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재미있는 세상 2006/11/16 21:27

수능이 실시된 16일 울산공고 시험장 앞에서 여고생 2명이 수능 시험을 치르는 친구를 응원하기 위해 공룡과 젖소 복장을 한 채 교문에 매달려 있다. 이들은 이미 수시모집에 합격했으며 친구와 추억을 만들기 위해 이들 복장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울산=연합뉴스)그러고보니 내가 수능시험을 본지 벌써 10년이 넘었구나. 1995년도에 수능 봐놓고 그날 저녁 가채점하는데 난생 처음 받아보는 낮은 점수를 받아보고 땅이 꺼져라 한숨만 푹푹 쉬었던 기억이 난다. 수능을 망쳐서 개피 본 대표적인 케이스...다...(??)
아무튼,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대학 문턱을 넘으니 그 뒤로는 수능이고 뭐고 신경도 안 쓰게 되더라만, 그새 입시제도는 수없이 바뀌어 어느덧 내신만으로도 대학을 갈 수 있는 소위 '수시모집'이라는 것까지 생겨났다고 한다.
... 저 사진과 캡션글을 보면서 많이 부러웠다.
수시모집이라는 제도 얘기를 하면서 '대학 일찍 붙어 좋겠다'식의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고, 그저 '친구와 추억을 만들기 위해' 저런 재미있는 아이디어로 친구들을 응원한 저 아이들의 생기발랄한 젊음이 부럽다는 거다.
생각해보면,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별로 재미있는 일이 없었던 것 같다. 민경이, 기범이, 희송이 같은 애들과 雜傳(마음 맞는 애들끼리 번갈아가며 쓰던 날적이. 고등학교 생활 3년 동안 총 9권을 써갈겼다, 좀 소녀틱한 취향인가?)을 끄적거리는 일이라도 없었다면 과연 무엇으로 그 숨막히는 하루하루를 살았을까...? 아직도 요놈들에게야 항상 고마운 마음 뿐이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고3의 학교생활이 주는 팍팍함은 날 항상 갑갑하게 했다. 지금도 가끔은 공부를 하나도 하지 않은채, 아니면 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은채 낡은 책걸상이 놓여진 시멘트바닥 교실에 혼자 앉아 공업이나 독일어 같은 100% 암기과목을 시험보는 악몽을 꾸곤 할 정도니까.
힘든 하루하루의 삶과 세상에 대한 불만(?)으로 속은 항상 부글부글 끓고 있었지만 교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항상 정년퇴임을 앞둔 선생님만 발령 받아 오는 듯 했던 서울 강남의 변두리 고등학교 수업시간은 긴장감도 없었고 총기(聰氣)도 없었다. '공부 잘 하니까' 라며 날 건드리지 않는 선생님들과, 같은 반 bully한 아이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엎어져 잠을 자거나 雜傳을 보는 게 고3생활 1년 동안 계속 됐던 것 같다. (뭐, 결국 그래서 수능을 망친 것 같긴 하지만...)
그런 나에 비해서 저 '공룡과 젖소'는 얼마나 명랑하고 즐거운 모습인가!
비록 저 독특한 생각이, 수시모집에 합격하여 상대적으로 여유를 가진 데서 나온 것이라 하더라도 나는 저렇게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 철문에 매달려 다시 오지 않을 고3의 실질적 마지막 날을 자축하려는 저 두 아이들의 실행력과 젊음을 부러워하련다. 아니, 남들이 이름 붙여버린 고3이라는 사회적 지위(?)가 아닌, 스스로 인식한 18세의 젊음을 만끽한 저들의 깜찍한 도발을 기꺼워하련다.
....아, 아무래도 내가 늙어가나보다.

http://morehj.com/blog/trackback/71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