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따라/음악 2003/05/12 10:08
전람회 1집부터 드러나던
김동률 개인의 조로(早老)적 성향 때문이었다.
고작(!) 20대밖에 되지 않은 두 청년이
압구정동 배추밭 이야기를 하며 '향수'를 노래하고
'기억의 습작'이라는,
나이에 비해 지극히 고답적인 제목(그 또래에서
'습작'이란 말 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게다가
'기억'까지 달고선)을 다는 모습에서
나는 마치 칼라를 꽉 조인 와이셔츠를 입은듯
어딘가 모를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취중진담과 J's Bar에서의 약간의 변화도 잠시,
마지막 앨범에서 다시 김동률은
빛바랜 졸업앨범을 꺼내들며
그 특유의 조로적 감수성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비슷한 감수성에서 나온 비교적 변화 없는 음악들의
비슷비슷한 멜로디도 역시
항상 속에서 뭔가 터졌으면...하고 바라던
그때의 나에겐 무척 답답하게 느껴졌었고...
그러다가 전람회가 해체되고
서동욱은 생활인으로(생활인이라고 하기엔 맥킨지에서 좀 잘 나가는 거 아닌가? - 잠시 질투...),
김동률은 솔로로 전향하여
'망각의 그림자'라는 제목의 앨범을 발표한다.
흑과 백의 단아한 칼라 속에
팬시한 디자인의 스폰지로 감싸여진 CD였지만
그건 내게
'망각'이라는 주제 속에 김동률이
아직도 기억이니, 추억이니, 회상이니 하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버거워보이는
조로적 성향을 아직 벗지 '않'고 있구나...하며 투덜대게 만들었다.
(대체 내가 왜 가수 개인의 취향에 대해 투덜거려야 했던 거지?)
그러고보면 내가 김동률에 대해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은
어느 정도 한계가 있지 싶다.
고급스럽지만 말랑말랑한
김동률식 발라드 중에서도
삶, 죽음, 회상, 추억 등으로 너무 멀리 달려가지 않는,
그리고 자신의 저음역을 무리하여 뽑지 않고
마치 첼로처럼 멜로디를 부드럽게 타게 하는
이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와 같은 그런 노래들.
물론 김동률이
주인공이 죽는 뮤직비디오 만들어
삶과 죽음의 의미도 제대로 모를
10대들의 흐릿한 감수성에서 돈을 챙기려는
그러한 사람들과 똑같으리라 생각치는 않지만,
(그러기엔 그에 대한 나의 관심이 좀 큰 편이다
- 애정이 크지 않으면 투덜거리지도 않았다)
김동률의 조로성 독백을 들으며 느끼는 당혹스러움은
무한궤도의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를 들으며 느끼던
나이에 걸맞지 않는 버거움과
비슷한 이유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나 '끝을 향하여'는
그래도 신선한 맛이라도 있었지만
매번 비슷한 멜로디에 같은 넋두리를 용인하기에는
비슷한 음악이 너무 많아 상투적이고
김동률식 발라드 자체의 완성도 역시
아직 그리 공고하지는 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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