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새로운 경험들 2005/08/19 11:51
사파리 파크 호텔의 침대는 다른 로지의 여느 침대들과는 달리 정말 키가 높았다.
서양영화 보면 중세시대 왕이나 귀족들이 고깔모자 쓰고
아주 높은 침대에 드는 모습을 종종 보는데,
딱 그런, 키 높은 침대였다.
오랜만에 깨끗하고 쾌적한 '제대로 된' 샤워실에서 룰루랄라 샤워를 하며 생각해보니
오늘이 정말 케냐의 마지막 날...!
저녁 9시 45분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나이로비 시내를 조금 돌아다닌 뒤
케냐 여행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
옆방의 우재랑 만나서 아침식사가 준비된 카페테리아로 갔다.
이제까지의 로지식 아침식사와 다를 바 없는, 유럽식의 간단한 메뉴였지만
그래도 한국자본이 운영하는 호텔이어서인지
한쪽 구석에 미역국과 김치, 밥이 있더라.
아쉽게도 쌀은 맛없고 찰기없이 길쭉한 안남미였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제대로 된' 한국식사를 보니 기분이 좋았다.
(난 우리나라 통통한 쌀이 좋아~~)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조지를 만나 차를 탔다.
스케줄 문제로 자기가 못 올지도 모른다더니 오늘 시간이 되나보다.
혹시 어제 줬던 5일치 팁의 영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
부릉부릉...
정말 난리도 아닌 나이로비 시내의 아침 출근시간 교통체증을 뚫고 우리가 처음 간 곳은
바로 케냐 국립박물관!
동물원, 박물관 이런 곳 좋아하는 나로서는 기대되는 곳이 아닐 수 없었다.
석주가 세워져있는 등 유럽식으로 지어진 박물관의 외형도 마음에 들었고
입구 앞에 놓인 고색창연한 낡은 대포도 멋졌다.
그러나...
박물관치고는 좀 작다? 싶던 의심스러운 첫 인상은
박물관 안에 들어가면서 애걔걔...로 바뀌었다. ㅡ.ㅡ
우리나라 혜화동에 있는 국립과학관인가? 딱 그 수준...
미국, 캐나다, 호주의 많은 박물관들을 둘러보면서
그 소장품들의 전문성 뿐만 아니라 그 세련된 진열수준에 이미 눈이 높아져버린 내게
명색이 '국립'인 이 박물관의 수준은
우리나라 공립고등학교의 구색만 갖춘 낡은 과학실 표본들과 다를 게 없어보였다.
박물관의 구성은 크게 자연사 자료와 민속사 자료로 나뉘는데,
자연사 자료가 그나마 볼만했다.
워낙 자연환경이 좋고 동식물, 광물자원이 풍부한 아프리카 대륙이어서인지
지질학이나 생물 진화에 관한 자료들의 수준은 꽤 높았다.
하지만 그러한 자료들의 높은 가치도
포르말린 보존이나 박제표본, 어설픈 모형, 대충 손으로 쓴 설명자료 등
이미 구시대적인 진열방식들로 그 진가를 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소장품들이 보호유리도 없이 아무나 손댈 수 있게 노출되었다면 말 다했지 뭐.

특별전시회도 열리고 있었는데... 주제가 AIDS와 HIV바이러스였나? 그랬다.
가만 생각해보니 들어올 때 입구에 걸려있던 현수막이 그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특별전시회라는 것도 박물관 2층의 한쪽 구석에 칸막이를 쳐놓고
조촐하게 노트북컴퓨터 몇 대와 대형 패널 몇 개를 설치한 것에 불과했다.
노트북컴퓨터는 AIDS와 HIV 바이러스의 위험성, 예방책을 홍보하는
마크로미디어 디렉터 파일을 구동시키기 위한 것...^^
오히려 볼거리는 국립박물관 옆에 있는 뱀 공원(Snake Park)이었다.
여기는 우리의 여행비에 포함된 곳이 아니기 때문에 따로 돈을 내야했다.
1인당 200실링(70실링=1달러=1000원, 즉 3000원 정도)의 싼 가격이라
별 부담 없이 입장할 수 있다.
나나 우재나 둘다 뱀띠고...(^^)
왜, 그런 거 있잖은가, 어릴 때부터 파충류 징그러워하면서도 괜히 호기심 느끼고 그러는 거.
내일모레면 서른을 앞둔 우리한테도 예외는 아니더라. ^^
뱀 공원이라고는 해도 거북이, 악어 같은 애들도 있고
무엇보다 원래 이름처럼 Park 수준에 맞는 작고 아담한 '농원'(農園) 수준이다.
뱀들은 아무래도 벽에 설치된 어항(?)에 담겨 전시되고 있는데
다들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있어 우재와 나로부터
'쇼맨십이 없다'라는 투덜거림을 들어야 했다.
그래도 거북이는 과일도 먹고 움직이기도 잘 하고 귀엽더군...
국립박물관과 뱀 공원을 둘러보고 미리 점심을 먹기 위해 이동했다.
도쿄...라는 일식집인데, 역시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이란다.
여기 말고 치요...라는 일식집도 한국인이 하는 곳이라던가?
외국 가보면 한국인이나 중국인이 일식집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뭐...
식당에 도착해보니 일전에 마사이마라에서 뵈었던
이곳 케냐쪽 사파리 여행사 사장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마사이마라에서 등산복 같은 거 입고 계셔도 멋있더니
여기서 양복 쫘악- 빼입으신 모습을 뵈니 더 멋지네...*ㅡㅡ*
사장님이 사신 케냐산 터스커(Tusker) 맥주로 시작하여
케냐인이 일본주방장 옷을 입고 해주는 철판구이를 먹었다.
이런저런 얘기 하면서 분위기 좋았는데
이 케냐요리사가 철판에 간장을 계속 뿌려대는 바람에 음식이 짜서 괴로웠다.
그래도 나오는 철판구이 꼬박꼬박 다 먹어치우는 나를 보고
여행사 사장님이 참 잘 드신다는 표정으로 날 보시더군...
그렇게 거하게 점심을 마치고 사장님과 작별을 한 뒤
우리는 카렌 브릭슨 박물관으로 이동했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실제 주인공이 살았던 집을
케냐정부가 박물관화한 곳이란다.
(영화에서는 메릴 스트립이 연기를 했는데
사진을 보니 메릴 스트립보다 더 예쁘더군)
나이로비 시내 외곽에 있고 원래 그 주위가 다 커피농장이었단다.
영화에서처럼 커피농장 한 가운데에 그 집을 짓고 살았던 게지.
상해에 있는 우리 임시정부 청사처럼
관람객의 접근을 막기 위해 설치한 펜스(?) 너머로
당시의 유품들이 고스란히 전시되어 있었고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그 유품들 위에는 희끗하게 먼지가 쌓여 있었다.


내부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가 없어 외부의 사진만 올린다.
그래봤자 원체 사진을 안 찍으니...^^;

내가 서있는 왼쪽으로는 넓은 잔디마당이 있는데
주위 학교 학생들인지 소풍을 온 듯 했다.
간혹 아장아장 걷는 아기들도 보였는데
국적이 어디건, 피부색이 어떻건간에 역시 아기들은 예쁘고 귀엽더라.
다음 일정은 나이로비 재래시장 방문이었다.
그래서인지 조지가 조금 걱정을 한다.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는 안정된 나라라고는 해도
아무래도 관광객들끼리만 재래시장 둘러보고 하기엔 불안할테니까.
그래서 다시 시내쪽으로 재진입하여 비교적 안전한 서양식 마켓을 가기로 했다.
동생은 길거리에 좌판을 벌려놓고 그 사이를 어슬렁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그런 '풍물시장'식의 전통 재래시장을 생각했던지 좀 실망스러운 표정이었지만
큰 건물 안에 작은 점포들이 올망졸망 모여있는 서양식 마켓이 그나마 낫다는 것이
나와 우재, 조지의 생각이었다.
서양식 마켓이라고는 해도
역시 여기도 삐끼들이 득시글거렸다.
시내의 평범한 마켓이라고 해도 내국인들을 위한 생필품 가게보다는
(식료품 가게를 제외하면) 기념품 가게가 훨씬 많은 것도 이상했다.
역시 여기서도 먹고 살기는 힘든 건가?
케냐 들어올 때 케냐항공 기내에 비치되어 있던 msafari라는 기내잡지를 보면
흑인인 케냐항공 회장이 환영사를 맨 앞페이지에 적어놓은 걸 볼 수 있다.
하지만 회장이 흑인이라고 해서 케냐항공이 흑인들에 의한 토종기업이군~!
이렇게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페이지를 몇장 넘기다보면 회사의 CFO나 Manager들이
대부분 백인인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인도의 간디도 영국에서 유학한 변호사 아니었던가.
(얇은 천 하나를 걸치고 물레를 잣는 사진만 보고
간디를 인도 토종의 빈민출신 정도로 여겼던 어린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뭐 마켓에 들어가서까지 이런 생각을 한 건 아니고
지금에 와서 되돌이켜보면 아... 그랬구나... 싶은 거지만
케냐에서도 현지인들이 살기 어려운 건 매한가지구나 하는 생각만은
그 당시에도 분명했다.
화장실을 가려고 마켓 밖으로 나왔다가
건물주가 고용한 알바생처럼 보이는 남자 하나가 화장실 앞에서 지키고 앉아
화장실 사용료 5실링을 받아가는 모습을 맞닥뜨리면
케냐의 모습이란 게 상해 옆의 쑤저우랑 똑같은 게 아닌가
뭐 그런 생각까지 드는 거다.
그래도 그런 우울한 생각 없이 즐겁게 마켓 안을 돌아다닐 수 있었던 건
마지막 기념품을 사기 위해 들어간 작은 기념품 가게의 주인 아줌마와 아들 덕분이었다.
오렌지빛 가발을 쓰고 연신 수다스러우면서도 호방하게 가격흥정을 하는 뚱보 아줌마와
레게머리에 두건을 쓰고 귀에는 헤드폰을 꽂은채 어디선가 물건을 가져와
우리에게 내보이곤 하는 삐쩍 마른 아들놈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3평 남짓 되어보이는 작은 가게 안을 유쾌하게 만들었다.
다른 분 드릴 선물로 작은 마사이 손칼을 하나 사고 나왔다.
딴에는 일찍 나온다고 나왔는데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30분이나 늦어서
조지가 걱정했댄다.
그래도 아직 저녁을 먹으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다.
비행기 시간에 맞춰 저녁을 5시에 일찍 먹어야 하는데...
아까 철판구이 먹은 것도 아직 배가 꺼지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일정표에 없는 다른 곳을 가야겠더라.
이럴 때 발휘되는 조지의 노련함.
차를 몰더니 어딘가에 딱 멈춰준다.
Kazuri 구슬공장(Beads Factory)이라던가?
Kazuri는 스와힐리어로 '작고 귀엽다'라는 뜻이란다.
공장이름만큼이나 귀엽고 예쁜 구슬과 공예품을 그 자리에서 만들고
옆에 나란히 있는 샵에서 파는, 그런 곳이었다.

** 빚는 조, 색칠조, 이렇게 두 조로 나뉘어 있는 듯 하다.

** 접시형태는 단순하지만 거기 들어가는 도안들이 예쁜 게 많았다.
우리들이야, 다들 장신구를 좋아하지 않아 구슬공예는 관심밖이었지만
찰흙으로 빚은 작은 도기(陶器) 인형들이나 머그컵 같은 것들은
깜찍하고 예쁜 게 많았다.
가격이 좀 세긴 했지만 케냐의 기념품 중에서 이렇게 예쁜 것들을 보기도 쉽지 않아
결국 지갑을 또 열고야 말았다...^^;
그리고는 마침내 저녁을 먹기 위해
며칠전 들렀던 나이로비 유일의 한식당 뉴서울가든으로 이동.
지난번에 뵈어서 그런지 주인아주머니가 반가워하시는 것 같다.
아니, 우리가 밥만 먹지 않고 항상 기념품도 사주기 때문일까? ㅡㅡ;;
재래시장, 카주리 구슬공장에 이어 여기서도 또 기념품을 사고야 말았다. ㅡㅡ;;
팀원들 거, 지사사람들 거, 친척 거, 부모님 거, 우리집에 놓을 거
뭐 이렇게 이것저것 선물 드려야할 분들이 많아서...
...다른 기념품가게보다 월등히 싼 가격으로 주시는데 안 살 수가 있나.
하도 많이 사니까 아주머니가 물건 싸가라고 종이상자까지 주신다.
매번 비닐봉지에 기념품 덜렁덜렁 들고다니기도 힘들던 차에 잘 됐다.
점심 때 먹은 철판구이도 소화되지 않은 마당에
저녁식사가 제대로 들어갈 리가 없다.
저녁은 대충 먹고 일찌감치 공항으로 이동.
일찍 공항에 가서 뭐하지? 하던 우리의 생각과 달리
공항가는 길은 의외로 교통체증이 심했다.
여유만만하게 배 두드리며 차 안에서 놀던 우리도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조지는 역시 '노 프라블럼~' 그런다.
이 교차로만 넘으면 차 안 막힌단다.
차가 막혀 오도가도 못하고 있는데
참 익숙한 풍경 - 도로에 갇힌 차들 상대로 물건 파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우리나라에도 요즘은 간선도로에까지 이런 도로 위의 잡상인들이 진출했다지만
도심 한 복판에서 다 썩은 바나나와 꼬질꼬질 때가 낀 밀짚모자를 파는
이 케냐의 도로 위 잡상인들에 비하면 아직은 양호한 편이다 싶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광화문이나 신촌로타리에
저런 잡상인들이 등장하지는 않았으니까. ^^
다행히 조지 말대로 교차로를 빠져나오니 좀 뚫리더라.
여유있게 공항에 도착하여 조지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우재한테는 자기 집 주소와 연락처도 전해주었는데
이 녀석, 연락 좀 하고 그러나 몰라?
조지 아들 보러 또 가기로 했잖아? ^^
(여행 내내 우재가 조수석에 타서 통역, 수다 등의 중책을 맡는 바람에 조지랑 많이 친해졌다)
공항에 오니 이제 정말 케냐를 떠난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비행기 시간까지는 서너시간이 남았지만
일찌감치 체크인을 하고 들어왔다.
여행사 사장님이 얘기해주신 건데
이놈의 케냐항공은 어찌 된 것인지 부킹을 중복해 잡는다고 한다.
취소율을 감안해서 하는 건지 무조건 120%로 표를 남발해서
탑승권을 받고도 자리가 없어 비행기를 못타는 일이 부지기수라고...
우리가 서둘렀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아니나다를까,
어떤 출구에서는 중년의 백인부부 한 쌍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공항요원들에게 항의를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영어를 잘하는 착한(?) 우재의 말에 따르면
예약을 하고 컨펌까지 다 하고 왔는데
일방적으로 자기들 자리가 취소되어 비행기에서 도로 내렸단다. (!!!)
그래도 '공항'이라면
한 나라에서 가장 국제적인 시스템을 갖추는 법인데
여기는 그런 것도 없나보다.
그런 우려는 비행기를 타서도 계속 되었다.
몇몇 사람은 우리가 가진 보라색 탑승권이 아닌
자주색 탑승권을 갖고 있었고
그들은 보라색 탑승권을 가진 정식 탑승객과 자리 때문에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예약시스템이 이렇단 말인가...ㅡㅡ;;
승무원들은 마치 남는 자리에 짐을 싣듯
자주색 탑승권을 가진 사람들을 빈 자리(예약취소한 사람들 자리인 듯)로 안내했다.
비행기 한 편당 공석률 0%가 목표라는 듯,
탑승객들을 '승객'이라기보다는 '짐' 정도로 보는 것 같아 어이없었다.
그래도 비행기는 떴다.
승객들이 투덜투덜 대도 비행기는 뜨더라. (The Show must go on...^^?)
지난번 케냐 들어올 때 기내식 못 먹고 계속 자기만 했던 우재는
이번에는 기내식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자신이 잠들어도 밥 나오면 꼭 깨우라고 나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나는 비행기 안에서 깊이 잠을 못 잔다.
비행기 안에서는 아무리 깊게 자도 1시간 넘기질 못하는데
덕분에 필중이랑 우재랑 깨워가며 밥 먹이고...(ㅡㅡ;;)
우리 비행기는 그렇게 인도양을 지나 방콕으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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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다리벌리고 허리에 손올린 사진이 많단말이야~
합성이라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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