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데도 이곳에 내려와서
호러나 스릴러, 심지어는 고어영화까지 다운받아 보는 심리는
나로서도 잘 설명하기 힘들다.
어젯밤에 잠들기전 다운 받은 영화는
브라이언 드 파머의 초기작품 '드레스드 투 킬'(1980)이다.
사실 많은 고전영화들이 그렇듯
이 영화 역시 그 명성에 이끌려 찾아보았다기보다는
캐나다 있을 때 반지하 하숙집 거실에서
혼자 소파에 누워 케이블TV를 돌리다가
끝나기 몇분 전 장면만 보고 말았던 게 원통(?)해서였다.
브라이언 드 파머의 초기걸작,
아니면 좀더 넓게 스릴러물의 a must-see라고 평가받고 있음에도
굳이 '챙겨봐야겠다'라며 끌리지 않은 건
내가 본 그의 영화들이
한결 같이 내게 잡곡밥을 씹는듯한 거칠고 세련되지 못한 느낌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굳이 그의 성향과 특기에 대한 사전조사가 없더라도
미션 임파서블, 스네이크 아이즈, 팜므파탈 같은 그의 요즘 영화들에서
아, 저 감독은 화면분할과 음모, 반전, 현실과 상상의 교직(交織)에
취향(?)이 있구나...하는 걸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 '취향'이라는 것이
'잘한다'라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게
내게 박힌 그에 대한 인상이었다.
어쩐지 '서사'의 힘딸림을
스타일로 만회하려 한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초기걸작 중 하나라고 불리는 '언터처블'을 먼저 봤더라면
인상이 좋게 남았을지 모르겠다)
'드레스드 투 킬' 역시
그 명성에 걸었던 큰 기대를 그대로 내게 만족시켜준 것은 아니었지만
(역시 여기서도 기본적인 스토리텔링이나 개연성의 측면에서 헛점이 보이더라)
그러한 소소한 아쉬움과 단점들을 커버하고도 남도록,
제작된지 25년이 지난 작품으로서는 너무도 많은 부분에서
가히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을만 하다는 수긍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관객의 허를 찌른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오프닝 테마와 여주인공의 관능적인 샤워씬은
관객들의 긴장감을 마비시키고 스릴러라는 장르성을 은폐시켜
곧이어 벌어질 처참한 샤워실 살해장면의 충격을 배가시킨다.
(다 아시다시피 이 장면은 드 파머의 영원한 스승이라 불리는
히치콕의 '사이코'에 나오는 명장면에 대한 오마쥬다)
** 찾아보니 샤워씬에 나오는 몸매(?)는 중년의 디킨슨이 아니라
23세의 모델이 대역한 거라고 한다. 그러면 그렇지...(?) **
곧이어 나오게 되는
케이트와 낯선 남자의 미술관 숨바꼭질(?)씬 역시
많은 사람들이 높이 평가하듯 긴장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명장면으로 기억되고 있고,
낯선 남자와의 잠자리 후 그 집에서 나오며
보비(살인마)에게 엘리베이터 안에서 살해당하는 케이트의 피투성이가 된 모습은
섹스와 스릴러, 미스터리가 중심이 된 이 영화에
어느 정도의 고어성까지 가미시켜주고 있어 흥미롭다.
(보비가 휘두른 면도칼에 쩌억- 갈라지는 케이트의 오른손이란...!)
특히 '드레스드 투 킬'에서는
거울을 통한 시선포착이 자주 이루어지고 있는데
(엘리베이터 살해씬, 엘리엇박사의 웃는 표정, 리즈의 샤워실 살해씬 등등)
우리의 인지체계를 거치게 되는 육안(肉眼)이 아닌,
거울이라는 사물을 통해 좌우가 뒤바뀌어 보이는 설정은
시선의 몰가치성과 면적적 협소성으로 인해
사건의 잔혹성을 더욱 크게 만드는 효과를 보여준다.
물론 이러한 점들이
드 파머에게 따라붙는 '히치콕의 충실한 후계자'라는 호평 겸 비아냥대로
그 자신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는 아니라 하더라도
그의 초기작인 이 '드레스드 투 킬'에서 절묘한 '최적의 조합'을 이뤄내며
이 작품을 '장르적 걸작'의 반열에 올려놓았던 것이다.
인터넷에 도는 2장짜리 파일들은
음모노출과 고어씬이 제거되지 않은 unrated판 같다.
영화의 관능성과 잔혹성을 충분히 즐기기 위하여
이 unrated판을 권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