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마음의 흔적들 1999/03/21 02:30
한 계절에 한번, 1년에 네번씩은 꼬박꼬박 동물원을 찾는 이 유치함은
내가 버리고 싶지 않은 습관 중 하나이다.
이제는 어느 우리에 어느 동물이 살고 그 동물의 생태가 어떤지
대충 기억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는데
오늘처럼 비가 온 뒤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동물원에 가보긴 처음인 것 같다.
늦가을, 초겨울에 가는 을씨년스런 동물원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그런 감추어진 봄내음의 분위기가 오늘은 우리 뒤에 숨겨져 있었다.
.........
동물들에게 '나'라는 존재가
하루에도 자신들을 구경하러 오는 수백명의 사람들 중 하나에 불과할 지라도
나에게 그 동물들의 존재가
하나하나의 이름이 어떤 것인지까지는 모르는...추상적인 "무리"의 의미일지라도
우리와 유리벽 너머로 그들과 눈을 맞대고 서로를 읽어내는 순간만큼은
배신과 변절이 난무하고 필요 이상으로 복잡해진 인간사회에서는
이미 자취를 감추어버린
그런 순수함과 길들여지지않음을 느끼게 해준다.
아무리 철책 속에서 권태롭고 길들여져있다 하더라도
그 먼지나는 흙에 몸을 부비고 서로의 털을 쓰다듬는 그 모습은
적어도 이만큼 닳고 닳아빠진.....sophisticated 해진 '나'보다는 나을테니.
.........
동물원에서만큼은 사람의 표정을 읽어내고 싶지 않은건
바로 그런 이유들 때문이 아닐까 싶다.
유리창에 앞얼굴을 문대고 두 손으로 머리를 싸맨....
두통에 걸린 듯한 표정을 지었던 오랑우탄이 안쓰럽게 보였던 것 역시
거기에서만큼은 읽어내고 싶지 않았던
고민과 걱정, 스트레스가 읽혀지는 듯 했기 때문이다.
...........
동물원만큼은
동물들만큼은
아무 걱정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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