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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마르크스 - 공산당선언

2004/08/27 00:37, 글쓴이
 
 
 
 
많은 사람들은 서양문명사를 바꾼 세 사람의 유태인을 들곤 한다. 계몽, 이성, 의지와 같은 추상적인 지성사를 거부하고 과학적 사회주의를 불러일으킨 마르크스와, 꿈의 해석을 통하여 인간의식세계의 저 너머 영역에 발을 내딛은 프로이트, 그리고 상대성이론을 통하여 우리를 둘러싼 우주라는 존재에 대한 해석의 지침을 마련해준 아인슈타인. 시대는 다르지만 이들이 탐구한 대상은 공교롭게도 인간(프로이트) - 역사와 사회(마르크스) - 우주(아인슈타인)라는 큰 궤(軌) 위에 놓여있었다.

그렇긴 하지만 사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건 썩 내키는 일이 아니었다.

소련과 동구권의 붕괴로 마르크시즘이란 게 시대에 뒤떨어진 사상으로 이해되는 이 때, 마르크스주의의 의의를 찾자면 그 사상적 선동성보다는 그가 항상 견지해왔던 과학적 사회주의의 태도에 중점이 맞춰지게 된다. 그렇지만 마르크스주의의 정수라고 하는 '자본론'이 아닌, 제목에서부터 다소간의 격정성, 비합리성이 느껴지는 이 '공산당선언'을 집어들게 된 것은 순전히 '얇아서'였다. 역자의 해설도 모자라 원본의 각국어판 서문까지 다 끼워넣어도 150페이지 남짓에 불과한 이 '가뿐한' 양은, 마르크스 그가 그토록 경계했던 자본주의 사회의 충실한 노동자로서 덜컹거리는 지하철을 타고 회사로 향하는 이 불쌍한 중생이 그를 만나는 데 있어 게으름을 피운다거나 쉬 질리지 않게 하기 위한 최적의 분량이었던 것이다.

우선 내용 외적인 이야기부터 하자면, 이제 한국의 번역서들도 수준이 많이 높아졌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중요한 부분을 앞으로 빼고 수식어를 뒤로 뒤로 열차처럼 이어붙이는 서양어의 어법을 한국어로 번역하면 주어와 술어 사이에 들어가는 수식어가 한없이 길어져 주술관계를 오해케 한다거나 하는 일이 많다. 아마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대개의 번역서들은 이러한 어색함을 고치려는 노력 없이 그것을 '직역' 또는 '완역'이라는 미명하에 텍스트 이해의 부담을 전적으로 독자들의 지식수준에 떠맡겨왔던 것 같다. 하지만 오랜만에 집어든 이 책은 정말 '쉽게 읽힌다.' 아마도 대중, 실생활과 유리되지 않는 철학을 중요시해왔던 이진우 교수가 번역을 해서 그런게 아니겠나 생각해볼 따름이다.

어쨌거나 이 책 '공산당선언'의 많은 양은 헤겔의 변증법을 차용해 역사의 발전단계를 모색한 마르크스의 독특한 역사관과, 그 역사발전 속에서 지배와 피지배라는 관계가 어떻게 유지되어 왔는지에 대한 해설에 할애되어있다. A=B, B=C 그러므로 A=C라는 수준의 정교한 자연과학적 태도는 아쉽게도 맛볼 수 없지만 이 글이 작성된 19세기말의 상황에서는 서양의 역사를 관통하는 일원칙을 발견했다는 흥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으리라는 짐작을 한다. 아직까지도 당대 유럽지성계의 주류는 '계몽과 이성' 아니었던가. 당대의 초기 사회주의자들 역시도 사회변혁을 시민계급의 의지라든가 이성의 관점에서 '수혜적'으로 파악한 측면이 있었던 걸 생각해본다면, 철저히 역사 속 피지배계급의 모습에서 모든 논리와 단결의 근거를 찾아낸 마르크시즘은 '급진적이다'라는 비난을 듣기에 충분할 정도로 차갑고 두려운 존재였던 거다.

그렇지만 솔직히 그가 꿈꿔왔던 이상들이 실패였다는 것이 판명난 1백년 후의 사람인 내가 읽기에 그의 목소리높임과 격정은 다소 우습다고 느껴질 정도로 순진하게 보였다. 그 상태에서 책을 덮으려던 내게 아직까지도 마르크스주의는 유효함을 깨닫게 해준 것은 오히려 역자인 이진우의 '공산당선언 해설'이었다.

고전이 위대한 까닭은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무궁무진하게 남겨두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마르크스의 이론은 레닌과 마오쩌둥에게는 혁명의 이론으로써, 루카치 같은 사람들에게는 과학적 사회주의의 틀로써 수많은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었다.

여기에 덧붙여 역자는 마르크스주의에서 '共生'을 읽어낸다.

재산과 가족의 공유 등 마르크스의 반대자들이 그를 조소하며 들이댔던 '共産'이라는 조야한 모더니즘적 표현을 걷어내고, 역자는 그 자리에서 포스트모던 시민사회의 새로운 덕목으로서 '共生'의 의미를 읽어내고 있다. 물론 본책의 해설격인 짧은 글이라 깊은 내용은 접하기 어려웠지만 마르크스주의와 오늘날 시민사회의 이상이 일맥상통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 수긍하다보니 '시민단체들은 홍위병'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그렇게 틀린 건 아니군! 하는데까지 생각이 미쳐 빙긋 웃음까지 나왔다. (어쩌면 그말을 한 그 사람이야말로 열렬히 마르크시즘 공부를 한 골수 마르크스주의자?)

ISBN 8970133615
2004/08/27 00:37 2004/08/27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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