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새로운 경험들 2009/08/16 18:07

밤늦게까지 디즈니랜드에서 놀고, 다음날(8월 2일) 아침 여관을 떠났다. 전날 못 찍은, 애너하임 디즈니랜드 파크 도로변에 즐비하게 늘어선 야자수의 모습도 오늘은 여유를 갖고 찍을 수 있었다.
어제는 가든 그로브에 늦게 들어가는 바람에 모든 일정이 늦춰졌지만, 오늘은 비교적 일찍 일어나 다른 곳을 둘러볼 여유가 있었다. 여관 로비에 꽂혀있던 많은 브로슈어, 리플렛들을 살펴보다가 샌디에고 내려가는 길목에 있는 산 후안 카피스트라노(San Juan Capistrano)라는 작은 마을을 들르기로 결정하고 자동차를 남쪽으로 몰았다.
산 후안 카피스트라노는 가든 그로브와 샌디에고 중간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1776년에 세워진 작은 선교성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작은 전원마을로서, 이곳은 오렌지 카운티(LA 카운티와 샌디에고 카운티 중간에 있는 카운티) 유일의 선교마을(Mission이라고 한다)이라고 한다. 마을의 주된 산업(?)은 역시 성당유적을 중심으로 한 관광업인데, 브로슈어에 따르면 성당유적 외에도 이것저것 아기자기하게 볼 것이 많아보여 샌디에고 가기 전, 가볍게 들러 오후를 보내기에 알맞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을 서쪽의 Los Rios Street에는 도로 좌우로 작은 카페와 가게들이 많아 관광객들의 발길을 잡아끈다. 우리나라의 삼청동 또는 인사동을 연상시킨다고나 할까. 집사람이 사진을 찍은 곳은 향초, 화분 같은 정원용 소품을 팔던, Mi Tesoro라는 이름의 작고 예쁜 가게였다.

하지만, 나를 산 후안 카피스트라노로 이끈 이유 중 절반은 바로 이 Zoomars라는 어린이 동물원. "Petting Zoo"(직접 동물을 만지고 먹이를 줄 수 있게 만든 동물원)라는 호기심에 안 와볼 수 없었으나, 브로슈어의 그 예쁜 사진들이 사실 '사진빨'에 가깝다는 걸 깨닫게 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옛날 이곳에 살던 어느 가족의 가족농장을 동물원으로 개장하여 관광상품화했다는데, 직접 만질 수 있는 동물은 토끼와 염소 정도에 불과했다. 브로슈어 안내문에 적혀있던 소, 거북이, 망아지는 모두 권태롭게 우리 안에 퍼져있었고, 브로슈어 사진 속에서 해맑은 웃음의 아이들이 안고 있던 새끼 라마(남아메리카산 낙타의 일종)는 이제 다 커서 역시 똥이 가득한 우리 안에서 무료한 오후를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염소우리가 좀 볼만 했는데, 저렇게 관광객을 알아보고 품 안으로 기어들어오는 녀석이 하나 있어 기특할 따름이었다.


... 좀체 떨어지려 하지 않아서 약간 당황. ^^;

내가 사진기를 들고 있을 때에도 오른쪽 녀석은 계속 내 품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는지라 사진찍기가 영 어려운 게 아니었다. 내가 그렇게 좋은가?

토끼우리는 4~5평 되는 공간에 나무벽을 세워두고 짚을 깐 것이었는데, 어린이들에게 인기만점이었다. 하지만, 겁 많은 토끼입장에서 생각해보자면 저렇게 사람 손에 들려 사진 찍히는 것도 스트레스 받는 일일 것이다. 집사람 말에 의하면 토끼가 겁을 먹고 오돌오돌 떨고 있었다고. ^^;

이 마을에 초기에 정착해 살았던 오닐(O'neill) 가족의 집을 현재는 박물관으로 개장해 주말 점심무렵에 일반에게 공개를 하고 있다. 입장료는 무료라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면 만나게 되는 가이드가 대놓고 기부금(Donation)을 요구하기 때문에 1달러 정도는 준비해가는 게 좋겠다. 1800년 대 캘리포니아 정착민들의 실생활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오닐박물관 거실에서 한 장. 책상 위에는 오닐가족과 초기 캘리포니아 정착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몇 가지 책, DVD 등을 팔고 있었다.
Los Rios Street 관광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면 마을 북동쪽에 있는 산 후안 카피스트라노 성당(Mission San Juan Capistrano)으로 이동해본다.



오른쪽, 흰벽의 건물잔해는 1812년 지진으로 무너진 돌성당(The Great Stone Church)이다. UN이었나? 어디서 정한 '위험에 처한 문화유산 100곳' 중 하나로 꼽힌 곳이란다. 비단 이 유적만이 아니라 성당 내부에는 이것저것 볼만한 것들이 많다. 개인적으로는 수도사들이 밭을 갈고, 벌을 치고, 제련을 하던 뒷뜰의 생업시설이 가장 재미있었다. 표지판은 없지만 누가 보더라도 한 눈에 화장실임을 알 수 있는, 그런 시설도 있었는데 그곳의 또랑이 포도밭으로 이어져 천연거름을 공급하게 되어 있었다. ^^;;

관광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하도 더워 맞은편 길 건너에 있는 스타벅스에 가서 찬 바닐라 하나 시켜 먹었다. (서울에서도 잘 안 먹는 건데...) 브로슈어를 보니 스타벅스가 입점해있는 이 건물 역시 20세기 초에 지어져 각종 축제와 투우가 열리던 마을회관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산 후안 카피스트라노 관광을 마치고 샌디에고로 돌아왔다. 이제까지 이름 한 번 들어보지도 못했던 작은 마을이지만 그 옛날 스페인 선교사들이 서해안을 따라 개척과 선교를 하던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는 듯한 매력적인 곳이었다. 디즈니랜드보다는, 이런 작지만 오래된 마을이 어쩌면 캘리포니아와 미국의 역사에서 더 중요하고 진실된 곳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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