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따라/영화 2005/05/15 16:52

가위질 다 된 한국출시판 홍보 포스터였지만 '인육만두'라는 제목만으로도 나의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런 호기심에도 오랫동안 챙겨보질 않았던 것은 호러팬들에게도 워낙 악명 높았던 고어씬들 때문이었다.
이미 피칠갑에는 어느정도 면역이 되고 나름대로 그 '피의 미학'을 즐기는 편일 호러팬들마저 혀를 내두를 정도라면 도대체 얼마나 무섭단 말인가.
화사한 주말 낮, 혼자서 봐도 안 무섭겠지 싶어 결국 오늘 보고야 말았다. 근데 각오했던 것에 비해 많이 무섭진 않더라.
악명 높은 씬들이 몇 개 있는데...
1. 주인공이 주방장을 죽인 뒤 내장을 꺼내고 살로 고기만두를 만드는 장면
- 칼을 내리친다든지 하는 중요한 순간에
항상 앵글이 돌아가버리는 간접화법(?) 때문에
오히려 여유를 갖고 피의 미학을 감상할 수 있다.
이 때, 카메라가 찍지 않는 부분의 장면을 생각하면 안된다.
공포란...인간의 상상이 만들어내는 공포가 가장 큰 법이니까.
2. 주인공이 여자경리를 강간하고 살해하는 장면
- 강간한 뒤에 음부에 젓가락 뭉치를 꽂는 장면이 있다.
물론 카메라는 여종업원이 누운 탁자 아래에서 앵글을 잡고
탁자 위에서 널부러진 다리 사이로 피가 흐르는 모습만을 잡는다.
이 장면 역시 이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라고 생각하고 보면 그냥 넘어갈 수 있다.
(사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는 하지만
영화 속의 영상은 영상일 뿐이니까)
더구나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윤금이씨 사건을 생각한다면
현실에 비해 저 영화의 충격 수위는 다소 낮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3. 후반부...주인공이 팔선반점 전 주인의 일가족을 몰살하는 장면
할리우드 영화에서 아이들을 죽이는 것은 금기시 돼있다.
지킬 건 지킨다! 라는... 일종의 불문율인데
여기서는 그런 금기까지 거침없이 훌훌 벗어버린다.
특히 전 주인의 다섯 아이 중 네번째 아이였던가...를 살해하면서
돼지잡는 칼로 아이의 목을 단칼에 참수해버리는 장면을 보면
이 영화가 왜 서양 고어/호러영화의 문법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오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이것 역시 탁자 아래에서 앵글을 잡아 떨어지는 목을 보여준다.
실제로 목에 칼이 박히는 것은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다섯 아이 중에서 가장 잔인하게 죽는 것은 그 네번째 아이 뿐이고
나머지는 역시 간접화법(?)으로 죽기 때문에
각오했던 것보다 충격은 다소 덜한 편이었다.
4. 역시 후반부... 일가족 살해 후 토막내는 장면
엄청나게 널부러진 사지와 몸통, 머리들이
화면을 온통 시뻘겋게 물들인다.
짧지만 임팩트가 강한...시각적 흥미를 유발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저게 다 소품이다...라고 생각하고 봐서 그랬을까.
아니면 텔미썸씽부터 혈의 누까지 면역된
사지절단 영화들에 내성이 길러져서일까.
'(사지가) 많다'라는 느낌 외에는 크게 충격적이진 않았다.
..........
영화는 초반부에서 주인공이 두세사람을 살해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난 뒤에는
조금 지루하게 전개된다.
팔선반점 전 주인의 살해용의자로 주인공이 체포된 뒤
경찰들이 그의 자백을 받기 위해 구타하고, 고문하는
엉성한 블랙코미디가 영화 중반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결국 고문과 구타에 이기지 못한 주인공이
팔선반점 일가족의 살해사실을 털어놓는 것이
악명 높은 후반부 10여분의 고어씬이다)
어딘가 모자라보이는 마카오경찰과
살인용의자의 자백을 받기 위해 다양한 고문방법을 동원하는
그들의 대책없는 수사수법이 블랙코미디로 펼쳐지는데
그 고문들에 못 이겨 괴로워하고 자살을 시도하는 용의자(주인공)의 모습이
'과연 무엇이 잔인한 것인가'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외국출시판의 dvd 커버에 적힌 'darkly witty'라는 평가 역시
마카오경찰이 용의자를 취조하며 벌이는
블랙코미디성을 뜻한 게 아닐까 싶다.
............
어쨌거나 각오가 단단했던 것에 비해
조금 맥이 빠지는 느낌이긴 했다.
오히려 고문하고 자백을 강요하는 마카오경찰의 모습이
용의자보다 더 잔인한 것 아닐까...하는,
국가권력에 의한 폭력과 개인의 광기에 의한 살인,
그 둘 중에 무엇이 더 무서운 것이고, 무엇이 더 무서운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하는가...라는
감독이 그런 삐딱한 메세지를 심어놓은 게 아닐까 의심(?)해보는 재미도
쪼금 있기는 있더라.
물론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찾아보려는 이유가
그렇게 밑에 깔려있다고 여길만한 전향적인(?) 작가의식보다는
피칠갑의 고어씬 때문이겠지만
내겐 그 고어씬도 그렇게 무섭게 보이진 않았다.
아무리 실화였다고 해도 이 영화 역시 영화일 뿐인 거고
이미 현실은 이 영화보다도 훨씬 더 무서운 일들로 가득찬 거 같았기 때문이다.
* 윤수일을 닮은 주연배우 황추생의 싸이코연기에 탄복하는 분들이 많더라.
(윤수일처럼 황추생 역시 아버지가 프랑스인이란다)
이 영화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로서는 '용호풍운'에서 만났을 뿐인 황추생보다
재소자로 나오는 성규안이 더 반갑게 보이더라.
** 능글맞은 수사반장으로 나오는 이수현의 모습은
첩혈쌍웅의 리(Lee)반장으로만 기억하고 싶은 그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이수현의 필모그래피를 쭉- 살펴볼 때
첩혈쌍웅의 과묵하고 영웅다운 풍모의 역할은 극히 예외적인 것 같다.
심지어는 큰 뱀이 나오는 홍콩 쌈마이 괴수영화에도 출연하곤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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