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따라/영화 2006/08/26 23:42
그동안 다운 받아 놓고 보지 않았던 영화 중 하나를 골라 봤다.
일본영화...
우리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가끔 '오버하는' 감정이 부담스러워 잘 보지는 않는데,
이 '박사가 사랑한 수식(數式)'이라는 영화는
수학 때문에 이과를 가고 싶어했을 정도로 수학을 짝사랑했던 나에게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교통사고로 기억력이 80분 밖에 지속되지 않는 수학자와
그 집의 가정부로 들어온 젊은 미혼모,
그리고 그녀의 10살 된 아들... 이렇게 세 명의 맑은 관계에 관한 이야기다.

가정부의 생일인 2월 20일(220)과
자신이 대학생 때 발표한 논문으로 받은 기념시계의 일련번호(284)가
'우애수'(자신을 제외한 그 수의 약수들의 합이 서로 일치하는 수)임을 설명하는 박사.
박사에게 '수(數)'란, 사랑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유별난 박사와 소통하게 되는 가정부...

정수리가 납작한 가정부의 아들을 보고
박사는 '루트'(제곱근)라는 별명을 붙여주며 이렇게 말한다.
'너는 루트다... 어떤 수도 마다않고 자신 안에 감싸준다... 실로 관대한 기호, 루트다...'
..............
영화 속에서 박사는 수학에 관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수와 수학이 왜 아름다운지를 이야기한다.
학창시절에 수학을 싫어했던 사람들에게는 블랙유머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마치
내가 짝사랑했던 대상의 아름다움이 진실로 어떤 것이었는가에 대하여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타인의 입을 통해 듣는 것과도 같이
아련하고도 공감이 가는 대사들이었다.
이렇게 영화를 보며 흐뭇하게 미소를 짓다가
갑자기 머리가 띵해지는 생각이 하나 들었다.
곱해서 -1 이 되는 허수,
두께도, 면적도, 질량도 없이 무한히 뻗어가기만 하는 직선...
이렇게 수학이 우리의 '상상력의 정수'라는 것까지는 익히 수긍해왔던 바이지만,
영화 속의 박사는 거기서
'(그러한 수학과 마찬가지로) 진실이란 우리 마음 속에 있다'라는
'소통의 의미'를 읽어내고 있었던 거다.
..............
수학을 좋아했지만, 내가 결코 수학이 전부라고 나의 사랑을 다 주지 않았던 것은
이 세계란 근본적으로 불균질한 것이어서
'점, 또는 개체들'에 불과한 '숫자'들로 해석될 수만은 없다는,
다분히 인문학적인 자존심 때문이었던 것 같다.
입시수학에 조금 관심이 있었던 데 불과하면서
수학에 대해 섣불리 어설픈 결론을 내려버린 나와는 달리,
수학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박사는
'숫자'가 아닌 숫자들의 '관계'를 통해
세상과 진실에 소통하는 법을 읽어냈다.
... 특별한 관계로 묶인 두 개의 수를 '우애수'라고 이름붙인 것을 보고는 수학자들, 그들이 진정한 로맨티스트라고 느꼈습니다.... (오가와 요코, 원작소설의 작가)생각해보면,
영화의 원작소설을 쓴 작가 오가와 요코의 말처럼
'우애수'나 '완전수'와도 같은... 가만히 들여다보면 굉장히 로맨틱한 단어들을 작명했던 데서 알 수 있듯,
수학과 수학자들은 항상
'완전하고 순수한 소통'을 갈망하는
순수한 학문, 순수한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처럼 모든 것이 '소통'으로 귀결된다는 진리는 여기서도 예외가 아니었고,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란
바로 이처럼 아무런 티끌도 개입되지 않은,
순수한 '숫자'들이 엮어내는 완벽한 순수의 아름다움이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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