌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트로이도 다시 보니 팔랑스 대형을 잘 재현했다는 감탄이 나오더라)

그리고 한 권 안에서 고대~현대의 전쟁(걸프전까지)을 조감하다보니 전쟁이란 게 단순한 영토확장의지의 무력충돌사건(fact)에서 고도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tool)으로 변화하는 미묘한 흐름까지도 눈치챌 수 있었다.

1개 사건이 2-3페이지의 짧은 호흡으로 짜여있어 지치지 않고 쭉쭉- 나갈 수 있다는 점은 많은 부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이런 기획교양서의 당연한 미덕일 수 있겠다.

전쟁사에 관심있는 좁은 범위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군사(軍事)나 역사(歷史) 같이 인접분야에 흥미가 있는 사람들도 부담없이 교양을 쌓기에 좋은, 그리고 그러한 기획력 측면의 장점 뿐만 아니라 책 자체의 내용적 측면에서도 평균 이상의 수준을 보여주는 유익한 책으로 평가하고 싶다.

불편부당하고 객관화된 저작을 남기고 싶어하는 군인 또는 학자로서의 유혹을 이겨내고 나 같은 평민(?)들도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신경써서 책을 저술한 저자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ISBN 8985466712
2005/03/02 15:17 2005/03/02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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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도 작년말에 샀던 것 같은데 항상 그렇듯이 게으름 때문에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작년말에 출간됐을 때 한창 라디오에서 광고도 하고 (무슨 연애소설인양 광고하는게 심히 거슬리긴 했지만) 서점에서도 신간코너 제일 목 좋은 곳에 진열해놓고 그래서 유행에 휩쓸린다 싶어 썩 내키지 않았지만 그때는 내가 참 드물게도 '픽션' 아니면 '이야기'라는 것에 무척 목이 말라있던 때였나보다.

사실 나는 픽션을 잘 읽는 편이 아니다.

'허구의 이야기'가 가져다주는 효용(...이랄까, 건방지군)이라든가 그 가치성에 좀 회의를 품는 입장이었고, 그러한 부정적인 태도는 90년대초(?)부터 일본 사(私)소설의 영향을 받은 한국 여성작가들의 작품 앞에서 더 극단으로 기울어져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공지영이 그런 쪽의 작가가 아니라는 점은 내가 이 책을 집어들게 한 작은 변명도 되어주었지만 그녀 역시 문장의 '호흡이 짧다'라는 느낌은 여기서도 같았다.

작가가 1년간 베를린에 체류하고 돌아와 베를린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6개의 중/단편들로 엮은 연작소설집인데 그들을 묶어내는 공통된 주제는 라디오 광고나 표지의 광고지에 나온 것과 같은 '두려움 없는 사랑'이 아니라 베를린이라는 제3의, 그러나 그 역시도 분단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슬픈 (한국민의) 역사와 용서'다.

하지만 작가가 두드리는 '역사'라는 주제와 그로 인해 드러나는 작가의 '사회성'이라는 것은 그녀가 비슷한 여류작가들의 개인경도(傾到)적인 경향과는 차별되는 미덕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을 미덕으로 평가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것을 다루는 방법적인 면에서 어딘가 '힘이 가빠보인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 같다.

드문드문 감동적인 구절이나 정말 탁월하다 싶은 묘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부분적인 장점들이 전체적인 '힘에 겨워보임'을 덮어줄 정도는 못 되는 것 같다.

후반부에 가서 '허물어지듯' 화해와 용서가 이루어지는 것도 '이미지'에 감동받는 독자가 아니라면 나같은 영악한 독자 입장에서는 불만스러울 수도 있고...

웹에서 확인할 수 있는 다른 많은 독자들의 서평이 '대한민국'이니 '민족'이니, 심지어는 '아리랑'까지 나오면서 작품외적인 독자개인의 감상(感傷)에 치우쳐져 작품 그 자체에 집중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독자 개인들의 문제도 있겠지만 작품 자체로 독자를 빨아들이지 못하는 작가의 실책 때문일 수도 있을 거다.

서울 올라갔다 내려오면서 열차 안에서, 또는 역 대합실 안에서 가볍게(무거운 주제에 비하여 '가볍게'라는 말이 나오다니...) 읽기에는, 그리고 책을 읽고서 잠시 생각에 잠시게 해주는 데는 괜찮았지만 시간이 조금 흐른 뒤, 이 책이 보여주고자 했던 '약한 단계의 사회적인 모습'과 비교되어 중학교 때 읽었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충격이 다시금 생각났던 것은 주제 자체의 경중(輕重)을 떠나 그 주제 자체를 이끌어가는 작가의 '힘'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아쉬움이 들었던 때문인 것 같다.

ISBN 8936436805
2005/02/28 00:48 2005/02/28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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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따라/책  2004/10/05 00:18
이미 서점에는 10월호가 깔려있어 늦은감이 들지만 내 게으름을 탓할 때 탓하더라도 광고는 해야지 ㅡㅡ;;

국내 유일의 취미모형 월간지 네오 9월호다.

2004. 8. 14~15 양일간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제2회 네오 컨벤션과 제4회 GMM 컨테스트 특집으로 꾸며졌으며 이제까지 만든 비행기를 한아름 싣고 컨벤션에 출품한 나 역시 3작품이 실렸다.

캐나다 가기 직전 제3회 GMM에 초허접 에어울프를 출품하여 '예의상' 찍어준 작품사진이 내 잡지등단(?) 최초의 기록인데 이번에는 그래도 '공 많이 들이셨네여~' 정도로 코멘트가 업그레이드 되어 기분이 좋았다.



(두 페이지에 걸쳐 3작품 10컷이 소개되었으니 사실 이것만으로도 가문의 영광이 아닐 수 없다)

네오 과월호 주문은 호비스트 영업부(02-796-4163)로~ ㅡㅡ;;;

ISBN 0000565687
2004/10/05 00:18 2004/10/05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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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입시 때문에 정신없던 1995년에 출간되어 이미 절판된지 오래된 책이지만 돌아다니는 헌책방마다 '그 책 구하면 우리한테 연락 좀 줘요'라는 소리를 들을만큼 여전히 '어둠의 베스트셀러'인 책이다.

예전 한겨레 출판국에 문의했을 때는 없다고 하더니 이번에 다시 걸어서 사정을 하니 반품된 파본이 조금 있단다.

사실 출판사로 반품된 파본들이라도 그 정도는 심하지 않은 게 보통인지라 수화기 너머 출판국 직원의 미안해하는 목소리가 내게는 정말 가뭄 끝의 단비와도 같았다.

- 학교 다닐 때 중앙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면서 '훔쳐서라도 갖고 싶다'는 느낌을 준 건 이 책이 유일했던 것 같다 -

물리와 화학에 죽을 쒀가면서도 유일하게 재미있게 들었던 과학과목이 지구과학이다보니 이처럼 지구과학과 여행서의 중간에 서있는 듯한 책은 보기만 해도 반가울 따름이다.

일간지의 매주 기획기사를 묶은 것이라 한 꼭지 한 꼭지의 분량이 감질나게 짧다는 점은 아쉽지만 이 책을 통해 체험하게 되는 공룡발자국 화석이 지천에 널려있는 푸른 남해바닷가에서 화산이 삐쭉- 만들어낸 동해바다의 독도, 그리고 민통선 안쪽의 양구 펀치볼까지 한달음에 둘러보는 경험,

아니 그 무엇보다도 그냥 '둘러봄'의 단계에서 '이해함'의 단계로 자연을 바라보게 되는 기분좋은 경험은 그렇게 몇년동안 이 책을 구하기 위해 애를 썼던 나의 노력을 보상해주기에 너무나도 충분한 것이었다.

ISBN 898550522X
2004/10/04 23:52 2004/10/04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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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던 출근길을 음악 듣는 출근길로 바꿔버린 iPod를 제치고
나의 출장길을 송두리째 점령해버린 책이 한권 있었으니
이름하여 '우리의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란다.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프레시안의 동북공정 해설기사에 달린 댓글 때문이었다.
어떤 논자가 동북공정에 대해 댓글을 달면서 언뜻 이 책을 언급했던 거다.
우리의 통념인 한민족 북방기원설과 배치되게,
한민족 남방기원설을 주장하고 있다는 내용이 흥미로워
호주 가서 읽으려 교보문고를 찾았는데 아쉽게도 찾질 못했다.
결국 귀국한 뒤에야 서가에서 발견되더군.

........

나는 솔직히 '민족'이라는 개념에 대해 항상 경계하는 입장이다.

나 역시 한단고기를 읽고 저 중원이 온통 우리'민족'의 古土였다는,
심지어 수메르인들에게까지 한민족의 문화가 미쳤다는 주장에
흥분으로 가슴이 뛰었던 적이 있다.
그 시기는 묘하게도 내 자신이 외부로부터 많은 압력을 받았을 때인 고교시절과 중첩되어 있고
대학에 와서 자유로운 생각, 열린 마음, 그리고 무엇보다도
실증적이고도 과학적인, 객관화된 학문을 접하게 되면서
그러한 나의 옛 믿음들이 한편으로는 언제 터질지도 모르는,
그리고 타인(타민족)들과의 마찰을 필연적으로 예정하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무서운 것일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 와중 인터넷과 (결정적으로) 고종석을 통해 자유주의를 학습하고
'민족' 개념의 신화가 깨지는 격정적인 경험을 하고나서야
비로소 극우와 좌파 사이에서 균형을 취하는 법을 깨닫게 되었다.

이렇게 장황하게 내가 생각하고 있는 '민족' 개념을 이야기한 것은
이하에서 편의상 지칭하는 '한민족'이라는 말에 대한 개념정의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이 책이 주장하고 있는 '한민족 남방기원설'에 대한 효용성(?)이랄까
평가 같은 것을 내 나름대로 내려보기 위한 이유도 있다)

이하에서 쓰는 '한민족'이라는 말은
5천년 단일민족의 신화를 강화하기 위한 '민족' 개념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古來로 한반도에 정착해 거주했던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라는
속지주의적인 민족 개념이 강하다는 점을 먼저 밝혀두고 싶다.
실제로 이 책 역시 어디서도 '한민족 단일민족설'을 주장하지 않는다.
남방유입 6, 북방유입 4, 중국유입 10% 미만 정도로
(속지주의적인 관점에서의) '한민족'을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

사학을 전공하지 않은 필자가 20여년동안 UN식량농업기구 공무원으로
전세계 오지와 소수민족을 찾아다니며 수집한 자료에 의거해 쓰여진 이 책은
분명히 엄밀한 실증사학의 입장에서 볼 때 허술한 점이 눈에 띤다.
다소 견강부회하는 면도 없지는 않고...

그러나 김수로의 아내 허황옥 이야기가 전해주듯
그동안 주류사학계가 간과해왔던,
설령 언급하더라도 (신라와 고려의) 국제성 개념으로 설명해왔던
남방문화 유입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든다.

필자가 내린 결론(가설)은
지금의 흑해 또는 소아시아쪽의 사람들이
중동 - 인도 - 인도차이나 반도 - 쿠로시오난류를 통해 한반도 유입
이상의 순으로 한반도에 유입되었고
이들의 문화가 기존에 한반도에 정착하고 있던 소수의 선주민들의 그것보다 우월했기에
(농경, 제사풍습, 무기 등)
이들의 문화가 오늘날 '한국문화'라고 일컬어지는 문화양식의
원류를 구성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까지 주장된 '북방기원설'은 어떻게 봐야할까.
필자는 위에서 말한 중동 ~ 한반도유입의 대장정이
한반도에서 멈추지 않고 더 북쪽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그들이 그곳에서 세운 부여와 고구려 같은 국가들로 인해
우리가 북방기마민족이라는 오해가 생겨났으며
실제로 언어학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 우리가 초원의 몽고인들과 유사한 점은
거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결국 그의 가설대로라면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한민족이란
(멀리서부터) 소아시아, 중동, 인도, 말레이반도, 인도차이나, 중국 운남성쪽에서 온 사람들이며
한반도와 그 일대에서 머나먼 대장정을 마친 사람들은
내륙(중국)기원민족의 확장으로 인해
중동 ~ 한반도까지 이어지는 긴 루트(이를 필자는 '한국인의 남서통로'라 이름붙인다)에서 끊긴 채
한반도 안에서 섬처럼 고립되어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

물론 자료검증 과정에서 비전공자인 내가 보기에도 억지스러운 부분이
아예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우리민족이 어떻게든 남방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나의 흐릿한 생각이
점차 구체화되어 진실이 보이는 것 같은 경험이
나의 출장길을 그토록 사로잡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몇가지 우려가 든 것도 사실이다.

우선은, 마치 이 책이 한때 일각에서 불던 '한단고기' 열풍처럼 잘못 해석되어
'우리민족은 유럽인과 형제다'라는 억지가 대두될 수 있다는 점.
아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러한 주장이 제시된다면
그 주장의 기저에는 '오늘날 선진국인 유럽과 한국을 동등한 민족'으로 놓고 싶어하는
패권주의적인 의식이 깔려있으리라 본다.
뭐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이 책이 출판계를 강타했다는 얘기는 아직 없으니까)
이 책이 어린 학생들(?)에게 한단고기나 규원사화가 먹히듯 먹혀들어간다면
중국의 동북공정을 비판하기 위해 치우 얘기를 들먹이면서
'중국땅은 다 우리꺼였다'라는, 북방기마민족설에 기반한 한민족 패권주의가
'한국인은 유럽인과 형제다'라는, 더 웃지못할 형태의 것으로 바뀔 수도 있지 않은가?

또하나 우려스러웠던 점은
이 책이 강조하는 부분이 '한민족 남방유입설'이다보니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한국인 전체가 완전히 남방에서만 왔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필자는 한민족과 그 문화는
남방 6, 북방 4, 중국 10% 미만 정도의 구성비를 갖는다고 추정하고 있다.

따라서, 오히려 이 책의 가치는
한국인들이 공유하고 있는 '한민족 단일기원설'이라는 신화를 깨는데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오히려 이 책을 자세히 읽은 사람이라면
오늘날 한국문화를 이루고 있는 요소들이라는 것이
외부에서 유입된 것이 얼마나 많은가 하는 점을 깨닫고
문화의 들어오고 나감이라는 현상에 대하여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 진정으로 우려하는 것은
그들이 고구려땅을 먹어치우느냐 아니냐의 문제라기보다는
그들의 그러한 전략이
민족주의가 강한 이 동북아에서 걷잡을 수 없는 민족대립을
- 민족과 국가가 1:1로 대응하는 동북아에서 민족대립은 즉 국가대립을 뜻한다 -
불러일으킬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 책이
20여년 동안 호기심과 열정 하나만을 가지고 집필에 임한 위대한 필자의
'始原과 진실'에 대한 보고서로서 읽히기만을,
또다른 민족패권주의의 사상교본으로서 그릇 쓰이지 않기만을 바랄 따름이다.

뒤늦게 '역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중국처럼 최소한의 과학성마저 저버린 정치종속적인 '도구적' 역사관이 아니라
역사의 相當因果關係에 따라 객관성과 분별력을 잃지 않는
차분하고도 날카로운 홉스봄식의 역사관일테다.

ISBN 8973304720
2004/09/15 20:25 2004/09/1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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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서양문명사를 바꾼 세 사람의 유태인을 들곤 한다. 계몽, 이성, 의지와 같은 추상적인 지성사를 거부하고 과학적 사회주의를 불러일으킨 마르크스와, 꿈의 해석을 통하여 인간의식세계의 저 너머 영역에 발을 내딛은 프로이트, 그리고 상대성이론을 통하여 우리를 둘러싼 우주라는 존재에 대한 해석의 지침을 마련해준 아인슈타인. 시대는 다르지만 이들이 탐구한 대상은 공교롭게도 인간(프로이트) - 역사와 사회(마르크스) - 우주(아인슈타인)라는 큰 궤(軌) 위에 놓여있었다.

그렇긴 하지만 사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건 썩 내키는 일이 아니었다.

소련과 동구권의 붕괴로 마르크시즘이란 게 시대에 뒤떨어진 사상으로 이해되는 이 때, 마르크스주의의 의의를 찾자면 그 사상적 선동성보다는 그가 항상 견지해왔던 과학적 사회주의의 태도에 중점이 맞춰지게 된다. 그렇지만 마르크스주의의 정수라고 하는 '자본론'이 아닌, 제목에서부터 다소간의 격정성, 비합리성이 느껴지는 이 '공산당선언'을 집어들게 된 것은 순전히 '얇아서'였다. 역자의 해설도 모자라 원본의 각국어판 서문까지 다 끼워넣어도 150페이지 남짓에 불과한 이 '가뿐한' 양은, 마르크스 그가 그토록 경계했던 자본주의 사회의 충실한 노동자로서 덜컹거리는 지하철을 타고 회사로 향하는 이 불쌍한 중생이 그를 만나는 데 있어 게으름을 피운다거나 쉬 질리지 않게 하기 위한 최적의 분량이었던 것이다.

우선 내용 외적인 이야기부터 하자면, 이제 한국의 번역서들도 수준이 많이 높아졌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중요한 부분을 앞으로 빼고 수식어를 뒤로 뒤로 열차처럼 이어붙이는 서양어의 어법을 한국어로 번역하면 주어와 술어 사이에 들어가는 수식어가 한없이 길어져 주술관계를 오해케 한다거나 하는 일이 많다. 아마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대개의 번역서들은 이러한 어색함을 고치려는 노력 없이 그것을 '직역' 또는 '완역'이라는 미명하에 텍스트 이해의 부담을 전적으로 독자들의 지식수준에 떠맡겨왔던 것 같다. 하지만 오랜만에 집어든 이 책은 정말 '쉽게 읽힌다.' 아마도 대중, 실생활과 유리되지 않는 철학을 중요시해왔던 이진우 교수가 번역을 해서 그런게 아니겠나 생각해볼 따름이다.

어쨌거나 이 책 '공산당선언'의 많은 양은 헤겔의 변증법을 차용해 역사의 발전단계를 모색한 마르크스의 독특한 역사관과, 그 역사발전 속에서 지배와 피지배라는 관계가 어떻게 유지되어 왔는지에 대한 해설에 할애되어있다. A=B, B=C 그러므로 A=C라는 수준의 정교한 자연과학적 태도는 아쉽게도 맛볼 수 없지만 이 글이 작성된 19세기말의 상황에서는 서양의 역사를 관통하는 일원칙을 발견했다는 흥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으리라는 짐작을 한다. 아직까지도 당대 유럽지성계의 주류는 '계몽과 이성' 아니었던가. 당대의 초기 사회주의자들 역시도 사회변혁을 시민계급의 의지라든가 이성의 관점에서 '수혜적'으로 파악한 측면이 있었던 걸 생각해본다면, 철저히 역사 속 피지배계급의 모습에서 모든 논리와 단결의 근거를 찾아낸 마르크시즘은 '급진적이다'라는 비난을 듣기에 충분할 정도로 차갑고 두려운 존재였던 거다.

그렇지만 솔직히 그가 꿈꿔왔던 이상들이 실패였다는 것이 판명난 1백년 후의 사람인 내가 읽기에 그의 목소리높임과 격정은 다소 우습다고 느껴질 정도로 순진하게 보였다. 그 상태에서 책을 덮으려던 내게 아직까지도 마르크스주의는 유효함을 깨닫게 해준 것은 오히려 역자인 이진우의 '공산당선언 해설'이었다.

고전이 위대한 까닭은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무궁무진하게 남겨두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마르크스의 이론은 레닌과 마오쩌둥에게는 혁명의 이론으로써, 루카치 같은 사람들에게는 과학적 사회주의의 틀로써 수많은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었다.

여기에 덧붙여 역자는 마르크스주의에서 '共生'을 읽어낸다.

재산과 가족의 공유 등 마르크스의 반대자들이 그를 조소하며 들이댔던 '共産'이라는 조야한 모더니즘적 표현을 걷어내고, 역자는 그 자리에서 포스트모던 시민사회의 새로운 덕목으로서 '共生'의 의미를 읽어내고 있다. 물론 본책의 해설격인 짧은 글이라 깊은 내용은 접하기 어려웠지만 마르크스주의와 오늘날 시민사회의 이상이 일맥상통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 수긍하다보니 '시민단체들은 홍위병'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그렇게 틀린 건 아니군! 하는데까지 생각이 미쳐 빙긋 웃음까지 나왔다. (어쩌면 그말을 한 그 사람이야말로 열렬히 마르크시즘 공부를 한 골수 마르크스주의자?)

ISBN 8970133615
2004/08/27 00:37 2004/08/27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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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구내서점에서 최근에 나온 고승덕 변호사 책을 읽었는데
미국유학간 얘기 초엽까지만 봤음에도
그의 삶이 얼마나 치열했던가
그의 삶이 얼마나 ('영예'라는 비물질적) 보상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삶이었던가를
수긍하게 되었다.

물론 그의 삶이
'소시민적 행복'의 관점에서
결코 '행복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닐 테다.
굳이 실패한 결혼생활을 들지 않더라도
항상 거대한 목표를 설정해놓고
거기에 자신을 내던지는 그의 삶은
일반적인 우리가 보기에
'왜 그러고 인생을 사냐'라는 핀잔을 주기에 딱 알맞은
그러한 고리타분함마저 느끼게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그를 '출세와 영달에만 관심을 가졌던 세속주의자'라고 폄하하거나
'사랑의 의미도 모르는 불쌍한 사람' 따위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의 삶을 제대로 평가하고 있지 못하다라는 생각을 한다.

그가 걸어온 길이 비록
일부 다른 고시합격자들의 그릇된 행위로
일신의 영달을 꾀하는 코스로 비칠지 몰라도
그에게는 그 매순간순간의 도전이
항상 겸손한,
어쩌면 '구도'에 가까울지도 모르는
그러한 길이었다.

공부가 좋아서도 아니고
공부를 잘해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도 아니고
공부를 해야하니까 해야하는 것도 아닌,
'다른 잘 하는 게 없으니까' 하는 것이지만
기왕 하는 거라면 '제대로',
거기에 약간의 오기와 1% 미만의 자존심,
그러나 타인들에 대한 우월감은 전혀 없이 공부하는 것이
그가 공부를 하는 의미였다.
오히려 공부를 하는 '순수함'과 '정화(淨化)' 본연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고나 할까.
물론, 수험에 관한 전략을 잘 세우는 영리함은 기본이었다.

- 솔직히 그의 수험기를 읽으니
요즘의 시험들과는 많이 다르다거나
운도 적잖이 작용했구나 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시험이라는 것은 어느 학원강사의 말처럼
'운이 없어 떨어지는 경우는 있지만
운이 있어서 붙는 경우는 없'다 -

보수적인 법조계의 관행에 반감을 표한 부분이나
고시3관왕이라는 타이틀에 안주하지 않고
부단히 자신을 '도전'에 내맡겼던 역정을 보면
(미국유학도 그 연장선 상에 있다)
이 '시험괴물'의 인간이
오히려 더 '사람답게' 느껴지는 것이다.

.........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사람들은 나더러 천재라고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가 얼마나 많은 연습을 하는지는 알려하지 않는다.'

이 미쳐돌아가는 사회에서
일신의 영달을 보장해줄 수 있는 '고시'라는 관문을
3개나 통과한 고승덕은
정우성이 고소영과 데이트를 한 뒤 카드를 내놓는 일과 동의어가 되어버린
바로 그 '능력'의 화신처럼 여겨져왔는지 모른다.

그러한 천박함의 셀로판지를 걷어내면
그에게서는 오히려
목표를 향한 저돌적인 매진과
'없는 길은 자신이 길을 만들겠다는' 쉼없는 도전정신만이 보일 뿐이다.

돈과 영예, 출세라는 잣대로 그를 바라보는 사람은
결코 그와 같아질 수 없다.

ISBN 8995281545
2003/09/04 18:55 2003/09/04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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