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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형법은 가해자 처벌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형법을 배우면, 가장 첫 시간에 형법의 의의를 배우게 된다. (실은 형법 뿐만 아니라 모든 법학과목들이 의의 - 연혁 - 요건 - 효과 - 한계...의 순으로 서술된다)

그 중에서 초짜 법대생이던 내게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형법이 범인을 처벌하고 사회의 법익을 지키는 '보호적 기능' 뿐만 아니라, 범인의 인권을 보장하고 죄의 한계를 긋는 '보장적 기능'도 함께 추구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신문 등에서 범인이 저지른 참혹한 사건사고를 읽으면서 '이런 놈은 죽여야해'라는 둥 평범한 '일반인의 법관념'을 갖고 있던 나에게, 형법이 범인을 단죄하기 위한 역할 뿐만 아니라 범죄자를 보호하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가치관의 대전환을 요구하는 혁명적인 관점이었던 거다.

사실 형벌이라는 것은 국가공권력이 개인의 행위에 개입하는 가장 원초적이고 강력한(=폭력적인) 형태이다. (신이 내린 생명을 그 누가 빼앗고, 그 누가 구속할 수 있단 말인가?) 극단적으로 개인의 목숨까지 빼앗아버릴 수 있는(=사형) 이 폭력적인 형태의 국가공권력이 남발되거나 편파적으로 적용되지 않도록 합리적인 기준을 세우고, 역시 하나의 인간으로 태어난 '범인'에게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할 어느 정도의 '권리'를 보장해주기 위해 형법은 '범인의 권리장전'이 되는 것이다.

즉, 형법에 의하지 않고 범인을 사적으로 처벌하는 것은 용인되지 않으며, 그 공적 처벌의 범위 역시 형법에 정해진 테두리 안에서만 가능하다. 이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근대가 형법 위에 부여한 또하나의 의미인 것이다. (옛날 고조선 8조법이나, 함무라비 법전에는 이러한 범인의 인권 같은 사상은 들어있지 않다) 요컨대, 오늘날의 형법이란 사회정의 실현과 범인 인권보호라는 상반된 두 가치의 긴장관계 속에서 타협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인간의 합리성과 진보에 대한 낙관적 믿음을 기초로 점차 영역을 넓혀왔던 형법의 보장적 기능은 오늘날 많은 도전을 받고 있는 것 같다.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범죄의 경향이 갈수록 흉포해지고 잔인해지기 때문일 텐데, 이러한 현상이 심해질수록 사회구성원들 또한 필연적으로 강력한 형법을 지지하게 되기 마련이다.

2. 깊이 있는 성찰 없이 손쉽게 대중의 분노에 편승하는 일부 언론의 작태

지금 대한민국을 들끓게 만든 안산 아동성폭행 사건과 관련해 우려스러운 현상들을 많이 보게 된다. 그 중에서 가장 나를 놀래킨 것은, 신문 지면에 실린 어느 기자의 칼럼이었다.

[기자수첩] '○○이'엔 침묵하는 '인권단체'들

사실 비슷한 글을 mmzone에서 읽고 화가 난 적이 있긴 한데, 일반인이야 몰라서 그렇게 말한다 치더라도 먹물 좀 먹었다는 기자가 '인권'의 의미를 저렇게 곡해하고 '인권단체'를 조롱하는 글을 이른바 발행부수 1위의 신문 지면에 떡- 하니 실었다는 것을 보고 분노를 참을 길이 없었다.

우선, 저 기자는 사실 '인권'의 의미에는 큰 관심이 없다. '인권단체'를 운운하긴 했지만, 실상 기자가 눈엣가시로 여긴 단체는 박근혜의 국회발언에 우려를 표명했던 '참여연대'와 '인권실천시민연대'다. 당시에 해당 단체들이 약간 피상적으로 접근한 면은 있었을지언정 그것을 아예 '정파적인 반대'였다고 몰아붙이는 것은 오히려 기자가 정파적으로 인권단체(사실 참여연대는 시민단체지 인권단체도 아니다)를 바라보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저 기사를 쓴 기자 스스로가 '정치부' 차장이라는 점이 단순한 우연에 불과할까?)

참고로, 조중동이 '인권'을 얘기할 때는 뒤에 깔린 게 없는지 잘 봐야 한다. 국가인권위더러 '북한인권 신경써라'라는 엉뚱한 소리 하는 것은 이미 대통령까지 되읊을 정도니 치료불가상황이라고 해야겠지만, 이것 하나는 꼭 짚고 넘어가고 싶다. 예전에 청소년 성구매자 명단 발표했을 때, 조중동 한결같이 '이중처벌이다'라고 반대했었다. 이번 안산 아동성폭행 사건이나 연쇄살인범 강OO 사건에서 '흉악범에게 인권은 필요없다'라고 길길이 뛰는 사람들이 청소년 성구매자들의 인권은 참으로 자상히도 챙겨주더라. 살인이나 성폭행은 아무래도 아니겠지만, 그들 가치관에서 성매매 정도는 '허용범위 내'인 건지 묻고 싶다. (물론, 당시 논의에서 수긍할 면도 있긴 했지만, 아무래도 밤문화 좋아하는 사람이 그런 얘기하면 안 어울리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던 거다)

그렇다면, 조중동이 이런 문제에 유난히 더 호들갑을 떠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그들의 동물적인 상업성이 여기서도 빛을 발휘(?)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지, 대중이 듣고 싶어하는 말이 무엇인지를 간파하고 그 트렌드에 맞춰 기사를 뽑아내는 탁월한 능력은 여기서도 예외는 아닌 거다. (그렇게 그들이 대중의 취향에 맞는 기사를 써내면 대중은 그것을 역으로 이용하여 자신들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삼곤 한다)

[오마이뉴스] 언론, 분노에 불붙이거나 'MB어천가' 부르거나

노파심에 말하지만, 이 사건에 '인권단체'가 침묵하는 이유는 저 기자가 넘겨짚은 것과는 거리가 멀다. 즉, 그들이 2005년의 전자팔찌 입법화에 반대했기 때문에 지금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라는 기자의 얘기는 혼자만의 '소설'에 가깝단 얘기다.

인권이란, 북극성 같은 것이어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절대값이지, 피해자의 인권, 가해자의 인권... 이렇게 상대적으로, 또는 대립되는 식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시위대의 인권만 있고 경찰은 인권 없냐는 논리는 그래서 유치한 것이다) 더구나 안산 피해아동의 인권을 회복하기 위해 가해자에게 더 강한 처벌을 내리라는 논리는 성립하지도 않는다. 지구상 어디에도 피해자의 인권을 회복시키기 위해 가해자에게 더 강한 처벌을 내리라고 주장하는 인권단체는 없다. (만약 있다면 100% 사이비다) 인권은 항상 '보호되어야' 하는 가치지, '처벌을 통해 회복되는' 성질의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권단체가 이번 사건에 침묵하는 것은, 안타깝지만 이미 '발생'한 사건이므로 예방적으로 보호해야할 있는 '인권상의 논점'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로서는 가해자가 법이 정한 양형을,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받는 것이 앞으로 논의할 수 있는 최대의 인권이슈이다. 성폭행범의 양형을 높이자는 사후적 논의 또한 형사정책적인 문제로서, 직접적인 인권문제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3. 흉악범 처벌과 인권보장 사이에서 깊이 있는 문제의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형법의 보장적 기능, 범인의 인권보호문제도 오늘날 많은 도전을 받고 있다. 범죄의 흉포화 경향에 따라 강력한 형법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의 요구가 높아지는 것도 그렇지만, 최근 유력하게 논의되고 있는 '사이코패스'와 같은 신종범죄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하는 것도 인권문제에서 새로운 시각을 요구한다.

최근의 많은 연구에 따르면, 사이코패스는 인간으로서 갖게 되는 감정능력이 결여되어 있는 등 일반적인 인간과는 다른 '타고난 범죄자'라고 한다. 이처럼 사이코패스를 일반적인 인간과 구별되는 '생래적 범죄자'로 보려는 인식이 퍼진 것은 사이코패스 연구가 주로 인권후진국으로 악명 높은(=인간과 인권에 대한 믿음이 약한) 미국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여하튼 이 논리가 범죄가 횡행하는 오늘날 사회구성원들 사이에서 널리 유행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흉악범을 보고 '돌로 쳐죽여라!'라고 분노하는 사회구성원들의 본능적 복수심(사회정의 구현 등, 어떠한 말로 포장해도 결국 그 근본은 원초적인 복수심임을 부정하기 어렵다)과 싸워 잘못을 저지른 인간(범인)의 인권을 수호하는 것은 인권운동의 영원한 속성이라고 하겠지만, 사이코패스처럼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타고난 포식자에게도 '인권'을 인정해야 할 것인지는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더구나 그 포식자가 저지른 참혹한 범죄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마당에야 더더욱.

개인적으로, 범인 인권보장문제가 앞으로 깊이 탐구해야할 분야 중 하나가 바로 이런 분야가 아닐까 한다. 17~18세기 이후 폐기된 것으로 여겼던 '생래적 범죄인' 이론이 21세기에 다시 등장하다니, 어처구니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더 강한 형법'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비등해지면 흉악범에 대한 양형기준도 재검토를 요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기본적으로 형사정책적인 문제라고는 해도 인권활동/연구단체 역시 이에 대해 자신들의 입장을 정리해두어야 할 것이다. 예컨대, 사이코패스 성폭행범에 대한 화학적 거세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이루어졌다면, 인권진영은 어디까지를 허용하고 어디까지를 지켜낼 것인가?

** 흉악범에 대해서도 인권보장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개인적 신념에 비추어보더라도 상습/흉악성폭행범에 대한 양형기준 상향 또는 화학적 거세 도입 등은 검토해볼만한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4. 그리고 자잘한 얘기들

-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난 사안에 대하여 청와대 주인이 왈가왈부하는 모습, 보기 좋지 않다. 더구나 '영원히 격리' 운운하는 것은 국가공권력의 최고정점에 앉은 자가 말하기에는 너무나 경박한 얘기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 사건에 분노하되, 이성을 잃지 않는 진중권의 비평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입장이다.

[진중권] "MB '아동 성폭행범' 발언…포퓰리즘 전형"

- 개인에 대한 공권력 개입이 한 번 이루어지기 시작하면, 그것을 예전처럼 완전히 금지시키기는 너무나 어렵다. 한 번 기준이 설정되면 그 범위가 계속 넓어지는 쪽으로 가기 때문이다. 그 어떠한 경우에도 침범할 수 없는 '절대의 영역'을 설정하는 일. 그것이 인권보장의 핵심이 아닐까 한다. 흉악범에게도 인권을 보장하는 것은 그 사람이 예뻐서가 아니라, 흉악범의 인권이 (국가에 의해) 무너지면 우리의 인권도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날라리 무도인] 가해자의 인권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

- '인권'이라는 차원에서 주절주절 적다보니 피해자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해 참혹함을 느끼고 분노하는 것은 나 역시도 다를 바가 없다. (나, 얼마전에 딸 낳았지 않은가) 한편으로는 술 마시고 여자를 사는 것을 남자답다고 여기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 사건이 이처럼 큰 반향을 일으키는 것이 아이러니칼하다는 생각도 든다. 대한민국이 언제부터 그렇게 성폭력에 엄격한 나라가 되었을까.

[프레시안] '영웅호색' 입에 올리는 당신은 다른가?

멜 깁슨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라는 영화가 기독교인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그 영화가 가진 '신성'(divinity) 때문이 아니라 '사실적인 잔혹성' 때문이었다는 일부 평론가들의 지적이 있었다. 비슷하게, 이 사건이 불러온 반향의 실체는 사실 '성폭력'의 문제가 아니라 '끔찍함' 그 자체 때문은 아니었을까.

- 이 사건은 피해아동의 이름을 써서 '○○이 사건'으로 불리고 있다. 물론 방송에서 붙인 가명이긴 하지만, 성폭행 사건에 피해자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절대 피해야할 일로 안다. '발바리 사건' 같은 명명법이 성폭행 사건을 희화하하여 문제의 심각성을 희석시키는 것과 비슷하게, 이 사건의 명칭도 좀 더 피해자를 배려하는 쪽으로 수정될 필요가 있다.

[세계일보] "'○○이 사건'이 아니라 '조△△ 사건'입니다"

다행히 이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공감대가 형성되어 가는 것 같다.

[연합뉴스] '○○이 사건' 명칭 '조△△ 사건'으로
[아시아경제] 정치권, '조△△ 사건' 명칭 제안 '공감'
[SBS] "○○이→조△△"…전자발찌 '평생 부착' 추진
[한국일보] '○○이 사건'→'조△△ 사건' 으로 표기합니다
[국민일보] '○○이 사건' → '조△△ 사건'으로 바꿔 표기합니다
[서울경제] '○○이 사건' 표기 '조△△ 사건'으로

- 피해아동의 쾌유를 빌 수도 없을 정도로, 아동은 평생 지워지지 않을 신체적, 정신적 상처를 입었다. 아이의 영혼만큼이라도 아프지 않고, 깨끗하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09/10/07 07:03 2009/10/07 07:03
http://morehj.com/blog/trackback/808
비밀방문자  | 2009/10/10 04:51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2009/10/11 06:17
NateOn으로 보냈습니당.
박용진  | 2010/06/17 08:28
잘 읽었습니다. ^^; 사실 저도 예전에는 이런 일에 대해서 TV 보면서 '저런 인간은 죽어도 싸다...'라면서 길길이 날뛰며 그러다가 잊어버리는 아주 일반적인 사람이었는데요, 요즘들어 형법 책을 들여다보면서 다시금 느끼게 되더군요.


안그래도 이 문제에 대해서 법대를 다니는 제 친구와 술을 마시면서 주제넘게 법대생을 상대로 논쟁 아닌 논쟁을 한 적이 있었는데... ^^;;
대부분의 경우 싸이코패쓰나 아동 강간범 같은 중범죄자들은 가해자의 입장에서 이런 중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스스로 정신적인 피해나 상처를 전혀 받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그동안 억눌려 왔던 욕구를 표출하고 해소하는 정도겠죠.

그에 비하면 피해자는 피해자 본인은 물론 가족들과 주변 친지들까지 평생을 정신적인 고통 속에서 그것을 극복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점이 있습니다. 물론 그 부담은 고스란히 본인들의 몫이지, 국가가 해결해주거나 가해자 본인이 나서서 눈물로 늬우치며 보상해 주거나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형벌을 중하게 한들, 그게 뭐가 큰 도움이 되겠습니까? 복수심이 어느정도 해소될 뿐이죠.

그럼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에 대해서 '아동' 성범죄자라는 이유로 성인을 대상으로 한 가해자보다 더 중한 처벌을 가해야 한다는 피해자 가족들과 시민들의 주장이 옳은가? 가해자 중에서는 나중에 교화를 통해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성범죄자들이나 특히 아동 성범죄자의 경우 어떤 수를 쓰더라도 새로운 사람들로 거듭나는 경우가 드뭅니다. 나오자마자 바로 일을 저지르는 경우도 많고, 아동 성범죄자들의 경우 대부분 전과가 많습니다. 안산 사건도 마찬가지였구요. 술 마시면 대부분 여자가 옆에 있어야 하고 2차가 일반적인 한국 남자들의 왜곡된 성 의식도 문제가 있지만 성 범죄자들의 왜곡된 성 의식은 일반적인 남자들과는 또 다릅니다.

가해자의 인권도 중요하다?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런 논리를 펴시는 분들은 그 주장이 당연히 옳음에도, 대부분의 경우 가해자 즉 범죄자에 대한 강한 처벌 규정이 궁극적으로는 나중에 시민들에 대하여 국가 공권력이 과거 독재정권처럼 억압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음을 우려하는 것 같았는데요,
우리나라의 법 체계가 시대상을 반영하지 못하고 뒤쳐지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있고 비효율적인 것은 사실입니다만 우리나라가 과거의 독재정권으로 돌아가기는 시민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는 이상 어렵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진보 지식인들이나 법조인들이 지나치게 시민들과 사회를 믿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프로파일링이라는 것이 일부에서 유치하고 편협한 발상이라고 비꼬는 경우가 있고 이미 낡아가고 있다고도 합니다만, 이는 사건 해결을 위한 수사기법의 일부이지 실질적인 법 집행과는 관련이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또한 생래적인 범죄자로 보기보다는 그 유형의 범죄자들의 범죄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정한 행동 양식을 탐구하여 앞으로의 수사에 반영하는 기준을 세우려는 것이지 '이 놈은 이래이래서 선천적인 중범죄자다'라고 규정한 뒤 '앞으로 이런 유형의 사람은 모두 잠재적 범죄자로 관리하겠다'라는 뜻이 아닙니다. 실제 수사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언론의 그릇된 재미거리 이야기 내지는 기사일 뿐이라고 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현중님께서 오해하신 것 같습니다.

비단 성폭행 문제 뿐만이 아니라 어릴 적 부모로부터의 학대로 인하여 정서적으로 원만한 성장을 못하여 -신체적으로 본다면, 뇌 전두엽의 성장이 원활하지 않아 나이는 20대임에도 사회성을 관장하는 전두엽 기능이 5~7세 정도에 머물러 사실상 앞으로 어떻게 해도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습니다 - 고통받는 사람들도 몇 번 봐 왔기에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인 치료 및 재활 시스템의 체계적인 구축은 외치지 못할 망정 가해자 인권... 운운하면서 공권력의 악용 어쩌니 저쩌니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에도 그렇게 고개가 끄덕여지지만은 않더군요.
가해자의 인권이 중요하다? 진중권씨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글을 보면서 앞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한 여자아이가 제대로 된 사회인으로서 성장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중요한 기로에 놓여 있다는 사실은 - 부정적인 결과가 더 가능성이 높죠 - 가해자의 인권 앞에서 뒤로 밀려난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이런 걸 감안한다면 성범죄자, 특히 아동 대상 범죄자에 대해서 형벌을 고쳐 조금 더 중하게 하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이미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중대한 인권 침해를 저지른 것인데요.
현중님께서 아이의 영혼만큼이라도 아프지 않고, 맑고 깨끗하게 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마지막에 쓰셨고 저도 마찬가지 바람입니다만, 위에서 말씀드렸다시피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ㅜ.ㅜ


공교롭게도 친구와 이 얘기를 하는 동안 옆에 사법연수원 연수생들이 회식을 하고 있더군요. 제가 일하는 가게의 주 고객이라 얼굴을 알아본답니다. ^^;
답이 없는 문제네요...
이런 일을 간만의 특종 정도로 연일 매우 자세하고 크게 다룬 언론도 책임이 큽니다. 이름까지 거론해가며... 사실 이것도 인권침해에 해당되지 않나 싶습니다.

매우 심한 뒷북 답글이지만 그래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네요.
지식인들의 발언이 공권력 남용에 대해서 견제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는 것 정도로... 그냥 애교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 2010/06/17 10:35
와, 이런 잡문에 길게 글을 써주시다니, 영광입니다. ^^; 역시 형법을 공부하셔서 그런지 체계가 잡히고 논리가 갖춰져있네요. 저야 이제 형법이론들은 기억도 안납니다만...ㅡㅡ;;

용진씨의 전체적인 논지에 동의합니다. '가해자의 인권'이라는 측면에서 글을 쓰긴 했지만 저 역시 성범죄자에 대한 양형을 엄격하게 하자는 데 찬성합니다. (아마 이 논리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다만, 한 가지 점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무엇보다도, 국가권력의 폭주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언제나 타당하고 유효한 문제제기라는 점입니다. '누가 권력을 잡든 그간 이룩해온 민주주의와 상식은 후퇴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유권자들의 믿음은 이명박의 등장과 함께 송두리째 무너졌습니다. ㅡㅡ;; 그만큼 한국에서 상식과 민주주의의 뿌리가 허약하다는 의미고, 여전히 인치(人治)가 유효함을 증명합니다. 바로 몇년전까지만 해도 폐지를 하느냐 마느냐가 논의되던 국가보안법이 지금 펄펄 살아나는 것을 보면 국가권력의 통제가 얼마나 절실한지 여기게 됩니다. 유럽처럼 절대군주에 저항한 역사가 없고, 민주주의가 짧으며, '북한'이라는 변수가 있는 나라에서 국가권력은 언제든지 폭주할 수 있습니다. 지식인들이 국가권력을 의심하고, warning을 주는 것은 지식인의 의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나마 그것도 없으면 대중은 '끌려가게' 되니까요.

여담입니다만, 제가 지금 과천에 파견나와 공무원사회를 직접 접하고 있는데 정말 '영혼이 없다'는 말이 딱 들어맞습니다. 4대강 사업 같은
말도 안되는 사업을 하면서도 위에서 지시가 내려오면 한숨 푹푹 쉬면서 자기 소신 굽히고 그에 대한 세부대책 같은 걸 만들어냅니다. 불합리하다고 저항하는 일은 찾아볼 수 없죠. 다들 똑똑하단 소리 듣고 고시 패스해서 들어온 사람들인데도 그렇게 불합리한 지시를 받아들여가며 정권의 '공범'이 되어가는 모습에 자괴감과 불안감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사이코패스 이론의 경우도 한국에서 악용될 여지가 다분합니다. '범죄예방'을 위해 이 이론은 필연적으로 '사이코패스에 대한 사전검별과 위협제거'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 이론이 발전한 북미와 유럽에서도 이 이론을 실제 형사정책 안에 포섭하는 데 신중을 기하고 있는 마당에, 이 분야의 자체연구가 미흡하고 국가권력이 강대한 한국에서 이 이론이 언론을 통해 너무 앞서나간다는 느낌입니다. 일단 성범죄자에 대한 양형강화로 대응할 수 있을텐데,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 것 같더군요.

언론의 선정성은 용진님께서도 동감하시는 것 같습니다. 조두순은 모르겠으나 슬럼가의 전형적인 빈민범죄자인 김길태마저 '사이코패스'라고 기사를 써대는 언론의 '책임지지 않는 펜놀림'에는 화가 날 지경입니다.

아무쪼록 관심있는 긴 댓글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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