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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언론에서 소개를 많이 해서 그런지 요새는 자전거로 출퇴근하기가 붐인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자전거를 좋아라 했던 나로서는 괜히 심술도 난다. "난 옛날부터 좋아했는데...씨..." 뭐, 그런 마음.

항상 꿈꾸던 게 창원에서 그랬던 것처럼 우리집(사당역)에서 회사(광화문)까지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거였는데, 솔직히 마음 먹기가 쉽지 않더라. 여타 자전거 출퇴근족(族)들과 달리, 나 같은 경우에는 출근길이 한강을 가로 질러 차 많고 복잡한 도심을 통과해야 하니까. 그래서 여태까지 미적거리던 거였는데, 결과는 역시나 부정적이었다.

네거리가 발달되어 있지 않고 자연발생적인 곡형(曲形) 도로가 많은 강북의 특성상, 차로를 따라 달리더라도 자전거 통행은 위험하기 그지 없다. 가장 외곽차선으로 자전거를 몰더라도 우회전하는 차들이 많아 내 자리를 확보하기 쉽지 않고(용산, 서울역, 남대문 부근), 길을 하나 건너려고 해도 횡단보도가 네거리에 집중식으로 모여있지 않아 횡단보도를 찾으러 저 멀리 에둘러 가야하는 일(숙대입구)도 생긴다. 그렇다고 사람 많고 표면상태 안 좋은 보행자도로 위로 달리는 것도 위험하고... 우리 회사 위치상으로 자전거 출퇴근은 어렵겠다 하는 게 오늘의 결론이다. 그냥 청명한 가을날에 자전거를 타고 서울 시내를 한 바퀴 돌았다는 데 의의를 둬야겠다.

2.

오늘의 일정은 아래와 같았다.

시간 13:30 ~ 17:00

- 3시간 30분쯤 걸렸지만, 중간의 식사시간 30분을 제외하면 왕복 1시간 30분 가량 소요되었다. 인터넷 지도에서는 왕복 40~50분 정도면 충분하다고 하는데, 내가 좀 설렁설렁 페달을 밟은 걸 고려하더라도, 도로사정상 절대 그 시간 내에는 주파할 수 없다고 본다.

준비물 생수 500ml x 2개, 재생시간 빵빵한 mp3 플레이어

- 생수 500ml 짜리를 2개 준비하여 하나는 자전거 물통받이에, 하나는 베낭에 넣었는데, 설렁설렁 다녀서 그런지 생수 1통은 거의 먹지 않았다. 그래도 3시간 정도라면 2개를 들고 가는 게 안심이 될 듯.

- 3년전, 싱가포르 창이공항 면세점에서 샀던 아이팟 미니. 3년쯤 썼으니 이제는 배터리가 맛이 가서 1시간 연속 재생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래서 운동을 오래 하면서도 재생시간 걱정 없이 빵빵하게 들을 수 있는 mp3p를 고르다가 소니 NW-E005를 알게 되었고, 지난 월요일에 구입하게 되었다.

플래시메모리 타입이지만 2G라 어느 정도 용량도 확보되고, 전용 프로그램인 소닉스테이지를 쓰면(사실 이걸로만 mp3 전송이 가능하다 ;;;) mp3를 다시 50% 정도로 압축하여 전송하기 때문에 실제 용량은 기존에 쓰던 아이팟 미니(4G)와 맞먹는 셈이다. 더구나 재생시간은 최대 28시간. 이제는 mp3p 언제 꺼질까 고민하며 운동을 중간에 그만 둘 필요도 없는 거다.

코스 (가는 길) 사당역 - 이수역 - 구반포 앞 한강시민공원 진입로 - 한강둔치 따라 노량진 한강대교까지 - 한강대교를 타고 도강(渡江) - 용산 - 숙대입구 - 서울역 - 남대문 - 서울시청 - 광화문 (지하철 타고 회사 가는 코스와 비슷하다.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는 최단거리인 듯)

구반포의 샛길을 따라 들어온 한강시민공원. 동작역 아래에 있는, 이번 자전거 여행의 시발점이다. 왼쪽이 노량진이고 오른쪽이 반포.


노량진쪽으로 자전거를 몰고 한강대교까지만 온다. 한강대교를 통해 한강을 건너서 본격적으로 도심에 진입해야 하므로. 한강대교 남단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전의를 불태웠다.


한강의 어떤 다리라도 '몸'으로 건너본 적이 없었다. 화석연료를 태우지 않고, 내 몸이 가진 정직한 에너지만을 갖고 정직하게 건너는 순간이었는데, 사진에서 보이듯 한강대교의 조금은 흉물스러운 모습이 기분을 반감시켰다.

이 한강대교는 1984년 현재의 이름으로 개칭되기 전까지 '제1한강교'로 불리었는데, 한강 최초의 인도교였다. 내가 내 몸으로 처음 건너본 한강다리가 한강 최초의 인도교였다는 것은 우연치고는 썩 재미있는 우연이다.


한강대교 오른쪽에서 바라본 풍경. 올림픽대로 밑으로 내가 달려온 한강시민공원 자전거길이 보인다.


언제나 그렇듯(...) 나의 사진들에는 자비심시간 개념이고 뭐고 없다. 그냥 내키는 대로 찍는다. 용산, 숙대입구를 건너뛰고 느닷없이 서울역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

이제까지는 눈치껏 차선을 따라 자전거를 몰 수도 있었지만 서울역쯤 되면 그게 아예 불가능해진다. 도로도 복잡해지고 자동차의 운전자들도 자전거의 느릿느릿한 속도를 헤아려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남대문'이었던 '숭례문'. 무슨 수문장 교대행사(?) 같은 걸 하고 있었는데, 가족 단위로 구경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가을하늘도 좋고 차로를 따라 달리다 힘들어진 나에게는 도로 위의 오아시스 같은 그런 곳이었다.


시청 앞 광장. 예수의 십자가 위 마지막 말씀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제 다 이루었다' 소리가 절로 나오더군.


동아일보사 앞을 가볍게 돌아 우리 회사 앞까지 왔다. 이때 시간이 14:50 정도. 뿌듯한 기분도 잠시. 자전거 타고 회사까지 왔다고 누가 알아봐주는 사람이라도 없으려나 생각이 들었지만 역시 그런 건 하나도 없었다. 8천미터 산봉우리 정상을 정복한 산악인들도 이런 기분일까?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오른다'라는, 산악인들의 겸손한 자세에 비해 나는 아직 세속적인 걸까?

3.

코스 (오는 길) 서대문 (근처 김밥천국에서 한끼 해결) - 충정로 - 아현동 입구 - 공덕오거리 - 마포대교 - 한강시민공원 (여의도 ~ 구반포) - 이수교 - 사당역

돌아오는 길은 조금 다르게 해보았다. 신촌을 거쳐 양화대교쪽으로 와볼까도 생각했으나, 양화대교쪽으로도 한강시민공원으로 나올 수 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여 마포대교에서 내려오기로 타협을 봤다. 이대 앞의 야트막한 언덕길을 오르는 것도 이제는 좀 귀찮아졌고.


마포대교 위에서 바라본 여의도쪽 풍경. 자전거를 타고 한강시민공원을 통해 잠수교에서 여의도를 거쳐 마포대교까지 왔다갔다 한 적은 몇 번 있지만, 이렇게 마포대교 위에서 여의도를 바라보니 또다른 느낌이다.


오른쪽으로는 서강대교와 밤섬이 보인다.

4.

내가 자전거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이 나를 정직한 방법으로 보다 멀리 데려가 주기 때문이다.

이반 일리히는 자전거를 "인간의 신진대사 에너지를 이동력의 한도에 정확하게 맞춘 균형 잡힌 이상적인 변환기"라고 표현했지만, 나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정직한 교통수단"이라고 이해한다. 인터넷 지도에서 자전거로 1시간 거리라고 적혀있어도 내가 1시간 30분을 들여 간다면, 나는 아무도 탓할 수 없다. 내 몸이 낼 수 있는 한계로는 그 거리가 정확히 1시간 30분의 거리니까. 딱 내가 섭취한 양식, 내가 낼 수 있는 에너지의 범위 내에서 이동거리와 속도가 정해지는 방식. 자전거는 그래서 정직하다.

(좀더 운동을 열심히 하고 다리 근육을 길러 시간을 단축시켜보겠다! 라고 마음 먹는 것도 좋지만, 그런 욕심 갖지 않고 편안히 '그래, 난 1시간 30분 동안 가지, 뭐...' 하며 느긋한 마음을 먹는 게 자전거의 정직한 철학에 맞는 태도 같다)

한편으로, 자전거는 '멀리 가고 싶다'라는 욕구를 채워준다. 돌아오는 길을 정할 때 굳이 왔던 길을 다시 밟지 않고 서쪽으로 더 가보고 싶었던 것도 '좀 더 멀리 가보고 싶다'라는 바람이 컸기 때문이다.

서대문, 충정로, 아현동, 마포대교... 차창 밖으로만 스쳐보내던 그 모든 길들을 내 몸으로 정직하게 밟아가고 싶다는 것은, 어쩌면 생명이 가진 가장 원초적인 욕구의 하나인지도 모른다. 작게는 작은 벌레의 꿈틀거림에서부터, 넓게는 처음의 의도도 잊어버린채 계속 동쪽으로 동쪽으로 전진만을 거듭하다 숨을 거둔 알렉산더와 같은 위대한 정복자들의 야망에 찬 꿈까지... '더 가보고 싶다'라는 욕구는 내 마음 속에서도 부정할 도리가 없었던 거다.

하지만, 자전거는 그러한 욕구를 적절히 순화(馴化)시켜준다. '몸 앞의 길이 몸 안의 길로 흘러 들어왔다가 몸 뒤의 길로 빠져나갈 때, 바퀴를 굴려서 가는 사람은 몸이 곧 길임을 안다'라는 김훈의 말('자전거 여행' 중에서)처럼 자전거는 생명 본연의 확장 욕구를 생명 그 자신이 가진 범위 내에서 실현하도록 다스린다. 땀을 흘리며 페달을 밟는 순간, 자신의 몸이 길이 되는 순간, '확장에의 욕구'는 겸손해지고 자신과 두 다리에 정직해진다. 하지만 그 다스림과 정직함의 순치(馴致)가 끝났을 때, 자전거는 우리가 애초에 가졌던 부질없는 '확장에의 욕구'를 늦게라도 채워주는 신사다움도 갖고 있다. 완전한 욕망만을 용납하지도 않고, 완전한 희생만을 강요하지도 않는 것이다.

이수교를 거쳐 다시 우리 동네로 돌아왔을 때, 나는 문득 나의 건강한 다리와 허름한 자전거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비록 자전거로 출퇴근이 가능한지 알아보겠다 라던 처음의 계획은 부정적인 결과만을 보여주었을 뿐이지만, 내게 자전거 타기가 항상 그래왔듯, 오늘도 역시 자전거는 녀석과 같이 한 시간을 후회하지 않도록 깨달음을 주었던 거다.

2006/10/29 23:11 2006/10/29 23:11
http://morehj.com/blog/trackback/707
뽀~*  | 2006/11/01 10:03
자전거 출퇴근이라...^^
문득 서울 거리를 떠올리게 하는 글이었네요.
이런 맛에 여기 자주 오게 되는 건지도...

지금 제가 있는 네덜란드에선 자전거가 주요 교통수단이라...
온통 거리에는 자전거가 넘쳐나는 데다가 가끔은 자전거 폭주족(?)까지...^^;
그리고 튼튼하기로 소문난 유럽 여성의 전형인 네덜란드 여성들은
그 정직한 교통수단에 아이들을 앞 뒤로 둘씩이나 태우고도
유모차와 장바구니 한 아름까지 매단 채로도 쌩쌩 잘만 달리더군요.

아무튼

경주는 우리 삶의 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우리는 연습에 연습을 거듭합니다.
오직 한 가지 목표를 위해...완벽함...

라는 도요타 광고가 생각나게 하는 산악 자전거 매니아 친구가
암사동부터 일산을 단지 연습을 위해 왕복한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게 느껴질 따름입니다.
  | 2006/11/01 13:25
오늘도 들러주셨군요. ^_^ 감사합니다.

공부 중이신 것까지만 알았지, 네덜란드에 계신지는 몰랐네요. AviationMegastore에 주문할 게 많은데...ㅡㅡ;;;

아무튼... 유럽처럼 우리나라도 자전거의 가치를 이해하고 교통정책에 반영되는 일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자전거의 철학이란,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들 때 가장 멋있는 거 같거든요.
이주환  | 2006/11/05 15:31
오~! 정말 자전거를타고 출퇴근을 하신다면 복장은 어떠신지요?
항상 교통사고에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정말 멋찐분이시군요.
mari  | 2009/09/17 00:30
안녕하세요, 저는 마포는대학에서 자전거 라이딩 수업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주 내용은 초보라이딩과 자전거의 법률 상식이고요, 관심있으실 것 같아 글을 남깁니다. 이번주 토요일에 하는데요, 꼭 한 번 들러주세요. ^^http://www.onoffmix.com/e/mapouniv/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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