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머리의 고민들 2004/06/21 23:39
동작대교를 타기 위해 지나치는 용산역 앞
정육점 같은 붉은빛이 휘황찬란한 사창가 골목을
언뜻 스쳐지나가면서
저기 서 있는 예쁘고 늘씬한 여자를 '창녀'라 부르고
똑같은 외모를 가졌어도 TV에 나와 웃음을 짓고 노래를 부르는 여자를 '연예인' 또는 '스타'라 부르는,
우리가 사물을 '구별하는 잣대'에 무슨 차이가 있을지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그 性的 방종(?)의 정도가
그녀들을 구별 짓는 유일한 잣대는 아니라 하더라도
중요한 잣대는 되겠지.
인간이 가진 인식의 틀이란 것은
파문 없이 잔잔해진 뒤 가만히 들여다보면
때때로 참으로 하잘것 없는 것인 경우도 많다.
명동거리를 걸어다니는 그 많은 인파 속에서
어느 대학을 나오고 얼마의 연봉을 받으며
어느 동네에 살고 무슨 차를 굴리는지로 사람을 구별하는
이 사회의 잣대라는 것도
가만히 '맨정신'으로 들여다보면
한없이 가볍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것일텐데.
결국 이렇게 사람의 가치에 대한 논의의 원점으로 되돌아간다면
'모든 사람의 가치는 똑같다'라는 이상론까지 동의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추상적인 선을 행하기보다는 구체적인 악을 제거하는데 힘쓰라'는 칼 포퍼의 말대로
사람의 가치를 판별하는 데 있어서도
'최악'과 '차악'을 구별하여 분리해낼 수 있다는 믿음에는
고개가 끄덕여지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저 사람이 돌을 맞아 마땅할 정도로 악인이더라도
그가 정말 저 성난 군중들의 돌팔매 앞에 무방비인 상태로 섰을 때
진정한 '최악'은 그 '악인'이 돌팔매에 맞아 '죽는 것' 그 자체가 되어버린다.
'한 사람을 구하는 자가 세상을 구하는 것이다'라는
영화 '쉰들러의 리스트'에 나오는 말은
그래서 아직까지도 유효한 거다.
만화 '남벌'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이 적지에 억류된 한국인 구출을 명령하며
'결코 조국이 그들을 버리지 않는다는 믿음을 배신하지 말게'라고 읊조리던 대사가
순전히 만화용의 낭만적인 대사라는 점을 인식하더라도
적어도
간신히 구출해낸 자국 인질들에게
'자기책임론' 운운하며 삿대질을 해대는
미쳐버린 일본사회 같은 괴물짓거리는 하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대사가 TV에 나와
파병 한국군은 재건부대임을 강조하며
한국군의 활약상(!)을 다큐멘터리로 내보냈다는 소식에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외교부라는 작자들이
과연 협상력이라는 걸 알고 있는지
실소를 넘어 서글픔과 참담함을 느꼈다면
과연 내가 잘못된 것일까.
독소전이 개시되고
독일군이 파죽지세로 모스크바를 향해 진주하던 순간에도
아무일 없이 협동농장에서 아침체조 방송을 틀어댔다는
소련 지도부의 멍청함을
그냥 비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까닭은
우리의 운명 또한
50년전 멍청했던 소련 지도부와도 같은
저 고시합격자 집단에 불과한 우리 외교부의 손에 달려있다는
서글픔 때문이 아닐까.
'정부는 대책을 마련하라'는 한 줄 성명 읽은채
5시간 동안 행정수도 토론만 주리장창 해댔다는
더 답답한 집단이 정권을 잡지 않은걸
그 와중에도 희망이랍시고 안도해야하는 걸까.
한 사람의 가치,
그 최소한이랄 수 있는 그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하는 국가라는 건
스스로의 모든 존재가치를 밑에서부터 허무는
자기부정의 존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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