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마음의 흔적들 1998/10/08 02:57
엄마가 섬그늘에 굴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베고 스르르르 잠이듭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못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훗, 밑에 어느 분께서 엄마가 섬그늘에...이 노래를 부르셔서 몇마디 끄적. ^^
사실 이 노래, 옛날엔 많이 들었지만 노래 제목 안 것은
고등학생 때, 어느 주말에 오징어땅콩 까먹으며 동요프로그램 보다가
이 노래가 나오면서 "섬집아기"라는 제목의 자막이 흘렀을 때였다.
........어쨌거나.....이 노래에 얽힌 (쬐~금 긴...) 기억의 한 도막.
................
우리 어머니는 스물 아홉에 시집을 오셨다.
보지도 않고 데려간다는....어느 부유한 부산 갑부 딸부잣집 셋째딸로 태어나
(솔직히 막내딸은 아니었다. 외할머니께서 딸만 아홉을 두셨으니...)
가난했던 서울의 한 노총각에게 시집오셔서 맏며느리로서 시부모님 모시며
연년생 두 아들을 키우시고 시동생, 시누이 공부까지 다 시키신 우리 어머니.
우리 아버지는 착하기만 하셨던 할아버지가 물려주신 가난을 벗어던지기 위해
정말 힘들게 일하셨구.....큰 고모를 먼저 시집 보내신 뒤 서른 여섯이라는
결코 이르지 않은 나이가 되어서야 자신의 행복을 찾으신 분이셨다.
난, 어렸을 때 왜 큰 고모의 딸인 사촌누나가 나보다 나이가 많은지
그 이유를 알지도 못했고, 알려고 하지 않았다.
하긴, 그걸 알았으면 난 많이 아파했겠지만....
..............
어쨌거나........
학교 선생님으로, 시부모님의 맏며느리로, 한 남자의 아내로,
두 아들의 어머니로.....힘겹게, 하지만 강하게 살아오신 어머니는
할머니와 가끔 충돌이 있으셨고....제3자인 나로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지만,
나름대로 많은 아픔과 상처가 있으셨던 모양이다.
밤마다 어린 우리 형제를 두 팔로 끌어안고 자장가를 불러주시겠다면서
항상 '엄마가 섬그늘에....' 이 노래를 불러주셨다.
하지만 우리 어머니는 결코 이 노래를 끝까지 부르신 적이 없다.
어머니의 자장가가 잦아들면 우리는 이 노래의 끝소절 가사처럼
엄마가 정말 노래를 부르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는줄 알고
그냥 우리도 두 눈 꼬옥 감고 잠을 자려했을 뿐이다.
잠든줄 알았던 엄마가 들릴락 말락 흐느끼시는 것 같아도,
'엄마, 어디 아파요?' 라고 물어보고 싶어도, 난 본능적으로
그런 질문을 해서는 안되는 상황임을 알아차렸고, 그냥 무작정
그 흐느낌이 나의 환청이길 빌며 두 눈을 다시 질끈 감아버렸을 뿐이다.
.................
어느날 아침, 잠결에 어머니와 할머니가 크게 싸우시는 것을 듣고
난 다시 자는 척 했었다.
내가 깨어났을 때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친척집에 가신다며 나가셨고
그날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
그날밤, 난 삐뚤빼뚤한 글씨로 '엄마, 할머니. 싸우지 마셔요.'라고
쪽지를 썼고 할머니와 엄마가 주무시는 건넌방과 안방에 살며시 들어가
두 분 머리맡에 그 쪽지를 놓고 나왔다.
..........하지만 내가 싫어했던, 당신들 사이에 감돌던 그 냉랭한 기운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래 갔다.
.....................
그 뒤로도 오랫동안.....난 잠결에 어렴풋이 여러 소리들을 들었다.
아버지가 삼촌에게 '아무리 못나도 네 형수야, 임마' 하며 소리치시던 것을 듣고
조용하신 아빠가 저렇게 화를 내시다니...하며 이불 속에서 무서워했던 기억...
할머니와 어머니가 서로 언성을 높이시며,
그분들께서 나에게는 하지 말라고 가르쳐주셨던 많은 욕들을
그분들 스스로가 하시는 것을 들으며 혼란스러워 했던 기억...
.........
글짓기 숙제로 '행복한 우리집'을 엄마에게 써달라고 했을 때,
어머니는 나의 손을 빌려 너무나도 아름다운 모습을 그려주셨지.
'...나는 거실에서 피아노를 치고, 삼촌은 기타를 치고, 동생은 노래를 부른다.
어머니는 과일을 깎으시고, 할머니 할아버지는 동생의 노래를 들으며
즐거워 하신다...'
.........에이, 엄마, 우리 가족이 어디 이래요? 말두 안돼....
어머니는 내 핀잔에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하셨지...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머니가 내 손을 빌려 써주신 '행복한 우리집'은
항상 당신께서 그리시던, 하지만 결코 닿을 수 없는 유토피아였을 뿐...
내가 조금만 더 빨리 그걸 이해했더라면......후후....
........................
결국 할머니, 할아버지는 조그마한 아파트로 나가 살게 되셨고
난 어머니가 당신들을 내쫓으셨다고 생각하고 비뚤게 나가게 되었다.
어머니와 싸울 때마다 그들을 내쫓은 것은 당신이라며
당신의 한없이 여린 가슴에 수없이 날카로운 비수를 꽂았고....
이제 어머니는 자신이 낳은 아들과 반목하며
또다시 힘겨운 나날들을 보내셔야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시간은 꾸준히....그렇게 몇년이 흘렀다.
........................
작년 여름, 할아버지, 할머니의 결혼 50주년, 금혼식에서 난 적잖게 걱정했다.
많은 친척분들이 오실텐데....내가 어렸을 때 느끼고 싶지 않았던
두 분 사이의 냉랭함과 무관심을 그분들에게 들키지나 않을까 하는 것....
하지만 결국 금혼식 행사는 그럭저럭 진행됐다....
한복을 차려입으신 어머니는....음식을 조금씩 떠와 할머니 앞에 갖다드리셨다.
당신 앞에서 결혼 50주년을 축하해주시는 친척분들에게
할머니는 며느리를 이야기하셨다.
'얘가 우리 큰 며느리에요....참 복스럽게 생겼지요....'
그때 어머니와 할머니를 동시에 스쳐지나가던 어색한.....그러나 풋풋한 미소.
이미 젊은 날의 아름다움과 우아함이 아닌....'복스럽다'라는 단어를
듣게 되어 아쉬움이 남으셨을 어머니였겠지만
난 할머니의 그 말씀을 듣고 두 분 사이에 '시간'과 '정'이라는 온기가
자리잡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행복했다.
20여년의 긴 시간이 걸렸지만.....이제서야 두 분은 서로를 이해하고
조금은 어색한 농담으로라도 서로를 맞아줄줄 아는
지혜를 깨닫게 되신 것이었다.
..............
며칠 전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 작고 허름한 아파트에서 다시 돌아오셨다.
이제 나는 어머니와 할머니를 괜시리 걱정하지 않는다.
그 옛날, 섬집아기를 부르면서 "잠이 드셨던" 어머니의 풍경을
아직도 잊을 순 없지만,
이제는 그 풍경조차도 시간이 아름답게 바꿔버릴
하나의 추억이 되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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쭝님의 기억이 저와 공유?되는 부분이 많은 거 같아, 님의 글들을 자꾸 읽게 됩니다.
저는 요즘 저 '섬집아기'라는 노래를 아들(세살)놈 잠 재울 때 주로 부릅니다(18번 곡이지요 ㅎ)
저는 요즘 저 '섬집아기'라는 노래를 아들(세살)놈 잠 재울 때 주로 부릅니다(18번 곡이지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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