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마음의 흔적들 2004/02/23 01:39
8년전 아버지가
나의 합격통지서를 받고 집에 들어오시면서
눈물을 흘리시던 모습을 잊지 못한다.
기어이 대학에(그것도 세칭 명문대에)
내 아들을 보낸
지난 세월이 너무도 감회깊어 흘리신 눈물이었으리라.
그렇게 기쁨에 들떠 시작한 8년간의 대학생활이
이제 몇시간 후면
영원히 내 이력서상의
'대학교 졸업'이라는 단 한줄의 서술로만 남게 된다.
이미 나는
회사라는 '사회'에서
3개월째 수련 중이므로
작년 10월 이후로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한 대학생활을 완결하는 의미로서의 졸업식이란
그저 요식행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순간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를
내 인생의 길 위에서
대나무 같은 또하나의 굵은 마디가 새겨지고 있음을,
그 '마디'를 새기는 엄숙한 의식으로서
내가 보낸 지난 8년을
어떻게건 이곳에 기록해두어야 한다는
작은 의무감마저 느끼고 있다.
돌이켜보건대
나의 대학생활을
다른 사람들과 같은 의미에서
'치열한 삶'이었다고 고백하기는 어렵다.
'주어진' 시간과
'주어진' 돈과
'주어진' 젊음을
수동적으로 소비해오는 데 그쳤음을
부끄러워하고자 한다.
지난 8년은
이 한국사회가
그동안의 가치관을 잃고
새로운 세계로부터의 새로운 도전에
힘겹게 응전해온 격변의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한 격변의 흐름이
보잘것없는 개인으로서의 당대 대학생들에게
어떠한 포지셔닝을 요구했는지
그러한 요구에 그들은
어떠한 반응을 보이고 어떠한 선택을 했는지
많은 매체들이 기록하고 있는 바는 그리 밝지 않은 것 같다.
생존을 위한 고시열풍과
자본에 점령당한 대학문화,
더이상 담론을 생산해내지도, 소화해내지도 못하는
거대한 사회'입시'기관으로서 휘청거리는
안쓰러운 모습으로 대학이 변해가던 그 시절
내가 그 안에 있었다.
한편으로는
나 자신의 우유부단함과 갈등을
곧잘 그러한 외부세계의 탓으로 돌리곤 하기까지 했다.
그러한 우유부단함의 시절에 비해
내 자신이 누렸던, 그리고 지금까지 누리고 있는 상황은
다른 이들, 치열하게 살아온 다른 이들에 비해
다소 과분한 것이 아닌가, 과분한 것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100%는 아니겠지만
그 과분한 결과의 기저에는
'연세'라는 이름이 가진,
무의식 속에 사회적으로 합의된 校名의 가치가
'나'라는 개인의 평가마저 규정짓고 있음을 보았다.
너무나 세속적인
'연대생'이라는 클리셰가
사람들로 하여금
나의 '침묵'을 '사색'으로 둔갑시키고
나의 정제되지 않은 '언어'를
'합리적 논리'로 받아들이게끔 했다.
가끔 이러한 과도한 이미지조작이
나를 당혹스럽게 했지만
영리하게도
나 스스로 가끔 그러한 것을
역으로 이용했던 적도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점에서 나는,
연고전에도 가본적이 없고
신촌에 들어찬 수많은 술집과 상가들을 보며
'연세'를 저주했던 나였음에도
'연세'라는 이름에 이율배반적인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또 한가지,
내가 빚을 지고 있는 것이 있다.
- 아직도 이 빚이 '연세'에 돌려져야 하는 것인지
'대학교'에 돌려져야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
그것은 내 인식의
무한한 확장이었다.
아직도 나의 인식이
인간이성의 100% 발현에 이를 정도로 확장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거다.
나이가 들면 더욱 세상을 보는 깊이가 달라질 수 있을테니.
그러나 적어도
8년간의 대학생활을 통해 내가 겪은
인식의 지평이 급격히 팽창했던 경험은
이제까지 초-중-고교의 매 단계마다 진학할 때 느꼈던 것들과는
전혀 비교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이제까지 내가 믿어온 진리는
모두가 해체되고 파괴되었으며
나는 그 事實들의 잔해 속에서
스스로 진리를 찾아나가는 법을 깨우쳐야 했다.
그리고 모든 현상, 심지어 금기마저
'대학 안'이라는 이유로 분석될 수 있었으며
연구될 수 있었다.
물론, 그러한 끝없는 해체와 분석의 과정에 당황하여
'現象의 학문'이 아닌
'價値의 학문'을 배우고 싶다고 주억거린 적도 있었지만
지금의 내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느순간 나는
'현상'을 분석함으로써 '가치'를 판단하는 법을
부지불식간에 깨닫고 있었다!
이미 생존을 향해 뛰고 있는 많은 대학생들에게는
부질없는 소리일 수도 있지만
이러한 '인식의 폭발'과 '사상의 자유'는
허무할뻔한 나의 8년을 지탱시켜준
거의 유일한 추동력이었다.
.........
이제 나는
그 무한한 인식과 사고의 자유세계를 지나
내 삶의 줄기에
굵은 마디를 하나 새긴 채
평범한 사회인의 영역으로 진입하려고 한다.
나의 지난 8년을 열었던 아버지의 기쁨섞인 눈물만큼 신파는 아니더라도
앞으로의 내 삶도
또다른 마디를 새기기전까지
'덤빌테면 덤벼봐'라는 모습으로
입술에 작은 미소를 띄우며
기꺼이 맞아들이고자 한다.
돈과 물질의 광풍이 사회를 휩쓴다 해도
내가 지난 8년간 누렸던
무한한 인식과 사고의 자유가 주는
그 뜨거운 느낌을 잊지 않을 거다.
내 뒤에 남겨질 '연세'라는 이름이 주었던
미움과 고마움의 애증도
가슴 한켠에 고이 간직한채
학교 밖에서 학교 안을 그리워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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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축하한다~ 선물은 생략~
차아식~ 글은 졸라 잘 써요^^
웅~ 여하간 졸업 축하한다...이제 너도 학교라는 갑주를 벗어던지게 되었구나. (대신 [배짱]이라는 새로운 갑주가 필요할께다...ㅋㅋㅋ)
그럼 저넘은 배짱이가 되는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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