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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말에 태어날 나의 딸은 미국시민권을 갖게 될 것이다. 아직 자세하게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만 18세가 되는 해에 한국과 미국, 2개의 국적 중에서 하나의 국적을 택하게 된다고 한다. 그 전까지는 이른바 이중국적을 보유하게 되는 것이지.

떠나오기 전에 회사사람들에게 인사를 돌았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얘기를 나누다보면 아무래도 '아기' 얘기가 빠질 수 없는데, 미국에서 낳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마지못해 꺼내면 모두 '축하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로또를 맞은 양 대단하다는 표정, 부럽다는 표정...

나로서는 이게 참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이중국적이라는 것, 본인이나 자녀가 외국인(미국인과 같은말)이라는 것은 수많은 인사청문회에서 경험했듯 고위공직자의 주요 낙마사유 중 하나일 정도로 한국사회에서 '비애국'을 가르는 하나의 척도가 아니었나 생각해왔는데, 직접 당사자로서 주변인들을 만났을 때의 반응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딴판이었기 때문이다.

(당사자 면전에서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일 가능성도 있지만 최초의 반응이 모두 저랬다는 것은 그것이 단순한 make-up은 아니라는 방증이다. 최초의 반응은 꾸밀 수 없기 때문이지)

상상했던 것처럼 '그래도 공기업 다니는 사람이 자녀는 한국인으로 길러야지!'와 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고작해야 '때 맞춰 미국 가서 낳는 거 아냐?'와 같은 가벼운 정도의 타박(?)이 다였을 뿐.

임신한 후로, 샌디에고 연수가 결정된 이후 줄곧 애매했던 것은 이거였다. "한국의 언론과 여론이 이중국적에 비판적이라는 것은 단순한 '상상'에 불과한가?"

사실 나는 답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인사검증대상 고위공직자와 그 자녀에 대한 '이중국적' 문제가 자주 등장한 것이 내게는 때로 단순히 그들을 낙마시키기 위한 정치적 용도에 불과해보였다. (인사청문회는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도에 도입되었다) 관료, 정치인, 경제인, 언론인, 대학교수 등 이른바 한국사회의 주류라는 사람들 중에서 유학 등의 이유로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예전에 어느 신문에서 조기유학 열풍에 관하여 중산층 기러기 아빠 3~4명을 데려다 익명좌담을 한 기사를 읽었다. 어느 한 사람의 얘기가 인상깊었다. 자신은 90년대부터 공무원들이 자기 자녀들을 조기유학 보내는 것을 보고 자신도 자녀를 조기유학 보냈단다. 공무원들이 10년뒤, 자기 자녀들을 위한 정책을 펴리라는 예상이었고 (유감스럽게도) 그 예상은 지금 토플우수자에 대한 외국어특례입학 등의 정책으로 정확히 맞아들어가고 있단다.

이중국적과 조기유학은 조금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두 문제 모두 공무원 자녀들의 이해관계가 걸려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기득권을 확보 내지 확대해주는 노선을 걷지 않을까 하는게 이제까지 나의 어렴풋한 판단이었다.

또 하나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이른바 '미국물 좀 먹은' 사람들의 규모가 더 커졌다는 거다. 90년대 이후 여러 이유로 외국(=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사람들의 사회계층이 중산층으로까지 확대되어버렸다. 중산층 스스로에게는 낯간지러운 얘기겠지만, 일부 고위층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던 이중국적이 중산층에게도 당면문제화(?)되면서 단순히 이중국적을 '비애국적이다'라고 비판할 수 있는 여지가 사라졌다는 거다.

요컨대, 상류층 뿐만 아니라 중산층에게까지 이중국적이 그리 드물지 않은 현상이 된 마당에, 한국인은 더이상 이중국적에 '비판적일 수 없을 것이다'라는 것이 내가 가졌던 흐릿한 심상이었다.

하지만 나의 이러한 가정적 판단은 '한국인은 이중국적(미국국적)을 적극적으로 원하는가?'라는 별개의 질문에는 답해주지 못한다. 이중국적을 부정하기 힘든 상황론적 논리가 반드시 이중국적에 대한 적극적 희구로 전환된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여전히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유럽과 달리 인권의식이 부재하고 사회보장제도가 미흡한 미국사회의 잔인성에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놀랍게도 적어도 내가 만난 모든 사람들의 답은 '원한다'였다. 나의 생각은 아직도 '한국인들이 이중국적에 비판적이지 않은가?'라며 머뭇거리고 있는데, 현실은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이중국적을 갖고 싶다'로까지 발전해있었다.

물론, 나의 경험을 일반화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그나마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공기업 직원들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2009/07/22 15:05 2009/07/22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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