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06. 10. 16 (월) ~ 2006. 10. 22 (일)
* ISBN 8982812466
갑자기 소설을 읽고 싶을 때가 있다. 그것도 아주 읽기 고되고, 읽고 나면 가슴 한켠이 싸한, 그런 소설을. 아마도 국정감사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머리는 비어가고 가슴은 식어가는 걸 느꼈기 때문인 것 같다.
(여담이지만 어릴 때 교육이란 게 참 무섭다는 것을 이럴 때 느낀다. 평소에는 소설이나 문학을 무시하고 유물론자처럼 행동하다가도 내 자신이 힘들고 지칠 때면 어릴 때 했던 것처럼 어김없이 소설책을 찾고 성당에 가고 한다. 그러면서 내 스스로를 '원래는 나도 착하다'라고 스스로 위무(慰撫)하는 것일까...?)
그런 소설을 찾다가 어디선가 신경숙의 소설들이 그런 여운을 준다길래 그의 어떤 작품이 좋은지 뒤적거려봤다. 오랜만에 호흡이 긴 작품을 읽어보고도 싶었고, 완전한 픽션보다는 작가 개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통해 '사람'의 냄새를 맡아보고도 싶었기에 '외딴방'을 집어들었다.
..........
신경숙이라는 작가 뿐만 아니라, 이제는 대부분의 문학인들이 내게 '이미지'로만 와닿는다. 두말할 것도 없이 내가 그만큼 소설을 멀리 해서일 테다. 그런 내게 신경숙이라는 작가의 이미지는 이랬다.
"항상 뚱-한 표정"
왜 항상 뚱-한 표정일까, 그걸 알고 싶었다기보다는 그저 한 사람의 '삶'과 그 '표현해냄'을 읽어보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그 뚱-한 표정 아래에 가라앉아 있는 신경숙의 지난날과 상처, 예민함과 감수성의 기원을 발견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
이야기의 구성은 이중적이다. 과거(16세부터 20세까지, 1개의 장(章)이 1년의 흐름이다)의 '나'와 현재의 '나'의 이야기가 교직된다. 흥미로운 것은 과거의 '나'에 대해서는 현재형이, 현재의 '나'에 대해서는 과거형이 쓰인다는 것인데,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간에 이러한 어미구사를 통해 두 개의 '나'는 십 몇 년의 간극을 뛰어넘어 하나의 '나'로 동일화 된다.
과거의 '나'는... 시골에서 올라온, 구로공단 '공순이'이자 영등포여고의 산업체특별학급 학생이다. 그러한 과거의 '나' 위로, 서른 일곱개의 문이 달린 가리봉동의 외딴방과 노동조합, YH사건과 10.26, 서울의 봄과 5.18 등이 흘러가지만 감수성 예민한 이 '나'의 관심은 오히려 한 방에 같이 사는 사람들(큰오빠와 외사촌, 셋째오빠)과의 일상적인 삶에 있다.
야간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난장이를 쏘아올린 작은 공'을 노트에 베껴쓰던 일도, 사회의식에 눈을 뜨는 과정이었다기보다는, 신산한 삶 속에서도 항상 동경했던 문학에의 갈증을 달래주는 등대와도 같았던 것 같다.
(...) 몰라, 오빠. 나는 그런 것들보다 그때 연탄불은 잘 타고 있었는지, 가방을 챙겨들고 방을 나간 오빠가 어디 길바닥에서나 자지 않았는지, 그런 것들이 더 중요하게 느껴져. (...) 오빠, 그때 내가 정말 싫었던 건 대통령의 얼굴이 아니라 무우국을 끓이려고 사다놓은 무우가 꽝꽝 얼어버려가지고 칼이 들어가지 않는 것 그런 것들이었어. (...)그 일상적인 삶 위에 큰오빠의 쓸쓸한 실연이 지나가고, 얼굴은 험상궂지만 항상 자기들에게는 불 땐 연탄을 빼주는 가겟집 아저씨의 꺾여진 꿈이 지나간다. 그리고 외딴방에서 친구가 되었던 희재언니의 까닭모를 죽음도.
이와는 비교되게, 현재의 '나'는 소설가다. 하지만, 자신의 과거를 좀체 돌아보고 싶어하지 않는, 상처 입은 소설가다. 어느날 우연히 걸려온 야간 고등학교 시절 동창 하계숙의 전화가 없었다면 그는 결코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려 하지 않았을 거다.
(...) 봄과 여름 동안 내게서 문장은 떠나고 그녀의 목소리만 내 가슴에 물방울처럼 떨어져내렸다.기어이 자신을 '외딴방'에서 끄집어내어 과거의 상처입은 자신과 대면시키고자 하는 '나'의 이야기가 현재에 펼쳐진다. 설령 그것이 부질없는 '글쓰기'에 불과하더라도, 글 자체는 아무 것도 변화시킬 수 없음을 그 자신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하더라도.
"너는 우리들 얘기는 쓰지 않더구나."
"네게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걸 부끄러워하는 건 아니니?"
"넌, 우리들하고 다른 삶을 사는 것 같더라."
편안한 잠을 자고 깬 후면 어김없이 그녀의 목소리는 얼음물이 되어 천장으로부터 내 이마에 똑똑똑 떨어져내렸다. (...)
(...) 나는 끊임없이 어떤 순간들을 언어로 채집해서 한 장의 사진처럼 가둬놓으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문학으로선 도저히 가까이 가볼 수 없는 삶이 언어 바깥에서 흐르고 있음을 절망스럽게 느끼곤 한다. 글을 쓸수록 문학이 옳은 것과 희망을 향해 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만은 없는 고통을 느낀다. 희망이 내 속에서 우러나와 진심으로 나 또한 희망에 대해 얘기할 수 있으면 나로서도 행복하겠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을 대면하는 글쓰기란, 자신에게 아픔이기도 하다.
(...) 잠시 후 은사가 말했다.하지만, 이런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글을 쓴다는 자체가 자신을 찾기 위한 의식(儀式)이고, 구도(求道)다.
"너 요새 글을 너무 많이 쓴다."
"......"
"나도 한때 그런 적이 있었지. 목숨 건 듯이 썼다."
"제가 그렇게 글을 많이 썼나요?"
(...)
"작가니까 많이 써야지, 하지만 넌 아니다. 니 글쓰기는 니 살파먹기야. 한꺼번에 너무 많이 파내면 네가 아픈다."
젖은 머리에서 계속 물방울이 툭툭, 떨어진다.
"긴 세월 할 일이야. 속도를 늦춰라."
"......"
"서운허냐?"
"......" (...)
(...) 모래펄에서 몸을 일으켜 내 발짝에 내 발짝을 대보며 모래펄을 걸어나왔다. 오늘, 이 해변에 찍힌 나의 발자국은 외딴방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내가 도망치듯 빠져나와 다시 돌아가지 못했던 장소로. 오늘, 나에게 가장 뚜렷한 현재인 오늘, 여기에 찍힌 내 발자국을 따라가면 스물에서 더이상 멈칫대지 않고 곧바로 열아홉으로 들어갈 수도 있으리라. 그리고 다시 열다섯에서 열여섯으로 되돌아나올 수도 있으리라. (...)..........
이 소설을 통해, 가장 큰 위안을 얻은 사람은 바로 신경숙 그녀 자신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제 나도, 언제나 뚱-한 모습의 그의 사진 속에서 한 개인의 상처와 성장, 그리고 과거의 '나'를 그대로 끌어안았던 용기를 읽어낼 수 있게 된 것 같아 좋다.
http://morehj.com/blog/trackback/705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