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5일 화요일에 샌디에고 한복판에 있는 발보아 공원(Balboa Park)에 갔다. 화요일에 무료입장할 수 있는 미술박물관을 가기 위함이었는데, 그 때문에 집사람이 조금 많이 걸었던 모양이다. 하루에 한시간은 걸어야 자연분만할 때 수월하다고 자기 혼자서도 항상 집 주위를 꾸준히 걸었는데...
박물관에 다녀온 다음날(수요일) 새벽 5시, 갑자기 밤에 화장실을 갔던 아내가 놀라서 나를 깨웠다. 양수가 터진 것 같다는 얘기였다. 양수, 양수... 말로만 들었지, 집사람 속옷에 밴 것이 양수인지, 아니면 소위 말하는 '이슬이 비치는' 것인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집사람은 급한대로 한국의 처가식구들에게 전화를 걸었고, 결국 미리 싸놓았던 출산용품들을 들쳐메고 병원으로 갔다.
병원은 우리가 가기로 되어 있던 스크립스 메모리얼 병원 (Scripps Memorial Hospital La Jolla). 며칠 전 산모 오리엔테이션을 위해 온 적은 있지만, 이렇게 급작스럽게 새벽 6시에 양수가 터져 달려오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어서 무척 당황스러웠다.
여기서 잠깐, 미국의 의료시스템에 대해 약간... 미국의 의료시스템은 한국과 조금 달라서, 일반적인 진료는 개인의사들의 사무실(Clinic이라고 한다)에서 받고, 큰 수술이나 입원은 그 개인의사가 계약한 큰 병원에서(물론, 그 개인의사 집도 하에) 받게 되는 2원적인 체계이다. 우리 역시 정기검진 등은 스크립스와 계약한 어느 의사의 클리닉에서 받았다. 참고로, 우리가 간 스크립스 메모리얼 병원은 미국내에서도 산부인과, 여성의학 분야에서 손에 꼽히는 스크립스 의료재단 산하 병원으로, 주 1회꼴로 예비산모들을 위해 병실투어를 겸한 오리엔테이션을 개최하고 있다.
어쨌건 그간 조금씩 익혀왔던 표현대로 'I think my wife's water is broken'이라고 말하자마자 그동안 새벽근무의 무료함에 약간의 잡담을 나누고 있던 당직간호사들이 일제히 일어나 일사불란하게 아내를 진통/분만실로 안내했다. (진통은 labor, 분만은 delivery라고 한다)
병원 투어에서도 보고 놀랐지만, 진통/분만실은 7~8평 정도 되는 넓은 공간으로, 출산을 앞둔 산모들을 위하여 쾌적한 시설과 섬세한 서비스가 인상적인 곳이었다.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넓은 침대에 누운 아내를 보고 안도한 데에는 깨끗한 시설과 헌신적인 의료진의 탓도 컸을 것이다.

그 후로 동이 트고, 조금씩 진통이 오기 시작하면서 집사람은 의료진의 조언대로 병원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40분 걷고 20분 쉬고, 40분 걷고 20분 쉬고... 걷는 동안 5분 간격의 진통이 오면 복도에 설치된 난간(핸드레일)을 잡고 가볍게 몸을 움직이며 분만준비를 했는데, 아무리 걷고 쉬고 해도 5분 간격의 진통이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이러다가는 정말 날 샐 것 같다는 생각. 자궁 또한 충분히 열리지 않았고...

결국 유도분만을 하기로 하고 옥시토신을 맞았다. (오후 4:30) 고등학교 생물시간에 배웠겠지만, 옥시토신은 자궁수축에 관여하는 대표적인 여성호르몬이다. 역으로 옥시토신을 주사하면 자궁수축이 촉진된다는 기발한 의술에 탄복할 새도 없이 집사람은 이제 본격적인 5분 진통(자궁수축 = Contraction)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복도 걸을 때처럼 버틸만 하다는 표정이었지만, 몇 회가 지나면서 고통스러워하기 시작했다. 이제 통증의 인터벌은 점점 짧아져 3분에서 2분으로, 급기야는 1분으로까지 내려왔던 것이다. 어디까지나 건강한 몸으로 주사나 마취제 없는 자연분만을 고집하던 집사람도 시간이 지나면서 고통을 견딜 수 없어 했다. 산소마스크를 쓴 채로 괴로워하는 아내의 모습은 지켜보는 나로서도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결국 2시간의 진통을 견디다 못해 우리는 무통분만주사(에피듀럴)를 맞기로 결심했다. (물론, 굳이 자연분만을 고집하지 말고 무통분만주사를 맞으라는 LA 친척분의 전화도 집사람의 결심에 조금의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무통분만주사를 맞을 것인지는 전적으로 당신 부부의 결정에 달려있다고 얘기해주던 간호사는, 우리의 결정을 듣자마자 다음 작전을 결행하는 병사의 표정으로 마취과를 비롯한 의료진을 부르러 뛰어나갔다. 갑자기 모든 것이 분주해지고 의사와 간호사가 쏟아져들어왔으며, (한국계 2세로 보이는) 마취과 의사는 거대한 의료키트와 몇 장에 걸친 동의서를 들고 우리에게 속사포와 같은 속도로 일련의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주사 중에 가장 아픈 주사는 어디에 맞는 주사일까. 나는 척추/척수주사가 가장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예전에 동생이 볼거리를 앓았을 때 태아처럼 몸을 웅크리고 척수액을 뽑아낼 때 괴로워하던 모습에 대한 트라우마일테지만, 해가 다 진 저녁 7시, 넓은 병실에서 괴로워하는 집사람의 모습과,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기계적으로 마취준비를 하는 마취과 의사의 기묘한 경직성, 무통분만주사가 단순히 하나의 주사기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마취과 의사가 들고온 거대한 의료키트 안에 빽빽히 든 패키지 전체라는 섬뜩함 등은 척추/척수주사에 대한 나의 두려움을 그 당시 더 한층 극단으로 몰고가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하지만 무통분만주사를 맞은 뒤(오후 7:15) 집사람은 놀랍도록 편안해졌다. 주사를 맞은 후 집사람은 의사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사이에 집사람의 자궁과 연결된 기계에서는 3번의 피크 그래프가 그려졌다. 당신, 지금 의사와 얘기하는 동안 3번이나 자궁수축이 있었던 걸 느낄 수 있냐고 아내에게 물어보자 아내는 놀랐고, 의사는 껄껄 대고 웃었다. 그럼 이제는 정말 자궁이 다 열리기만을 기다리면 되는 거겠구나. 의사 역시도 무통분만주사를 맞으면 길어야 6시간 안에 분만을 하게 될 것이며, 중요한 것은 자정 이전이냐 자정 이후냐일 뿐이라고까지 얘기했다.

아기를 낳기 위해서는 자궁이 최소한 10cm는 열려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처음 병실에 입원했을 때 집사람은 겨우 1cm가 열린 상태였고, 무통분만주사를 맞은 후에도 4cm 정도가 열린 것에 불과했다. 과연 오늘 중에 아기를 만날 수 있는 것일까?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온 것도 잠시, 갑자기 모니터에 표시된 태아의 심박수가 빨간색 하한선 밑으로 떨어지기 시작헀다. 이 기계들은 각 병실의 산모들 상황과 다 연결이 되어 있어서 A병실에 있더라도 B병실에 긴급상황이 발생하면 A병실 모니터에 B병실 환자의 상황이 붉은색 팝업으로 뜨면서 경고음을 내게 되어 있었다. (물론, 우리도 입원한 후 모니터를 켠 뒤, 다른 병실 환자들이 긴급상황에 처했다는 붉은색 팝업창을 우리쪽 모니터에서 종종 보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우리가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태아의 심박수가 하한선 밑으로 떨어지기가 무섭게 우리 모니터 화면 테두리가 붉은색으로 변하며 번쩍번쩍 경보를 울리기 시작했다. 의료진들이 다시 들이닥치는 순간에도 나는 '아, 저 화면이 다른 병실 모니터에서 팝업으로 뜨겠구나'라는 어이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영화배우 브랜든 프레이저를 닮아 항상 유쾌하고 유머러스 했던 그날의 당직의사(우리가 다녔던 클리닉의 담당의사는 그날 비번으로 오지 않았다)도 태아의 심박수가 다시 붉은 하한선 위로 올라가지 않자 제왕절개(C-section)를 해야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자연분만을 할 거라고, 제왕절개수술은 생각해보지도 않았다고 말할 틈도 주지 않고, 집사람은 의료진에 둘러싸여 수술실로 들어갔고 나는 다른 간호사들에 의해 수술대기실로 안내되어 무균복과 발싸개, 마스크, 머리수건을 쓰도록 지시받았다.
병원 투어를 할 때, 우리를 이끌던 간호사가 수술실 앞을 지나가면서 긴급상황이 아니면 이 문 너머로 갈 일이 없을 거라고 말을 했던 것 같다. 그런 말을 했는지 안했는지 확실치는 않아도, 난 그때 두꺼운 문에 위압적으로 붙어있던 큰 글자의 Authorized Persons Only라는 글자와, 굵은 그물메쉬를 댄 유리창을 보면서 조금 불안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이 문을 열고 복도 안으로 들어올 줄이야...

"I've wanted not to walk through this hallway."
수술 대기실에서 무균복을 갖춰입고 수술실로 들어가기 직전, 간호사에게 저런 말을 했었다. 간호사는 괜찮다며 나를 수술실로 안내했고, 내 눈앞에는 항상 이미지 속에서만 그려왔던 차갑고 추운 수술실의 모습이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진통/분만실의 아름다웠던 인테리어는 사실 거짓이고, 이것이야말로 '병원'이라는 공간의 진정한 속살이라는 듯... 수술실 내부는 진통/분만실보다 더 컸지만 그 넓은 공간이 메스와 겸자와 의료접시와... 모든 스테인레스 도구들이 부딪히는 금속소리의 반향으로 메워져 나의 두려움을 더 크게 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팔을 벌린 십자모양으로, 목 아래를 볼 수 없게 수술커튼을 드리운 아내가 벌벌벌 떨며 누워있었다.
아내는 정말 미친듯이 떨었는데, 두렵거나 추운 까닭이 아니라 수술에 의한 쇼크 때문인 것 같았다. 아내의 머리맡에 등받이 없는 작은 의자를 갖다 놓고 앉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괜찮다고 위로하는 것 뿐이었다. 대화를 나누는 우리의 머리 위로 드리워진 수술커튼 너머로는 아무 말 없이 제왕절개수술을 진행하는 두 세명의 의사와 많은 수의 간호사들이 있었다.
뭔가 나온 것 같으면서도 들리지 않는 울음소리에 아내의 몸떨림은 더 커져만 가고... 나의 두려움도 그에 따라 커져갔다. 그 때 나의 오른쪽 어깨를 두드리며 한 간호사가 말을 건넸다. "You want to cut your baby's cord?" 하느님 맙소사, 나왔단 말입니까? (2009년 9월 16일 밤 10:42)
아내 곁에서 일어나 아기가 놓여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많은 간호사와 조산원들이 아기를 잡고 있었고 그 중 한 사람이 내게 가위를 건넸다. 저게 내 아이인가... 얼굴을 찬찬히 볼 겨를도 없이 그들이 이끄는대로 가위를 들어 탯줄을 잘랐다. 긴장해서인지 자꾸 실패하는 나를 어느 조산원이 도와줬고, 간신히 탯줄을 자른 후 아내 곁으로 돌아왔다.
내가 자리에 돌아온 뒤에도 아내는 여전히 수술 중의 쇼크로 몸을 계속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 안타까운 상황에서도 나는 아내에게 아이를 보고 싶냐고 물어보았고 아내 역시 빨리 보고 싶다고 데려다 달라고 대답했다.
다시 간호사와 조산원들에게로 가 아이를 받아왔고, 아이를 아내에게 건네준 후 비로소 딸의 얼굴을 처음으로 뜯어볼 수 있었다. 첫 인상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정형화된 외계인의 모습 같았다고나 할까. 원체 찢어진 눈은 두꺼운 눈두덩 때문에 더 커보였고 머리는 뒤쪽으로 길쭉하게 '뽑혀' 나온 상태였으니까. 딱 내 딸임을 증명하는 낮은 코는 예전에 초음파 사진으로 볼 때보다 실물이 더 나아보였다. 세상에 갓 나왔음에도 잘 울지 않고 간헐적으로 빽 빽 거리기만 하는 점잖은 성격(?)도 나를 좀 닮은 것 같았고... (나 역시도 처음 나왔을 때 잘 울지 않아 외할머니께서 벙어리가 나온 게 아닌가 걱정하셨다고 한다)

수술커튼 너머에서 의사들이 분주히 지혈과 봉합수술을 하고 있는 동안, 아내는 갓 태어난 아기를 들고 수술실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웃어보였다. 그렇게 짧은 모녀상봉 이후, 아내는 다시 아기를 떼어보냈고 나는 카트에 실린 아기를 따라 신생아실로, 아내는 병실로 흩어지게 되었다.
신생아실에서 아기의 무게를 재고 간단한 신상체크를 한 후, 아내가 있는 병실(원래의 진통/분만실이었지만 이제 상황은 완전히 병실로 바뀌어 있었다)로 돌아오니 몇 명의 간호사들이 붙어서 아내의 배를 누르고 있었다. 출산 후 자궁 내 잔여물을 제거하는 작업이겠거니 싶었는데 내가 보기에도 피가 너무나 많이 흘러나왔다. 의료진에게 괜찮은 것이냐고 물어봤더니 정상적이라는 대답이 돌아왔지만, 핏덩어리가 그대로 흘러나오는 것이 무언가 이상했다.
대충 마무리를 하고 아기를 보고 싶다는 아내의 의향에 따라 신생아실에서 오복이를 데리고 와 다시한번 짧은 만남을 가졌다. 이 때 짧게나마 눈뜬 모습을 보았는데 그 조그마한 눈이 어찌나 까맣고 예쁘던지 출산 직후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보였다.
아이를 다시 신생아실로 돌려보내면서 조산원들이 아기 첫 목욕을 시켜주는 것을 바라보고 왔다. 병실로 돌아와 아내를 돌봐주다가 잠이 든 시간이 새벽 3시쯤. 전날 새벽 5시부터 깨어 있었으니 22시간만이었다. 이젠 다 끝났구나 싶은 마음에 순식간에 잠이 들었지만, 잠결에 의사와 간호사들이 아내에게 와 계속 무언가를 묻고 자기들끼리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 평범한 산후 산모상태 체크이겠거니 싶어 의료진이 왔는데도 계속 잤고 아내가 무언가에 사인 하는 것도 별일 아니겠거니 하고 넘겨버렸다.
다음날 아침, 10시~11시쯤 되었을까. 소파형 접이침대였지만 긴장이 풀린 탓인지 푹 자서 개운한 기분으로 일어나 아내의 얼굴을 봤다. 얼굴이 다소 붓긴 했지만 피부도 말갛고 좋아보였다.
"피를 많이 흘려서 수혈을 하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아침에 동의서 썼어."
아... 잠결에 들은 사인소리는 수혈(Blood Transfusion)동의서였고, 말갛게 본 아내의 얼굴은 핏기가 가셔 창백해진 때문이었구나. 너무나 놀라 또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때마침 들어온 의사는 정상적인 사람의 헤모글로빈 수치가 12인데 반해, 간밤에 아내는 7까지 떨어졌으며 현재는 6 이하로 2 유닛의 피를 수혈하겠다고 나에게 알려주었다. 의사는 힘들어하며 다시 소파침대에 걸터앉은 내 옆에 같이 앉아 당신의 아내가 제왕절개수술 중 무척 피를 많이 흘렸으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잘 보살펴주라고 위로해주었다.
유도분만제인 옥시토신은 자궁수축을 유도하는 호르몬이다. 따라서 옥시토신을 인위적으로 맞았을 경우, 분만에 따른 출혈시에도 계속해서 자궁을 수축시켜 피를 펌프처럼 뿜어내게 만드는 역작용이 있게 된다. 제왕절개수술처럼 인위적으로 출혈이 시작된다면 옥시토신의 역작용은 더 심해지게 되는 것이다.
수혈 담당 의사가 들어와 여러가지를 설명해주고, 수혈의 안전성에 대하여 자신들이 충분히 노력하고 있으며 안심해도 좋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 안심이 되는 듯 했다. 실제 수혈용 혈액이 들어오고 담당의사 1인의 입회 아래 간호사 2명이 서로 환자번호, 환자이름 등의 사항을 크로스체크하는 모습을 본 후에는 그래, 별 일 있으려나, 한 번 해보자 하는 자신감까지 얻을 수 있었다.
수혈 2유닛은 실제로 혈장(plasma) 1팩과 혈액(blood) 1팩, 다시 혈장 1팩과 혈액 1팩 등 총 4팩을 맞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각 팩을 수혈 받을 때마다 간호사들은 수혈 초기 15분 내에 아내가 오한, 구토, 메스꺼움 등을 느끼지 않는지 면밀히 모니터링했다. 다행히 별 탈 없이 2유닛 4팩을 다 맞을 수 있었지만, 여전히 피가 부족하다는 의료진의 판단 하에 추가로 2유닛 4팩을 더 수혈 받았다.
오후에는 약간의 음식이 나왔다. 놀랍게도 제리뽀와 저염크래커. 이후부터 재개되기 시작한 환자식은 한국인의 눈으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하드코어스러운 메뉴들 뿐이었다. 머핀, 에그스크램블, 베이컨, 시리얼, 커피, 비프슬라이스 등등... 집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쇠고기무국을 데워 병원으로 공수하기도 했지만, 산후조리식만큼은 미국시스템을 베낄 것이 못된다는 생각 뿐이었다.
결국 수요일 새벽 입원한 이후 4박 5일의 입원생활을 마치고 나와 아내, 그리고 오복이는 집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아내는 붓기와 결림, 피로 등과 싸우고 있지만 그런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처음 얻은 (그리고 2주나 일찍 나온!) 귀여운 딸의 얼굴이다. 양수터짐 - 유도분만(옥시토신) - 무통분만제(에피듀럴) - 제왕절개수술 - 수혈까지 5관왕을 달성했다고 나에게 놀림 받는 아내도 인자한 표정으로 아이에게 젖을 물릴 때만큼은 20대 때의 아름다움과는 다른 '엄마'로서의 고귀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것 같다.




세상은 놀라움의 연속이고, 나는 지금 정확히 그 놀라움의 가장 한복판을 지나고 있는 것 같다. 매일매일 나에게 삶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허락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2009/10/07 10: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