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따라/음악 2003/02/20 03:43

The Oracle
by Rick Wakeman & Ramon Remedios
이 곡을 처음 듣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역시 나는 야행성이어서 학교 갔다와서는 냅다 자고 남들 다 잘 시간 즈음에 일어나 공부한답시고 딴짓(?)을 했었다. 지금은 공부할 때 라디오나 음악을 듣지 않지만, 그때만 해도 공부하는 머리와 음악듣는 머리는 다르다고 어디서 주워들은 게 있어서 공부할 때는 항상 라디오를 켜놓고 했다. (지금은 그런 루머를 믿고 공부 제대로 안했던 그때를 땅을 치며 후회한다. 공부할 때는 공부에만 집중할 것!)
어쨌거나 그 어린 시절의 새벽을 나와 함께 지새우던 가장 가까웠던 벗은 KBS라디오에서 하던 [전영혁의 음악세계]였다. 요즘은 방에 라디오가 없어 멀어지긴 했지만, 음악세계를 만났던 고등학교 시절 약 2년간은 현재까지 이어지는 나의 음악적 지식과 교양이 형성된 중요한 시기였다 할 수 있다.
어느날 밤엔가...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 곡을 듣고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멍하니 있었던 기억이 난다. 마치 동정녀 마리아가 천사 가브리엘의 방문을 받았을 때 저러한 천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까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유려한 키보드 선율 사이로 흐르는 테너의 숭엄하고 청아하면서도 도도한 목소리는 마치 '소리의 이데아란 이런 것이다'라며 은근히, 그러나 경박하지 않은 깊은 울림을 내는 것 같았다.
그때까지 나는 릭 웨이크먼을 그저 Yes라는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의 키보디스트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록 키보디스트이기 이전에 영국 왕립음악원을 졸업한 클래식 키보디스트였고, 그의 음악적 관심의 폭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클래식과 록이라는 이질적인 두 영역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는 것부터가 놀라웠지만, 그러한 '음악'이라는 형식을 통해 표현되는 그의 관심세계는 과학에서부터 예술, 신화와 전설에 이르기까지 더욱더 방대한 것이었다. 정확한 디스코그래피를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앨범을 발표했다는 것은, 그가 구축해온 음악세계의 시간적 장구함 외에도 결코 마르지 않는 그의 넘치는 예술적 영감(inspiration)과 깊이를 증명해주기에 충분한 것이다.
앨범을 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사실 음악세계의 많은 곡들은 우리나라에 공식적으로 수입되지 않은, 전영혁씨 개인소장 음반 중에서 선곡되어 방송되는 것이 태반이었고, 이 곡 역시 그러한...국내에서는 구할 수 없는 곡이었던 것이다. 물론, 나 이외에도 이 곡에 매료된 사람들이 많았던지 그후로 음악세계에서 단골 신청곡이 되어 가끔 들을 수 있기는 했다. 1996년 10월 31일 KBS에서의 마지막 방송에서 마지막으로 선곡되어 나갔던 곡 역시 이 곡이었을 정도니...
곡명과 아티스트 이름 하나만을 붙들고 앨범 제목은 알지도 못한 채 이 곡이 수록된 앨범을 찾으러 레코드점마다 들어가 릭 웨이크먼 코너를 뒤졌던 적이 있었다. 그런 무지몽매하던 암흑기(?)에 그나마 간신히 알아냈다 싶었던 앨범 제목 역시 나중에 알고 보니 틀린 것이었다. (앨범이 좀 많아야지, 원...)
하지만 인터넷을 알게 되고 난 뒤에는 이 곡이 수록된 앨범이 1986년작 [A Suite of Gods]라는 것도 금방 알게 되었고, 살아생전 한 번 볼 수나 있을까 의심하던 앨범 재킷 역시 클릭 몇번으로 너무나도 쉽게 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테너 라몬 레메디오스의 알듯 모를듯 하여 신비롭게 들리던 가사가 평이한 영어라는 걸 알았을 때는 황당하기까지 했다. 난 그게 라틴어는 못 돼도 이탈리아어 정도는 될 줄 알았는데 영어였다니... (영어도 그렇게 굴려서 발음하면 깜빡 속아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냅스터를 깔아놓고 맨 처음으로 받았던 곡 역시 이 곡이었는데, 앨범 구하기가 어려워 몇년동안 음악세계 마지막 방송 녹음한 테이프 하나를 갖고 몇번이고 되돌려가며 갈증을 달래던 지난 세월이 떠올라 감개무량했다. 감격에 겨운 나머지 이 곡을 mp3로 갖고 있던 오스트리아의 은퇴한 고등학교 선생님 할아버지에게 되도 않은 영어실력을 갖고 냅스터 채팅을 통해 고맙다는 인사까지 건넸다.
하지만, Winamp에 이 곡이 걸리기만 하면 진부하다고 skip시켜버리고, 하드 용량이 부족하다고 이 mp3를 없애버릴까 하는 생각마저 가끔씩 드는 요즘보다 테이프를 리와인드 시켜가면서 한 번 들을 때마다 매번 새로운 전율이 느껴지던, 곡명과 아티스트 이름 하나만 달랑 안 채로 레코드점을 뒤지던 예전의 그 느낌이 그립고 아쉬운 건 왜일까.
Once and Oracle warned of danger to the King of Thebes
For his life and for his child
So from the crib he took his new-born son
Gave him to a herdsman with orders he should kill him
But the herdsman, filled with pity
Could not kill the child but left him tied against a tree
Found by a peasant who took him to his masters
Where he was adopted: Oedipus they named him
After many years the King was travelling
When his way was blocked by a chariot
He ordered him to move away
But because he was slow to obey
They killed his steed
The stranger, enraged, murdered the King
The stranger's name was Oedipus
He, unaware, had killed his father
Little did he know he would soon be King
So the prophecy reached fulfilment
The warning of the Oracle had had its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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