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 며칠새에 해외토픽을 통해 많이 알려졌는데,
미국 오클라호마에 한 가족이 기르고 있는, 두 다리로 걷는 개란다.
이름은 '페이스'(Faith). (http://www.faiththedog.net/)
처음에는 '두 다리로 걷는다'라는 점이 신기해서 봤는데
곰곰히 볼 수록 뭔가를 더 깊게 생각하게 됐다.
'과연 나라면 저 개를 기를 수 있었을까...?'
아까 사무실에서 DH와 얘기하면서
우리들이라면 저렇게 앞다리가 없는 강아지를 기를 수 있을까 고민을 했더랬다.
(사실 저 개는 앞다리가 기형이어서 제거수술을 받은 뒤 두다리만으로 걷게 자란 거란다)
엊그제는 본부장님이 나와서 팀장님과 얘기하시다가
외국인들은 입양을 하더라도 기독교적인 사랑 때문에 장애아를 입양하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러지 못하다는 얘기를 하시는 걸 얼핏 들은 것도 생각났다.
......
TV나 라디오에서 24시간 내내 떠들고 다니는,
그리고 우리들이 그렇게 목마르게 찾아 헤매고 다니는 '사랑'의 모습이란,
사실 잘 꾸며진, 그래서 잘 팔리는 - 이상화된 추상적 '상품'에 가깝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항상 '사랑'이란 것을 원하지만
실제로는 마트에서 식품을 고르듯,
이미 완벽히 가공되어 통조림처럼 먹기 쉬운 형태의 '사랑'이라는 상품을
'소비'하려고만 한다.
실제로 사랑이라는 것은
언제나 분홍빛만도 아니고
오히려 항상 자신을 낮추고 굽히면서 상대를, 그리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그래서 실은 '굉장히 귀찮고 버거운 과정'에 더 가깝다는 게 옳겠다.
.........
만약 페이스가 우리들의 집에서 키워졌다면
우리는 정말 저 앞다리 없는 강아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함께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내가 DH에게 시니컬하게 했던 말처럼
집 앞 공원에 대충 유기(遺棄)된 채,
기껏해야 유기견보호소에서 안락사 당하는 것으로
얼마 안 되는 현세에서의 삶을 마감했을 것 같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페이스를 받아들이고, 그에게 나머지 두 다리로 서는 법을 가르친
미국 스트링헬로우씨 가족의 '사랑'에 대해 고개를 숙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들도 사람인데 왜 다리가 둘 뿐인 이상한 개의 모습에 저항감을 느끼지 못했으랴.
그리고 그들 역시 그 저항감과 좌절감에 최소한 한번쯤은 페이스를 버릴 생각도 들었을 거다.
(만약 그런 마음이 한번도 들지 않고 처음부터 가족구성원 모두가 페이스를
너무 사랑스럽게 생각했다면 그건 스스로를 낮춘 사랑이 아닌, 예외적인 경우이므로
존경심이 들지 않을 거다)
하지만 그러한 그들 스스로의 내면의 장애를 극복하고 그들이 페이스에게 보여주었을 사랑은
정말 '겸손과 과정'이라는 내 나름의 '사랑'의 정의에 꼭 들어맞는 것일테다.
처음에 단순히 '신기한 해외토픽' 정도로 읽었던 기사에서
진실한 사랑이 무엇인지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
세상을 사랑하자구요...^^;;;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