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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여행 4 - 2005.8.16.화

일찍 일어나보니 비가 그쳐있다.
원래 촉촉한 초지 언덕 위에 지어진데다
자연석을 널찍히 잘라만든 타일로 정원을 아름답게 꾸민 롯지다.
그래서일까,
아침을 먹으러 가는 걸음에,
자연석 바닥에서 올라오는 간밤 비내림의 한기와
초지를 감싼 아침해의 훈기가
반바지 아래로 드러난 다리로 가볍게 교차되는 것 같다.

이 아름다운 롯지를 단 하루만에 떠나야한다는 게 아쉬울 정도로
레이크 엘레멘타이타 롯지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어쨌거나 우리에겐 가야할 곳이 있었다.
그리고 어제 벌어진 불의의 자동차 고장 때문에
일정이 틀어져서 마음이 더 급했고.

차를 타고 나꾸루 국립공원으로 이동했다.
어제 문턱까지 갔다가 되돌아온 길을 그대로 되밟아갔다.

여행사에서 제공해준 일정표에 따르면
이곳 나꾸루 국립공원은 케냐 최대의 홍학 서식지란다.
새에 별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시큰둥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단순히, 서울대공원처럼 호수가 있고 거기 홍학들이 있는 정도겠거니 싶었다.
차라리 일정도 늦었는데
야생동물의 천국인 마사이마라로 직행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나의 생각은 롯지에서 공원까지 가는 약 20km의 짧은 이동 중에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나꾸루로 가는 길은 산등성이로부터의 내리막길이었고
거기서 보이는 저 멀리의 넓은 호수의 광경은
쌍안경이 아니더라도 뭔가 달라보였기 때문이다.

기세를 잃은채 얇게 하늘을 덮은 비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드넓은 호수의 수면 위에 내려앉아 사금(沙金)처럼 반짝였고
그 호수 한가운데로 분홍색 줄이 기다랗게 늘어서있었다. (strung out!)
자세히 보니 그것들은 모두 날개를 파닥이고 있는 홍학떼였다.
새한테는 관심이 없다지만
저런 광경이라면 좀더 가까이서 미시적(微視的)으로 볼만하다는
그런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어제, 차를 고치기 위해 정차했던 기념품 가게를 지나
모퉁이를 한번 돌자 곧 국립공원 입구가 나왔다.
나와 동생이 입구 앞을 장식한 가젤 두개골이 진짜냐 가짜냐를 궁금해하던 중
조지가 사파리차량의 지붕을 열어줬다.
호수가 바로 앞에 있다는 뜻일까?
궁금증은 이내 풀렸다.

검문소를 통과하자 펼쳐진 광경은
저 멀리서 보던 '평범한 호수가의 평범한 진입로'와는 다른 것이었다.
우리는 갑자기 인도네시아의 밀림 속에 와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암보셀리가 '사막'이었다면
나꾸루는 '밀림'이었다.

십수미터는 능히 넘을 듯 높이 뻗은 나무들은
우리가 방금까지 쬐고 온 따사로운 햇살이 비치는 하늘을 이내 가려버렸다.
차고가 높은 사파리차량의 허리까지 자란 무성한 풀들마저 간밤의 한기를 머금었는지
열린 차 지붕 사이로 찬바람이 스며들어왔고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다시금 몸을 움츠려야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었다.
빽빽한 나무와 풀 사이로 느껴지는 싱그러운 내음과 깨끗한 공기도 그렇거니와
차를 아랑곳 하지 않고 풀숲에서 쏟아져나와
주행로를 어슬렁 가로건너가는 많은 동물들의 모습이
우리를 흥분케 했기 때문이다.

찻길 위에서 뒹굴뒹굴 노는 바분원숭이들 때문에 잠시 차를 멈추고 있자면
차 옆구리의 풀숲에서 버팔로가 머리를 들고 우리를 쳐다보다가
이내 무심히 몸을 돌려 제 갈길을 가곤 했다.

얼룩말 역시
온통 초록색인 풀숲에서 자기의 흑백무늬가
별 위장효과가 없다는 걸 알고나 있는지
암보셀리에서와는 다르게 종종걸음으로 차 앞을 가로질러갔다.

** 주행로 위에서 마음대로 놀고 있는 바분원숭이들.

암보셀리에서는 정해진 트랙에 따라 움직여야 해서
동물들을 멀찍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지만
나꾸루 호수 진입로는 단선로 양옆이 온통 밀림이라
정말 팔만 뻗으면 동물이 닿을, 그런 거리였다.

접근성이 높을수록 친밀해진다는 '연애의 법칙'은
이곳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던 거다.

그렇게 밀림 속에서 즐거움이 취해있을 때,
아, 이게 나꾸루구나...하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빠질만할 때쯤
갑자기 키큰 나무들이 사라지고 넓은 초지가 드러났다.
순간적으로 잊고 있던,
나꾸루의 넓은 호수가 눈앞에 펼쳐졌다.

호수가 개펄에 적당히 차를 세우고 뛰쳐나갔다.
이제서야 삼각대를 제대로 쓸 장소를 발견하게 된 필중이가
제일 기뻐했던 것 같다.
(그러고보니 공원 안에서 하차할 수 있었던 건 이 나꾸루 호수가가 처음이었다)


개펄은 의외로 질퍽거리지 않았다.
발을 내딜 때마다 고운 개흙이 탄탄하게 밀리며 머금었던 강물을 밀어내는 품이
마치 참깨기름을 가볍게 얹은 도토리묵과도 같았다.
물론, 희게 퍼져있는 새똥들이 풍겨내는 냄새는
도토리묵의 고소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호수 뒤를 감싸고 있는 낮은 산은
필시 우리가 롯지에서부터 타고 내려온 그 능선자락에 이어지는 것일 테다.
그 낮은 산 머리 위에 이미 힘을 잃은 비구름이 얹혀있었고
저 먼 옛날 그리스사람들이 아폴론의 화살이라 믿었을
아름다운 아침 햇살가락들이 그 비구름 틈새로 뻗어나와
호수 위에 내려앉고 있었다.

왜 그리스사람들이 태양신 아폴론을 두고
무한한 빛과 강력한 힘을 가진 '강력한 전사'의 모습이 아니라
유(柔)하고 아름다운 '미(美)청년'을 그려냈던가 이해가 갈 것 같다.




홍학떼의 장관도 슬슬 지겨워져 차로 돌아가니
조지가 다 봤냐며, 우릴 보면서 저 뒤를 보라고 한다.

호수가 개펄과 밀림 사이에 넓게 퍼진 초지에
버팔로, 얼룩말, 가젤 등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조지가 가리키는 방향을 쌍안경으로 보니 흰코뿔소가 있다.
엄마 코뿔소 옆에는 엄마를 꼭 닮은, 덩치만 작은 아기 코뿔소도 붙어있다.

** 그 큰 덩치에 걸맞지 않게 선한 표정을 짓고 있는 버팔로. 소는 역시 세계 어디서나 듬직하고 순한 것 같다.

케냐 여행과 관련하여 '빅 파이브(Big Five)'라는 말이 있다.
사파리의 매력인 다섯가지 대형동물들을 일컫는 말인데
사자, 코끼리, 코뿔소, 표범, 버팔로를 말한다.
(이중에서 표범은 가이드들 사이에서도 표범 보는 날은 운수가 좋다고 할 정도로
참 보기가 힘들다고 하니
우리 같은 단기여행객들이야 나머지 4종만 보아도 좋지 싶다)
그제 아침, 암보셀리에서 사자를 보고
오늘 여기 나꾸루에서 코뿔소를 보게 됨으로써
주요 4종은 모두 섭렵하게 되었다. ^^;

호수가를 돌아나오면서도
유능한 가이드 조지의 솜씨는 어김없이 발휘되었다.
이젠 동물이 없겠거니 싶어 방심하고 있으면
조지는 손가락을 들어 저기 있는 하마를 보라며 우리에게 알려주곤 했다.

우리는 동물이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고
행여 발견한다 하더라도 쌍안경을 쓰기 전까지는 그게 뭔지 알지도 못하는데
조지는 운전을 하면서도 저 멀리 있는 동물을 발견해내고
그 동물이 어떤 동물인지까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아무리 현지가이드라 하더라도
이쯤 되면 '도사' 수준이 아닐까 싶다.

** 돌아나오는 풀숲에서 발견한 바분 가족. 모자지간이 정겨워보인다.

** 저멀리 보이는 기린 한 마리. 뒤 배경의 도시풍경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이래저래 나꾸루 국립공원을 나와
케냐 사파리여행의 최대 격전지(??) 마사이 마라로 향한다.
나이로비에서 나꾸루로 온 길을 되돌아가는데
한번 왔던 길이어서 그런지 험한 길의 덜컹거림이 조금은 익숙해진거 같다.
견딜만 했다.

중간에 다른 도로를 타고 마사이마라행을 본격화한다.
이 길은 나이로비 - 나꾸루의 고개길과 달리 평지다.
올망졸망한 마을도 좀 보이고 도로도 조금 낫다.
그래도 6시간은 족히 걸린단다. 어이구...

동생의 디지탈카메라 메모리가 부족할까봐
중간에 잠깐 마을에 들러 메모리카드를 사볼까 했다.
나이바샤라는 동네인데... 나름대로 큰 동네라고는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옛날 서부영화에나 나올법한 황량한 분위기가 풍긴다.
KODAK이라고 적힌 카메라샵을 찾아 몇군데 들어가봤는데
필름만 있지 메모리카드 같은게 있을 턱이 없다.

백인이 운영하는 카메라가게에서
운좋게 메모리카드를 딸랑 하나 발견했다.
그런데 128MB에 1만실링(약 15만원)이란 딱지를 붙여놨다.
15만원이면 한국에서 1GB짜리를 산다고 한다.

필중이랑 투덜거리며 나오는데 저 멀리서 조지랑 우재가
허겁지겁 차를 몰고 오면서 빨리 타란다.
왜 그런가 어리둥절해서 보니
주위 동네사람들의 시선이 온통 나와 동생한테 쏠려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외딴 마을에선 동양인을 처음 보는 사람이 태반일 거다.
게다가 비싸보이는 대포(망원렌즈) 달린 디지탈 카메라까지 들고 설쳐댔으니
경험 많은 가이드 조지마저도 우리의 안전을 확신하지 못하던 상황.

그냥 여분으로 갖고 있던 메모리카드를 아껴쓰고,
따로 구입하진 않기로 했지만
'블랙호크다운'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은 걸 천만다행으로 생각해야했다.
아프리카에서 비교적 치안이 잘 되어있다는 케냐라도
나이로비나 몸바사 같은 대도시가 아니라면
아프리카에서는 항상 주의를 해야하는 거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기념품을 사라든가 돈을 달라는 손길이 달라붙는 곳이 이곳이니까.
(그런 곳에 혼자 있게 되면 어떠한 일을 당할지 알 수 없다)

으슬으슬했던 나이바샤를 벗어나
계속 차를 달린다.
나꾸루 가는 길보다 좀 낫다 싶었더니 웬걸,
여기도 도로사정이 별반 다를게 없다.
그래도 조지는 도로의 어디가 파손돼있고 어디로 가면 나은지 다 안다는 듯
미리미리 알아서 차선을 바꾸는 등 운전도 잘 한다.

덜컹덜컹...

1시쯤 되어 휴게소에 들렀다.
휴게소라고 했지만 사실은 기념품가게 앞마당이다.
이동거리가 긴 케냐여행객들에게
도로변에 있는 기념품가게 앞은 좋은 휴식공간이 된다.
우리말고도 마사이마라로 가는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에서 잠시 머물며 도시락을 먹고 있다.

도시락이라고 해봤자 별거 없다.
샌드위치 한두조각에 크래커 한쪽, 스낵 한봉지, 과일 몇개와 음료수...
한솥도시락 1500원짜리 새댁도시락 생각이 간절하지만
그냥 먹어야지 어쩌겠나.
우걱우걱...

도시락 다 먹고 기념품가게에 구경하러 잠시 들어가봤는데
그새 또 삐끼가 붙는다.
이젠 아주 정겹다. 안 붙으면 섭섭하다. ㅡㅡ;;
가볍게 농담 몇마디 해주고, 삐끼 설명에 고개 좀 끄덕여주고
자연스레 차로 돌아오는 모습이 이젠 아주 능글맞다.
삐끼도 능글맞고, 손님도 능글맞고...
지금 생각해보면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뭐, 서로 능글맞으려니... 하면서 서로 그러려니 하고 지내는 게 자연스러워 보인다.

또 엉망인 도로를 신나게 달리며 마사이 마라로 향한다.
덜컹덜컹...

듬성듬성 덤불이 나있는 거친 사막을 지난다 싶더니
가파른 고개를 하나 넘는다.
그 고개부터는 장대한 초원이 펼쳐져있다.

눈 앞에 가로로 지평선을 하나 그려보라.
그리고 그 지평선의 중간쯤에서
여덟팔(八)자의 도로를 그려보라.
그게 바로 마사이 마라 가는 길이다.

가끔씩 초원에서 튀어나오는,
정말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마사이족이 아니라면
그 넓은 초원의 지루함에 눈을 붙였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 순간에도 우재는 잠만 잘 잤다.
회사일을 어떻게 하는지 불가사의할 정도로 기회만 되면 잔다.
조수석에 앉아서 조지랑 얘기도 좀 해주고 그래야하는데
선글라스 끼고 참 잘 잔다.
그래도 열어놓은 창문 밖으로 머리 내놓고 자는 일은 없어서 다행이었다. ㅡ_ㅡ

또 한참 초원을 달리다가
이제는 산길로 들어선다.
여기서부터가 마사이마라 국립보호구인 듯 하다.

마사이 마라는 해발 1500m의 고지대로, 면적은 우리나라 제주도만 하다.
암보셀리가 사람의 주거를 인정하는 국립공원(National Park)인데 비해
마사이 마라는 사람의 주거를 인정치 않는 국립보호구(National Reserve)다.
(그러나 드센 마사이족은 이런 구분을 신경쓰지 않는다)
같은 지역을 두고 경계를 그어
케냐쪽을 '마사이 마라', 탄자니아쪽을 '세렝게티'라고 부른다.
물론 동물들은 두 곳을 자유롭게 이동하고 있다.

고지대라 그런지 정말 계속해서 산을 올라간다.
날씨 역시 흐려져
저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들이 흰 수증기구름으로 모자를 쓴 듯 하다.
아니나다를까, 조금 더 올라가자 추적추적 비가 오기 시작한다.

비오는 등산길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동네 뒷산을 올라가도 아는 건데
해발 1500m를 차를 타고 올라가자니 천장에 붙은 손잡이를 잡은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간다.
이미 고지대에는 오전부터 비가 왔던 듯
이곳저곳 패인 땅에는 붉은색 물웅덩이가 생겨있다.
노련한 조지도 신경쓰이는지 표정이 많이 진지해졌다.

낑낑대고 산길을 타고 올라오니
이런 곳에 있을법하지 않은 아름다운 롯지가 또하나 우리를 맞는다.
(마라 소파 Mara Sopa 롯지)
특이한 점은, 고지대에 있어서 그런지 계단이 많다는 거다.
짐을 들고 로비로 내려와 체크인을 할 때도 계단을 탔고
숙소로 가면서도 계단을 탄다.

어지간해서는 쉬자는 말을 안하는 조지인데
'비오는 데 나갈 거냐?'라고 묻는 걸 보니 피곤하긴 피곤한다보다.
마사이 마라의 오후 게임드라이브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비도 오고, 조지도 피곤해보이고 해서
오늘 일정은 이쯤에서 접기로 했다.

백설공주에 나오는 난쟁이나 스머프집들처럼
둥그렇게 생기고 초가지붕을 올린 예쁜 숙소에 짐을 풀고
우리끼리 롯지 주변을 거닐기로 했다.
이 롯지에서는 2박을 해야하니까 이래저래 둘러봐야지...



수영장도 있고 예쁘더라.
여태동안 다녔던 롯지들과는 또다른 느낌이었다.
각 롯지가 고유한 분위기를 갖고 있어서 관광객 입장에서는 무척 즐거웠다.
천편일률적인 네모난 호텔방보다야
하루를 지내도 이렇게 개성있는 숙소들이 얼마나 더 추억에 많이 남을 것인지!

롯지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있으려니
우체국이나 철도청 유니폼 같은 옷을 입은 어린 직원이 하나 따라온다.
심심한가보다. ^^;

자기 이름은 'Jacob'이고 이 근처 사는 마사이족이란다.
이 롯지에서 안전요원으로 일을 하고 있단다.
어려보이길래 몇살이냐고 물으니
자기 팔에 숫자를 쓰고 감추면서
장난끼가 발동했는지 맞춰보란다.
맞춘 사람한테 상품 준댄다.

우재랑 필중이가 17, 19라고 말했는데
아까 우연찮게 팔뚝을 흘낏 본 나는 23이라고 했다.
팔뚝의 숫자를 보여주니 내가 맞았다.
내일 자기가 선물 갖고 올테니 기대하고 있으란다.

롯지 밖으로 나와 제이콥이 이끄는대로 주위 구경을 했다.
주변에 사는 마사이족이라 그런지
자기네 마을 꼬맹이들이 모는 소떼 구경도 시켜주고 집 구경도 시켜주고 그런다.
첫날 20달러 내고 본 '출퇴근 마사이' 마을 구경이 생각나서 슬며시 웃었다.

비가 와서 땅이 질퍽거려 걷기도 힘든데
제이콥은 잘도 걸어다닌다.
헥헥거리며 쫓아다니느라 우리 셋은 바쁘다.

제이콥 : 셋 다 여자친구 있냐?
우리들 : 없는데...
나 : 여기 이 친구(우재)는 누나 두 명 있다.
제이콥 : 오, 나는 여동생 둘 있다.
우리들 : 오, 우재랑 결혼시키면 되겠다.
제이콥 : 좋다, 내 누이들 한국으로 데려가는 대신 1명당 소 5마리 갖고 와라.
우리들 : ...

...마사이족은 1명 시집보낼 때 지참금(?)으로 소 5마리를 받는단다.
진짠지 뻥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럴듯하게 들리긴 하더라. ^^

** 따라들어간 마사이족 전통집 안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필중과 제이콥.




그렇게 노닥거리고 헤어지면서 필중이랑 우재가 1달러씩 주니까 무지 좋아한다.
잔돈이 없어서 이번에도 나만 1달러 안 줬다.
아까 네 나이 맞춘 것 땜에 도리어 너가 나한테 선물 줄거 있지 않냐고 변명하긴 했지만
혼자 1달러 안 주니까 깔깔대면서 나더러 나쁘단다.
쫌생이 됐다. ^^;

롯지에 다시 들어가니 또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진다.
참 타이밍 절묘하다 싶어 발길을 빨리 하지만
역시 자연석으로 깐 바닥이 미끄러워 달음질하기는 조심스럽다.


숙소에 들어가 동생보다 먼저 샤워를 하고 현관에 나와
안락의자에 몸을 파묻고 책을 좀 읽으니
빗소리도 고요하고 풍경도 좋은 것이 딱 신선놀음이다.

회사 선배가 그러더라.
해외여행에는 푸켓, 괌 같은 휴양여행과
터키, 중동, 아프리카 같은 모험여행이 있다고.
나이가 어릴수록 모험여행을 좋아하지만
세월이 갈수록 아무 생각없이 쉬다오는 휴양여행이 차츰 좋아질 거라고 그랬다.
하지만 일정을 잘 짜면
이렇게 모험여행을 하면서도 멋진 휴양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해발 2000m 고지대의 롯지에 앉아
흰구름이 산허리를 휘감고 있는 저 아래의 풍경을 보면서
조용히 내리는 비가 싣고 오는 아래로부터의 풀내음을 맡는 것.
그리고 책까지 읽으며 머리까지 살찌우니
이것을 보고 누가 '고생스러운 아프리카 여행'이라 할 수 있을까.
이보다 더 안락한 휴양이 어디 있을까.
(뭐...사실은 옆 숙소의 멕시칸 꼬마들이 지지배배거려서 좀 짜증나긴 했다)

이래저래 어김없이 돌아온 저녁시간.
이미 속은 며칠간의 기름진 롯지식으로 소화도 안되고
방귀만 뽕뽕 나오는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새로운 롯지에서의 새로운 식사는 항상 기대되는 법,
소화 안된다고 거를 수야 없다.

가운데 설치된 벽난로 때문에 훈기가 도는 원형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려니
어디선가 한국말이 들려온다.
나이 지긋하신 한 무리의 어르신들이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계신다.

여기저기 해외 다 다녀보고 맨 나중에 찾는 게 아프리카라더니
저분들이 바로 그런, '맨 마지막으로 아프리카를 찾아오신' 한국여행객 분들이시구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 우리 뒤에서...
'ooo 투어 통해서 오신 분들이죠?'

오...
키크고 자알~~ 생긴 총각 하나가 우리한테
한국어로 말을 걸고 있었다.

현지(케냐) 사파리여행사 사장이란다.
저녁 먹고 잠깐 숙소 방문해서 이후 일정 안내를 잠깐 주시겠다며 사라지셨는데...
역시, 같은 남자가 봐도 잘생긴 남자를 보는 건 즐겁다... 므흣...

또 아구아구 롯지식을 먹어주고
숙소에 들어와 둥가둥가 놀고 있으려니
여행사 사장님이 방문을 하셨다.
옆방을 혼자 쓰던 우재도 우리방으로 와서 들었다.

뭐 이래저래 향후 일정 설명을 금방 듣고
사적인 대화도 좀 하다보니
예전에 특수분장 때문에 영화판에 계셨단다.
필중이도 잠깐 그런 일을 했기 때문에
서로 '오오~~' 하면서 재미나게 얘길 했다.
뭐, 나는 그보다도 잘 생긴 사장님 얼굴 보는 게 더 즐거웠다. 므흣...

여행사 사장님도 그렇게 보내드리고
내일부터 예정된 본격적인 마사이 마라 종일 사파리 때문에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종일 사파리라...
과연 얼마나 넓으면 종일 사파리일까.
지루하진 않을까.
내일도 점심은 도시락이라는데,
초원에서 도시락 먹고 있다가 사자가 덤벼드는 거 아닐까.

약간의 기대와 약간의 걱정을 하면서도
때 되면 밥을 먹듯,
때 되니 소르르 잠이 왔다.

하는 일도 없이 잘 먹고 잘 자려니
고생 혼자서 다 하는 조지한테 쬐끔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눈꺼풀이 덮히는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여지없이 잠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2005/08/16 11:49 2005/08/16 11:49
http://morehj.com/blog/trackback/449
qus  | 2005/09/08 13:06
합성사진 말고 진짜 찍은 거 올려죠 -_-
소나무  | 2005/09/08 22:24
나도 그 말이 하고 싶었어... 저녀석 포샵질을 느무느무 잘하는지라...-_+
  | 2005/09/08 23:08
크기 줄인 거 외에는 고친거 하나도 없다~~ (뭐가 합성이라는 거지? 버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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