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머리의 고민들 2004/12/15 23:57
예전 고속철 없을 때
좋아하는 감정 하나로 자주 다니던 곳이어서인지
알량한 추억이라도 떠오를까 싶었지만
그냥 열차에서 내리자 느껴지는 것은
가슴 깊은 곳을 후벼파는 아픔 뿐이었다.
- 매일매일 수십번도 더
그리움과 미움을 왔다갔다하며
여전히 구질구질하게 마음을 정리하고 있지 못한 나의 못남을 자책하면서. -
법률가라기보다는 복덕방 아저씨처럼
우왕좌왕하던 법원 판사의 진행에 답답함을 느끼며
어떻게 대충 집회를 마치고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집회가 예정보다 늦게 끝나 예약해둔 편을 취소하고
후발편을 새로 발급받아 탄 것이어서였는지
피곤함은 더 했고
조용히 책을 읽으며 마음의 아픔과 육체의 피곤함을 다독이려던 나의 계획은
그러나 뒤에서 왁자지껄하던 한 무리의 경상도 노인들 때문에
완전히 틀어지고 말았다.
많지 않던 승객들은 저마다 고개를 들어
그쪽을 향해 눈치(?)를 주곤 했지만
그 대책없는 노인들은 keep chattering 할 뿐이었다.
결국 나는 일어나서 그들 앞에 가서 웃는 낯으로
'할아버님, 말씀을 조금...' 라고 어필하며 돌아왔고
그 중 한 노인도 '어이구 미안합니다' 하며 응답했다.
문제는 그 뒤부터였다.
가죽점퍼를 입고 가볍게 취한 듯한, 그때까지 가장 시끄럽던 노인이
요즘 젊은 것들은...류의 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던 것이다.
듣기 싫은 뻔한 소리라 헤드폰을 낀채 아이팟의 볼륨을 높여버리긴 했지만
동대구역에 정차할 15~20분 동안
끊임없이 시끄럽게 구는 모습에 넌더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는 스스로 감정이 격해졌는지
동대구역에 내리면서
이놈에게 한 마디 해주고 내려야겠다며 분개하길래
주먹질이라도 날아오면 당장 동대구역에 내려 경찰서로 끌고갈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고의인지 실수인지
그 노인은 통로를 몇번 두리번 거리다가 나를 못 발견하고
마침 객차 안으로 들어오던 차장에게 불평을 늘어놓으며
동대구역에 내렸다.
아침에 부산으로 올 때도
어떤 할머니에게 역시 이야기소리가 크다고
최대한 공손하게, 그리고 망신스럽지 않게 조용히 말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잘 먹히더니(?) 상행선에서는 결국 이런 일을 당하게 되었다.
하긴, 내가 그들이라도
(그들 표현대로) '새파랗게 젊은 놈'이
'어르신들이 말씀하시다보면 조금 도란도란'할 수도 있는 것을 갖고 뭐라 한다면
무척 쪽팔리고 괘씸하게 보이긴 하겠다.
'저런 버르장머리 갖고 크면 얼마나 큰 사람이 될지' 혀를 찰만도 하겠다.
'집에 지 애비한테도 그러는지 궁금'하기도 하겠다.
근데 자기들은 우리 아버지가 아니자너.
......
회사 들어오면서부터
솔직히 나는 겁대가리가 없어진 거 같긴 하다.
비교적 신분보장이 되는 회사에 다니다보니
취미활동이니, 기부활동이니, 공부니
대학 졸업할 때까지 유보(reserve)하고 살았던 많은 것들을 하며 살게 되는데
'비겁해지지 말자'는 것도 그 중에 하나다.
내가 오늘 한 행동을
내 스스로는
객차 안의 다른 사람들도 모두 생각은 있지만 꾹- 참고 있을
그러한 마음을 행동으로 옮긴 것일 뿐이라 생각하고 있는데
이 행동이 필연적으로 '버르장머리 없는' 것일 수는 있겠지만
그 효과면에서 +가 더 클까 -가 더 클까.
예전 고등학교 때 잡전에 쓴 최초의 사회적 주제도
'사회의 기성세대는 우리가 배운 지식이나 룰을 지키지도, 지키려고도 않는데
과연 우리가 이들을 연장자라는 이유만으로 공경해야하는가'였던 거 같다.
그러고 보면
'나이먹음'이라는, 한국사회의 절대선에 대해서
나는 무척 예전부터 불만(?)이 많았던 것 같기도 하다.
가끔은 내가 예전히 캐나다에 있다면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생각해보곤 한다.
하지만 그러한 가정에서 해결책을 얻은 적은 한번도 없다.
왜냐구?
캐나다에서는 아예 공공교통수단에서 한국처럼 떠들질 않으니까.
지하철의 경우에는 만약 취객이나 거지 등이 있으면
역마다 배치된 경찰이 끌어내린다.
워싱턴에서는 전철배치경관이나 버스기사 그 자신이
아예 통제를 했던 것 같다.
만약 이러한 시스템이 한국에 도입된다면
과연 오늘의 그 시끄럽던 노인은 끌려나갈 수 있을까?
어려운 문제다.
그리고 '그냥 살던대로 비겁하게 사는게 낫다'라는 생각까지
스믈스믈 들게 되는 미묘한 문제다.
공교롭게도
'비겁하지 않게 사는 법'을 가르쳐준 사람도
병원에 가서 잡지책을 뜯어가는 애들에게는 항상 따끔하게 한 소리를 해준다던
그 사람이었다.
아버지에게 대들던 나에게
'너 참 못났구나'라고 입바른 소리를 해준 사람도 그 사람이었는데.
과연 그 사람은
아직도 비겁하지 않게 살고 있을까.
과연 나는 앞으로도 계속
비겁하지 않게 살 수 있을까.
과연 그는 오늘 내 모습을 보고
할 얘기를 했던 거라고 다독여줬을까
무례했던 거라고 쓴소리를 해주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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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겁하다...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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