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머리의 고민들 2005/06/01 11:19
한겨레신문에 [긴급점검]이라고,
귀국설이 나오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에 대한 기사가 나왔다.
내가 지금 다니는 회사, 또 특히나 우리집은 대우랑 뗄레야 뗄 수가 없어
한번 쭉 훑어봤다.
요약해보자면...
김우중 긍정론 : 부실기업을 인수해서 공격적인 세계경영을 주창한 점을 인정해야
김우중 부정론 : 무리한 차입과 선단식 경영으로 국가경제에 부담을 준 과오 인정해야
뭐 이렇게 정리가 되지 싶다.
..........
얘기 #1.
80년대 초였던가.
우연찮게 엄마일기장을 몰래(?) 보게 되었는데
그 당시 아빠(그때는 '아빠'였다)가 다니던 회사가 대우에 인수되면서
엄마가 느끼던 불안감과 걱정 같은 게 적혀있었다.
부모님의 직장일을 자식인 우리가 걱정해본 일이라고는 전혀 없던
나의 어린시절 기억 속에 단 하나 그늘진 기억이 있었다면
그 일기장에 엄마가 썼던 그 절절했던 문구들이 아니었을까.
그래도 다행히 아빠는 회사가 인수된 뒤에도 별 문제 없이 회사를 다니셨다.
몇년 뒤에는 대우의 이름으로 리비아 건설현장까지도 다녀오셨고
(한번도 우는 모습을 본 적 없는 할머니가
아빠가 리비아에서 보낸 첫 편지를 읽고 펑펑 우시던 모습도 생각나는군)
철도차량을 만드는 안양의 대우중공업 소속으로
외환위기가 오기 전에 일찍 명예퇴직하심으로써
대우에 몸바쳤던 이십몇년의 직장생활을 마감하셨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몸담았던 그 안양의 철도차량부문은 현재 로템에 매각되었다.
서울을 오가며 고속철도를 탈 때 출입구에 붙어있는 로템의 마크를 보면,
그 어릴 때 지하철 문앞 바닥에 붙어있던 대우중공업 로고를 보며
우리 아빠, 아빠 회사가 만든 거라고 괜히 뿌듯해했던 기분과는 다소 다르게
괜히 마음이 짠해져온다)
얘기 #2.
대학 초년생 시절이었던가
우리 학교에 새 상대건물이 들어섰다.
지금이야 공학관, 인문관, 법대건물 등 좋은 건물이 많아졌지만
그 시발점은 당연히 대우가 지은 새 상대건물이었다.
연대 출신의 김우중 회장이 기부했다 하여
이름을 '김우중관'이라고 내정했는데
건물에 기부자나 공헌자 이름을 붙이는 게
서양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유래가 없었던지라
이 이름이 옳은지 논란이 많았다.
어쨌든 '김우중관'으로 확정되어 그럭저럭 잘 사용하고 있었는데
대우사태가 터지고 나서 또 말이 많아졌다.
몰락한 기업의 총수 이름을 과연 계속 쓸 것이냐 하는 문제였는데...
총학에서는 '이한열관'으로 바꾸자고 주장했지만
기업의 총수가 몰락했다고 해서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더 비겁한 일이다...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결론이 어떻게 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공익근무 끝내고 학교에 복학해서 수강편람을 보니
새 상대건물을 '상록관'이라고 적어놓은 걸 봤다.
(학교 웹사이트에 여전히 '김우중관'으로 써놓고 있는 걸 보면
'상록관'이라는 이름은 학교 내부적으로만 부르는 것 같다)
어쨌건 학교 입학하던 그 해부터, 새 상대건물의 준공과 함께
그 이름에 대한 논란을 쭉- 지켜봐왔던 나는
그 수강편람을 보면서
김우중 회장 개인의 이력만큼이나 그 건물의 이름 또한
기구하기 그지 없다...라는 다소 감상적인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얘기 #3.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보니
대우가 거의 회사의 공적(公敵) 1호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
내 아버지가 젊음을 다 바쳐 일한 곳인지라
회사사람들이 대우에 대해 얘기할 때 난 가만히 있는 것 외에는
별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어느날 부모님과 함께 차를 타고 이마트를 가고 있는데
라디오에서 김우중 회장 관련 뉴스가 나왔다.
그냥 다들 아무 말 없이 듣고 있는데
뒷자리에 타셨던 엄마가 그러셨다.
'다들 김우중 회장 역적이다 뭐다 하지만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먹여살렸는지 그런 걸 봐야 한다.
왜 다들 그런 걸 생각하지 않는 건지...'
우리 부모님이
6.25때의 미국이나 대통령 박정희를 보는 관점과 크게 다르지 않은
당연히 그러려니...싶은 얘기였지만
그런 말을 하는 엄마의 목소리에
어쩐지 평소에 느끼기 힘들었던 깊은 울림과 진중함이 느껴져
별다른 얘기를 할 수가 없었다.
.............
얘기 #4.
정신과의사 정혜신씨가 쓴 '남자 대 남자'에 보면
김우중을 분석하면서 '조증(早症)'이 있다고 분석해놓은 게 있다.
항상 원기 넘치고...거침이 없고... 이런 모습은
남들에게 굉장히 매력적이고 자신감 넘치게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근거가 뒷받침되지 않는, 사상누각과도 같은
'붕 뜬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치밀함이나 기술적 경쟁력이 없는 상태에서
밀어내기 수출을 감행한다거나
'벌려놓는' 식의 경영을 했다는 대우그룹의 패인은
정혜신이 주목한 '김우중의 조증 의심'과도 흥미롭게 일맥상통한다.
얘기 #5.
대우에 대한 극단적인 평가를
가족과 회사에서 직접 접하고 있긴 하지만,
대우와 김우중을 보는 나만의 관점은 그냥 평범하고 일관되게 두고 싶다.
잘못이 있으면 그 잘못을 사과하고
처벌을 받을 게 있으면 처벌을 받은 뒤
그 공과를 경험삼아 다시 경제활동을 하라는 거다.
(경제활동을 하건 고국에 돌아와 남은 여생을 조용히 살건)
조선일보나 삼성이나
왜 큰 기업일수록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데 그토록 인색한 것일까.
아무도 자신을 건드릴 수 없는 큰 위치에 오르게 되면
자신의 잘못을 사과함으로써 입게 되는 데미지에서 오히려 더 자유롭지 않을까.
왜 그런 용기를 냄으로써
반대자를 무마시키고 자신의 정당한 권위가 더 세워진다는 것을 모를까.
정혜신이 그 책에서 썼던 것처럼
'실패를 인정할 줄 아는 것도 용기'라는 말을
나는 굳게 믿는다.
그리고 그런 용감한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이 뭐라 하건간에
나는 기꺼이 머리를 숙이고 박수를 쳐줄 것이다.
부디 예전의 대우그룹과 김우중 회장이
과거의 잘못을 스스로 고백하고 인정함으로써
그것들을 훌훌 털어내버리고
작게는 우리 가족으로부터,
크게는 우리 국민과 세계인들로부터
일치된 박수를 받길 바란다.
설령 '근거 없는 조증'으로 의심을 받을지언정
그들이 보여주었던 패기와 열정, 세계를 향했던 시선은
'나는 실패하지 않았다'라는 자존심 때문에
고백의 용기를 내지 않음으로써 묻혀져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우리 한국경제의 큰 자산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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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키 일 안하고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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