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머리의 고민들 2002/07/18 17:48
나도 '법대생'이긴 하고,
비록 헌법(2)에서 3문제 중 1개를 백지로 내서
C를 받긴 했지만
나도 나름대로 헌법은 재미있어했고, 좋아하기도 했다.
(강의로만 듣는다면
아마 그 '헌법'이라는 개별법은
그 안에 한 나라의 이상향을 모두 포괄하고 있는,
지극히 '낭만적'인 법이니까)
어제는 제헌절이었다.
신림동의 많은 사시생과 법률/법학관계자들은
나름대로의 소회를 느꼈을 법하다.
'온 국민이 소회를...'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은
우리의 정치적, 법률적 문화가
온 국민이 공감하고 소회를 느낄만큼
헌법정신에 부합하고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뭐...미국사람들도 그렇고
세계 어느 나라든지 일반국민이
평생동안 헌법전 한번 안 보고 사는 경우가
태반이긴 하지만...흠흠...
(헌법학에서는 헌법을 '국민의 정치적 결단'이라고 하지만
그건 절차상 또는 의의상 그런 것이고
사실상은 '헌법제정자들 고안(考案)의 산물'이라는 게 옳겠다)
어쨌거나 제헌절에 대해 큰 불만은 없다.
어제도 나는 오랜만의 휴일을 빌미삼아(?)
아버지와 이마트 가서 여행가방을 샀으니까.
다만, 뉴스나 신문에 많이 나온
'월드컵 태극기 열풍 식었나'라는 기사에 대해서는
무척 심심한 유감을 표하는 바이다. -_-
......
월드컵에서 한국의 젊은이들이 보여준
태극기 패션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해석을 내놓았다.
대개는 그것을
'젊은이들의 애국심의 표현'이라고 해석했는데
내 관찰로는 '아니올시다'이다.
월드컵에서 광장에 모였던 젊은이들이
태극기로 망토, 치마, 심지어 탱크탑까지 해입었던
진짜 이유는?
이에 대한 답은
'재미있으니까'일 따름이다.
유시민 이외의 어떤 분석가도
젊은이들에게 '왜 그런 옷을 만들어 입습니까?'라며
대면질문을 한 사람이 없다.
모두들 자신의 50대의 사고로
젊은이들의 그러한 행동을
'애국심'일 것이라고 낙관적(이것 역시 50대의 입장에서 본 '낙관적'일 따름이다)으로
해석했을 뿐이다.
......
월드컵에서 쓰였던 그 많은 태극기의 물결은
'국가상징'의 수단이었을 뿐이다.
월드컵 경기에서 한국을 나타내기 위해
훈민정음 해례본으로 옷을 만들어 입을 수도 없고,
조선시대 임금의 곤룡포를 만들어 입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것은 국가 대 국가가 격돌하는
월드컵 그라운드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 밖에 없는
'전투의 소품'에 불과한 것이지
그것의 '등장' 또는 '동원' 자체가
그 소품에 대한 애정(심하게는 물신숭배) 자체로
화(化)할 수 있다는 것은 넌센스다.
KBS를 비롯한 많은 언론사들은
제헌절 태극기 미게양 기사를 올리면서
월드컵 때의 태극기 열풍이
곧 우리 사회에 태극기가 새로운 코드로 자리잡았다는 듯
misunderstanding하는 오류를 범해버리고 말았다.
......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제헌절에는 태극기 안 달아도 좋다는 얘기가 아니다.
'헌법'의 의미를 생각할 때
가급적 태극기를 닮으로써
헌법제정의 의의를 생각하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 내 입장이지,
(그나마 이것도 내가 법대생이기에 가능한 것이지
사람에 따라서는 안 달아도 강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굳이 카메라를 아파트에 들이대면서까지
'너 왜 안 다냐!'라는 식의 손가락질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정치권과 소위 '있는 사람들, 높은 사람들'이
스스로 헌법을 지키지 않고
우습게 여기는 모습마저 보여주는 현실 속에서
우리가 법전 속에서만 존재할 뿐인,
평생 한번도 그에 의해 정의가 규율되어 본 적이 없는
'글자만으로서의 헌법'에 대해
스스로 태극기를 올려 예를 표하는 마음이 나겠는가?
.....
얘기가 빗나갔는데
어쨌거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렇게 '태극기 안 단 사람들에 대한 변명'이 아니라,
언론이 월드컵 때의 태극기 열풍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태극기 사랑 식었나'라며
해당기사를 전해주던 KBS 정세진 아나운서의 모습이
20대의 젊은 여자로 보이지 않고
20대와 50대가 단결하여 좌파적 30대를 몰아내자던
갑제형의 우스꽝스러운 오바씽킹을 연상케했다면
너무 짖궂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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