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마음의 흔적들 2004/12/03 23:23
그렇지만 아무것도 느낀 바 없던,
반성할줄 몰랐던 시간.
그리고 그렇게 무덤덤한 마음으로 있다가 보게 된 엑소시스트.
머린이 신을 버린 이유는
'게으름'을 '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라고 과대포장하던 나와는 비교도 안되는,
신과 희망의 존재 자체의 근원적인 절망에서 비롯되었던 것이었고
유치하리만치 간사한 나는 또다시 어느 작은 일 때문에
다시 신에게 당신이 필요하다고 무릎을 꿇게 되었다.
나의 죄를 고백하고 나의 온전한 모습을 신께 다시 보여드려야겠다는
그러한 다짐 속에서 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도중 멈춰선 횡단보도 앞에서
어느 작은 아이가 놓친 풍선이 하늘 위로 날아가는 것을 보며
나도 모르게 입가에 순수한 미소가 지어지던 것은
다시금 신 앞에 겸손해진다면 죄많은 나 역시
다시 저 아이처럼 맑게 살 수 있으리라는 신의 뜻이었다고 믿는다.
조용한 성당을 기대했던 내 생각과 달리
성탄맞이 강의를 앞두고 왁자지껄 생명력 넘치던 성당 안의 모습 또한
신 앞에 서는 내가 지나치게 스스로를 비하하지 않도록,
오히려 신 앞에 섬으로써 밝게 웃는 저 신도들처럼
나 역시 신을 되찾고 생명력을 얻으리라는 희망을 갖게 하려는
신의 뜻인 것으로 보였다.
성당을 나오면서 교만한 마음이 불경하게도 제대 위의 십자가를 향해
내기를 걸게 만들었다.
'주여, 만약 오늘 나를 이자리로 불러들인 모든 것이 당신의 뜻이라면
오늘 이 자리에서 나의 부모님을 뵙게 해주소서'
이런 경망스럽고 발칙한 한줄기 생각이 마음 속을 스쳐지나가기도 전에
성당 계단을 내려오던 나는
나의 신앙적 부모인 로베르토 대부를 만나게 되었다.
성당을 매주 다닐 때도 잘 만나지 못했던 대부를
평일 저녁에 이처럼 만나게 되다니,
발칙했던 내 마음의 교만함마저도 흘려보내지 않고
그대로 이루어지게 만든 신의 전능함 앞에
내가 잘나서 이뤄온 것이라 자만했던 나의 모든 지나온 삶은
당신의 거대한 계획에 불과했으리라는 부끄러움을 안은채
다시금 그 앞에서 엄숙히 옷깃을 여밀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를 다시 이곳으로 이끈 일련의 사건들의 나열을 두고
이제까지라면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기 좋아하는 인간이,
비인과적인 사건들에 하나의 공통된 의미를 부여한,
지극히 비논리적인 결론'
이라는 분석을 해대며 우쭐해 했겠지만
이제 나는 그 모든 궤적을
'신의 섭리'라는 말로 그대로 겸손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시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이
지금처럼 눈물겹게 고마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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