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새로운 경험들 2006/07/15 23:14
아침에 체코-폴란드 국경을 넘어 아우슈비츠로 향했다.
점심 때가 되어서야 아우슈비츠역에 다다랐는데, 사실 아우슈비츠라는 말은
독일이 이곳을 점령한 뒤 붙인 독일식 이름이란다.
한국으로 치자면 일제가 서울을 점령한 후 '경성부'라는 이름을 붙인 셈.
역 앞의 작은 식당에서 생선튀김요리를 먹은 후 본격적으로 아우슈비츠 1수용소로 향했다.


제1수용소 입구에는 'ARBEIT MACHT FREI'(일을 하면 자유로와진다)라는 글자가 붙어있다.
이곳에 수용된 유대인들이 만든 간판이라는데, 자세히 보면 ARBEIT의 B자가 위아래로 뒤집혀있다.
절망의 순간 속에서 이렇게 글자를 뒤집음으로써 자신들의 저항의식을 나타내고자 했던
수용자들의 흔적이라고 한다.

2중으로 된 철조망.
그리 높지는 않지만 수용자들에게는 크나큰 좌절과 절망의 상징이었을 거다.
(엉뚱하게 X맨의 매그니토가 생각나기도 했지만... 흠흠...)

좌우의 2층 막사와 큰 나무가 파란 하늘과 어울려 아름답게 보이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고통의 장소라는 생각에 그 아름다움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막사 내부는 대부분 박물관, 전시실로 개조되어 있으나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사진을 찍지는 않았다.
워싱턴DC에서 가본 홀로코스트 박물관이 생각났다.

푸른 언덕 위, 저 너머에 솟은 빠알간 벽돌굴뚝이 아름답지만
저것이 바로 그 악명 높은 가스실의 시체소각탑이다.


들어가자마자 나오는 첫 방이다.
죽음을 앞둔 수용자들의 절망스러운 심정을 담기 위해 조명도 없는 곳에서 억지로 사진을 찍었다.
이 방 안에 들어선 그들은 과연 어떤 생각이었을까.

이곳이 바로 '샤워실'로 위장되었던 가스실이다.
샤워를 마친 후 천장에 설치된 4개의 구멍에서 '사이클론 B'(독일어로는 '치클론 B')라는 독가스가 살포된다.
어둡고 흔들린 사진이지만 저 어두움의 자리에서 이곳에서 스러져간 수백만 수용자들의 공포와 비명을
여전히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시체를 태운 가마.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물질'로 대했던 나치스의 악행은
우리가 다시는 밟아서는 안될 인간 이성의 몰락의 역사일 것이다.

제1수용소를 나오는 길에 뒤를 돌아보니 저렇게 감시탑이 흉물스럽게 서 있다.
저 검은 몸체의 색 때문인지, 마치 마녀의 집 같은 느낌이 들었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우리 뿐 아니라 많은 관광객이 둘러보고 있었다.
제1수용소 관람을 마치고 버스로 10분쯤 떨어진 곳에 있는 제2수용소로 이동했다.

이곳은 제1수용소의 20배 규모에 달하며,
전시관으로 이용되고 있는 제1수용소와는 달리 비공개로 보존되고 있단다.

입구의 전망대에서 바라본 제2수용소 전경은 맑은 날씨임에도 여전히 을씨년스러웠다.

이곳이 바로 입구의 전망대다.


쭈욱 뻗어있는 철길.
이곳 수용소까지 열차를 타고 온 수용자들은 이곳에 도착하여 거무튀튀한 막사들을 보고
실낱같은 희망마저 포기했을지 모른다.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주위의 공기는 왠지 모르게 여전히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아우슈비츠 관람을 마치고 크라코프 구 시가지로 이동했다.
버스를 내리자마자 보인 바벨성. (Babel이 아니라 Wawel이다)
세련되고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지만 강건하고 힘있는 모습이 느껴졌다.



바벨성 뒤쪽으로 이제 크라코프 구시가지가 펼쳐진다.
관광마차도 달그락달그락 다니고... 좁은 소로 양 옆으로 서있는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예뻤다.

형제가 만든 성 마리아 성당 앞이다.
(형제가 탑 하나씩을 맡아서 지었다는데, 가만히 보면 두 탑의 모양이 다르다)
큰 광장 나가기 전에 작은 분수대가 있는 작은 광장이 있는데
바닥을 타고 흐르는 작은 분수대가 예뻤다.
비둘기도 그 물을 받아먹고, 파란눈의 꼬마들도 슬리퍼를 벗고 그 분수에 발을 적셨다.

이렇게 둘째날의 폴란드 여행이 마무리 되었다.
시차 적응 하기 힘들 줄 알았는데 잠만 잘 자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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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나치의 대학살이 심한것이라고 했을때, 지금의 유태인이 세운 나라인 이스라엘이 중동인에게 하는 일은 과연 어떤 생각으로 진행되는 것일까? 중동인들은 모든 유태인들이 그때 가스실에서 다 죽어버렸으면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나치나... 이스라엘이나... 흠... 한놈은 독가스고, 한놈은 돈이군요... 또 한가지... 과연 스페인의 남미인에 대한 학살과 미국과 인디언과의 관계는??? 가끔 생각해 보건데... 우리의 시각은 너무 영미 혹은 유럽의 시각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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