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쩐지 고집이 세고 칼 같고 그럴 것 같은 느낌.
물론 그에게서 이런 '깐깐함'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깐깐함이란 90 평생을 한결같이 걸어온 과학과 이성, 합리주의와 자유주의에 대한 굳은 믿음, 그러나 그것들을 부정하는 어떠한 흐름에도 단호했던 깐깐함이었다. (마치 라드부르흐의 '다원주의' 개념을 연상시키는...)
실제로 그는 보수적인 1940~1950년대 미국에서 공산주의자라는 온당치 못한 평가를 받아 뉴욕시립대 임용이 거부되었고, 그가 출연했던 BBC라디오방송 역시 인기가 없어 금세 폐지됐다고 하는데, ㅡ 이 책 후반부에 '신이 존재하는가'에 관하여 라디오방송에서 한 신부와 대담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어려운 대화를 읽고 있노라면 그 프로그램이 인기 없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ㅡ
인식, 검증할 수 없는 그 어떤 인습과 고정관념에도 반대하고 더 많은 지식과 더 많은 이성만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점진적으로 해결해줄 수 있을 거라고 주장한 그러한 그의 타협할 줄 모르는 이성/합리주의에 대한 깐깐함이 우리가 합리적인 사회라고 생각하는 서구사회에서도 불편하게 받아들여졌던 것을 보면 흥미롭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는, 교조주의적이고 맹목적인 태도가 사람을 깐깐하게 만든다고 보는데, 러셀의 경우는, 우리가 '부드러울 것이다'라고 믿는 '합리주의'를 지키기 위한 깐깐함이었으니 흥미롭게 느껴지는 거다.
어쨌거나, 책을 다 읽고 나면 기독교와 종교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을 하게 된다.
아직도 콘돔을 거부하고 이혼과 낙태를 인정하지 않으며 착상이 생명의 시작이라는 관점에서 배아를 인간과 동일시 하는 기독교를 보자면 (구교건 신교건 상관없이) '그래, 그렇게 보수적인 관점을 가진 집단도 존재해야 그게 사회지' 싶으면서도 러셀의 우려대로 그러한 보수적 집단이 중세 때처럼 다시한번 자신의 교리를 관철하기 위해 강제력을 쓰려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하는 거다.
굳이 성당 잘 다니고 별 문제 없이 지내온 우리집의 문화에서 반기독교주의를 주장하며 '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어느정도 경건한 분위기가 좋지) 가정이 아닌, 개개인의 이익이 충돌하고 그 충돌을 조율해야하는 '사회'라는 측면에서는 어떠한 검증도, 토론도 없이 종교적 맹신으로 이끌리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닐 거다.
자신이 속한 사회(서양)의 근본 문화(기독교)에 대해 과감하게 반대의 목소리를 냈던 러셀의 깐깐함에서 인간 이성의 진보에 대한 또다른 모습의 희망을 읽었다.
* 고등학생 때 봤던 성문종합영어 '해석연습' 파트에서는 러셀의 문장이 참 많이 등장한다.
노벨문학상을 탄 문필가답게 속되지 않고 정제된 영어문장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것이 러셀의 글을 읽는 문체상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훌륭한 삶이란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삶이다'라는 유명한 문장을 이 책에서 발견하고는 그 구절이 마냥 좋아서 연습장에 몇번씩 써봤던 옛 생각이 나서 기분이 좋았다. 언제 시간 되면 이 에세이집을 원어로 읽어보고 싶다.
** 신해철이 넥스트 웹사이트에 올린 프로필에 보면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대외용)으로 이 책을 올려놨다. (대외용은 이 책이고 내부적으로는 '채털리부인의 사랑' 뭐 그런 류란다...^^) 자주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하는 그의 합리주의적인 발언들이 어떤 바탕에서 형성된 것인지 짐작할 수 있겠다.
ISBN 898616747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