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마음의 흔적들 2003/07/02 03:06
할머니와 나의 관계를
사실 이상으로 미화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거치면서
언제부턴가 할머니는
이유없이 엄마의 피곤함에 중심에 있는,
그리고 나에게도 항상 그 짱짱거리심이 부담스러운
그런 분으로 남아왔으니까.
.........
자기 손으로 길렀으되
다 커버린 손자들에게 이제 말을 붙일 수 있는 방법은
밥 먹었냐, 밥 줄까 -
오로지 '밥' 얘기 뿐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나가는 길에 붙잡고
밥 먹고 가라고 채근하는 할머니에게
차가운 말로 쏘아붙이고 나오면서
집을 나서는 길에 그날 하루도 마음 깊이
편치 않았던 무거움이 남아있었던 건
그래도 내게 조금이나마 '양심'이나 '배려' 같은 게
남아있었다는 뜻일까.
생전처음 입어보는 검은 양복의 까실한 감촉,
갑자기 10년은 늙어버린 듯한 삼촌, 고모들의 모습,
이제는 더이상 울 것 같지 않았던 어른들이 흐느껴 우는 모습,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기에 있어야할 사람'의 모습이
이제는 사진으로만 남아
검은액자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입체'가 아닌 평면의 하나의 '형체'로만 남았다는 것,
그 모든 것이
난생처음 겪어보는,
'가장 가까이, 함께 살았던 사람의 죽음의 느낌'이었다.
이제는 집에 들어섰을 때
지팡이를 힘겹게 짚으면서도 부엌으로 밥을 해지으러 들어가는
그 느릿느릿한 하얀 형상을
더는 볼 수가 없는 것이고
아침에 타박을 하셨음에도
저녁에는 무릎에 파스를 붙여주시던
할아버지의 '짝'도 사라져
그 큰 방에서 홀로 몸을 뉘셔야 할
할아버지의 힘겨운 모습도
매일매일 꾹 참아내야 하는 것이다.
돌고래 두 마리가 수면 위를 차오르는 모습이 새겨진 푸른 색돌이
이제는 '선물'이 아니라
할아버지에게 서럽게 느껴지기만 하는
그러한 물건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자괴감도
이제는 할아버지 방을 들어갈 때마다
할머니가 사라진 그 공간의 크기만큼
내 마음 속을 차지할 것이다.
......... 인간이란 언제나 어리석은 존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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