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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많은 분들이 플라스틱 모형(특히 비행기)쪽에 관심을 갖고 계신 것으로 안다.

하지만 최근에는 모형 관련 포스팅을 거의 올리지 못하여 죄송한 마음이다. 모형 사재기도 어느정도 진정되어 이제는 모형쪽 지출은 두세달에 한번 해외사이트에 데칼이나 옵션파트 몇 개 주문하는 게 전부인 것 같다. 한창 때에 비하면 현격한 지출감소인 셈이다.

아무래도 회사일이 바빠서 그렇겠지만 가끔 올리는 글도 모형쪽 얘기는 거의 없으니 이곳의 가장 많은 단골분들이 실망하시는 것도 당연하다 싶다. (실제로 방문자 통계를 보면 모형쪽 링크를 타고 오시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러한 마음의 미안함과는 별개로 실생활에서 모형제작에 박차를 가하거나 그러지 않는 것은, 내 삶에서 모형이란 어디까지나 (회사일과 실생활에 우선할 수 없는) '좋은 취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1.

웹상의 국내 모형동호회를 돌아다니면서, 모형에 대한 애정이 과도한 나머지 그것이 고집과 배타주의로 흐르는 모습을 종종 보며 아쉬운 생각이 든다. (특정인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최근 국내 모형계 일련의 사건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모형취미에 대한 과도한 의미부여도 나로서는 솔직히 좀 버겁다. 취미를 통해, 일상생활에서 발현할 수 없는 자아를 표현하고 자기만족감을 느낀다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그것을 통해 세상을 '재단'하는 수준으로 나아가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모형계의 나이 지긋하신 원로분들이 나이 탓으로 그러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사고가 유연한 우리 젊은 사람들까지도 모형에 과도하게 자신을 투사하고 그 자기만족감의 창(槍) 끝을 상대방에게 돌려 공격적으로 되는 모습은 솔직히 실망스럽다.

모형쪽의 대가를 만나본 경험은 거의 없지만 어느 분야에서나 '일가(一家)를 이루었다'라고 평가 받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잘 안다. 그들은 자신에게 철저하고 주위사람들에게 부드럽지, 결코 자신의 전문분야를 갖고 다른 사람을 면박주거나 자신을 높이는 데 사용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주로 초보자들)이 그 분야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것을 '가소롭다...' 라는 식으로 일소(一笑)에 부치지 않는다.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그런 사람들을 낮게 보는 마음이 든다손 치더라도 그걸 '여러분들, 이것 좀 보세요~' 라는 식으로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순간 그 사람의 가치는 딱 거기까지임이 드러나게 되는 거다. (그 분야의 '하수'들을 비웃거나 고자질(?) 하는 것으로 개인의 스트레스를 풀려고 한다면 그를 과연 계속 '대가'라고 부를 수 있을까? 기껏해야 '테크니션'에 불과할 거다)

건전한 비판은 필요하다. 하지만 김훈이 이야기했듯, 우리 시대 언어의 참상은 '의견과 사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 온다. 비판의 탈을 쓰고 치기 어린 인신공격을 자행하는 경우를 수도 없이 본다.

더구나, 한국사회에서 모형취미에 대한 인식이 낮다고 그 자신이 억울해했던 기억이 많아서일까. 한국의 모형인들은 유난히 공격적인 것 같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 가서 화풀이' 하는 식으로 그 울분을 모형계 내부에서 서로를 상처 주며 풀려고 하는 모습은 정치적으로도 옳지 않다.

2.

내가 만나본 서양의 모델러들은 솔직히 나이에 비해 수준이 무척 낮았다. 그런데도 그들은 참 순수했다. 비싼 키트 사서 모델마스터 에나멜로 에어브러싱 대충 하고 데칼만 딱- 붙여서 모임에 들고 나와도 한달에 한번 보는 회원들 얼굴이 반가운지 모임시간 내내 화기애애했다. 그러면서도 미국 IPMS 내셔널에서 찍어왔다는 슬라이드를 구경하면서는 한없이 진지해졌다.

ARC에 올린 내 완성품을 보고 메일을 준 미국의 어떤 아줌마도 있었다. 자기 남편이 F-14를 몰던 파일럿인데 전역기념선물로 내 F-14D를 주고 싶다고 구매할 수 없겠느냐는 질문. 태평양을 건너 소포를 보내야 하는 어려움 때문에 정중히 사양하긴 했지만 부인이 남편을 위해 ARC를 들여다보고 제작자에게 메일을 보내 남편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에 좀 많이 놀랐던 기억이 난다.

내가 좋아하는 모형취미의 라이프스타일은 이런 서양식에 가깝다. 삶을 더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주위사람과 더 유쾌해질 수 있는, 그리고 실생활의 피곤함을 달래줄 수 있는 휴식 같은 그러한 모형취미.

3.

아무튼 내가 요새 모형에 거의 손을 놓고 있는 것은 '(모형)취미란 내가 즐기고 싶을 때 해야 한다'는 나의 일관된 생각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이 최근 이어진 모형계의 작은 사건들 때문에 다시금 굳어졌음도 부정하지 않겠다.

나에게 모형은 자전거와 함께 '평생취미'다. 누차 말했듯, 은퇴 이후에도 인사동이나 평창동, 경기도 양평 같은 곳에 작은 사설 모형갤러리를 열어서 내 완성품들 전시해놓고 찾아오시는 분들과 도란도란 얘기 나누고 싶은 그런 소박한 꿈이 있다.

비록 요즘에는 회사일 때문에 다른 곳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어 책상 옆 한 켠에 널부러진 미그기들에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어디 가나 자신 있게 '모형은 내 평생 취미'라고 이야기 하는 나를 조금만 더 기다려줬으면 한다고 녀석들에게 속으로 말을 건네곤 한다. 아마도 11월 둘째 주부터는 다시금 손을 댈 수 있을 것 같다.
2006/10/14 22:57 2006/10/14 22:57
http://morehj.com/blog/trackback/701
이주환  | 2006/10/15 19:59
안녕하세요?
현중님의 멋찐작품들은 접해 봤지만,블로그엔 처음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도움도 받았고, 또 좋은킷트도 분양해주셨던걸 기억합니다.
해외에서의 삶을 경험하셔서인지 생각의 표현도 남다르시군요.
뜻이 있는 위의 글을보며, 반성의 시간을 갖어봅니다.
좋은글 많이 읽고 돌아갑니다.

앞으로도 자주 들르겠습니다.

  | 2006/10/16 00:29
F-20, 잘 갖고 계시죠? ^^ 빨리 완성작 보여주세요...^^;;
이주환  | 2006/10/16 03:07
지난 6월6일 비행기판금도색부 첫 모임에서 정기영님께 카자마신 오리지날 데칼까지 입수했습니다.
그런데 작업은 내년부터가 될것 같습니다.
항상 그 킷트보면 감사해요.
귀한킷트를 선뜻 주신것에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나중에 정성껏 만들어서 검사맡아야겠군요.^^;
미디어몹  | 2006/10/16 18:15
morehj 회원님의 상기 포스트가 미디어몹 헤드라인에 등록되었습니다.
  | 2006/10/16 20:05
요즘 자주 등록시켜주시네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미디어몹 사람들 중 모형에 관심있는 분들이 많이 계실지 조금 걱정도~)
Basilisk  | 2006/10/22 20:22
현중님 글에 동감합니다.
역시 모형은 취미이기 때문에 생업에 치일때에는 잠시 물러나주셔야 하지요...
가끔 왕초보때처럼 한달에 하나씩 작품을 뽑아냈던 기억이 그리울때도 있지만, 아이도 있고, 생업도 너무 많으니까요...^^
짬나는 시간을 이용해 취미를 더 열심히 즐겨봅시다!!!

참, 만나뵌지도 꽤 된거 같은데 언제 함 한잔 하시죠...^^
  | 2006/10/22 21:35
그 훤칠하고 잘 생기신 모습, 한번 뵙고 싶은데... 요새 워낙 바빠서 마음에 여유가 잘 안 생기는군요. 그래도 올해 안에 함 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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