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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ADMINISTRATOR
딴따라/영화  2002/07/16 03:42
 
 
 
 
'알기쉬운 세계제2차대전사'라는 책에서
저자인 이대영씨가 머리말에 밝힌 바에 따르면
기존의 전사(戰史)책들은
구체적인 수치나 정보의 나열에 치중한 나머지
전쟁 역시 '인간'이 행한 일임을 망각하고
그 안에서 '인간'을 증발시켜버리는 일이 허다했다고 한다.

물론, 이대영씨의 말은
소설식의 문체로 쓴 자신의 저서의 특징을 부각시키려는 의도였겠지만
그가 말한 '구체적인 수치나 정보의 나열'을
'할리우드식 물량공세/스펙터클'로 치환한다면
전쟁영화라는 장르에서도
크게 틀린 바는 없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인 수치나 정보의 나열'을 아예 목적으로 잡은 전쟁영화도 없진 않다.
1960년대 스타들을 동원해 만든 '지상 최대의 작전'이 그런 영화일 거다.
하지만 감독이 아예 목표를 그런 것으로 잡지 않았음에도
그가 의도한 다른 요소들이
스스로의 '물량공세나 스펙터클'에 부지불식간에 매몰되는 경우라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윈드토커즈>에서 전투씬은 총 4회 등장한다. (5회던가???)
하지만 두번째 등장하는 사이판섬 상륙작전은
똑같은 소재를 등장시킨 <라이언 일병...>의 오마하 비치씬에 비하면
너무나 빈약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것은 <라이언...>의 오마하 비치가 푸른회색이고
<윈드토커즈>의 사이판섬 해안이 누런색이라는,
다분히 시각적인 이질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신없이 폭탄이 터지는 <윈드토커즈>의 물량공세보다는
총알 한발한발이 상륙정에서 갓 내린 병사들의 이마를 개별적으로 날려버리는
<라이언 일병...>의 절연감(絶緣感)과 고립감이 주는 공포가
인간에게 더 깊은 충격과 공포를 주기 때문인 것이다.

아쉽게도 <윈드토커즈>는
이러한 전투씬을 계속하여 고집한다.
오우삼이 역점을 두고 싶었을
(그리고 그의 장기이자 팬들이 사랑하는 그의 특장점이기도 한)
인간 대 인간(정확히는 남자 대 남자)의 교감은
관객이 좀 빠져들라 치면 전투씬에 의해 끊기고
좀 빠져들라 치면 또다른 전투씬에 의해 끊기는 안타까움을 반복한다.

<첩혈쌍웅>에서 제프의 소파에 앉아
제프를 교감하는 리의 씬이나
<페이스/오프>에서 자신이 뒤집어쓴 적의 얼굴을 겨냥하는 거울씬처럼,
영화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시끄러운 십자포화에도 매몰되지 않고
관객에게 깊이 어필하는
남자들간의 교감을 느끼게 해주는 어떠한 장치도 여기엔 등장하지 않는다.

아, 등장하긴 한다.
인디언 피리와 하모니카,
그리고 엔더슨이 죽고 전쟁이 끝난 후 벤이 고향에 돌아가 의식을 치루는 장면.
그러나 너무 상투적이고 미약하다는 뜻이다.
(사실 그 정도의 소재는
할리우드 영화의 '공식' 정도에 해당하는 common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맨처음에 말한 것처럼
전쟁영화 역시도
'인간'이 우선될 때에 좋은 영화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전쟁 자체는 물론 영화화하고 싶은 매력적인 소재임에 틀림없지만
전쟁 그 자체를 주제로 삼고
인간을 들러리세우게 되면
신나는 폭발씬의 대리만족 이외에 관객에게 남는 것은
별로 없게 된다.

그런 점에서 <에너미 앳 더 게이트>나 <플래툰>, <라이언 일병...>처럼
전쟁영화의 주인공 그룹은
개인 대 개인이나(둘은 영웅/반영웅의 관계일 수도 있고 뭐 그건 맘대로다)
적어도 소대/분대 정도로 한정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관객은 이야기의 플롯에 집중하고
'전쟁'이 주는 스펙터클에 쏠쏠한 재미를 느끼면서
배우의 연기를 보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윈드토커즈>는 대대(아무리 좁게 잡아도 중대는 되겠다)를
주인공 그룹으로 잡고 있다. -_-;;;;;

솔직히 엔더슨(닉 케이지)과 벤(애덤 비치) 그룹,
크리스챤 슬레이터와 다른 나바호 병사 그룹 - 이 4명을 제외하면
다른 병사들은 이름조차 외우지 못하겠고
어떤 병사가 죽는 씬이 나올 때는
'저놈이 앞장면에서 뭐하던 놈이더라?'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_-;;

영화제작자들은
엔더슨과 벤의 이야기를 주축으로 끌고 가니까 별 문제가 없을 거라
판단했는지 몰라도
적군으로 나오는 일본군은 거의 저그(zerg...-_-;;) 수준으로 그려져있다.

8, 90년대 초반까지 만들어졌던 제1, 2세대 베트남전 영화들에서도
베트콩들은 인격도 없이 떼거지로 몰려나오는 저그 수준으로 그려지긴 했었지만
<윈드토커즈>에서는 주인공 그룹(이라고는 하지만...)의 설정이 탄탄하지 못하다보니
일본군의 저그성(zerg性)이 더더욱 도드라져보이고
차라리 희극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게다가 엔더슨과 벤의 관계에 관객이 집중하는 것을 더더욱 방해하는 것은
해군병원 여군장교와의 로맨스다.

까먹을만 하면 'xx에게 편지왔소...' 하면서
엔더슨과 그녀의 썸씽스페셜이 뭔가 있을듯 있을듯 하면서
엔더슨과 벤과의 관계설정에 훼방을 놓아버리고 만다.
(결국 그녀는 영화 끝날 때까지 편지만 주고 엔더슨과 별 일 안 벌인다)

.......

또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닉 케이지의 캐스팅 문제인데...

<위 워 솔져스> 포스터에 멜깁슨이 전투헬멧 쓰고 있는게
어쩜 그리 어색해보이냐...하면서 욕을 진땅 했었는데
(아자씨는 리셀 웨폰 찍는 게 제일 나아...--;;)
<윈드토커즈>의 닉 케이지 헬멧 쓴 모습을 스크린에서 보면서
<위 워 솔져스>의 헬멧 쓴 멜 깁슨의 모습과
너무도 닮았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몇번씩 들어서 좀 미안했다.
(포스터에서는 나름대로 괜찮았다.
적어도 멜 깁슨처럼 포스터에서부터 초를 치는 그런 타입은 아니었다)

실제전쟁에서야...누군들 징집되지 않았겠냐만
아무래도 '군인' 내지는 '병사'의 이미지로는
닉 케이지는 아니올시다~ 인 것 같다.
(콘에어의 봉두난발 괴력의 썰렁한 죄수역를 다시 보는 것 같았다 -_-)

'내적 상처를 간직한 지적인 군인'의 모습으로도
닉 케이지는 안 될 것 같다. (그 역도 군인은 군인이니까)
이미 그런 모습은 <라이언...>에서
톰 행크스가 너무나 확고한 이미지를 구축해놔버린 까닭에...

굳이 '병사'를 하고 싶다면 <코렐리의 만돌린>처럼
병사 같지 않은 병사(이탈리아군이 원래 당나라군대라서...)역이 낫겠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그에게 제일 잘 어울리는 건
역시 '어딘가 결함있는 엘리트/화이트칼라'의 모습인 거다.
<더 락>의 굿스피드, 좋잖아?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할리우드 액션물 -_-v)

.......

이번 영화는
오우삼이 <페이스/오프>처럼 각본 각색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고용된 찍사(=감독)'의 역에 충실했던 영화인 것 같다.

할리우드에 진출한 해외파 감독들의 위상을 수직선에 나열해보자면
서극이나 임영동처럼 본국에서는 날렸을지언정 할리우드에서는
아직 제작사의 하청감독 수준에서 맴도는 타입을 맨 왼쪽으로,(0)
폴 버호벤이나 성룡(감독은 아니지만)처럼 자기만의 사단을 갖추고
자기만의 스타일을 고집해나갈 수 있는 타입을 맨 오른쪽으로(10) 놓을 때,
리안(Ang Lee)이 꾸준히 7~8의 포인트를 유지하고 있는 데 반해
오우삼은 각 영화마다의 위상의 편차가 상당히 심한 편이다.
<윈드토커즈>라면 이 수직선상에서 2~3 포인트 정도의 위상을 갖는다 하겠다.

감독으로서의 위상이 아닌, 영화 자체의 평점에서도
이번 <윈드토커즈>는 아쉽게도 높은 점수를 주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뭐...내가 좋아하는 감독이
항상 잘된 영화만을 만들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팬으로서는
시사회장에서 직접 대면한 그의 사람좋은 모습처럼
그가 예전부터 지금까지 잃지 않고 있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의리와 낭만성, 배신과 모순과 같은 것들을
"할리우드의 자본과 시스템을 이용하여"
다시한번 멋들어지게 표현해볼 수 있길 기원해볼 뿐인 것이다.

그것은 반드시 베레타가 불을 뿜는 액션영화로 표현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블록버스터로 표현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가 예전부터 만들고 싶었다던
중국의 역사를 그린 역사물이나
어린 시절 그가 맨 처음 보고 감동 받은 뮤지컬이라는 '오즈의 마법사'같은 음악영화처럼
어떠한 형식으로 표현되어도 상관 없다.

내가 그의 홍콩작품들을 좋아하는 것은
주윤발의 멋진 총쏘는 모습들이라기보다는
영화 속에 절묘하게 녹아든 그의 낭만성과
시대에 뒤떨어진 '인간과 의리에 대한 신뢰'
바로 그것 때문이니까.

PS.
그밖에도...해변가 엄호를 위해
전함에서 주포를 발사하는 장면을 찍는데
(실사촬영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다큐멘타리 필름 끼워놓은 것을 보고는
내 얼굴이 화끈거리기까지 했다. -_-

2002/07/16 03:42 2002/07/16 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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