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머리의 고민들 2003/05/20 14:33
법학과 와서 맨처음 한자 빽빽한 법전을 보는데 무척 당황스러운 일이 생겼다. 조문 하나 읽는데 속도가 엄청나게 떨어진 것이다. 다른 애들이 옥편 펴들고 끙끙대며 한자 위에 독음 다는 걸 비웃을 정도로 한자(한문이 아니라)에만큼은 자신이 있던 나였는데 그런 내가 한자 조금 섞였다고 읽는 속도가 이렇게 떨어지다니! 속도가 떨어지니 바로 앞줄에 뭘 읽었는지 기억도 안 나고... 법전 없이 교과서(이것도 끙끙대며 읽었다)와 공책만 몇 번 읽고 시험을 보는, 비정상적인 작태가 시작됐다.
아무튼 공익 끝내고 복학한 뒤,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쪽팔림 무릅쓰고(누가 보면 한자도 못 읽는다 할까봐) 한글법전을 하나 샀다. 그랬더니 이게 웬걸? 조문하나 해독하는데 몇초씩 걸렸던 예전과 달리 이제는 한번 훑는 것만으로도 조문 자체의 이해는 물론, 그 조문의 함의와 전후맥락 속에서의 의미, 위상까지도 대번에 이해되는 것이었다. 이건 중고등학교 때 교과서 보면서 시각적으로 외웠던 것과 다를 게 없잖아! 대학와서 괜히 독해력 떨어진 줄 알고 걱정했던 것이 괜한 것이었음을 알고 안도했지만 한자를 많이 아는 것과 국한문 혼용을 독해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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