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게도...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삼성 비자금 사건.
독재정권시절부터 생존을 위해 마련해온 전통이겠지만, 삼성이라는 회사도 21세기를 사는 이상, 자신들의 구습이 떳떳지 못한 것이며 언젠가는 털고 가야 한다는 것쯤, 당연히 알고 있을 거다. 하지만, 결국 털어내지 못하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이재용으로의 세습체제를 무사히 안착시키기 위해서인 것 같다. 삼성이 기를 쓰고 이뤄내야 하는 것, 삼성의 마지막 남은 아킬레스건이 바로 이거니까.
1. 이재용
이재용이라는 사람, 아마 요즘의 우리나라 청년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일 거다. 하지만, 나는 이 사람에 대해 좀 다른 쪽으로 관심이 가는데, 과연 '한국에서 제일 잘나간다는 기업의 재벌 3세로서 그의 사고방식은 어떤 걸까...?' 하는 궁금함이다.
도통 인터뷰도 안 하고 해서 이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는 자료는 거의 없다. 기껏해야 e-삼성(이재용이 만들었다가 아무도 모르게 정리해버린 수수께끼의 회사)이나 에버랜드 전환사채 문제 정도인데, 이런 걸로는 도대체 그 사람의 생각과 사고를 알 수가 없다.
과연 그는 깐깐한 일본기업인 같은 할아버지 이병철, 외로운 隱者 같은 경영자 아버지 이건희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즉 그는 가부장적인 (그리고 부끄럽게도 신격화까지 되어 있는) 선대회장들의 위상과 다른 계몽군주와도 같은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하는 궁금증 때문에 이 사람의 사고방식이 더더욱 궁금했던 것이다.
만에 하나, 그가 선대 왕회장들과는 다른, 경제적 민주주의의 가치를 이해하고 철학적으로 사고하는 영민한 사람이라면, 삼성은 이재용의 시대에 와서 이전 시대와는 다른 창조적이고 개혁적인, (좀 더 바람을 섞어보자면) 이제까지의 세습경영을 거부하고 주주자본주의로 돌아가는 것과 같은 놀라운 파격까지도 기꺼이 수용하여 마침내 '시스템에 의한 지배'로 굴러가는 기업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이재용에 대한 일말의 호기심은 이번 김용철 변호사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 여지없이 무너져버렸다.
한겨레21에 실린 김용철 변호사의 인터뷰 중 일부. 정말 김용철 변호사의 말대로 "국법 질서에 대한 느낌이 없다" (민사사건과 형사사건에 대한 개념조차 없는 것 같다)
이것은 이재용이 "무식하다"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회와 경제정의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인가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없는 것 같다. (괜히 기업인에게 거창한 '철학'까지는 요구하지도 않는다)
물론, 저 상황의 저 말을 갖고 이재용이 '옳고 그름에 대한 인식이 없다'라고 섣불리 말할 수는 없다. 억울해서 한 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그러하다면 이재용의 법의식은 '나에게 딱지를 떼려면 저 모든 불법주차 차량에 모두 딱지를 붙이고 난 뒤에 하라'라고 항변하는 보통사람들의 그릇된 법의식과 하나도 다를 게 없어진다. 명색이 한국 최고의 기업의 차기총수가 될 사람이 불법주차나 음주운전을 한 운전자들과 법의식이 같아서야 되겠는가 말이다.
난 언제나 1인 人身에 의존하는 시스템은 그 지도자가 아무리 영민한 계몽군주라 하더라도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믿는 입장이었다. 이재용으로의 경영권 세습, 이재용의 신격화 같은 것이 '삼성'이라는 한 조직의 어쩔 수 없는 집단적 행동이라고 아무리 좋게 이해해준다 하더라도, 한 해 130조의 매출을 올리는 거대기업이 추종하는 1인의 사고가 저러하다면 저건 좀 암담하다 싶다.
2. 거대한 침묵, 어쩌면 공범의식
놀랍다.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이 거대한 비자금 사건에 대한 거대한 침묵이.
어떤 블로거는 이 삼성 비자금의 규모보다도 이에 대해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거대한 침묵이 더 소름끼친다는 이야기를 했다.
언론은 최대 광고주 삼성의 눈치를 봐야 해서 그렇다고 하자. 하지만 회사, 시장, 거리, 택시, 심지어 지하철 취객의 입에서도 이에 대해 '씨발...' 이라고 내뱉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언론부터가 스스로 입을 봉하고 있기 때문에 의제 자체가 설정되지 못한 탓인가?
어쩌면 이 기괴한 침묵의 기저에는 우리 모두의 동의가 있다는 무서운 생각을 했다.
국정감사가 끝난 후 국회의원들을 위해 룸살롱을 잡아주는 피감기관 담당자, 건축인허가를 위해 공무원에게 돈을 건네는 건설업자, 물건납품을 위해 대기업 담당자에게 향응을 베푸는 하청기업 사장님... 그 어떤 사람도 이 더러운 커넥션에 대해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다. 먹고살기 위해서 억지로 한 생계범이건, 그게 '처세술'이라고 굳게 믿는 확신범이건 간에 자신 역시 그 커넥션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남에 의해 들춰내지는 게 싫은 것이다. 이것은 '나서기 싫어하는' 지극히 한국적인 문화 탓일 수도 있고, 좀 더 어둡게는 '나도 그랬기 때문에...'라는 공범의식 탓일 수도 있다.
3. 매 맞는 비자금, 봐주는 비자금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게 되면, 모든 비자금 사건이 전 국민의 공분을 자아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전두환, 노태우 비자금에 대해 분노했던 것은 그들이 권력을 잃고 온 국민의 적이 되었던 시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권력을 잃은 정치인에 대한 분노는 '정의'라기보다는 '엔터테인먼트'의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그것이 기업인의 비자금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택시기사부터 판사까지 모두가 기업인을 구속했을 때의 경제위기를 이야기하며 '경제를 고려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한다.
...누가 너더러 그런 걱정 하래!!!!!!
4. 온 국민이 걱정해주는 삼성
이처럼 언제부턴가 온 국민이 나서서 대기업을 감싸준다.
나 같으면 '돈도 많이 버는 xx'가 그런 못난 짓을 한 게 한심해서라도 더 욕을 하는 게 맞다고 보는데 나를 뺀 대부분의 대한민국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버는 분'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봐주자고 한다.
자기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이, 이건희를, 정몽구를, 이명박을 옹호하는 사태는 '계급적 이해'의 틀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다. 더더구나 한국에서는.
일전에 인기를 끌었던 조지 레이코프의 < 미국의 진보 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 -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과 같은 책에 의하면 유권자들은 자신의 계급적 이해보다는 자신의 가치체계와 프레임('사고의 틀' 정도로 번역하면 되는데, 이 말 역시 요즘 유행어가 돼서 한국사회에서 기똥차게 고생하고 계신다. 같이 고생하시는 말로는 'UCC'가 있다)에 따라 후보를 고른다고 한다.
이러한 이론에 따르면 빈민층이 이건희, 정몽구, 이명박을 지지하고 옹호하는 것은 그들 개인이 아니라 그들로 現身한 '그 어떤 가치'다. 짐작하는 바와 같이 '그 어떤 가치'란, 다름아닌 '돈(경제적 성공)'이다. (씨발...)
... IMF외환위기는 참으로 무서운 사건이었다. 그 사건이 민주화 이후 목표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우리의 모든 영혼을 '돈' 앞에 복속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5. 우리가 삼성의 비자금을 무서워해야 하는, 그리고 분노해야 하는 이유
군사정권 시대에 삼성을 비롯한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비자금을 만들었을 거다. 충분히 이해한다. 선거 한 번 치를 때마다 피같은 돈을 뜯어가는 정치인에게 분노하여 어떤 노회장은 일흔 살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정치에 뛰어드시기까지 했으니.
하지만, 시작이 어떠했건 간에 이제 대기업의 비자금은 그러한 '생존을 위한 수동적 수단'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관리도구의 의미로 이용되고 있다. 마지못해 뜯기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상대방을 조종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이번 비자금 리스트에 법조계만 있고 정치권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비자금은 두려워하는, 그래서 조종해야만 하는 대상에게 간다. (삼성이 일개 자영업자에게 로비할 턱이 없다) 즉, 이제 남은 관리대상은 오로지 법조계뿐이라는 거다.
노무현이 그랬다더라. 이제 권력은 정치가 아니라 시장으로 확실히 넘어간 듯하다고. 정확한 인식이라고 추켜세울 것도 없는, 너무도 당연한 이 시대의 풍경이다. (하지만, 이 말은 대한민국 건국 이래 가장 삼성의존적이었던 정부의 수장이 하기엔 낯뜨거운 것이 사실이다) 삼성이라는 떡집 앞에서 코 흘리면서 남는 떡 없나...하고 기웃거리는 날파리들이 너무나 많지 않은가. 언론, 취업준비생, 정가, 관가, 법조계, 문화계... 모두가 삼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 시키지도 않은 삼성 변호를 자발적으로 한다. '비자금과 로비는 대한민국의 공통된 문제다'라고...
하지만 삼성이 아니라 누가 됐건 비자금을 조성하여 뇌물을 주는 것은 처벌받을 일이다. 그것은 사회의 건전한 의사결정을 마비시키고 합리적인 시스템을 무시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모든 것을 경제력에 복속시켜버린다. 영혼까지도.
대한민국 사람들의 모든 가치가 정말 '돈이면 다 좋다'라는 것이라 하더라도, 경제력이 모든 것에 앞서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그 자체로서 소시민들의 지옥이다. 그런 사회 속에서 소시민들은 결코 대자본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사회를 그런 경제력의 지옥으로 만드는 데 일조하는 행위를 하는 삼성을 봐주자고 하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삼성에게 내놓겠다는 멍청한 짓이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이 같은 칼럼을 쓰는 사람은 역겹다.
매일경제 2007.11.1자 [데스크칼럼] 불편한 진실, 불량한 폭로
최대 광고주에게 잘 보이기 위해 억지로 쓰는 글이 아니라 아예 뼛속까지 '삼성'이라는 집단에 충성하고 싶어하는, 몸은 매경에 있지만 마음만큼은 오로지 삼성뿐이라는, 마치 정철의 <사미인곡>(思美人曲)을 연상시키는 애처로움까지 느껴지는 글이다. 인간이 이렇게까지 비루할 수 있구나, 배웠다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영혼을 팔 수 있구나 하는 생각. (테레사 수녀에 대한 비유에 이르러서는 분노까지 치민다)
......
분노하자.
그리고 관심을 갖자.
절대로 잊어버리지 말자.
내 발등을 찍는 심정으로 내 안의 공범의식을 몰아내자.
아무도 말하지 않는 건 여기에서도 마찬가지인 듯...^^;;
나의 이익이 저들과 연관돼 있다고 믿는 데서 나오는 무의식적인 반응이랄까?
그냥 이기적인 거죠...
그걸 국가 경제 운운하며 티 내고 싶어 하지 않을 뿐...ㅡㅡ;;
그래서 중간에 보라색 문구에 마음이 가는 것인지도...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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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 글을 쓴 다음에 사람들의 관심이 많아진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삼성 두둔하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들이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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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금 형성 방법을 설명하는 신부님 말씀을 사람들이 귀기울여 듣더라. 그날 느낀 바는 많은 사람들은 공범의식에서 알고도 모른 척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몰라서 침묵한다는 것이다. 비자금이니 뇌물이니 불법증여니 하는 사건들이 한 번씩 나오니까 또 그런 일이구나 하고 큰 관심 갖지도 않는다. 자주 보도되는 이러저러한 비리에 무감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신문도 안보는 사람들이 있는 한편, 항상 그렇듯 열심히 리플을 다는 네티즌 무리도 있다.
문제가 심각한 사람은 언론인들이다. 사건 전말을 알면서도 덮어주고 싶어하거나 침묵해버리는 언론인들의 태도는 그 자체가 많은 사람들이 같은 태도를 가지게 함으로써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영혼을 판 것도 아니다. 그냥 생각한 데로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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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도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작용하는 듯... 계속해서 비리가 터지니 둔감해지고 또 그 사이클 속에 순응하게 되고 뭐 그런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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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자신의 취미에 열정을 갖고 성실하게 청년사업가/수출역군의 길을 걷고 계신 기영님은 정말 멋진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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