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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a. 헌법재판소에서 청소년성매매자 신상공개가 합헌판결이 났고
b. 지하철수사대의 형사 부인이 노숙자에 떠밀려
마주오던 전동차에 목숨을 잃었다.

국민의 법감정이라는 것에 따르면,
a.는 당연히 합헌판결이 나야하고
b.의 노숙자는 당연히 사형을 당해야 한다.

그러기에
a.의 판결이 헌재 법관 전원의 합헌판결이 아니라 위헌정족수 미달이라는 아주 tricky한 방법으로 합헌판결을 받았다는 것이 오히려 분노를 자아내는 것이고,
b.의 경우는 왜 살인죄를 묻지 않고 상해치사죄를 적용하는가에 대해 답답한 것이다.

돌이켜보건대, 삼풍백화점 사건 때 삼풍회장이었던가... 그 사람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로 기소하자던 목소리나, 고등학교 소위 '일진회'(폭력서클) 학생들을 범죄단체구성죄(맞나?)로 다루는 것을 검토하겠다던 검찰청의 입장이나 한국은 항상 법과 현실의 괴리를 목도해왔던 것이다.

솔직히 법학과를 가지 않았으면 나는 왜 법이 그러한 가해자들에게 관용을 베푸는가, 또는 왜 법은 국민의 법감정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인간이성에 대한 믿음을 토대로 만들어진 근대의 법(특히 형법)은 그것이 목표로 하고 있는 이상만큼 현실이 완벽하지 않기에 이렇게 항상 '너무 관용적인 법을 답답하게 여기게 되는' 그러한 상황을 맞곤 하지만 그 법률체계를 받아들이고 있는 사회가 법이 상정하고 있는 이상적인 세계와 멀면 멀수록 그러한 괴리는 더더욱 커보이기만 한다.

쉽게 말해,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나라라 하더라도 법이 너무 관용적인 것이 아닌가 싶은 아주 난감한 사태가 없진 않겠지만 (인간이성에 대한 믿음으로 사형을 폐지했는데 그로 인해 연쇄살인범을 사형에 처할 수 없는 경우) 우리나라처럼 아직 이성에 대한 계몽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회에서는 서양에서 들여온 근대의 법률체계가 국민감정과 배치되는 결과를 낳는 경우가 더욱더 흔해진다는 것이다.

유승준 문제도 법적으로 보았을 때는 인권침해 소지가 다분하며 위에서 언급한 a.의 케이스 역시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미 정해진 법률에 의해 처벌을 받은 사람이 또다른 여론재판(그것도 '망신'(!!)이라는 전근대적인 사형(私刑)에 의하다니!!)에 의해 이중처벌을 받아도 좋은 것인가 하는 일각의 주장은 충분히 수긍할만한 것이다.

내가 사법시험을 보지 않는 핑계로 간혹 들곤 하는 이 근본적인 딜레마는 (철학 없는 법기술을 배우고 싶지는 않았다...그럴 능력도 없었고) 종종 핑계수준을 넘어 내게 '인간이성과 인간현실간의 간극은 좁혀질 수 있는가'라는 거대한 문제로 확장이 되곤 한다.

동성애자간의 결혼 인정이나 혼전동거 같은 새로운 문제들을 판단하는데 우리 인간들이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이성'이라는 것이 과연 우리를 제대로 이끌어주고 있는 것일까 하는 두려움도 무척 크다.

a.의 경우야...문제가 되고 있는 (성매수자에 대한) 일률적인 신상공개보다는 성을 판 청소년의 자발도(혹은 공여도 뭐 그런거?)에 따라 공개대상을 엄격히 하는 방향으로 바꾸면 되지 싶지만 b.의 경우는 정말 어떻게 처리해야할까.

노숙자는 사회의 낙오자이고 부인을 자신의 일터에서 잃은 형사의 슬픔이 더 크다는 그러한 이익교량으로 처리될 수 있는 사안일까. (법이 그 적용시에 이런 이익교량을 행한다는 게 아니라 일반인들이 노숙자에 대한 관대한 처벌에 분개하는 것이 그들 마음속으로 이러한 이익교량을 행하기 때문이라는 말)

아니, 오히려 (근대의) 법은 가해자에 대한 응보가 피해자 유족들에게 얼마만큼의 카타르시스를 주는지는 관심이 없다고 해야 옳은 말일 것이다.

상해치사죄보다는 살인죄로 처리하는 게 자네(형사)의 슬픔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거겠지?
- 법이 이런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노숙자를 체포한 지하철수사대는 노숙자를 상해치사가 아닌 살인죄로 다루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는데 내가 보기에는 수사대에서 동료의 슬픔에 대해 과잉된 법적용을 하고 있는 것 같다)

.......

아직도 뭐가 옳은 것인지, 어떠한 처벌이 양 당사자간에 가장 공평한 것인지 나는 알 수가 없지만 한 가지,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내가 언론의 단편적인 지식만을 갖고 쉽사리 흥분하여 lynch mob의 일원이길 자초하는 그러한 성급함은 이제 크게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이게 '진정한 공평'을 알아가는 하나의 과정이라면 환영할만한 일이겠지만 아직도 내게는 내가 발딛고 있는 한국사회의 전근대성을 법이 예정하고 있는 이상적인 이성중심의 사회로 끌어올리는 작업이란 것이 너무나 어렵게만 보이고,

좀더 근본적으로, 그렇게 이성중심의 사회를 구축하는 것이 과연 인간이 나아가야 할 길인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도 여전히 마음 한켠에서 확신의 등(燈)을 받지 못한채 불안하고 어둡게, 그러나 한번 휘젓기만 하면 언제든지 물 전체를 요동시킬 수 있는 연못의 거무튀튀한 오랜 침전물 같이 그렇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2003/06/27 09:24 2003/06/27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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