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머리의 고민들 2006/04/04 23:13
목 때문에 큰 병원에 갔다.
순서를 기다리면서 대기실에서 TV를 보는데
무슨 뉴스특보라면서 하인스 워드 기자회견을 생중계를 한다.
야, 쇼도 세상에 저런 쇼가 없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기가 막혔다.
NFL에서 하인스 워드가 MVP를 탔다고,
그래서 한국에서 하인스 워드 열풍이 분다고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1면에 NFL 다음날 대문짝만한 사진이 뽑혀 나올 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 '열풍'이라는 것이
단순히 그들을 위시한 '민족패권주의적 언론의 자작품'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기득권층이 가장 좋아하는(그리고 사실 그 나라가 '세계'의 전부라 믿는)
'미국'이란 나라의 가장 미국적인 스포츠 축제의 MVP가 혼혈한국인이라는 사실은
그들이 좋아하는 '미국문물'을 얘기하면서
적절히 '한국인'이라는 이슈를 섞을 수 있어
화제의 높은 범용도(?)를 보장할 수 있다.
그보다 덜 미국지향적인 사람들,
'단일민족론 신화'의 교육을 받고 자라난 평범한 한국인들에게는
이 소식이 괜히 '한민족의 우수함'을 증명하는 것 같아 감동적이며,
한편으로는 인간승리의 드라마처럼 여겨져
'자, 봐! 저 사람처럼 너도 노력만 하면 할 수 있어!'라며
사회구조적 모순을 개인의 의지 여하에 따라 극복할 수 있다는
낭만적 미몽을 심어주기에도 적합하다.
이미 실시간으로 NFL을 찾아보고 외국드라마를 챙겨보는,
언뜻 코스모폴리탄의 외양을 한 한국 젊은이들이라 할지라도
이 혼혈한국인의 '성공신화'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위에서 말한 conventional한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언론의 선도가 없더라도
지극히 민족(패권)주의적인 한국에서
하인스 워드는 '뜰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는 게 내 생각인데...
그래서 신문의 수 개 면을 가득 메운 NFL 다음날의 하인스 워드 소식을 보며 불쾌했던 건
여론보다도 언론이 더 먼저 여론을 '조성'하고 있다는
그런 불온함에 대한 불쾌함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그게 과연 며칠이나 갈까,
그래, 한국의 언론은 원래 그랬으니까,
예전처럼 신문, TV 안 보며 살면 되지...하고 참아왔는데
오늘의 '생방송 특별기자회견'을 보면서는
그러한 혐오감을 더이상 숨기기 힘들어졌다.
.........
기업은 소비자가 원하는 바를 '잘 찾아서'
거기 부합하는 상품을 만듦으로써 마케팅을 해야한다고,
그렇게 순진하게 믿었던 적이 있다.
그러다가 이러저러한 책을 읽으면서
기업이 판매를 위하여 오히려 수요를 '창출'하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좀 청교도적인 생각을 갖고 있던 나에게
기업의 그러한 마케팅 전략은 하나의 hoax 처럼 받아들여져 놀라웠다.
이효리도 그렇고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라는 책도 그렇고
나는 우리 사회의 많은 이슈들이란 것이
사실은 언론사가 스스로의 증식을 위해 만들어낸
'미끼'들이 아닐까 회의해보곤 한다.
('우리 안의 파시즘론'이나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같은 경우는
'미끼'라기보다는 좀더 직접적인 해당언론사의 정치적 욕망의 '투사'라는 게 맞겠다)
우리 모두가 거대한 매트릭스 안의 가상현실을 살고 있다던
영화 '매트릭스'의 일갈과도 같이
우리는 사실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라는
굉장히 존재론적인 질문들,
즉, 참다운 '존재'로서 홀로 서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스스로 구해야만 하는 그러한 질문들을,
허무하게도 '의제설정'(아젠다 세팅)이라는 미명 하에
언론매체에 위임하고, 의존하고 있다는 거다.
......
뭐... 생각해보면 이해 못 할 바도 아니긴 하다.
먹고 살기 바빠 죽겠는데 무슨 생각이냐.
가끔 쉬는 시간에 신문쪼가리 좀 펼쳐보고 생각할 '거리'를 얻어내서
내 생각을 발전시키면 되는 거지, 그게 뭐 그리 큰 문제라는 거냐....
일리 있는 말이다.
문제는,
언론 스스로가 그 '의제설정' 역할을
너무도 당당하게 '자임'하고 있다는 거다.
'자임'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걸 견제할 수단이 없다는 게 문제된다.
(견제수단이 없으면 그것은 곧 독단이 된다)
이이제이(以夷制夷)라고,
그렇다면 그 '자임', 또는 각기 다른 언론들의 '설정의제'들이
서로 공평하게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자유경쟁을 펼쳐
그 의제설정 기능을 위임한 시민들의 '선택'을 받게 하면 좋을 거다... 라지만
여기서 바로 언론의 '독단'보다도 더 큰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설정의제'들이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자유경쟁하는 데는
'설정의제'들의 가치가 아닌,
그 의제를 담은 언론상품의 '상품적' 가치가 우선시 되기 때문이다.
한달 구독료가 15,000원으로 똑같을 경우,
독자는 16면짜리 신문을 볼까, 80면짜리 신문을 볼까...?
이 경우, 의제설정 기능 수준이 구독여부의 중요한 변수가 되기 위해서는
구매자가 면수 차이를 무시할만큼
의제설정 기능에 가중치를 두는 판단을 해야 한다.
물론, 구매자의 사회적 수준(이랄까?)이 높을수록
의제설정 기능을 중시하리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
옛날처럼, 여론을 '만들어내는' 도구로서의 언론의 시대는 갔다고 생각하는,
그래서 오늘날 한국언론의 모습을 극도로 불신하는 나 같은 사람으로서는
결국 언론은 '광장'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모두가 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그 백가쟁명의 이야기들이
사상의 자유경쟁시장에서 공정한 룰에 따라 논의되고 승복되는 모습.
난 그게 옳다고,
그게 멋있다고 생각한다.
광장은 텅 빈 채로 열린 게 미덕이다.
광장을 뽀대나는 곳으로 만들어보겠다고
한 귀퉁이에서 밴드를 부르고 한 귀퉁이에서 폭죽을 터뜨리고 하면서
광장 스스로가 '너희들, 이리 와서 이거 봐!' 하는 듯 행세하는 모습,
별로 좋아보이지 않는다.
하인스 워드라는,
여태동안 한번도 관심 가져본 적 없었던 '미국인'에게
갑자기 '넌 한국인이야~' 하면서 호들갑 떠는 모습,
평범한 한국사람이 혼자서 해도 우스울 판에
똑똑한 사람들이 모였다는 언론사에서 먼저 나서서 그 짓을 하고 있으니
'많이 배운 놈, 소용 없더라'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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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분들에게 가능하면 한겨레신문을 광고합니다.
가능하면 한겨레21을 제목을 보이게 반으로 접어서 가지고 다닙니다.
정기구독은 못하고 있지만 가능하면 매주 사서 보고 있습니다.
동아투위와 언민련과 말지와 한겨레의 연관성에 대해서 열심히 광고하고
다닙니다. 해직을 당하고 고문당하고 투옥당하는 걸 감수하고서라도 진실을 참을 알리려고 한 기자들과 그렇지 않은 기자들이 있다는 얘길 자주 할려고 합니다.한겨레정도의 언론매체등이 우리의 정보소통의 큰 물줄기로서 50%정도만 담당해줘도 지금 우리보다는 아주 많이 행복한 건전한 투명한 사회에서 살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태아시절을 포함해서 나의 뇌에 기억이라는 자극반응이 가능하게 된순간부터
나에게 주어지는 모든 정보들에 의해 지금은 내 생각, 거창하게 가치관 세계관이 만들어졌을터인데.. 그 정보들중 가짜가 얼마나 될지..
자신의 사리를 위해 거짓을 일삼는, 특히 교육이나 언론등 정보를 전해주는 곳에 이기적인 인간들이 많다면 또는 많았다면..
식민지와 군사독재..거짓이 넘쳐나던 시절이었고 아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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