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룩허스트 하비즈에서 나온 시간이 대충 3시경. 이제 계획했던 대로 디즈니랜드에 갈 시간이다. 디즈니랜드가 있는 애너하임은 모형점이 있는 가든 그로브와 바로 옆 동네라서 이동하는 데 별로 많은 시간이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차를 몰고 가는 동안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디즈니랜드에 4시쯤 입장해서 해질녘인 7~8시쯤 샌디에고 돌아가는 것은 무리지 싶었다. 디즈니랜드 가는 길에 즐비하게 늘어서있는 호텔, 인(Inn) 같은 숙박업소들도 1박 2일의 유혹을 더했고... '1박 하고 갈까?' 했더니 의외로 집사람도 OK. (숙박비 아껴야 한다고 혼날줄 알았는데 이게 웬일? ^^) 결국 즉흥적으로 애너하임에 1박하기로 하고 근처에 숙소를 하나 잡았다.
참고로, 디즈니랜드는 애너하임(Anaheim)이라는 동네에 있다. 애너하임...하면 야구 좀 좋아한다 하는 사람들에게는 애너하임 앤젤스나 애너하임 스타디움이 우선 떠오르겠지만, 우리 같은 오덕들에게는 이곳에 위치해있을 가상의 초대형 군수산업체가 생각이 나리라. 바로 애너하임 일렉트로닉스. -_-;; 혹시나 해서 근처에 뭐 거대한 공업단지라도 있나 살펴봤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온통 야자수와 호텔들, 미키마우스 그림이 그려진 현수막들 뿐... 차라리 오다이바 일렉트로닉스였다면 요즘 같은 때 좀더 설득력이 있었을런지도 모르겠다. (음, 너무 오덕스러운 코멘트들 뿐이군)
어쨌거나, 숙소를 잡고 세수 한번 하고 나와 간단하게 늦은 점심을 먹은 후 디즈니랜드에 입성. 'Veni, Vidi, Vici...!' 뭐 그런 포즈 같다만, 이게 다 나름 이유가 있다. 말로만 듣던 바로 그 곳, '디즈니랜드'에 입장하기 직전이기 때문이다.
"바다 건너 미국에 가면 말야, 디즈니랜드라는 어마어마한 놀이동산이 있는데..."
정말 어릴 때부터 책이나 신문 같은 매체를 통해 내게 '놀이동산'의 대명사로 인식되던, 심지어는 '아메리칸 드림'의 절정으로까지 여겨지던 바로 그곳. 이미 가까운 일본, 홍콩 등지에도 같은 프랜차이즈가 있는데다, 미국 내에서마저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밀려 점차 영향력이 쇠락해간다는 디즈니랜드지만, 이곳이야말로 서른 몇 해 동안 내 인식체계 속에서 하나의 이데아로 자리잡고 있었던 바로 그곳이 아니던가. 사진을 찍을 때 두 팔을 자연스레 펼쳐든 것도 결국 그런 이유 때문이었으리라.
... 아참, 그리고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우리가 흔히 '디즈니랜드'라고 부르는 곳은 대개 올랜도에 있는 '월트디즈니월드'를 얘기한단다. 이곳 캘리포니아 애너하임에 있는 '디즈니랜드'는 이보다 훨씬 작은 규모로 '월트디즈니월드'의 축소판 격이라고 한다. (시내에 있으니 당연하다!)
뿐만 아니라 애너하임의 디즈니랜드 역시 하나의 놀이동산이 아니다. T자형 도로를 끼고 왼쪽에는 디즈니랜드 파크(Disneyland Park), 오른쪽에는 디즈니랜드 캘리포니아 어드벤처 파크(Disneyland California Advanture Park)가 마주보며 운영되고 있고, 그 남쪽에 디즈니랜드 디스트릭트(Disneyland District)라는 관광/외식단지가 늘어서있다. 이 3개의 지역을 '디즈니랜드'라고 묶어서 부르는 것인데, 파크와 캘리포니아 어드벤처 파크는 표를 사서 입장해야 한다. 둘은 독립적인 공원이어서 표를 별도로 끊어 들어가야 하지만 Hopper라는 표를 사면 양 공원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1일 Hopper 표는 약 90~100달러) 우리 같은 경우는 토요일 하루, 그것도 '파크'만 이용할 계획이어서 가장 저렴한 'Single Day Theme Park Ticket'을 구입했다. (즉, 저 사진 뒤로 보이는 캘리포니아 어드벤처 파크는 들어가보지도 못했다)
파크 중앙에는 창립자 월트 디즈니와 미키마우스의 동상이 서 있다. 예닐곱살때 계몽사 세계위인전 읽을 때 삽화로 기억되던 디즈니의 모습 그대로였다. (물론 멀리서 봤을 땐 순간적으로 어느 학교 본관 앞에 서 계신 어느 분 동상인가 싶기도 했다)
디즈니랜드 파크 자체가 이미 하나의 거대한 공원이지만, 좀더 세부적으로는 각 테마별로 몇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마치 우리나라 서울랜드에서 '모험의 나라', '환상의 나라', '미래의 나라' 등을 나누어 놓은 것처럼 이곳도 메인 스트리트(Main Street), 어드벤처랜드(Adventureland), 프론티어랜드(Frontierland), 미키스 툰타운(Mickey's Toontown) 등등 테마별로 놀이기구들이 모여있다. (서울랜드가 디즈니랜드를 벤치마크한 것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 중, 이 동상이 서있는 곳은 출발지라 할 수 있는 메인 스트리트(Main Street)다. 고풍스러운 스타일의 안내소, 기념품샵 등이 모여있는 곳인데, 서울랜드랑 다를 게 없어 조금 실망스러웠다. 아무리 디즈니월드보다 작은 규모라지만, 입구에서 느꼈던 짧은 감격은 여기서부터 슬슬 김이 빠지기 시작하는데...

처음 탄 놀이기구는 어드벤처랜드(Adventureland) 안에 있는 정글 크루즈(Jungle Cruise). 배를 타고 아마존강 유역을 재현해놓은 듯한 세트장을 돌아다니는 기구다. 강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코끼리, 악어, 피라냐 등 로봇동물들의 재롱(?)이 압권인데... 아마도 디즈니랜드를 소개하는 사진자료에 단골로 등장하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놀이기구가 아닐런지. (물론 오리지널은 올랜도에 있겠지만)

이것저것 신나게 타느라 사진이 별로 없다. 한창 재미있는 와중에, 미키스 툰타운 중앙에 있는 분수대에서 찍은 사진. 이곳 미키스 툰타운은 타면서 즐기는 놀이기구 대신 미니마우스 집, 도날드(덕) 보트처럼 디즈니 캐릭터들의 살림살이(?)를 중심으로 꾸며놓고 있었다. 우리부터가 미키마우스 세대가 아닌 데다, 미국 내에서도 디즈니 캐릭터들의 인기가 예전만 못해서인지 그리 인기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차라리 이제는 포케몬 동산이나 헬로키티 타운을 만드는 것이 미국에서도 더 돈이 될 것 같아보였다. 여전히 미키마우스나 톰과 제리를 좋아할 미국 어린이들이 얼마나 될런지.

신나는 스트리트 파티. 댄서들 모두가 '정말 신나고 즐거워서'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피곤해하는 사람, 일이니까 한다는 무미건조한 표정을 보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가족에게 최고의 가치를 선사한다, 착하게 돈을 번다는 '디즈니'라는 회사의 가치 또는 기업철학을 엿볼 수 있었다고 한다면 너무 지나친 표현일까.

스트리트 파티가 끝나고, 우리도 다음 놀이기구에 입장할 차례가 되었다. 이번에 탈 놀이기구는 이곳 디즈니랜드에서도 가장 오래되었다는 "잇츠 어 스몰 월드"("It's a small world"). 작은 보트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세계 여러 나라의 복장을 한 인형들이 펼치는 그 나라, 그 지역의 풍물과 춤을 구경하는, 비교적 단순하고 소박한 놀이기구다. 디오라마로 전세계 명소의 축소모형을 만들어놨나 싶어 탔는데, 조금 낚인 기분이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많았던 3D 영화가 이곳에는 단 1개뿐이었다. 투마로랜드(Tomorrowland)에 있는 "여보, 관객을 줄여버렸어요"("Honey, I shrunk the audience")가 그것이다. 극장 안에 들어가기 전에 3D 안경을 쓰고 옆 자리 아줌마에게 사진을 한 장 부탁했는데, 아무리 밤에 플래시 끄고 찍은 사진이라지만 손떨림이 너무 심했다.
앞서도 종종 내비치긴 했지만, 서른 몇 해 동안 놀이동산의 대명사로 인식되었던 곳 치고는 규모나 흥미거리가 조금 실망스러웠다. (올랜도를 가봐야 직성이 풀리려나?) 게다가 사람은 여전히 많아, 해가 진 뒤에도(여름에는 밤 12시까지 개장한다) 놀이기구 하나 타기 위해 30분씩 기다리는 일은 계속됐다. 마지막 일정으로 밤 10시 반, 호수가에서 펼쳐지는 불꽃놀이 '판타즈믹!'(Fantasmic!)을 보러 가기 위해 발길을 옮기는 나의 몸과 마음은 완전히 지쳐있었다.
판타즈믹은 마법사 미키 마우스가 마녀와 싸우는 내용(아마 1950~60년대 같은 이름의 흑백 애니메이션이 있었던 것 같은데?)의 뮤지컬인데, 호수가에서 펼쳐지는 물, 불, 빛의 현란한 쇼가 압권이었다.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같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인공들이 총동원되는 바람에 조금 일관성은 없다(?) 싶긴 하지만, 미키 마우스의 마법으로 끝없이 불꽃이 터지고, 모든 등장인물들이 거대한 유람선을 타고 호수를 돌며 일사불란한 동작으로 피날레를 장식하는 장관을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 다 녹아버린다. 그때 느낀 감동을 되돌이켜보면 지금도 가슴이 서늘할 지경이다. 포케몬에 밀려 다 죽은 줄 알았던 미키 마우스를 보면서 '아, 역시 클래식(고전)은 위대하구나!'라는 생각까지 들어버렸으니.

모든 일정을 마치니 밤 11시. 7시간 동안 집에 가야하는 부담 없이 저녁밥까지 굶어가며 재미나게 논 셈이다. 판타즈믹!을 다 보고 디즈니 + 미키마우스 동상이 있는 메인 스트리트로 다시 나와서 마지막 인증샷을 찍었다. 뒤에 보이는 성은 판타지랜드(Fantasyland)의 랜드마크격인 '잠자는 숲속의 공주 성(城)'(Sleeping Beauty Castle Walkthrough)다.
예전과 달리 애니메이션, 게임, 영화 등 엔터테인먼트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이제는 디즈니를 세계 제일의 기업이라고 말할 수 없을런지도 모른다. 디즈니랜드의 예상외로 작은 규모와 조잡함(?)에 실망을 느낀 것도 그런 선입견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마지막, 판타즈믹!에서 느꼈던 감동은 여전히 '디즈니'라는 브랜드가 가치있고 유효하다는 시사점을 던져주었다. 이제 더이상 디즈니는 세계에서 가장 크거나, 가장 돈을 잘 벌거나, 가장 성장속도가 빠른 기업은 아니겠지만,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수많은 '클래식'들을 가진, 깊이가 있는 기업이라는 느낌이었다.
물론 기업의 오랜 역사가 그 기업의 또다른 영속을 보장해주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좀더 긍정적인 신호는 그들이 돈을 버는 방식이 '사악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탈을 쓰고 거리 위에서 껑충껑충 춤을 추는 댄서들은 말할 것도 없이 아이스크림 판매원, 주차요원, 안전요원, 그 누구도 인상을 찡그리는 사람을 보기 힘들었다. (있긴 있다) 그것이 기업의 서비스전략이건 훈련의 결과이건, 그들이 유니폼을 벗는 순간 얼굴근육을 풀면서 헐크로 변하건 간에 적어도 유니폼을 입고 놀이동산을 찾는 사람들을 맞는 그 순간만큼은 그들은 정말로 자신의 일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오히려 애들 끌고 나왔다가 지쳐버린 부모들의 무표정한 얼굴이 더 인간적으로 보였을 정도다)
디즈니는 심지어 나같은 이방인에게도, 단순히 '친절'을 파는 회사가 아니라 가족의 가치를 존중하고 그들 모두가 즐거워할 수 있는 오락을 제공함으로써 '성실하고 착실하게' 돈을 버는 회사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성공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회사를 실패와 쇠락, 변화부적응의 대표적인 케이스로 묘사했던 수많은 경영학 교과서들에게 도리어 '너희가 바라는 바람직한 기업의 모습은 대체 무엇인가?'라고 묻고 싶을 지경이었다.
놀이동산에서 얻은 것은 단순한 주말의 즐거움만은 아니었다. 디즈니는 여전히 유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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