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새로운 경험들 2005/08/15 11:49
(워낙 양이 많아서 쉬엄쉬엄 쓰려고 게시물 자리에 '말뚝' 부터 박아놓았는데
이것 때문에 몇몇분들이 황당해하시는 사태가...^^;;)
아침 5시쯤 되니까 눈이 떠졌다.
케냐가 한국보다 6시간 느리니까 아침 5시라 해도 한국시간으로는 오전 11시다.
한국에 있을 때도 금요일에 술먹고 주말에 뒹굴뒹굴 하다가 눈 뜨는 시간이 오전 11시쯤 되니까
케냐에서 아침 5시에 일어난 게 결코 일찍 일어난 건 아니다. ^^;
실은 한계치에 다다른 방광의 팽창압에 못이겨 일어난 것이기도 했다...ㅡ_ㅡ;;
어제 본 코끼리와 기린처럼 어슬렁거리며 화장실 가서 쉬야를 하고 나왔다.
나만큼이나 늦잠자는 필중이 역시 옆에서 깼는지 몇시냐고 물어보고
자기도 어슬렁 화장실로 간다.
(우리형제가 한 방을 쓰고 우재가 한 방을 썼다.
다 큰 회사원이 혼자 방 쓰는 게 얼마나 무섭냐며 여행 내내 어찌나 엄살을 떨던지...^^)
7시에 조지를 만나서 아침 게임드라이브를 조금 한 뒤에
나이로비 북쪽에 있는 나꾸루 국립공원에 가는 것이 오늘의 일정이다.
어제 고생하며 왔던 길을 다시한번 거슬러 가야하니 오늘도 갈 길이 멀다.
06:30부터 시작되는 롯지 아침식사를 먹으러 가는데
어제 점심, 저녁... 두 번이나 불필요한 음료수값을 낸 게 아까워서
이젠 아예 음료수를 시키지도 않았다.
우리를 보고 빙글빙글 웃으며 'Something to drink?' 하고 묻는 웨이트리스한테
아침엔 괜찮다고, 안 마시겠다고 하니까 실망하는 표정으로 사라진다.
사실 아침은 스프와 빵에 계란스크램블 같은 간단한 식단이라
굳이 음료수를 시킬 필요가 없어서 그런 거긴 하지만
실망한 웨이트리스의 모습이 조금 뜨끔해서 앞으로는 꼬박꼬박 음료수 사먹어주기로 했다.
잘 사는 나라 가서 돈 쓰는 것도 아니고
전지구적인 남북문제가 심각한 이 시대에 아프리카 국가 경제 돕는 셈 치고 사먹기로 한 거다.
아침 먹고 짐 들고 나오니 조지가 기다리고 있다.
같은 롯지의 다른 곳에서 다른 가이드 친구들과 같이 잤던 모양이다.
다시금 암보셀리 국립공원 게임 드라이브다.
이른 아침이어서일까? 어제보다도 더 흐린 것 같다.
원래 케냐는 평소 습도가 67% 정도로 낮아 굉장히 쾌적하지만
이렇게 흐린 날에 습도가 올라가는 것은 한국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습도가 올라가더라도
매연이 섞이지 않은 청량한 공기가 머금은 투명한 습기의 느낌이라는 건
대도시의 끈적하고 탁한 회색빛의 무거운 습기와는 아무래도 다를 수밖에 없다.
지붕 올린 사파리차량을 타고 달리며
뺨에 닿는 이른 아침공기의 신선한 촉촉함을 느낀다.
조금 차갑다 싶은 바람에 뺨이 금세 탄탄해지지만
그 신선한 공기를 맞으면서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저절로 '아, 상쾌하다...'라는 말을 내뱉게 되고
그 맑은 느낌을 조금이라도 더 몸 속에 품고 싶은지
활짝 입을 벌리고 두 팔을 열어젖히게 되는 것이다.
역시나 얼룩말과 누떼는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저 녀석들이 뜯고 있는 풀잎에도
간밤동안 이 깨끗한 습기가 내렸을 거라고 생각하니
살짝 얼린 신선한 상추를 먹는 느낌이 들어
내 입 속 또한 괜시리 향이 퍼지는 듯 했다.
하지만 그때, 차 안에 설치된 무전기로
다른 가이드들과 교신하던 조지가 급히 핸들을 돌리고 속력을 낸다.
무언가 발견했다는 연락을 받았나보다.
케냐의 주력산업인 관광업에 종사하는 현지인 가이드들은
그들이 어느 회사, 어느 사장 밑에 속해있건간에
자신들끼리의 끈끈한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 유대관계가 특히 빛을 발하는 것은
이처럼 넓은 국립공원에서 무전을 통해 동물들의 위치를 알려줄 때다.
영국함선을 발견한 U보트 떼처럼
무선을 받은 사파리차량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저 멀리 보이는 것은, 아....
....분명히 사자다.
갈기가 선명한 수사자가 맛나게 누 고기를 뜯고 있다.
그 주위에 앉아있는 암사자들과
더 넓직히 떨어져 나중에 떨어질 '떡고물'을 기다리고 있는 하이에나,
비록 차량이 다니는 길에서 멀리 떨어진 저 초원 안쪽 깊숙이에서 일어나긴 했지만
TV 동물의 왕국에서나 보던 사자의 식사모습(?)이
그대로 쌍안경 렌즈 안에 들어오고 있었다.
'그놈 참, 맛있게도 먹네...'
식탐 강한 필똥이가 소갈비뼈를 악착같이 뜯는 모습처럼
위엄있는 백수의 왕 (수)사자 역시
어깨 아래로는 벌써 뼈를 드러낸 누 고기를 참 먹성 좋게도 냠냠거리고 있었다.
'Great beginning for today!'
한동안 신나게 사자의 식사모습을 보고 다시 시동을 걸면서 내가 조지에게 했던 말처럼
우리의 케냐 이틀째 일정은 참 시작이 좋았다.
....하지만, 시작만 좋았던 것 같다. ^^
암보셀리 국립공원을 나와 케냐 - 탄자니아 국경을 쭈욱- 따라가는 길은
우리가 어제 왔던 바로 그 길이었으니 어제보다는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우재 같은 경우는 그 심한 덜컹거림 속에서도
같이 고개를 끄떡거리며 잠을 자는 신공(神功)을 보여주기도 했다.
어제는 그냥 지나쳤던 국경검문소 부근의 마을정경을
오늘은 여유를 갖고 차창 너머로 찬찬히 볼 수 있었다.
집집마다 스프레이나 흰색 페인트로
'M.O.W DEMOLISH' 또는 'M.O.W DEMOLISH ORDER'라고 쓴 게 많이 보였다.
그때는 그게 뭘까, 궁금하면서도
물어보기 껄끄러워 조지한테 굳이 묻지 않았는데
집에 와서 구글에서 찾아보니 도로정비와 주택철거와 관련된 내용이라고 한다.
철거대상 주택에 스프레이로 그렇게 써놓은 듯 하다.
M.O.W가 무엇의 약자인지는 모르겠지만
(관련부서인 Ministry of Water and Irrigation(케냐 수자원부)의 약자인가?)
케냐 정부는 우리가 암보셀리 갈 때 지났던
현재의 케냐 - 탄자니아 국경의 좁은 2차선 도로를 확장할 계획이란다.
하지만 도로확장을 위해 현 거주민들을 강제퇴거시키면서 마찰을 빚고 있다는 거다.
돌이켜보면,
갈 때는,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비교적 한가롭고 평범해보였던 마을이
돌아올 때는,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갈등이 없을 수 없다는 진리를 다시금 느끼게 해주었으니,
현상을 내 주관대로의 '이미지'로만 받아들이고 그 이면의 실체적 진실을 미처 보지 못했던
나의 게으름에 또한번 아차 싶었다.
.......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도중,
화장실에도 들를겸 조지가 또 기념품 가게 앞에 차를 세운다.
조지가 우리를 기념품 가게 데려가고 가게로부터 커미션을 받는다든지
그럴 사람으로는 절대 안 보였기 때문에 별 부담 없이 들어가서 구경했다.
(내가 이 소리를 왜 하는지는 마지막날 방콕 여정에서 드러난다)
역시 Good Price를 주겠다는 삐끼들에게 농담도 건네고 잔머리도 굴리고,
우리도 이젠 더이상 어리버리한 동양인 관광객의 모습이 아니었다. ^^
삐끼가 제시한 가격보다 훨씬 낮은 금액을 부르고 튕기며 안 산다고 하는
이 세 명의 약아빠진 관광객들에게 애가 탔는지
한 삐끼는 'Hey, Business is Compromising' 이라면서 또 팔을 잡아끈다.
결국 우재가 팀원들을 줄 작고 예쁜 목각인형 몇개를
아주 알맞은 가격에 사는 것으로 쇼핑을 마쳤다.
다시금 나이로비 시내로 들어왔다.
어제 공항에서 내려 나이로비 시내를 통과할 때는 일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한가해보이더니
오늘은 월요일 한낮이어서일까, 매연과 교통혼잡으로 창문열기가 마뜩찮을 정도다.
어쨌거나 본격적으로 나꾸루 국립공원 가기 전에 점심을 먹어야했다.
나이로비 유일의 한국식당에 이미 예약이 된 상태였다.
케냐에는 우리 교민이 약 7백명 가량 살고 있는데
그중 5백명 가량이 (개신교) 선교사와 그 가족들이란다.
도로 옆에 온통 초원밖에 없는 나이로비 - 암보셀리 코스에서만도
한글로 표지판을 단 한국교회를 3개나 발견해서 혀를 내둘렀는데
(정말 초원 한가운데서 갑자기 불쑥! 나타나는 마사이족처럼
한국교회를 알리는 간판 역시 불쑥! 튀어나오곤 한다)
한식당 주인 아주머니에게 교민 7분의 5가 선교사라는 얘기를 들으니
이 아프리카 오지까지 찾아온 그들의 종교적 신념에 조금 존경스러운 생각도 들었다.
우리가 점심을 먹기로 한 한식당 뉴서울가든(이름 참 '한국스럽'지 않은가?) 역시
선교단체가 세운 곳이란다.
현재 그곳의 운영을 맡고 계신 아주머니는
한국에서 3형제를 다 대학졸업까지 시키시고 선교사인 남동생분을 따라
10년 계획으로 케냐에 오신 거라고.
하여간 '가든'이라는 콩글리시에 걸맞게 조경이 잘된 식당 마당에서
소갈비를 맛나게 먹었다.
아, 소는 물론 한우가 아니라 마사이 소였다. ^^
현지인 웨이터가 집게로 고기 잘라주고 판 갈아주고... 아주 특이한 경험이었다.
뉴서울가든에서도 작은 기념품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주인아주머니께서 현지 기념품 가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싼 가격으로 주시는 바람에
회사사람들 선물도 사고 부모님 선물도 사고 이래저래 좀 많이 샀다.
무엇보다도
맨날 'Good Price'라면서 우리 벗겨먹을 궁리만 하는 케냐 기념품 가게 삐끼들에 맞서
기념품들의 대략적인 원가를 알았다는 게 가장 큰 소득이었지.
일단 무조건 공정가격(Fair Value)의 10배를 부르는 것 같다는 우리의 가설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할 수 있었다... 흐흐...
(적의 전략을 알면 우리의 협상력이 그만큼 커지게 마련이지...)

** 나이로비를 중심으로 나꾸루 - 마사이마라 - 암보셀리의 삼각루트가 우리의 여행길이었다.
밥 먹고 또 먼 길을 가야한다.
지금 가는 나꾸루 국립공원은 여행사 안내문에 따르면
케냐 최대의 홍학(플라밍고) 서식지란다.
호수가 있고 온통 분홍빛의 홍학떼가 장관을 이룬다는데...
매캐한 나이로비 시내를 벗어났다 싶더니 이제는 또다시 덜컹거리는
낡은 아스팔트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가뭄으로 논밭이 쩍쩍 갈라지는 모습이 아스팔트 위에서 그대로 재연된 듯
아스팔트길 곳곳이 찢어져있고 그 균열을 따라 패임이 깊다.
나이로비에서 나꾸루로 가는 이 도로가
케냐의 북서쪽 우간다로 이르는 유일한 길이란다.
(케냐의 주요도로는 몇개 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르노, 스카니아 같은 대형화물차들이 많이 보였고
아스팔트길이 험해진 이유 역시 짐작할 수 있었다.
길 옆에서 펑크난 타이어를 갈아끼우는 차들 역시 부지기수였다.
행여 어제 타이어 교체한 우리 차도 또 펑크나면 어쩌나,
남은 타이어도 이젠 없을텐데 싶어 속으로 노심초사하는데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가이드 조지는 덜컹거리는 길, 운전도 잘 한다.
(걱정 안되냐고 물어봤으면 또 'No Problem!'이라고 했겠지? 흥...)
나이로비 - 암보셀리 구간에서 이미 험한 길은 충분히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나이로비 - 나꾸루 구간은 그정도 수준이 아니었다.
승차감이 안 좋네 뭐네 투덜거리기에 앞서
내가 탄 이 차가 가다가 길 위에 퍼지는 건 아닐지
차 걱정을 하고 있었던 거다.
이미 시간은 예정도착시간인 15:30을 넘겨 오후 4시에 이르고 있었고...
사정이 이쯤되다보니 이건 '여행'이라기보다는
예정도착시간까지 목적지에 반드시 도달해야만 하는
군대 수송작전이나 오리엔티어링 같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렇게 조마조마한 채 몇시간이나 달렸을까,
드디어 우리가 오늘 묵을 레이크 엘레멘타이타 롯지(Lake Elementaita Lodge)의 팻말이 보였고
나꾸루 23km라는 안내문도 보였다.
으하, 이제 다 왔구나 싶어 조금 마음을 놓았으나 웬걸.
결국 나꾸루 국립공원 입구, 마을 어귀에서 차가 맛이 가버렸다.
우리 차는 조지의 리모콘 열쇠고리로 시동이 걸리는데
이게 뜨거운 태양과 험한 도로사정 때문에 고장이 나버린 것이다.
일단 마을 어귀에서 잠깐 쉬자고 차 시동을 껐는데
아무리 해도 시동이 다시 켜지지 않더라.
"We have a problem."
드디어 조지가 '프로블럼'이 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죽어도 'Big Problem'은 아니란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우리가 차를 잠시 세웠던 그 마을 어귀 공터는
그 몇 미터 앞의 모퉁이만 돌면 나꾸루 국립공원 입구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정말 눈 앞에서 나꾸루 국립공원을 못 들어가게 된 거였다.
조지가 열심히 차를 이리저리 손보고 있을 동안
우리는 그 옆에 있는 기념품 가게 가서 또 삐끼랑 '놀/았/다'.
나꾸루의 삐끼는 좀 특이했다.
한국인이라고 하니까 아주 반가워하는 척을 한다.
그래놓고 또 'Good Price' 전략을 들먹이며 우리를 꼬드기는데
우리도 이제 놈들 패턴을 간파해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Good Price' 전략이 안 먹히자
이놈들은 또 '사해동포주의'에 호소한다.
우리가 가진 한국물건 중 기념으로 간직할만한 걸 달랜다.
그러면 자기들이 가진 물건(물론 가게 안의 기념품)과 교환해주겠단다.
대신, 가격차이가 있으니 차액은 돈으로 정산을 하잔다, 호호...
귀찮아서 가게 밖으로 나와 우리 차로 돌아가려는데
내 전담마크맨 삐끼가 차까지 따라나온다.
내가 '한글로 된 책 읽고 있는데 그거라도 주랴?' 했더니
그제서야 어색하게 이를 드러내며 떨어진다, 짜식...^^
필중이와 우재도 뭐 그렇게 삐끼들을 물리치고
다시 차 근처로 와 상황을 보는데
여전히 조지는 고군분투 중이다.
리모콘 열쇠고리 안에 들어가는 건전지가 다 닳았다고 생각하는지
건전지를 쿵쿵 찧어보기도 하고...
아무튼 우리 여행일정이 어긋난 것보다 조지가 고생하는 게 더 안쓰러웠다.
생필품 하나도 구하기 어려운 이곳(나이로비도 아니다!)에서
도대체 저 손톱만한 작은 건전지를 어디서 구할 수 있겠는가.
한국처럼 '알아서 다 해주는' 하이카, 매직카, 애니카 서비스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고!!
(설령 있다 해도 나꾸루에는 없을 게 뻔하고... 나이로비에서 나꾸루까지 그 험한 길 언제 올래?)
공터에는 또 기념품 가게 사람들이 기르는 듯 보이는 검둥이 개가 하나 있었다.
생김새는 잘 생겼는데
몸이 가려운지 계속 풀밭에 배 드러내놓고 누워서
눈 흰자위 굴려가며 등을 긁어대더라.
(다니엘 헤니가 눈 희번덕이며 방바닥에 누워 벅벅 등 긁어댄다고 생각해보라,
보는 사람마저 안쓰럽기 마련이다)
나 : 이놈들... 개 키우면서 저렇게 가려워하는데 씻겨주고 좀 그러지 말야...
우재 : 야, 자기들 씻는 것도 잘 안하는데 개 씻겨주게 생겼어...?
나 : ...그러네...
일주일에 한두번씩
강아지 전용샴푸로 뜨뜻한 물에 목욕하고 호강하시는 우리 필똥이가 생각나서
참 개팔자에도 남북문제가 있구나 싶었다.
근데, 지금 등 가려운 개 걱정할 때가 아니지.
오늘 일정대로 나꾸루 국립공원 관광은 못한다 하더라도
당장 해는 뉘엿뉘엿 노을이 지고 있는데 어떻게 20km를 되돌아가서 롯지에 투숙한단 말인가.
가끔 보이는, 현지인들이 타는 승합버스는
우리나라 봉고 같은 차에 박터지게 사람 '실어넣고' 다니는 그런 차였는데
그나마도 이 나꾸루에서는 잘 보이지도 않는다.
아, 그때였다.
고장난 우리 차와 비슷한 사파리차량 한 대가 기념품 가게 공터로 들어왔다.
차 안에는 희한하게 한 사람밖에 없어서
우리가 충분히 신세를 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끈끈한 동지애로 뭉쳐진 조지와 그 차량 가이드가
뭐라뭐라 서로 얘기를 하더니
조지가 우리더러 짐 싣고 그 차로 옮기란다.
그 차가 우리 숙소로 가는 길이니 같이 가서 저녁 먹고 투숙하면
자기도 차 고치고 거기로 가서 합류하겠단다.
믿음직한 조지...^^
여전히 차 갖고 끙끙대는 조지를 뒤로 하고
다른 차 신세를 지며 왔던 길을 되돌아가 숙소로 향했다.
그 차 안에 혼자 있던 홀로여행객은 일본인이었다.
일본 기푸(岐阜)대학교의 공대교수인 사사키 미노루씨였다.
나이는 얼추 40후반 내지 50초반으로 보였는데
가끔 이렇게 방학을 이용해 혼자 여행 다니기를 즐긴단다.
가족은 같이 안 다니냐고, 가족이 어떻게 생각하냐고 했더니
껄껄 웃으며 '맨날 no father라서 괜찮다'란다. 허허...
캐나다, 호주, 미국... 어디를 가건
혼자 여행을 다니는 일본인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독립심도 강하고, 높은 엔화가치가 그걸 가능케 해주기도 해서 그런 것 같다.
자기나라가 아시아인들에게 피해를 입힌 역사라든지
우경화되고 있는 작금의 국내정세 등에 대해
젊은이들이 별 관심이 없고 무지하기까지 하다는 데 가끔 실망도 하지만
그게 개인주의적이건 뭐건간에 이렇게 세계 곳곳을 여행다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이런 게 정말 진취적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맨날 동남아 가서 골프치고 돈자랑하는 관광이 전부가 아니란 말이지.
오늘 묵을 숙소는 나꾸루 외곽,
엘레멘타이타 호수를 감싼 구릉 위에 자리잡은 '레이크 엘레멘타이타 롯지'다.
롯지 입구에서부터 어제 잤던 암보셀리 롯지와는 또다른 매력이 느껴진다.
로비에서부터 직원들이 우리 짐을 들고
잘 꾸며진 정원을 가로질러 숙소로 따라온다.
남자직원보다 여자직원이 더 무겁고 많은 짐을 들고 오길래
'케냐에서는 여자가 힘이 더 센 거 같다'라고 농담을 던지니까 그렇단다.
그런데 그렇게 농담도 하고 분위기 좋게 이끌어도
깜빡 잊고 팁을 안 주니까 토라져서 가더라고...ㅡㅡ
필중이랑 우재가 왜 팁 안 주냐며 타박해서 그제서야 아차 싶었다. 흐흐...
저녁을 먹기 전에 잠깐 밖에 나와 사진을 찍었다.
롯지에 딸린 목장에서 말도 탈 수 있다던데,
그만큼 경치도 좋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오렌지빛 석양 아래 펼쳐진 엘레멘타이타 호수와 그 주위의 낮은 산들이
사진찍기 좋아하는 내 동생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오늘 가지 못한 나꾸루 국립공원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려는 듯
삼각대를 동원하고 대포 같은 렌즈도 계속 바꿔가면서 많은 풍경을 찍었다.



사진을 찍고 역시 19:30부터 저녁식사가 시작되었다.
하루종일 차 타고 이동만 했는데도 이놈의 생체시계는 어김이 없더라. ^^
식당으로 가서 뷔페에서 이것저것 고른 뒤 자리에 앉으니
어디선가 조지가 나타나 우리를 반갑게 했다.
우리만 숙소로 잘 돌아와 맛나게 저녁 먹나 괜시리 마음 쓰였는데
조지가 밝은 모습으로 나타나 기뻤던 거다.
차 고쳤냐니까 고쳤단다.
어떻게 고쳤냐니까 회로 뜯어서 수동으로(열쇠로) 시동걸게 바꿔놨단다.
타이어만 잘 가는 줄 알았더니 이젠 완전히 맥가이버일세, 허허...^^


오늘도 역시 긴긴밤, 무얼 해야할까 하는 고민은 할 필요가 없었다.
밥 먹고 일찍 잘 수 있다는 거,
저녁식사시간 이후의 일정이 잡혀있지 않다는 게 오히려 다행으로 느껴졌을만큼
우리는 깊이 잠에 빠져들었다.
잠결에 창밖에 듣는 세찬 비소리에 어렴풋이 내일 일정을 걱정하기도 했지만
롯지 주변에 잘 가꿔진 꽃과 풀, 나무들이 내일이면 더욱 싱그럽게 보이겠구나 하고
스스로를 애써 안심시키며 푹신한 베개에 머리를 더 깊게 파묻었다.
http://morehj.com/blog/trackback/448
이런 영화장 세트 같은 경우가 있나~! -_-
일단 말뚝 박아놓고 보는 거지 뭐~! ^^
헉...한참 신나게 읽다가 당황했습니다......ㅡㅡ;;;;
재미있네요.....계속 올려주세요~!
재미있네요.....계속 올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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