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머리의 고민들 2007/10/09 02:35
20%니 10%니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새 바뀐 정책이 무엇이 있다고
얼마 되지도 않은 시간 동안 지지도가 50%를 훌쩍 넘었을까.
남북정상회담, 잘했지.
하지만 그거 하나만으로 국정수행지지도를 단숨에 50% 넘겨버리는 조사결과라면
애초에 여론조사의 틀이 허접하게 설계되어서 그렇다고 해야하는 건가
대중이란 원래 우매하기 때문에 그런 거다라고 해야하는 건가.
(이건 뭐 조삼모사에 나오는 원숭이도 아니고...)
무엇이 사실이건간에 이러한 허탈한 결과에서
'지지도'라는 수치의 허상을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허상의 수치가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대상에 대한 선입견을 만들어내고
그로 인해 대상에 대한 거침없는 '판결내림'을 가능케 한다는 사실을 또한 우려한다.
난... 꾸준히 노무현이라는 사람의 진정성을 믿고자 하는 편이었다.
그러한 나의 태도는
캐나다 밴쿠버 반지하 하숙방에서 국제전화를 돌려가며 노무현 광고를 해댔던
지지자의 부채의식 때문은 결코 아니었다.
내 포커스 안에 들어온 노무현이라는 사람은
그렇게 틀린 말을 하는 사람도 아니었고
입에 발린 말만 하는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적대적인 언론의 '필요한 부분만 똑- 따온' 제목만 보고 판단하지 않고 여러 경로를 통해
그가 왜 그 자리에서 그러한 발언을 했는지 앞뒤의 문맥을 이해하고
그가 그때 진정으로 말하려 했던 게 무엇인지 전체적인 흐름을 짚어내려 노력했다.
애정이 없으면 이런 지난한 작업, 하기 쉽지 않지만
나는 이러한 지난한 작업이
사실 '대상에 대한 애정'이라는 감정적인 추동력 이전에
비판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가장 기본적이고 공정한 접근방식이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예전 '즐거운 사라' 사건 때 어느 여교수가 TV토론에 나와
마광수 교수를 거의 미친놈 취급하며 매도했던 적이 있다.
사회자가 그 여교수에게 물었다.
"그런데 교수님은 '즐거운 사라' 읽어보셨습니까?"
여교수의 대답이 기막히다.
"아니, 제가 그 책을 왜 읽습니까??"
.... 대한민국에서 심심풀이로 노무현을 까대는 사람의 상당수는
이 여교수가 보여준 '비판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불성실한(게으른) 접근방법'에서
한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노무현이 완전히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서민이라면
더욱더 힘들어진 내집마련과 팍팍해진 살림살이, 지지부진한 개혁 등
많은 부분에서 실망과 좌절을 느끼고
그것에서 국정의 최고책임자에게 비판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왜
'말버릇이 없다', '체통이 없다'와 같은
자연인에 대한 비난으로 귀결되는 것일까.
(그나마 그러한 비난도 앞서 말한 '대상에 대한 불성실하고 게으른 접근' 때문에 생겨난,
사실은 실체가 없는 그러한 것에 불과하다)
나는 노무현의 도전이 고전을 겪고 있는 것은
우리 모두가 욕을 하면서도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추종하는
어떤 거대한 사회적 덫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움직이기 싫어하는 관료의 덫일 수도 있고
'내 자식만큼은...' 이라는 가족이기주의의 덫일 수도 있다.
'못 배운 놈이...'라는 학벌의 덫일 수도 있고
'대한민국에서는 고시 봐서 윗대가리가 되는게 최고야'라는 입신양명의 덫일 수도 있다.
좀더 솔직히 얘기하자면
나를 괴롭히는 문제가 무엇인지 연구하고자 하지 않고
적대적인 언론의 관점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사고를 하려 하지 않는,
(아쉽지만, 그래본 경험이 없어서일 수도 있다)
적대적인 언론이 해석해놓은 적대적인 관점을
그대로 자신의 것으로 흡수해버리는 '지적 태만주의의 덫'이 가장 크지 않을까 한다.
(이렇게 흡수한 지식은 체화된 지식이 아니라 대개 '언어'의 형태로 남게 된다.
논리가 빈약한 사람들이 같은 말을 또하고 또하는 것은
이처럼 그것이 '언어'의 형태로 남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무현은 자신의 도전이 한계에 부딪히는 이 상황을
충분히 긍정하고 있는 것 같다.
역사의 큰 흐름 속에서
자신의 도전이 결실을 맺지 못한다 하더라도
결국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자신과 같이 도전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야 하며
자신은 그 도전의 문을 연 최초의 사람으로 스러져가더라도
그게 자신이 받아들여야 할 역사적 소임이라는 것을
충분히 긍정하고 있는 것 같다.
내 손 안의 권력이 영원히 나의 것이 아니라 국민에 의해 잠시 맡겨진 것을 아는 것.
그리고 욕심내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
쉬운 것 같지만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노무현은 시대의 전환기에서
전환기의 시대가 요구하는 분권적이고 탈권위주의적인, 그리고 시민사회적인 리더십을
비교적 바람직하게 수행했다고 생각한다.
비록 그 '리더십'이라는 것이
빵을 가져다주지 못하고 우리를 다소 춥게 만들었을지언정
그것은 이 전환기의 시대에 우리가 반드시 겪어봤어야 하는
그러한 형태의 '리더십'에 대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지지자를 만나면 '나 때문에 힘들었지요'라고 말합니다. 내가 지지자들에게 제일 미안한 점이 바로 그 점입니다. 나 지지한 것 때문에 힘들게 한 것이지요."
"정치권력은 하나의 권력일 뿐이지요. 진정한 의미의 권력은 시민사회에서 나옵니다."
"대통령을 퇴임하는 나는 권력으로부터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권력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입니다. 시민사회 속으로."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그 선택을 후회해본 적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엇이 참으로 '바른 권력'인가를 이렇게 정확히 알고 있는
현명한 정치인을 지지해왔다는 사실에
다시금 나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난 이런 정치인을 가질 수 있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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