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따라/영화 2005/04/13 16:24

되게 유치한 생각이긴 하지만
서양음악사에서 최고의 음악가를 뽑으라면 누가 될까?
아마도 모짜르트와 베토벤이 단연 투톱으로 뽑히지 않을까?
둘다 고전파와 낭만파의 중간에서
엄격한 격식과 자유분방함의 미를 균형있게 갖춘
'가장 듣기 좋은' 음악을 만든데다
지명도 또한 난형난제니까.
게다가 한 명은 모든 게 유복했던 세기의 천재이고
또 한 명은 유년기 아버지의 폭력, 노년기의 청력상실 등
역경을 이겨낸 '樂聖'으로서
그 현격한 대비가 보여주는 상품성(?) 역시 우열을 재기 어려우니까.
그래서 이 '불멸의 연인'을 보면서
'아마데우스'가 생각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는 핑계를 대본다.
'아마데우스'는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MBC 주말의 명화에서 1, 2부로 나뉜 걸 보고
완전히 나를 맛가버리게 만든 그런 영화였다.
그로부터 10년 뒤 만들어진 이 '불멸의 연인'은
고등학교 초년생 시절에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별로다'라는 평가에 여태동안 감상을 미뤄온 영화였다.
10년이 흘러서야 비로소 보게 된 이 영화는
사실 베토벤이라는 소재보다는
게리 올드만에 빠져 찾아보게 된 경우다.
정말 뭐라 설명하기 힘든,
넘치는 광기를 보여주는 그의 연기가
베토벤의 피폐한 정신세계를 잘 드러낼 거라고
아주 좋은 캐스팅이었다고 생각은 했지만
다소 길고 야비해보이는 그의 얼굴선이
과연 심통맞아보이는 앙 다문 입의 고집불통 베토벤의 이미지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 싶은 것도 사실이니까.
어쨌거나 영화 자체는
미국이나 영국의 미니시리즈 사극 수준의,
'아마데우스'의 장엄함에 크게 못 미치는 실망스러운 것이었지만
이 영화에서 게리 올드만의 뛰어난 연기는
'역시' 라는 말을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베토벤이라기보다는 베토벤 분장을 한 게리 올드만만이 보일 정도로
그의 존재가 너무나 압도적이라는 단점은 있지만
(이건 사실 영화 자체가 부실한 데 따른 당연한 결과다)
'아마데우스'의 철없는 천재를 맡은 톰 헐스가
그 자신, 모짜르트의 이미지에 갇혀 그 이후로 별다른 활동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불멸의 연인'이 베토벤의 영화로만 남지 않고
(만약 그랬다면 이 영화의 가치는 '재앙'에 가까웠을 테니까)
그나마 '게리 올드만'이라도 보여주고 있는 점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게오르그 솔티가 음악감독을 맡았다거나 요요마가 첼로연주를 했다는 얘기가
클래식팬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이 영화의 가치는
'종합적인 쇼'로서의 기준에는 크게 못 미친다는 평가를 내리고 싶은 거다.
(앞서 말했듯이 미국의 미니시리즈 사극, 딱 그 수준이다)
영화는 체코에서 많이 촬영되었다고 하는데
재미있게도 아마데우스의 감독 밀로스 포먼이 체코 사람이다.
'불멸의 연인'의 감독이 소피 마르소 주연의 '안나 카레리나'를 감독한 걸 빼면
그리 뛰어난 감독 같지는 않은데 비해
밀로스 포먼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라든가 '발몽', '래리 플린트' 같은
걸출한 영화를 만든 대가라는 점이 이채롭다.
아참, 또 인터넷을 뒤져보니
게리 올드만의 또다른 영화 '레옹' 역시
'불멸의 연인'과 같은 1994년에 개봉했다.
그는 레옹에서 사이코 형사반장 스탠필드를 맡았는데,
영화 초반부에 마틸다네 가족을 죽이면서
'자네, 베토벤 좋아하나?'라고 물어보던 모습이 생각나 재미있었다.
레옹에서 그 대사를 하며 게리 올드만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
(인터넷에 보니 이미 trivia로 도는 얘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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