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실에 누워서 책을 본다는 건 별로 도움되는 일이 못 된다.
나머지 세 사람이 모두 TV를 하루종일 보기 때문.
아침밥이 나오는 아침 8시 뉴스를 시작으로
SBS 여왕의 조건, MBC 김약국의 딸들을 섭렵해주시고
케이블TV의 전날 드라마 재방송을 줄줄이 꿰어주신다.
(수목 밤에 김삼순을 봐주고 다음날 오전에 부활을 봐주는 절묘한 센스~)
2005년 여름, 대한민국을 들썩거리게 만든 '내 이름은 김삼순' 역시
병원생활이 아니었더라면 평생 안 보고 지냈을 그런 드라마였다.
아시다시피 난 원래 우리나라 드라마들,
다 거기서 거기고, 줄거리도 뻔할 뻔자라고 생각해서 아예 무시해왔다.
네이버나 다음에 들어갔을 때 김삼순 뉴스가 헤드라인에 올라와있으면
참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페이지를 넘기곤 했고
병원에 처음 입원해서도 수목 밤에 다른 환자들이 김삼순에 빠져있을 때
'흥, 나는 유치한 한국드라마 안 볼 거야'라는 오기가 생겨
괜히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 책을 부여잡고 읽는 척 했다.
그러다가 어느새 책을 덮고
다른 세명의 환자들과 함께 김삼순을 보며 낄낄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ㅋㅋ
원래 늦바람이 더 무섭고
조선인 앞잡이(변절자)가 일본순사(오리지날)보다 더 악질인 것처럼
나도 괜히 수요일 목요일 10시만 기다렸고
인터넷에서 김삼순, 김자옥, 다니엘 헤니 뭐 이런 검색어들을 치고 있었다.
예전에 유행했던 드라마들을 케이블TV에서 재방송 해주는데
(풀하우스, 올인 뭐 그런 것들)
그거랑 비교해보면 왜 김삼순이 나조차도 미소짓게 만들었는지
나름대로 변명거리를 들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눈물날 정도로 재미있는 상황설정과 이야기전개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그 밑에 삼순이의 아픔과 씩씩함이 주는 짠한 감동의 자세를 잃지 않은 것.
글쎄ㅡ
굳이 왜 내가 뒤늦게 드라마 하나에 빠져들었다고 해서
그 드라마의 강점을 구구절절 늘어놓을 필요는 없을텐데
그래도 또 이걸 분석해대려고 하고 있으니 나도 병은 병이다.
아무튼
삼순이는 너무 재미있었고
너무 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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