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머리의 고민들 2005/11/22 15:55
염색체니, 체세포 복제니 하는 말들과는 담을 쌓고 살아서
황박사가 이룩한 업적이 어떠한 것인지 잘 모른다.
(하지만 천주교에서 말하는 배아줄기세포 복제금지의 논리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천주교의 '생명존중'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배아가 생명의 시작이라고 해서 터치할 수 없다는 것은
자연을 정복하여 영향력을 넓혀온 인간의 역사와는 궤(軌)가 다른,
근본주의적인 시각 같다.
그래서 서양에서 종교(기독교)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거겠지만...)
어쨌거나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황박사의 연구 그 자체에 대한 과학적 평가가 아니다.
오히려 대한민국 사회가 그 연구의 성공에 열광하고 환호하는 이유,
무엇이 이 사회를 이렇게 강력히 응집시키는지에 대한
어색한 낯설음과 까닭모를 두려움을 뜯어보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사회학적 응시에, 과학적 지식이 긴요한 것 같지는 않다.
그저 객관적이고 날카로운 사회과학적 비판의식만으로도 족하리라.
내가 황박사 연구에 환호하는 대한민국을 불안해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기술' 또는 '산업'적인 측면에서 세계와 미래를 석권하고자 하는
'패권주의'의 어두운 그림자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는
미래학 서적이나 매스컴을 통하여
생명과학 산업이 미래의 주요산업이 되리라는 예측을 접해왔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항상 강대국 사이의 약소국이었던 대한민국의 한 과학자가
생명과학 산업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는 소식은
해당분야에서 대한민국이 세계를 선도할 수 있을 거라는 낙관적 전망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문제는,
이 낙관적 전망이 '폭력'으로 전이될 때이다.
이미 황박사가 복제성공 초기 인터뷰에서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국적이 있다'라는,
내가 보기에는 전혀 불필요한,
(그러나 민족주의 의식이 강한 한국인들에게는 더할나위 없이 감동적이었을)
코멘트를 하고 그것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선전될 때부터
과학자 황우석은 사라지고
'미래 한국의 명운을 짊어진 민족주의적 파이오니어 황우석'이 그의 본직(本職)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그의 발언을
'어느 유망한 과학자가 패배주의에 지친 조국을 위무(慰撫)하기 위해 언급한
영리한 립서비스' 정도로 좋게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정말로 현실에 지친 한국인들은 그의 말에
자신들의 장밋빛 미래를 걸어버렸다. (!!)
(사실 우직한 그가 저러한 계산된 발언을 한 것 같지는 않다.
우직한 그답게, 가볍고 나이브하게 한 발언이었을 거다)
가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어보면
그들이 이해하고 있는 황박사의 과학적 성과라는 것이
얼마나 초라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물론 내가 만난 사람들이 황박사에 열광하는 모든 한국인의 모습은 아니겠지만
프레시안과 MBC를 비난하며 열을 올리는 열정적인 한국인들이
과연 황박사의 성과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지 궁금하긴 하다.
물론, 황박사의 성과에 대한 서구의 반응은
어느 정도 한국을 견제하려는 성격도 있고,
지나치게 규제가 심한 자국의 윤리규정을 비판하려는 의도도 있다.
하지만 서구의 비판에 그러한 성격이 있다고 하여
'황박사의 성과는 절대 비판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것은 서구 제국주의자들의 딴지걸기에 불과하다!'라는 자세를 보인다면
정말 '배째라'다.
물론 한국사회에서 살아남는 방식 중 하나가 '배째라' 스피릿이긴 하지만
세계를 상대로 한 싸움에서도 '배째라'가 통할 수는 없지 않을까.
(중국이나 북한이 '배째라' 때문에 얼마나 많은 웃음거리를 받고 있는가)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난자 취득의 '거래성' 문제는
서구의 비판이 서양중심주의적이다 뭐다 할 것도 없이
과학 뿐 아니라 사회학적으로도 기본적인 윤리문제에 속하는 것이다.
(장기매매, 성매매, 인신매매 등을 떠올려보라)
연구용 난자를 자발적으로 제공하겠다는 여성들이 모여 발족한
황박사 후원모임 같은 해결책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의 금 모으기 운동처럼
차라리 민족주의적으로 아름답게 보이기나 하지만,
(이 경우에도 배란촉진제 투여 금지 등의 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겠다)
어떠한 경우에도 황박사는 비판할 수 없다, 라든가
난자를 돈 주고 산 게 뭐가 잘못이냐, 와 같은 꽉 막힌 맹종은
우리 사회의 천박한 윤리/의식수준을 드러낼 뿐인 거다.
그리고 이러한 황박사에 대한 과도한 맹종 뒤에는
'반드시 생명공학 산업에서 미래의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는 의식,
좀더 직설적으로 말해보자면
'반드시 미래에는 (생명공학 산업을 통하여) 세계를 제패해야한다'는
패권주의적 의식이 잠재적으로 자리잡고 있다.
........
줄기세포가 뭐고, 왜 천주교에서 황박사 연구에 대해 반대를 하고,
황박사 연구가 우리 생활에 무슨 혜택을 가져다 줄 거고...
이런 얘기를 몰라도
이미 대한민국 사람들은 '황우석'이라는 이름 세 글자를 다 안다.
그리고 그 이름 위에
'미래 한국을 구원해줄 구원투수'의 이미지를 오버랩 시키고
그 구원투수의 경호원을 자임한다.
지난 5천년 동안 중국놈들과 일본놈들은 우리를 짓밟았어...라는 사실(fact)은
'우리는 그래서는 안 돼'라는 성찰로 화하지 않고
'이번엔 우리가 너희를 (생명공학으로) 지배할 차례야'라는 유아기적 복수심리로 화한다.
철학과 성찰이 빈곤했던 우리 사회의 역사 속에서
(동아시아의 역사이기도 하니, 100% 우리의 잘못만은 아니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다.
황박사의 연구가 성공해도 자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텐데,
오히려 정부의 정책중심이 고부가가치산업으로 이동하여 자신에게는 독약이 될지도 모를텐데
섬유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도, 제조업에 종사하는 사람도
모두가 황박사의 경호원이 되길 자청한다.
만나본 적은 없지만, 난 황박사의 신실함과 진중함을 믿는다.
연구에 대한 그의 열정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황박사 위에 '민족주의적 또는 패권주의적 소망'을 담아싣는,
돌격대와도 같은 한국사회의 큰 흐름에 대해서는
1930년대 독일의 지식인들이 느꼈을, 같은 불안함을 느낀다.
정말로 소중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잘못을 이야기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잘못된 길로 가지 말고
올바른 길로 가서 떳떳하게 너의 성과를 이야기하라고 지적해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어릴 때 잘못을 하면
엄마가 나를 회초리로 때리면서 말씀하셨다.
'맞으면 아프지? 때리는 엄마도 아프단다.
하지만 둘 다 아프다고 안 때리고 안 맞을 수는 없는 일 같구나.'
난 체벌반대주의자이긴 하지만
'때리는 사람도 아프다'라는 말이 진짜라는 건
너무도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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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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