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머리의 고민들 2007/10/09 23:51
오늘 드디어 기쁜 마음에 포스팅을 하려고 글쓸 자료를 찾다가
황당한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글을 끄적이는 방식은 대개
머리 속에 남아있는 지식을 (주로) 인터넷으로 확인하고 올리는 것이다.
이번에 AK에 대한 글을 쓰면서 확인하려던 것은
"미군이 이라크에서 마침내 대량살상무기(WMD)를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AK-47이다"
라는 문장이었다.
문장 작법상, 반전과 재치가 빛나는 인상적인 문장이어서 머리에 깊이 남았다.
이 문장을 신문에서 본 것 같아 여기저기 검색을 해보니
지난 7월경 조선일보 [만물상] 코너에 실린 문갑식 논설위원의 글이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 ··· 608.html
"이라크에서 미국이 찾던 대량살상무기(WMD)가 드디어 나왔다. 젊은 미군 병사 3000명을 저 세상으로 보낸 WMD는 핵무기가 아니라 낡은 소련제 AK-47 소총이다." 작가 래리 커해너가 작년 11월 워싱턴포스트에 쓴 글이다. (...)이 문장이 내 머리 속에 남았구나 싶어 여기 적힌대로
다시한번 워싱턴포스트의 해당 원문을 검색해봤다.
과연 이 멋있는 문장을 영어 원문으로는 뭐라고 했을까 많이 궁금했다.
http://www.washingtonpost.com/wp-dyn/c ··· 788.html
2006년 11월 26일자 일요판 워싱턴포스트에 저널리스트 Larry Kahaner가 기고한 글이다.
제목은 분명 "Weapon Of Mass Destruction"으로 되어있지만
이상하게도 문갑식 기자가 쓴 것과 같은 드라마틱한 문장은 본문 속에 전혀 없다.
놀랍게도 인용구 안에 적은 문갑식 기자의 저 두 문장은
워싱턴포스트 원문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대량살상무기가 드디어 나왔다' 라든가,
'젊은 미군병사 3000명을 저 세상으로 보냈다' 라든가,
'(이라크에서 찾은) WMD는 AK-47 소총이다' 라든가 하는 모든 구성요소가
사실은 문갑식 기자의 머리 속에서 재구성되어 나온 완전한 새 문장이란 거다.
(워싱턴포스트 원문은 AK-47에 대한 책을 펴낸 저널리스트의 글답게
굉장히 건조하고 기술(記述)적인,
문장론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다지 멋질 것도 없는 무난한 글이다)
문갑식 기자 본인이 문장을 멋지게 쓴 점은 인정해줘야 하겠지만
(그것도 원문이 영어라고 느끼게끔 만들어내다니!)
이 정도쯤 되면 따옴표를 써서는 안되지 않나?
차라리 따옴표를 제거하고 워싱턴포스트에 실린 그런 글이 실렸다는 걸 쓰지 않았다면
이 기자의 멋진 문장을 수긍할 수도 있을 법한데
워싱턴포스트의 글을 인용함으로써 자신의 현학을 뽐내려다가
스스로 자승자박하게 된 것 같아 어이가 없다.
아마도 조선일보 기자를 비롯한 우리나라 먹물들이 자주 하는,
1. 서양언론 맹신주의 (같은 내용이라도 서양언론에 나왔다고 하면 객관성을 더 담보한다고 믿는 것)
2. 자기현학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이만큼 서양언론, 서양지식, 서양문물을 많이(빨리) 알고 있소... 하고 내세우고 싶어하는 것)
3. 지식과 학문, 학술에 대한 신중하고 엄격한 태도의 결여 (인용문은 절대 재가공하여 옮겨 쓰지 못한다거나 표절은 절대 안된다는 등 가장 기본적인 사항들을 쉽사리 무시하는 것)
이런 잘못된 태도들이
문갑식 기자의 마음 속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자리잡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PS : 사실 이 문갑식 기자에 대해서는 꽤나 얘기가 많지만
가급적 그런 선입견을 배제하고자 일부러 그런 가십성 얘기들을 빼고 얘기를 풀어봤다.
http://morehj.com/blog/trackback/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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