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머리의 고민들 2000/02/20 02:25
헌법학·정치학 교과서에서 서술되고 있는 수많은 현학적이고도 현란한 개념들을 굳이 끌어다 쓰지 않더라도, 현실적으로 '선거'라는 것이 헌법에 보장된 국민주권의 원리를 실현하는 가장 직접적인 수단임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개인이 참여할 수 있는 시민단체의 활동이 늘어나고, 권력의 극점이 이동하고 다극화되는 현실 속에서도 국민주권과 민주주의의 대의적 실현이라는 수단으로서 '선거'가 갖는 의의는 결코 무시될 수 없다.
그러나, '선거'가 갖는 이러한 엄숙한 의의와는 달리, 우리는 선거 때마다 금권, 타락, 부정선거의 어두운 모습들을 매번 목도해왔다. 이것은, 우리의 민주주의와 선거제도 자체의 역사가 일천할 뿐만 아니라, 전제주의적 왕정시대와 일제강점기를 겪은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제도와 국민의식이 일치하지 못하고 그것이 우리의 토양에 완전히 착근되지 못했다는 데에 가장 큰 이유가 있다고 하겠지만, 이러한 이유들이 앞으로도 우리의 선거가 그럴 수밖에 없다는 자조와 냉소를 합리화하는 수단이 될 수는 없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경실련과 총선시민연대 등의 낙천, 낙선운동은 스스로의 자정능력을 상실한 정치권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본격적이고 조직적인 단체행동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천년의 좋은 조짐이라 할만하다. 이를 계기로 많은 이익단체들이 자기들 나름대로의 정치인 낙선운동을 펼쳐 선거가 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등 일부 언론의 우려도 없진 않으나, 각 단체의 반대 정치인 명단 공개가 절대선, 절대악 개념의 '가치기준'으로 인식되지 않고 유권자 개개인에 대해 입후보자들을 평가하는 '평가기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면 오히려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리라 본다.
한편, 선거와 정치권을 바라보는 언론의 올바른 태도도 짚고 넘어갈 문제라고 본다. 일례로,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일부 중앙일간지들은 시민단체의 순수성을 의심부터 하면서 '배운 자, 가진 자 특유의 오만함'으로 냉소적인 시선을 보내며 상황을 호도하는 해석을 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발행부수가 많고 영향력이 크다는 신문들이기에 문제는 더 심각하다 하겠다. 가뜩이나 정치를 불신하고 혐오하는 사람들이 많은 상황 속에서 사람들의 점진적인 참여와 개혁을 유도하기보다는 '한 치의 티끌도 없는 완벽한 명분과 이데아'를 주장하며 냉소하는 그들의 논조는, "정치란 지극히 현실적인 '기술'의 문제"라는 명제 앞에서 건전한 비판이 아닌 허구임이 드러난다. 그 외에도 특정세력에 편파적인 기사,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기사, 근거 없는 흑색선전과 폭로 등을 여과 없이 내보내는 기사 등 본격적인 선거전에 돌입했을 때 언론 스스로 경계해야할 것도 많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정치권의 자각이 시급하지 않을까 싶다. 많은 사람들이 유권자들의 의식개혁을 주장하지만, 우리나라의 역사와 정치풍토로 미루어 볼 때, 아래로부터의 개혁보다는 위에서부터의 개혁이 훨씬 더 속도 빠르고 직접적인 효과를 거두어 왔기 때문이다(대통령을 미국처럼 'President'(의장)이 아닌, '王'으로 인식하고, 대통령부인을 '國母'로 인식하는 국민정서도 이러한 것들과 무관하지 않다). 물론, 당선이 지상목표인 각 정당과 그 정당의 입후보자들에게서 이러한 정치적 각성을 요구한다는 것이 어쩌면 뜬구름 잡는 듯한, 낭만적인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돈과 향응으로 즉각적인 효과를 볼 수 있던 시대의 유권자들은 점차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으며, 참신하고 깨끗한 정치를 열망하는 새로운 시대의 유권자들이 점차 유권자 계층의 중추를 차지해가고 있다는 현실을 정치권에 인식시키고, 정치권 또한 그러한 현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면, 아직은 우리의 정치에 희망을 걸어보고 싶은 철없는(?) 필자의 이러한 '낭만적인' 생각은 결코 낭만으로 끝나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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