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영화 우원회] 내 인생의 영화, <영웅본색>
2001.8.13.월요일
딴지 영진공 별걸다 우원회
0.
원체 영화라는 것에는 문외한인데다가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국민학교 6학년 때, 그것도 영화관이 아닌 비디오를 통해서였으니 어쩌면 나는 이 영화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을지도 모른다. 사실 내 스스로도 나 자신이 이 영화를 이야기하는 데 적임자라고 자신할 생각은 없다.
이 영화가 오늘날 신화가 된 이유는 1987년 이 영화가 개봉할 당시 철부지 국민학교 4학년생이던 나 같은 또래들보다는, 서슬 퍼렇던 중고등학생 시절, 학교의 울타리를 벗어나(수업을 땡땡이 깠다는 얘기다) 곰팡이 냄새 나는 재개봉관에서 하루 종일 죽치고 앉아 1회부터 7회까지 내리 예닐곱 번을 제끼고도 다음날 또다시 재개봉관으로 도시락 싸들고 출근하던, 오늘날의 30대 초중반 세대들의 공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이름은 바로 <영웅본색>이다. (어쩌면 이 네 글자를 보고 갑자기 가슴에 뜨거운 것이 싸아- 도는 느낌을 받으실 분들도 많으리라 생각한다)
이미 개봉한지 15년이 흘러 고전 반열에 드는 영화가 되었고 그에 따라 줄거리를 다시 소개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기도 하지만 솔직히 <영웅본색>은 줄거리가 참 뻔한 영화이다. 위조지폐단의 실세인 형(송자호, 적룡 분)과 경찰인 동생(아걸, 장국영 분)의 반목과 화해, 그리고 역시 위조지폐단의 일원인 소마(마크, 주윤발 분)와 송자호의 우정. 너무나 통속적이고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설정일 뿐이다. 거기에 옛 부하였던 아성(이자웅 분)의 배신과 몰락이라는 이야기까지 더해지면 '홍콩깡패영화 별 수 있나' 소리가 절로 나오게 된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이러한 전형적인 구도를 잊게 만드는 요소들이 있다. 첫 번째는 현란하고 과장되면서도 역설적으로 섬세하게 배치된 영상들이고 두 번째는 우리들의 무의식적인 상실감을 자극하고 가슴 속의 뜨거움을 잠깨우는 '소마'라는 인물의 존재이다.
이 두 요소가 없었다면 이 영화가 오늘날 명작으로서 이처럼 대접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註: 소마(小馬)라는 이름은 마크 리(Mark Lee)의 애칭인 마크(Mark)의 중국식 이름이다. 영화 속 주윤발의 캐릭터의 본명은 Mark Lee로 설정되어 있고 중국식으로는 馬克李로 표기한다. 우리나라 비디오에서는 영화 속에서 감독 오우삼이 카메오로 맡은 대만형사와 홍콩 수사반장이 공조하는 부분에서 잠깐 ‘마극례’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어 나온다. (물론 잘못된 번역이다) 어쨌거나 우리나라와는 달리 홍콩을 비롯한 전세계적으로는 Mark라는 이름이 통용되고 있지만 우리나라 팬들에게 ‘소마’라는 이름이 주는 그 느낌을 살려 여기에서도 ‘소마’로 표기하기로 한다)
1.
<영웅본색>이라는 이름에 아직까지 가슴떨림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면 소마가, 체포된 송자호의 복수를 위해 풍림각에서 벌이던 총격전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마담(?)을 끌어안고 화분마다 총을 숨겨두던 모습, 방문이 천천히 열리면서 차가운 표정을 드러내던 모습, 적들을 모두 처리한 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무심한 표정으로 성냥개비를 입에 넣고 씹던 모습, 그러면서 흘러나오던, 피리와 타악기의 배치가 미묘하던, 소마의 무사 같은 이미지에 딱 어울리던 음악까지.
(*註: 그 음악은 알란 파커 감독의 1984년작 <버디 (Birdy)>에 삽입되었던 피터 가브리엘의 “Birdy’s Flight”라는 곡이다. 오늘날과는 달리 <영웅본색>과 <첩혈쌍웅>을 비롯한 당시의 홍콩영화들에서는 뚜렷한 법적 개념 없이 영화 분위기에 어울리면 아무 영화에서나 음악을 갖다 쓰는 일종의 무단도용 사례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빌딩 옥상에서 아성 일행에게 집단린치를 당하던 소마가 붉은 네온사인을 배경으로 피를 뿜는 장면이라든가 영화사의 명장면으로 기억되고 있는 마지막 부두에서의 총격전 등은 그 내용의 폭력성과 비현실성을 넘어 아름답게 느껴지기 까지 한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일련의 치밀하고 섬세한 장면들이 실제적으로는 '마구리' 또는 '주먹구구식'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감독 오우삼은 예나 지금이나 정교하고 계산적인 콘티나 플랜보다는 순간순간의 즉흥적인 감에 의존하는 편이고, 이러한 그의 성격은 1년에 6편씩 영화를 찍어냈다던 우리나라의 전설적인 남기남 감독과도 닮은 데가 있다. 사실 오우삼 역시도 1986년 이 <영웅본색>을 찍기 전까지는 자신이 소속된 영화사와 생계를 위해 싸구려 쿵푸영화나 코미디영화를 찍어내야만 하는 '찍쇠'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제법 흥행성적도 좋았던 그였지만 1986년 <영웅본색>을 찍기 직전에는 거듭되는 흥행실패로 사람들에게 평판을 잃고 있었다. 예전 그에게서 도움을 받은 서극이 이번에는 거꾸로 그를 도와주는 셈치고 <영웅본색>의 제작을 맡겠다고 하지 않았더라면 오우삼이라는 이름은 그대로 잊혀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이론에 해박한 것도 아니고 자본이 많은 것도 아닌, 마구리틱한 생김새만큼이나 "되는대로" 영화를 찍던 찍쇠 오우삼의 가진 가장 큰 무기는 뜨거운 감수성이었다.
회사의 요구와 생계에 쫓겨 내몰리듯 쿵푸와 코미디영화를 찍으면서도 항상 남자들의 우정을 다룬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해왔었고 그것이 현실이 되자 그의 감수성은 장면장면마다의 미장센(mise en scene)을 다루는 데에서 빛을 발하게 되었던 것이다.
어느 장면에서 슬로모션 처리를 해야할 것인지, 이 장면의 색조는 어떻게 잡아야 할 것인지, 이번 총격씬은 주위의 어떤 엄폐물을 이용해 어떻게 적을 죽인다고 해야할 것인지 등이 모두 그의 즉흥적인 순간순간의 감정과 느낌에 따라 결정된 것들이었다. 미국으로 건너간 뒤 그가 가장 불편하게 여겼던 것도 매 장면마다의 콘티를 이미 계획단계에서부터 다 잡고 촬영을 시작할 정도로 합리성과 계획성을 따지는 할리우드식 영화제작 시스템이었다고 한다.
2-1.
사실 할리우드가 오우삼을 불러들인 것은 앞에서 말한 그의 스타일 때문이었다.
람보나 터미네이터류의 우락부락한 "영웅"들이 있는 대로 총을 갈기고 폭탄을 던져 여기저기 꽝~ 꽝~ 터지게 만드는 식의 액션영화에 젖어있던 서양인들에게 동양의 이 땅딸막한 감독이 내놓은 영화들은 무척이나 색다르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검은 선글래스를 쓰고 트렌치코트를 휘날리며 성냥개비를 씹으먼서 적을 쓸어버린다든지(영웅본색), 계단을 거꾸로 미끄러져 내려가면서 쌍권총을 쏜다든지(영웅본색2), 세상의 모든 속(俗)과 피(血)들을 성(聖)스럽게 승화시키겠다는 양 마치 사제처럼 흰 옷을 입고 흰 비둘기가 나는 성당 안에서 혈투를 벌인다든지(첩혈쌍웅) 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연속해서 히트시킨 이 감독에게 할리우드의 자본과 기술력을 제공한다면 꽤 멋진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
하지만 <영웅본색>과 오우삼의 비결이 '스타일'에만 있다고 본 실수를 범한 것은 그들이 서양인이기 때문이었다. 이 영화에서 스타일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영웅본색>이 1980년대 말의 아시아를 풍미한 것은 좀더 근본적인 데 있었다.
다소 도식적이긴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것은 이 영화가 가진 무협성에 걸맞게 천시(天時)와 지리(地利), 인화(人和)라는 세 가지 코드로 설명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각각의 코드는 또 다시 '상실감'이라는 하나의 주제 안에서 공통되게 되고 그 중심에는 영화 속 '소마'라는 캐릭터가 서 있다.
(*註: 사실 소마라는 캐릭터는 오우삼의 계획대로라면 주변인물 정도에 머물렀던 존재다. 오우삼은 기본적으로 이 영화를 송자호와 아걸의 형제애에 초점을 맞추고 싶어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소마의 비중이 의외로 커지게 되었고 결국에 가서는 소마가 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했다)
2-2.
<영웅본색>이 개봉된 1986년은 아시아권이 놀랄만한 경제성장을 이루며 도약하고 사람들 마음속에 '이제 우리도 서양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희망이 부풀 때였다. 하지만 합리성과 물질성을 앞세워 뜨거운 가슴보다는 차가운 머리로 일할 것을 강제 받던 동양인들에게 그러한 외형적 성장은 생활의 풍요로움과는 별도로 왠지 모를 허전함과 공허감을 가져다주었다.
하루종일 독서실에서 책과 씨름하거나 사무실에서 수화기를 붙잡고 또는 장부에 파묻혀 열심히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골목길에서 밤하늘의 별을 보고 괜한 허전함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이 설명하기 어려운 '상실감'을 이해하기 쉬울 거라 생각한다. '나, 오늘 하루도 바쁘게 열심히 살았구나'라는 자기위로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그런 허전함 말이다. 월급인상, 승진, 경제성장 같은 말보다 호연지기, 기개, 의리, 우정 등의 말에 더욱 본능적으로 따스함을 느끼는 것이 동양인들이다.
무엇보다도 홍콩인들에게 1986년은 1997년 홍콩의 본토반환이 10년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그들의 잠재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던 두려움과 상실감이 눈을 뜨기 시작한 해였다. 그것은 소마가 아성 일행에게 린치를 당한 뒤 빅토리아 피크에 올라 홍콩의 야경을 보며 지나가는 말처럼 내뱉었던 대사 - "홍콩의 야경이 이렇게 아름다운지 몰랐어.... 이렇게 아름다운 걸 잃다니 정말 아쉬워." - 속에 강렬하게 은유되어 있다.
논리적으로 보면 이야기 구조 속에서 별로 연관성 없는 대사이긴 하지만 이 말이 홍콩인들에게 그렇게 강하게 어필할 수 있었던 것은 이야기의 논리적 구조와는 상관없이 홍콩인들 자신이 이미 영화 속 소마를 자신들의 입장과 동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홍콩"이라는 지리적 배경은 영화 속의 패배감과 상실감에 좀더 사실감과 절박함을 증대시킨다. 이 영화가 유럽 어느 도시나 LA (같은 해안이니까)를 배경으로 했다면 과연 이만큼의 쓸쓸함이 나올 수 있었을까? 아마도 "웬 신파?" 또는 "웬 갑빠?" 소리를 듣지나 않으면 다행인, 그렇고 그런 평범한 갱스터 영화에 머물렀을 것이다.
게다가 홍콩이 동서양의 문화가 뒤섞인 곳이라는 점도 이 영화에서는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지적했듯이 오우삼의 영화들에서 볼 수 있는 액션씬들은 "총을 든 현대판 무사들"의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결코 총알이 떨어지는 법 없이 싸우는 오우삼 영화의 주인공들은 "총을 갈긴다"는 말보다는 (칼을 쓰듯) "총을 휘두른다"는, 논리적으로 보면 전혀 말이 안되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경우가 있음을 보여준 인물들이었다.
<영웅본색2>의 후반부에서 켄과 이름모를 킬러가 일대일로 대치하는 장면은 그 구조가 서부영화의 일대일 대결씬과 비슷함에도 절대 그런 쪽으로는 읽혀지지 않는다. 오히려 무사와 무사의 일대일 대결로 보일 뿐이고 이러한 우리의 시각은 둘이 지근거리에서 총을 난사했음에도 켄이 살아있다는 비현실적인 설정을 통해 더욱더 힘을 얻게 된다.
동양적인 인물들과 정서, 액션들이 현재라는 시간배경 속에서 양복과 총이라는 서양적인 옷을 입고 서사되었다는 것, 그것이 오우삼의 액션영화들이 가진 기본골격이었고 홍콩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시작이 바로 이 <영웅본색>이었고 소마였던 것이다.
2-3.
앞서말한 오우삼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의 출연진들은 실제로도 그리 큰 스타들이 아니었다. 떠오르는 신예로 주목 받던 장국영과 주보의(아걸의 여자친구 재키 역) 정도를 제외한다면 대만에서 코미디 영화를 만들었다가 내리 실패해 좌절하고 있던 감독 오우삼, 쿵푸영화배우로서 전성기를 누렸지만 쿵푸영화가 한물 가자 반 실업상태에 있던 적룡, 역시 생계를 위해 닥치는 대로 TV와 영화를 오가며 촬영을 하던 B급 배우 주윤발 등 주요인물들은 이미 영화 속 송자호와 소마만큼이나 상실의 끝을 체험해본 사람들이었다.
물론 그들이 이렇게 밑바닥 인생을 체험해 봤다고 해서 이 영화를 찍으면서 남다른 마음가짐으로 임했다고 볼 증거는 아무 곳에도 없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놓고 봤을 때 이들의 캐스팅은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특히 오우삼은 소마 역을 누구에게 맡길 지를 놓고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러던 중 어느날 지역신문에서 B급배우 주윤발이 소년소녀가장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다는 작은 기사를 보게 되었고 그런 사람이야말로 자신이 생각하던 따스한 마음을 가진 영웅 - 소마의 이미지에 제일 잘 부합할 것 같아 그를 캐스팅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훗날 어느 인터뷰에서 오우삼은 주윤발을 처음 만났을 때를 회고하면서 "따스한 마음씨와 함께 현대적인 기사도의 풍모가 느껴지는 그러한 인물이었다"며 말한 바 있다.
오우삼은 소마에게 '따스한 마음씨를 가진 영웅'의 모습을 강조하고자 했던 것 같지만 관객들에게는 그러한 면보다는 '상처 입은 인간적인 영웅'의 모습이 더 기억에 남아있는 듯 하다. (물론 할리우드는 '영웅'만 보고 '따스한 마음씨'나 '상처 입은 인간적인' 둘 다 보지 못했다)
그것은 한쪽 다리를 잃었다는 신체적인 '상처'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빼앗긴 것은 되찾아야만 한다며 의지를 불태우지만 그런 그에게서 강직함보다는 절망감과 상실감이 더욱 깊이 부각되는 것은 분명 할리우드의 근육질 영웅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소마만의 고유한 매력이다. 뿐만 아니라 소마는 "내가 신이야"라고까지 하며 항상 영웅이나 신이 되고 싶어 했지만 가방 안에 폭탄이 들어있다는 말 한마디에 두려움을 느끼며 눈을 질끈 감는, 나약한 인간에 불과함을 고백한다.
그리고 보트를 되돌려 부두로 되돌아와 정말 그의 소원대로 신(또는 영웅)이 될 것처럼 적들을 쓸어버리지만 결국 그것마저도 죽음 앞에서 쓰러짐으로써 이루어내지 못한다. 내 머리에 총부리를 겨누지 말라던 그의 경고와 달리 머리에 총을 맞고 죽는 소마의 이러한 비극성은, 내가 죽으면 내 눈을 제니에게 이식해주라던 <첩혈쌍웅>의 제프가 두 눈을 잃고 죽는 것으로 변주된다.
어쨌거나 이처럼 영화 전반을 관류하는 패배감과 상실감은 소마의 등장과 몰락, 복수, 그리고 마침내는 죽음이라는 그의 궤적을 따라 그 강도가 달라진다. 하지만 그것들이 약해지는 경우는 있을지언정 결코 해소되는 적은 없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패배감과 상실감은 극에 달한다. (죽음은 '해결'이 아니라 '미결'을 낳는다) 그것은 아걸이 건네준 총으로 송자호가 아성을 처단했다는 정도로 보상 받을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미 우리는 영화 속의 소마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3.
물론, 내가 좋아하는 영화라고 하더라도 이 영화에서 결점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제작이 '마구리'로 만들어졌다거나 총알이 절대 안 떨어진다는 것 같은 하드웨어적인 문제는 영화 외적인 문제에 불과하므로 논외로 한다고 하더라도, 이 영화의 가장 큰 한계는 '폭력성'이다.
이것은 폭력을 미화한다거나 YWCA 아줌마들께서 좋아하시는 것처럼 '폭력적인 영화는 청소년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치며...' 운운하는 그러한 폭력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우삼은 <페이스 오프> 홍보 관계로 방한했을 당시 '당신의 영화가 폭력을 미화한다는 비판이 있는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어느 덜떨어진 기자의 질문에 '내 영화는 오히려 폭력을 반대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더 덜떨어진 답변을 한 적이 있다)
이 영화가 가진 '폭력성'의 한계라는 점은 '수컷성'이라는 말과도 비슷한 것이다. 많은 평론가들이 지적했듯이 남자들의 유대가 반드시 폭력을 통해서만 드러난다는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을 빌려쓰자면 '마초들의 감수성을 자극하기에 딱 알맞은 영화' 정도라고 깎아내리는 것도 가능하겠다.
그 장쾌한 액션들도 따지고 보면 결국 폭력을 채색하기 위해 동원된 것들이고 보면 이 영화, 아니 오우삼의 영화들이 우정과 의협, 의리라는 이미 마초적인 주제들을 드러내기 위해 '폭력'이라는, 역시 마초들이 좋아하는 수단만을 줄기차게 쓰고 있다는 점은 비판받을 여지가 있는 것이다. 물론 평자에 따라서는 '동성애적 코드'라는 덜떨어진 해석까지 내놓게 하는 예의 그 '우정'에 대한 과도하고도 낭만적인 탐닉 그 자체도 역시 이 영화의 한계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러한 한계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영웅본색>은 썩 괜찮은 영화다.
가끔 사람들과의 건조한 관계나 합리성과 치밀함만을 요구하는 사회생활에 지쳐 뜨거운 무언가에 대한 갈증이 일어날 때면 나는 주저 없이 <영웅본색>을 본다. 물론, 스케일이 크진 않더라도 호쾌하고 아름다운, 그러면서도 어딘가 쓸쓸한 액션들이 그리워질 때도 <영웅본색>은 꽤 괜찮은 선택이다. (후반부의 부두 총격전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가치가 있다) 액션이 더 현란해진 <영웅본색 2>나 소위 홍콩느와르의 완성으로 불리는 <첩혈쌍웅>도 좋아하긴 하지만 어설픈 멜로가 들어있지 않고 쌈빡하게 남자들만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으면서 비장미와 우수를 잃지 않는 영화로는 세 편 중에서 <영웅본색>이 제일 낫지 않나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영화야말로 모든 신화들의 시작이요 끝이었으니 말이다.
덧붙여서
내가 사랑하는 이 영화에 대한 진실과 자료들에 하나씩 접근해보는 식으로 이 영화를 완벽히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던 개인 홈페이지가 어느덧 개설한지 3년을 훌쩍 넘겼다. 무식한 놈이 용감하다고, 영화에 대해 아는 것도 없는 문외한이 관심 하나만으로 덤벼들었던 일이지만 이제는 많은 분들이 도와주시고 자료도 제법 모여 그럭저럭 자리를 잡은 것 같다. 아직까지도 <영웅본색>이나 '소마'라는 이름에 가슴이 싸-해짐을 느끼는 분들이 계시다면 누추한 곳이나마 한 번쯤 들러주십사 하고 초청해보고자 한다.
오우삼, 주윤발 트리뷰트 사이트 A Better Tomorrow
http://www.johnwoo.pe.kr/abt/
추억영화 우원회 수습우원이자
짱께 느와르 무비 전문 검열우원
윤현중 (johnwoo@johnwoo.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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