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괴수 나와 꺄오오~ 하고 불 뿜고 그런 영화 좋아하는지라
요즘에는 그다지 (내게는) 볼 게 없는 영화 비수기가 아닐까 싶었는데
그래도 '러브레터'로 기대치가 높아진 이와이 슈운지의 '4월 이야기'가 개봉중이어서
별다른 망설임 없이 그 영화를 보기로 했다.
비가 갠 맑은 봄날 토요일 오후,
게다가 그것도 상영 30분 전에 운좋게 표를 구할 수 있어서
다음 회를 기다리거나 하는 시간낭비 없이
기분좋게 영화관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
첫 장면에서 주인공의 이삿짐을 날라주는 이삿짐센터(?) 일꾼
세 사람 중 한 사람이 '러브레터'에서 집배원으로 나온 것을 눈치챘다.
꼭 그것 하나만이 아니더라도
이 영화는 이와이 슈운지 감독의 팬들이 '이와이 월드'라고 하는
독특한 세계 안에 포섭되는 많은 특징들을 지니고 있었다.
'러브레터'에서는
일본의 겨울과 눈이 저렇게 아름다왔던가...하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는데,
이 '4월 이야기'에서는
일본의 봄과 벚꽃이 저렇게 아름다왔던가...하는 생각이 든다.
그 풍경과 여백을 아름답게 잡아낸 카메라워크라든가
- '러브레터'의 영상이 눈 같은 투명하고 차가운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면
이 영화의 영상은 잔디처럼 포근하고 상큼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
감독의 위트를 느낄 수 있게 하는 대사들과 하나하나마다의 에피소드들.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 너무나 잘 꾸며진 스크린 위의 영상들은
왜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이와이 월드'라는,
그리 특별한 것 같지 않으면서도 빠져들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묘한 매력의 세계에 열광하게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은연히 제시한다.
...........
이 영화는 분명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한시간 10분이 채 될까말까 한 짧은 상영시간 때문에
뭔가 더 있을 듯 진행되다가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바람에
허탈한 웃음마저 터뜨리던 영화관 안의 많은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느꼈던 것처럼
이 영화는 어딘가 허한 빈틈을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그 빈틈은
'여백과 여운의 미'를 위해 의도된 것이 아니라
아기자기하고 예쁜 영화를 만드는 이 감독의
어쩔 수 없는 한계에서 발생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더욱 치명적으로 보인다.
'서사'의 결핍.
'이야기'의 부족함이다.
분명 이 영화는 각 에피소드들이 아름다운 영상 속에 싸여
우리의 시선을 잡아끈다.
하지만 그 에피소드들은
'추억 되돌리기'의 요소들로서 작용했던 '러브레터'의 에피소드들처럼
일정정도의 구체성을 띤 주제의 요소들로 작용해주지 못하고 있다.
알갱이 알갱이 하나하나는 예쁘지만
그것들은 응집성 없이 '느슨하게', 그리고 '산란(散亂)하게' 놓여져있다.
영화관에서 주인공에게 응큼하게, 그리고 유머러스하게 접근하던
이상한 남자의 역할도
주인공의 저녁식사 제의를 이미 저녁 먹었다며 거절하다가
나중에 배가 고프자 밥 좀 얻어먹어도 되겠냐며
슬금슬금 주인공의 집으로 들어와 식은 카레를 데워먹던
신경질적인 옆집 여자의 역할도
영화가 끝난 뒤 곰곰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그렇게 웃어야할 정도로
적재적소에서 '바로 그 역할'을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러한 캐릭터는 분명 아니었던 것이다.
'선배를 연모하여 동경으로 유학온 한 대학새내기가
그리워하던 선배를 만나는 아련한 감정의 스케치'를 표현하기에는
감독의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이 '러브레터'만큼 강했던 것 같지 않고
그래서 결국 감독은,
필연적으로 느슨해져 붕- 떠버린 영화 서사구조의 공간들을
자신의 장기인....위트 있고 팬시상품처럼 예쁜 '에피소드들'의 묶음으로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게 '예쁘게' 메워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글쎄...
고지라 같은 괴수영화나 좋아하는 놈이
이런 얘기 하는 것 자체가 설득력이 없는 얘기이고....
'주유소 습격사건'이 재미있다고 2백만명 이상이 관람했다는 걸 생각하면
'4월 이야기'의 이러한 '빈틈'은
어쩌면 아주 소소한 것일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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