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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왔다갔다.

정말 한시간도 머무르지 않고
말그대로 '왔다갔다'.

아파트입구에서 전화해서
'현중아'도 아닌, '아들~!'이라고 나를 찾던 엄마의 목소리는
그분들이 일주일만에 다시 내려올만큼
나를 사랑하고 보고싶어했을 거라는 증거였겠지.

그러나/그런데도/그렇지만 나는
내려올 때 가져오지 못한 책만 들고 오시라는 말을 어기고
반찬을 가득 담은 반찬통이 고이고이 쌓여있는 짐들을 보고
결국 화를 내고야 말았다.

......

오늘 낮에 밥을 해먹다가
냉장고 위에 일주일전 부모님이 올라가며 까두었던 귤이
곰팡이 슨 것을 보고 화가 나있던 상태였다.

그때 화난 마음은
반찬을 꺼내기 위해 냉장고를 열면서 더 불이 붙었다.
냉장고에 그득그득 채워진 반찬들.
하루에 고작 한끼를,
그것도 그리 많이 먹지도 않는 나인데도
당신들의 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듯 냉장고 안에
반찬통을 밀어넣고 가신 부모님에 대한 갑갑함.

냉장고 앞에 벌써 일주일째 놓여있는
검은 비닐에 담긴 사과 여섯개도
오늘은 그렇게 스트레스처럼 느껴질 수가 없는 거였다.

........

짐을 나른 뒤에도
반가워하는 표정 없이 인상을 쓰고 투덜대다가
부모님도 기분이 상했고
결국 엄마와 또 목소리 높여가며 싸웠다.

주기적으로 싸우긴 하지만
이번에는 그 '시기와 장소'라는 게
하필이면 왜 지금(부모가 자식을 보러 온 날),
왜 이곳(서울 본가에서 4-5시간 떨어진 타지)에서란 말인가.

결국 부모님은 내가 필요없다고 다 싸들고 가져가라는 물건들을 차에 싣고
한시간도 채 머무르지 않고
화를 내며 다시 서울로 올라갔다.

솔직히 순천에 친구 만나러 가는 길이라 내려오게 되셨다고 알았는데
순천 친구 만날 일 없이 그냥 내려오셨다는 말 듣고 또 갑갑해져서
올라가는 길까지도 끝내 쌀쌀맞게 굴었다.

............

"난요, 이곳에서 책이나 보면서 조용히 있다가 올라가고 싶어요.
엄마아빠는 이렇게 음식 갖다주고 그러는게
다 날 사랑해서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그런것까지 다 숨막히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필요할 때는 나더러 나이 서른이니 알아서 하라고 하면서
이런거는 애 다루듯 물건 싸들고 오면,
필요한건 여기서 어련히 알아서 살까봐서,
이렇게 물건 바리바리 싸갖고 오면 나더러 어떡하라는 거에요."

캐나다 있을 때도 국제우편으로 음식 같은 걸 보내어
집주인이 웃게 만들고
이번에도 일주일만에 부모님이 내려온다고 말했다가
회사사람들이 웃게 만들고...

어릴 때도 나는
공부나 책보는 것 외에
실제적인 일을 해본 경험이 별로 없다.

뭘 하려해도 엄마는 내가 공부할 시간이 빼앗길까봐 그걸 다 대신해줬고
나는 그게 되게 쪽팔린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게 편하니까' 그냥 엄마가 하도록 내버려뒀던 거 같다.

아버지 역시 퇴직하시고 집에 계신 뒤부터는 비슷해진 것 같다.
예전에는 학교일로 바쁜 와중에도 날 꼭 챙기던 엄마의 스타일과는 사뭇 달랐는데
집에 계신 뒤로, 그리고 할머니 돌아가신 뒤에
집안의 네 남자를 일당백으로 다 챙기는 엄마에 대한 고마움일지 신뢰일지
아무튼 그런 것 때문에
엄마가 보여준 자식에 대한 사랑표현방식 - 나와 동생은 갑갑하게 느끼는 - 에
많이 동화되신 느낌이다.

............

예전에 부모님과 한바탕 싸우고 난 뒤에
돌아선 나의 등 뒤로
의외로 엄마가 차분하게 하던 말이 생각난다.

"너희 부모, 너가 그렇게 목소리 높이며 싸우는 거 다 막아낼 정도로
그렇게 강한 사람들 아니야."

그렇게 많이 부모님과 싸웠으면서도
저런 소리를 해보신 적이 없었는데...
...그때는 화가 나 씩씩거리면서도 엄마의 저 말에 적잖이 당황했다.

나는 아마도
나의 부모가 영원히 강하지 않다는걸,
그리고 이제는 '늙어가고' 있다는걸 깨닫게 된 때가
그날 이후였던 것 같다.

.........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의 부모는
그렇게 세련되거나 현대적인 분들은 아닌거 같다는 생각을 한다.

어릴때부터 부모님 학력란에
두칸 모두 '대졸'이라고 쓰며 유치하게도 우쭐댔던 마음이나
어릴 때 엄마랑 나에게 곧잘 하던
'엄마가 뭐 집에서 살림한 하는 다른 엄마들과 같은줄 아니?'라던 말에 짙게 배인
'너희 부모는 다른집 부모들과는 다르다'라는 전제로 강화되었던 내 부모의 모습은
정말, 자식과 살림만을 알며 살아가는 다른 집의 평범한 부모들의 모습과는 달리,
사회성을 갖춘 현대적인 똑똑한 부모의 이미지를 나에게 심어주었다.

그런 이미지가 흔들린 시점은,
나의 의식이 부모의 의식을 뛰어넘게 된
바로 그 순간이었던 것 같다.

굶어죽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밥'을 아침에도 꼬박꼬박 챙겨놓고 가고
사회적인 부모라는 모습과 맞지 않게
정치, 사회적인 면에서 유난히 전근대적인 가치관을 보여
나와 충돌했던 그 지점.
그리고 할머니 돌아가신 뒤로
명절 때만 되면 혼자서 그 많은 제사음식을 며칠밤을 새워서라도
기어이 다 만들어내고야 마는 모습에서
존경심보다는 '굳이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뭐가 있을까'하는 갑갑함을 느낀게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어쨌건 지금 나는 부모를
더이상 예전처럼 '대졸에 사회활동하는 깨인 어른들'이라고 인식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식에 대한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어떻게 조절해야할지 모르는,
감정표현에 서투른,
'가면을 쓰지 못하는'
순박하고 소소한 모습만이 느껴질 뿐이다.

그러한 '선천적 순박함'에 더해
이제 스스로가 늙고 힘이 없어져
'상실감에 의한 사랑의 투사'까지 겹쳐지면
부모가 자식에게 쏟는 사랑은 더욱더 강해진다.

어쨌거나
그렇게 표현되는 사랑에 갑갑함을 느끼는 내가
가끔씩 터뜨리곤 하는 화냄은
그런 나의 부모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동시에 마음에 깊이 상처가 남는
그러한 '칼'이 되어 박히곤 하는거다.

못나게도 나는
그런 나의 화냄이 그러한 '칼'의 의미로 부모에게 날아감을 알면서도
순간순간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쏟아내고
또 폭풍이 지나간 뒤에는
다리미에 데여봐야 아이도 다리미를 가까이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논리로
이번의 충돌(나의 화냄)이
다음번에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느슨케하여
그만큼 내가 더 숨을 쉴 수 있게 되리라는
못된 합리화까지 해가면서 자신을 위안하는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언제나 똑같다.
부모도, 나도
누구도 변하지 않은채
다가감과 도망감을 지겹게 반복하고
'주기적으로 폭발한다.'

................

항상 이렇게 폭풍이 지나가고 나면
꼭 생각나는 사람이 하나 있다.

내가 유일하게 마음의 평화를 얻었던 사람.
그래서 그 마음의 평화만큼
부모의 그 갑갑한 사랑도 넉넉하게 받아넘기도록 여유를 느끼게 해줬던
그런 사람.

누군가가 나중에 나를 분석한다면
'부모'와 '그사람'이라는 두 인물이 내 무의식에 미친
깊은 트라우마를 염두에 둬야할 거라는 생각까지 든다.

솔직히 다시 되돌이키기 불가능한 사람을 자꾸 추억해내는 것은
'현실로부터의 도피'일 뿐만 아니라
상대에 대한 과도한 의미투사가 되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참 못났게도
자꾸 그쪽으로 생각을 돌리곤 한다.

이제 그 영역이 사라진 상황에서
나 자신이 상실감을 느끼는 상황에서
내가 다시 부모의 상실감을 여유롭게 보듬고 껴안은채 갈 수 있을거라고는 믿지 않는다.

두 사안이 충돌할 때 통합은 없으며,
과거의 것이 깨어지는 것만이 가능하다고 보는
비관적인 이론들을 굳이 생각해내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결국 이런 상태로 지내다가 부모가 죽고 나면
그건 정말 나의 '승리'가 되는가...?
그런 식의 승리 또한 유치하며,
나 역시 내 부모와 마찬가지로
또다른 의미에서 '맹목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서울로 올라가는 차 안에서 울고 있을 내 부모의 분명한 모습과
놀랍도록 냉정하게 눈물 한방울 흘림도 없이
이렇게 키보드를 치고 있는 내 자신의 저주스러운 모습이 대비되어 괴롭다.

지긋지긋한 싸움의 반복을 끝내기 위해
차가운 머리로
무엇이 잘못인지,
무엇을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써내려가봤지만
결국 오늘도 실패다.
그게 더 미치겠다.
2005/02/19 19:46 2005/02/19 19:46
http://morehj.com/blog/trackback/382
  | 2005/03/02 16:30
잘 지내지?!

드디어 새학교, 부임하고 개학하고 입학식도 했다.

정보산업학교이어서 공부에 관하여서는 느슨한 편이나 교육과정부서의 일은 고등학교이어서 만만치가 않네--- 그러나 지금하는 일이 옳은 일이기에 최선을 다하여 몰두한다  일에 대한 불만은 자신을 불행하게하고 스트레스의 원인이기에 그냥 최선을 다 해서 몰두하는 것이 유능해보이고 직장인의자세고 자신의 성취감으로 오는 행복이다.

어제는 드디어 갈비찜을 다 먹었다. 6시간을 늙은 부모가 오로지 사랑하는 아들 먹일거라고 고속도로를 달려 갈비찜과 된장국을 새벽까지 만들어 갔고 갔다가 그자리에서 타박받고 돌아온 치욕의 사건  -사랑이란 주고도 오히려 더 줄것이 없나하고 돌아본다고 했던가- 서운하고 슬퍼고 너가 서울오면 먹일려고 냉동실에 숨겨두다 드디어 어제 식탁에 내 놓고는 약간 씁쓸한 반성을 했다.

4월 8일이 아버지 생신인데 그땐 창원가도 돼?!

과일은 꼭 먹도록하여라

---------------------------------

내가 먼저 잘못했다고는 말 못드리고
못나게도 이렇게 메일이 먼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결국 왔다.

그냥 눈물이 났다...흠...
MK  | 2005/03/14 22:31
야 이거...참.........

쭝아 아직 안 했다면
나중에라도 꼭 잘못했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좋겠구나.
소나무  | 2005/02/21 09:02

아침에 일찍 출근하다보니... 어머니가 아침에 끼니를 챙겨주시지... 여름엔 미숫가루를 우유에 타서 마시기도 하고... 씨리얼을 먹기도 하고... 떡국도 먹고... 샌드위치를 먹기도 하지...

그런데 어느날인가... 만주를 쪄서 주시는거야... 근데 그게 짜증이 나더라구... 간단히 샌드위치 정도만 먹으면 되는데... 만두를 쪄서... 그걸 운전하고 가면서 먹으라 그러니까...-_+

이런 소소한 짜증은 자주 발생하지... 늘 내가 마시는 양보다 더 얹어서 주시는 우유라던가... 짜투리 좀 남았다고 탈탈 털어서 내게 주시는 그런 것들...

돌이켜 생각하면 별거 아닌데... 그 당시에는 그런게 갑갑하고... 짜증나고...

하루는 막내가 그러더라...

형이 걍~ 좀 참으면 되는데 굳이 짜증낼거 있냐고... 한 입 더 먹는다고 죽는거 아닌데 뭘 그리 짜증내냐고...

반찬... 받아놓고 감사합니다 한마디 하고 안먹으면 되지 않을까? 그게 더 가식적인가?

나는 말이지... 가끔은 그런 갑갑함도 느끼지만... 자네가 가끔씩 드러내는 그 폭발성에 더 무서워... 왠지 돌이켜지지 않는 느낌이랄까?

숨 한 번 고르고 받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부모의 상처도 상처지만... 자네한테도 만만치 않게 해로워보여...

뭐... 속도 모르는 소리 하지도 마라~ 이러면야 할 말은 없다만...

이상하게 월요일 아침부터 이런저런 일로 우울하네...-_+

한 주 잘 보내라~
  | 2005/02/21 10:22
자네가 가끔씩 드러내는 그 폭발성에 더 무서워... 왠지 돌이켜지지 않는 느낌이랄까?

숨 한 번 고르고 받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부모의 상처도 상처지만... 자네한테도 만만치 않게 해로워보여...

---------> 요부분 마음에 드는군.
피해자를 '부모'가 아닌 '내 자신'에서 찾는 방법론이
이기주의적인 나와 딱 맞아떨어져서 그렇다고나 할까.
흠... 간만에 유용한 리플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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