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머리의 고민들 2004/12/17 13:54
회의한 것처럼 가짜로 처리하고 있는 나를 보면
과연 나는 이 거짓행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 고민한다.
투명한 사회를 만들자는데에는 누구나 공감하면서
실제로 '판공비'라는 정체불명의 항목을 없애는데에는
모두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왜 사교육이 안 없어지는가에 대해
과도한 입시열 운운...같은 비경제적인 근거가 아닌,
철저히 경제적 근거에서 분석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글의 요지는
이미 한국사회에서 사교육은
하나의 거대한 '산업'으로 굳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문제집 등 출판시장 뿐만 아니라
대졸자의 상당수를 흡수하는 고용시장으로서까지 기능하고 있는
저 거대한 사교육 '시장'은
이미 손쓸 수 없을정도로 굳게 뿌리박힌 하나의 '사회구조'이며
이것이야말로 한국에서 사교육이 없어지지 않는
진정한 이유라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판공비'라는 것이 존재하는 이상
부정부패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한다면
지나친 논리비약일까?
왜 남는 예산은 꼭 회기 내에 다 소진시켜버려야 하는 걸까.
이월시키거나 적립시키는 시스템을
왜 도대체 도입시킬 생각을 안하는 것일까.
'예산 남기면 다음 회기에 예산 감액돼서 나온다'라는 오래된 논거는
정말 법적 근거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지레겁먹음일까.
아예 당당하게 '경조사비' '회식비' 등으로 명목을 달고 처리하지 못하고
항상 '업무추진비' '정보수집비' 따위로
본질을 흐리게 하는 것은
그들도 일말의 양심이 있기 때문이라는 걸까?
......
하긴, 이런 문제를 제기했을 때
어떤 반응이 돌아올지는 눈에 선하다
'너는 돈이 많은가보지? 난 돈 없어서 판공비 쓴다 이 자식아'라는...
박찬욱이 말한대로 이 사회가 정말
'돈 있는 사람은 더더욱 착할 수 있고
돈 없는 사람은 더더욱 악랄해질 수밖에 없는'
그러한 구조라 하더라도
나는 나에게 저렇게 항변할 사람에게
'그러면 불필요한 지출은 하지 마세요'라고 쏘아붙여주고 싶다.
돈 없으니까 만화책 빌려보는 거고
돈 없으니까 인터넷에서 영화 다운 받아 보는 거고
돈 없으니까 판공비로 가족 외식 한번 시켜주는 거고...
뭐 이런 반응 나올 게 뻔하겠지만
'돈 없어서 그런다'라는 말이
저 모든 행위를 정당화시켜주는 논거가 될 수 있을까?
어쨌거나
내 자신이 카드영수증을 회의비로 처리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내 자신도 공범이라는 부끄러움과
못살겠다고 소리치는 저 바깥세계 사람들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미안함이
뒤섞인 그러한 것이다.
나는 모두가 눈 질끈 감고 동참하는
저 미쳐돌아가는 수레바퀴의 한 부속품에 불과할 거다.
비겁하게 살지 말자는 나의 다짐도
내부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힘을 쓰지 못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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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기업에서는 예산 삭감을 주요 업무로 삼는 부서가 있다... 우리 회사로 치자면 기획실이 그런 일을 하지... 그런 견제가 있기 때문에 자네가 말한 그 오래된 논거가 효력을 갖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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