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디에고에 도착하여 잘 지내고 있다.
(셈해보니 어느덧 열흘이나 지났네~)
6월 17일 오후 2시 비행기로 한국을 떠났는데
시차 때문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시간이 6월 17일 아침 10시였다.
2시간 동안 샌프란시스코에서 머물며 입국심사를 받고
국내선을 타고 다시 2시간 더 날아가 샌디에고에 도착했다.
결국 샌디에고에 도착한 시간도 출발시각과 똑같은 6월 17일 오후 2시.
하루 벌었다는 느낌이랄까.
도착하고나서 가장 먼저 챙긴 것은 바로 자동차와 휴대폰이었다.
차 없이 못 다니는 나라라는 얘길 하도 많이 들어
샌디에고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자동차를 렌트하러 갔다.
한국에서 예약한대로 렌트카업체가 공항까지 픽업 나와 준 덕분에
그 길로 바로 렌트카회사로 가서 흰색 기아 옵티마를 싼 값에 장기렌트했다.
짐도 많고 아이도 생길 거고 해서 한국에서 몰던 아반테보다 조금 큰 차를 골랐는데,
한국인 직원이 계약에 없던 GPS 내비게이션까지 달아주어 더 고마웠다.
(처음에는 지도책을 사서 보고 다니려고 했는데, 열흘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니
GPS 내비게이션 없었으면 여기를 어떻게 운전하고 다녔을까 싶을 정도로 잘 쓰고 있다)
차를 렌트한 다음, 근처에 있는 한국인 마켓 내 휴대폰 대리점에 가서 선불폰을 개통했다.
대리점이 입주해있는 마켓에서 간단히 해먹을 수 있는 햇반 같은 것도 좀 사고...
그러고보면 도착하자마자 한인네트워크의 도움을 톡톡히 받은 셈인데,
이처럼 이역만리 타지에 처음 와서 교포들이 없었다면
과연 이렇게 편하게 타지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을까 고마운 생각이 들다가도
휴대폰 대리점이 입주해있는, 시온(Zion)이라는 이름이 붙은 한인마켓의 이름을 보고는
미국에서도 지나치게 거칠고 공격적으로 들리기 십상인 저 이름을
큰 상점의 이름으로 사용할 수 있었던 우리 교포의 대담함이랄까, 배타성이랄까,
뭐 이런 것들에 대해 묘한 상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쨌거나 21세기 현대사회에서 필수적인 교통(차), 통신(휴대폰) 수단을 갖추고 나서야
우리는 비로소 피곤한 몸을 뉘울 여관을 찾아 떠날 수 있었다.
이미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1박을 예약해둔 여관이 있어
주소를 GPS에 찍고 운전하고 가면 쉽겠거니 했는데
이게 웬걸, 본격적으로 운전이 시작되니 주변 차들의 속도도 빠르고
(미국에서 쓰는 시속 마일(M/hr)은 한국의 시속 킬로미터(Km/hr)보다 1.6배 빠르다)
한국에서 GPS를 써본적도 없거니와 이 녀석이 영어로 말하는 데에 당황하여
여관을 훌쩍 지나치는 바람에 후진등을 켜고 슬금슬금 역주행을 하며
자동차 천국 미국에서 혹독한 신고식을 치뤄야 했던 것이다.
그렇게 간신히 여관에 들어가 짐을 풀었는데
아무래도 임시거처이다보니 제대로 된 집을 구해야할 일이 신경쓰였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한국에서 봐둔 몇군데의 집 중 하나를 가보자 해서
다시 차를 몰고 학교 근처 주택가로 이동...
점찍어둔 집에 가봤더니 사회보장번호가 없다고 보증금을 2~3천달러나 요구하더라.
우리는 사실 보증금 생각도 안하고 와서 이걸 어쩌나 하고
고민을 가득 안은채 여관으로 복귀...
피곤하고, 힘들고, 배고프고... 에라 모르겠다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 하고
침대에 엎어져있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한글... 바로 옆에 한국식당이 보이더라.
대충 햇반 먹고 때우자는 집사람을 졸라
한국식당에 가서 불고기나 좀 먹을까 했더니 음식값도 정말 살인적.
결국 집사람은 우거지갈비탕, 나는 냉면 하나씩 먹고 아쉬운 배를 달래야 했다.
다음날 여관 체크아웃을 하고 본격적인 집 구하기에 나섰는데
학교 근처에 수많은 아파트먼트 하우스나 빌라들을 돌아다녀봐도
대체 당일자로 입주 가능한 집이 하나도 안 나오는 거다.
UC San Diego 여름학기가 아직 덜 끝나서인지 7월에나 가야 입주가 가능하다는 말 뿐...
하루종일 근처의 집들을 샅샅이 뒤져 (대충 8~9군데 돌아다녔던 듯)
간신히 가격대가 맞고 보증금도 적당한 수준의 당일입주 가능 빌라를 찾았다.
모든 짐을 집 안에 던져놓자마자 몰려오는 피곤함...
그나마 집사람이 기운을 내 짐 속에서 이불을 꺼내 덮고 잤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가구 하나 없이 카페트만 깔린 텅빈 집에서
집사람과 나 둘이서 노숙자처럼 퍼져 잘 뻔했다.
.......
쓰다보니 길어졌는데 -_-;;;
어쨌거나 이렇게 집을 구해 입주하기까지의 과정을 주절주절거려봤다.
이후로 4~5일간 은행계좌를 열고, 인터넷을 개통하고, 자잘한 가재도구를 마련하고 하면서
우리는 생각보다 빠르게 안정적으로 정착해가고 있다.
학교도 엊그제부터 개강을 해서 나가봤다.
비록 한국사람은 나 하나밖에 없지만 다들 학력, 업무경험, 영어수준들이 높아
적당히 긴장도 되고 좋은 것 같다.
이런 사람들 사이에서 나태하게 지내고 싶지 않다는 각오 같은 것도 생기고..
아직 의료보험 문제가 완벽하게 매듭지어지지 않아 집사람 출산문제가 걱정되고
생활비가 너무 높아 힘들다는 문제가 있긴 한데... 잘 되길 바랄 뿐이다.
아무쪼록 잘 지내고 있다. ^^;
PS : 여기서 한국뉴스를 보니 여전히 가관이다.
여기에 말하긴 어렵지만 웃긴 일도 많은 것 같고...
정말 더 있었으면 힘들었을 것 같은데,
남아있는 사람들에겐 미안하지만 적당한 시기, 임계점에 다다르기 전에
한발짝 떨어져있을 수 있어 다행이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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